‘페이지 터너’

해진 꿈의 페이지, 그 뒷장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4월 15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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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밥, 겉만 익은 고기, 덜 녹은 냉동식품. 모두 적당한 온도와 시간을 들이지 않은 요리의 결과다. 이처럼 우리는 아주 쉽다고 생각하는 요리에서 자주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문득 우리 인생도 요리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요리처럼 인생에서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간과 온도,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심한 허기 앞에서는 아주 힘든 일이다. 끓기도 전에 자주 뚜껑을 열어보게 되고, 익기도 전에 자꾸 뒤집게 된다. 성급해지는 순간 망치게 되는 요리처럼, 사람들은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다.

 

좌절된 꿈의 흉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 아이들을 보면 아주 센 불로 달궈진, 기름까지 두른 불판 위에 오른 고깃덩이 같을 때가 있다. 너무 일찍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 버린 아이들에게, 인생은 실패하기 쉬운 요리 같아 보인다. 대부분 평범한 아이들이 수육처럼 속이 폭 익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과 기다림 속에 있는 것과 달리, 아주 어린 시간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 예술가 지망생들은 속이 익기도 전에 겉만 바짝 타버린 고기처럼 성급하게 자기를 불태우기 쉽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의 ‘페이지 터너’에는 채 익기도 전에 홀랑 타버린 소녀 멜라니가 등장한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소녀 멜라니는, 반드시 유명 음악학교에 입학하겠노라 약속한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피아노 레슨비가 버겁다는 것 정도는 어리지만 잘 알고 있다. 긴장 속 실기 시험을 치르는 중, 심사위원장 아리안의 행동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져 연주를 망치고 만다. 10년 뒤, 멜라니는 아리안의 남편 회사의 인턴이 되고, 아들의 가정교사로 아리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자연스럽게 아리안에게 접근한 멜라니는 결국 아리안의 연주 중 악보 넘기는 페이지 터너의 일까지 맡게 된다. 그리고 아리안이 멜라니를 가장 신뢰하는 순간, 오랫동안 준비했던 복수의 마침표를 찍는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피아니스트와 페이지 터너의 호흡은 연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음표가 많고 기교가 많은 피아노 연주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연주 중 악보를 넘기기가 쉽지 않아 페이지 터너가 공연에 함께한다. 독주회에서는 암보(暗譜)로 연주하기 때문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협연이나 실내악에서는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 페이지 터너가 필요하다. 그림자처럼 숨어있어 잘 눈에 띄지 않을 뿐, 무대 위에는 늘 페이지 터너가 있는 경우가 많다.

페이지 터너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공식이 있다고 한다. 무대 위 연주자보다 튀어서는 안 된다. 실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연주자의 옆에 있지만, 박수는 자신의 몫이 아니므로 피아니스트가 충분히 박수를 받을 수 있게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한다. 관객들이 오롯이 피아니스트에 집중할 수 있게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이외에는 무대 위에서 움직여서도 안 된다. 연주자의 성향에 맞춰 악보를 넘기는 타이밍도 정확해야 하고 악보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게다가 악보를 넘기는 순간이 잘못되면 연주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음악적 지식은 물론, 연주의 흐름을 따르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이토록 예술가만큼의 역량이 있어야 하지만, 예술가는 아닌 이런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처연하면서도 슬픈 일이다. 주인공 멜라니가 페이지 터너를 하는 것은, 아리안의 마음에 다가가는 수단처럼 보이지만, 좌절된 피아니스트 지망생의 꿈을 현실이라는 무대 위로 끌어 올려 동시에 은유한다. 그래서 무대 위에 있지만 연주자는 아닌, 혼신을 다해야 하지만 박수를 받을 수는 없는 페이지 터너는 한때 예술가를 꿈꿨지만, 좌절을 딛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흉터 같기도 하다.

 

복수의 품격

복수극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페이지 터너’는 흔한 복수극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바흐, 슈베르트, 쇼팽,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흐르는 피아노 연주처럼 가끔 과호흡의 격정도 있지만, 줄곧 우아하고 느린 호흡으로 유연하게 흘러간다. 아리안의 배려심 없는 사소한 실수는 멜라니의 인생을 망친 것처럼 보인다. 멜라니의 연주를 망쳤고, 그래서 원하던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고, 그녀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기까지 한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다음 기회가 있을 수도 있는데, 멜라니의 선택은 성급해 보일 만큼 단호해 보인다.

하지만 정말 멜라니의 꿈을 망친 것이 아리안이었을까 하는 것은 계속 되짚어 떠오르는 질문이다. 어쩌면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자신의 꿈을 따를 자신이 없는 멜라니는 자신의 미래를 너무 일찍 앞서 눈치채 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열쇠로 피아노를 잠가 버리듯, 스스로의 꿈을 잠갔다. 그 순간 피아니스트 아리안은 멜라니의 꿈이 연주될 다음 장의 악보를 넘기는 순간의 페이지 터너였는지 모르겠다. 아리안은 실수했고, 멜라니는 인생이라는 연주를 망쳤다. 그래서 멜라니는 꿈이라는 악보를 덮어버렸다.

표정을 숨긴 멜라니의 행동은 늘 신중하다. 능숙한 페이지 터너처럼, 섣부르게 악보를 넘겨 연주를 망치지 않는다. 꿈을 그토록 빨리 접었지만, 복수는 아주 오랫동안 익혀야 하는 요리처럼 시간과 공을 들인다. 마치 자신만의 독주회를 하듯, 천천히 믿음과 신뢰를 주고 상대의 마음을 얻는다. 그리고 아리안의 커리어와 피아니스트가 될지도 모를 아리안 아들의 꿈도 서서히 망친다. 다른 사람들을 악보 위의 음표처럼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순간, 멜라니는 아리안이 자신의 인생을 망친 그 방법 그대로 피 한 방울 없는 복수를 한다.

아리안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도, 남편의 신뢰도, 아들의 미래도 모두 망쳤지만 그녀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것은 다친 마음일 것이다. 멜라니는 마음을 다치게 만드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것을 알고 있다. 평생을 분노와 죄의식,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 왜 그런 고통을 자신이 겪어야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는 매 순간, 마주하는 흉터는 상처 입은 순간의 통증을 떠오르게 만들 것이다.

멜라니는 삶의 주인공 자리를 내놓은 후, 해진 악보 페이지처럼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복수를 선택했다. 그래서 느리고 교묘한 복수는 멜라니의 완벽한 마지막 연주처럼 보인다. 떠나는 길 위, 경쾌한 발걸음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멜라니의 모습에 문득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멜라니 스스로 넘기는 악보의 다음 장에는 또 다른 인생이 유연하고 유려하게 펼쳐지길 응원하는 마음도 함께.

 

글 최재훈(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후 각종 매체에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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