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EXHIBITION
암막 커튼보다 강력한 차단막이 있다. 객석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무대 커튼이다. 무대 위 커튼은 현실과 환상의 영역을 단숨에 구분 짓는다. 무대를 가리던 장막이 걷힐 때 관객은 하나의 세계, 또 다른 이야기와 조우한다. 아름다운 무용수들이 환상적인 몸짓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낭만주의 발레의 경우 현실과 멀어질수록 예술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커튼은 이편 너머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이 된다. 무대에 올라온 무용수는 관객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수용자로서의 관객은 배우가 생산해내는 허구적 현실을 우두커니 지켜볼 뿐이다. 그런데 독일 표현주의 발레 선구자, 안무가 피나 바우슈는 이 틈을 과감히 메꿨다.
피나 바우슈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무대 위로 가져왔다. 작품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피나는 작품에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반영했다. 카네이션으로 뒤덮인 무대로 언뜻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넬켄’은 감시사회에 대한 풍자이며 ‘매음굴’에서는 젠더 권력을, ‘봄의 제전’에서는 인간 본성의 잔인함을 비판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무대는 더 이상 낭만과 환상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며 관객들은 작품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나아가 피나는 무용수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하고,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완성했다. 관객들이 바라보는 무대 위의 무용수는 나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 될 때, 공감대가 확장된다. 그렇게 관객은 예술의 주체로 자리 잡는다.
무대 미술에서도 피나는 무대가 장식이 아닌 현실이길 바랐다. 그녀의 작품에 인위적인 경계로서의 커튼 장식이 거의 쓰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와 30여년간 작업했던 무대미술가 페터 팝스트는 다큐멘터리 ‘피나’를 연출한 빔 벤더스와의 인터뷰에서 ‘팔레르모 팔레르모’에 드물게 커튼을 사용했던 이유는 단지 커튼 뒤의 벽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 바 있다. 대신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페터는 무대에 자연물을 구현하거나 등장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페터가 만든 무대는 풀과 꽃으로 뒤덮여있거나 물이 흐르고 바위나 나무가 제자리인 것처럼 놓여있다. 무용수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전에 없던 움직임과 감정을 표현했다.
페터 팝스트의 무대를 재현한 전시가 피나 바우슈 타계 10주기를 맞아 열렸다. ‘페터 팝스트-피나 바우슈 작품을 위한 공간들’전은 그 자체로 영감을 주는 페터 팝스트의 무대를 설치미술 작품의 형태로 옮겨왔다. ‘춤추는 저녁Ⅱ’의 배경이 된 눈 덮인 자작나무와 5만 송이의 장미꽃 산을 만들었던 ‘유리창 청소부’, ‘넬켄’ 무대에 일일이 세워졌던 분홍 카네이션 등 페터의 무대를 5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 각층에 하나씩 설치해 다른 느낌을 연출해냈다. 이 공간에서 관객들은 직접 그 자신이 무용수가 되어 무대를 체험하게 된다. 소금으로 표현된 무한의 눈밭을 거닐고 피나와 무용수들이 안데스산맥에서 봤던 카네이션 꽃밭을 간접 경험한다. 이러한 체험형 설치미술 전시는 예술을 삶으로 삶을 예술로 끌어들였던 피나의 예술관과 가장 맞닿아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시 공간에 들어섰을 때 무용수 없이 덩그러니 놓인 무대를 채운 건 스마트폰을 손에 쥔 관람객들이다. 언뜻 전시계를 휩쓴 ‘인스타그래머블’ 전시 중 하나처럼 보인다. 그런 곳에서 전시 작품은 사진의 배경으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이 불편한 찜찜함을 해소하기 위해 ‘페터 팝스트’전 기획자 김범상과 서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해시태그 너머의 의미
한국에서 낯선 무대 미술로 전시를 기획한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 피나 바우슈의 전시회를 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독일 부퍼탈에 가서 피나 파운데이션과 부퍼탈 탄츠테아터 관계자도 만나보았지만 여러 저작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았습니다. 만약 피나에 관한 전시를 하게 되면 무대 미술이 중요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후 페터 팝스트가 서울을 방문해 피크닉 공간을 보고 전시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페터는 늘 큰 극장에서 작업해왔기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이 전시 공간 안으로 그의 무대를 들여오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고집한 방법을 최대한 반영한 결과 시적인 느낌으로 전시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단순 마케팅 목적에서 기획된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와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무대 미술은 ‘스펙터클’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설치된 전시물을 찍으면 멋있고, 실제로 인스타그래머블 합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배우나 무용수가 아닌,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주역이 되어 퍼포먼스에 동참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무대라는 점이 주요합니다. 관람객들이 이 안에서 무용수들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상상해보고, 자신도 마음껏 무대를 누비며 페터와 피나의 무대가 실제 무용수들에게 어떠한 도전 의식을 심어주었는지, 무용수로서 어떠한 움직임이 가능했고 또 불가능했는지, 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끔 구성했습니다.
관객참여형 전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가 있다면.
피나와 페터가 자연을 극장으로 가져오듯 미술관 안으로 자연을 가져온 것입니다. 실제 잔디, 실제 자작나무, 눈을 표현하기 위한 소금, 전세계를 뒤져서 찾아낸 섬세한 조화들. 그것을 배치하고 관리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더불어, 관람객이 어떠한 정보를 접하기 전, 몸으로 먼저 무대를 감각할 수 있게 전시장 내 설명을 배제했습니다. 간혹 관람객분들이 사진을 찍는 데 열중하여 작품과 공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 때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 전시의 완성은 관람객들 저마다의 감상과 퍼포먼스로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글 박서정 기자 사진 글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