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기억의 성분에는 함께 나눈 감촉, 행복했던 날의 냄새, 그리고 달콤한 그 날의 맛이 포함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과 살냄새, 그리고 켜켜이 쌓아 올린 기억은 달콤한 추억이 되어 현재를 살아내고 미래를 기대하는 힘이 된다. 시간은 계속 흘러 사라지지만, 그렇게 추억은 과거를 현재로 띄워 올려 미래까지 이어주는 하나의 다리가 된다. 사랑과 추억의 힘에 대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는 사람이 사라진 후, 사랑으로 살아진 한 여인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떠나보내, 곁에 둔 사랑
무뚝뚝하지만 나쁘지 않은 남편, 살갑지 않지만 바른 자식들. 남들이 보면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삶에 지친 여인이 있다. 툭 건드리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신경병의 끝,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 남자는 여인에게 구원이었다.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동명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가정이 있는 한 여인이 낯선 남자와 보낸 4일간의 뜨겁고 애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불륜이라는 아슬아슬한 주제 속에서도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들의 감정을 미화하거나 편들기에 앞서, 프란체스카라는 여인이 겪는 깊은 권태와 우울 속에 찾아든 뜨거운 생명력에 집중한다. 나아가 죽어버릴 것처럼 아프지만, 막상 죽어버리지는 않는 상실 속에서 끝내 추억을 더듬어 지켜낸 성숙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도입부는 엄마 프란체스카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찾아온 두 남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스터 앤 미시즈 리처드 존슨이라는 우편함을 지나온 집에서 딸이 처음 발견한 것은 ‘프란체스카’라는 이름이 새겨진 엄마의 목걸이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살아가던 여인이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남자와 나눈 사랑의 근원에는 되찾은 자아가 함께 하는 것 같다. 엄마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남매는 엄마의 과거를 되짚는다.
프란체스카에겐 마음 깊이 숨겨둔, 가족들은 모르는 연인이 있었다. 평범하고 변화 없는 권태 속에 찾아온 이방인은 부글부글 끓지만 인지하지 못한 불만을 헤집어 삶을 흔들었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와 그 불편한 이물감을 홀로 버티던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라는 이방인을 통해 자신의 심리를 다시 확인한다. 하지만 이방인인 로버트는 그녀에게 이물감 대신, 동질감과 위안을 주는 존재다. 프란체스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마치 은밀한 비밀을 고백하는 소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로버트는 이방인이라는 감각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묻어둔 채 살아가는 프란체스카에게 고향과 이름을 되찾아준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린 것이었던 감각이 열리면서 프란체스카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질문과 마주한다. 그 질문이 내 삶과 맞닿는 동시에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체성을 찾는 것은 선악과를 베어 무는 것과 비슷하다. ‘나’를 깊고 뚜렷하게 자각할 때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떠나지 않는다. 로버트를 향해 달아나는 순간, 사랑을 위해 가족을 버리는 순간, 로버트를 향한 사랑이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보낸다. 사랑의 격정에 빠진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지만, 놓아주어 지키는 성숙한 사랑도 있는 법이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이 열리고
알려진 것처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1992년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원작과, 1995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2014년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올렸고, 그해 토니 어워즈에서 작곡상과 오케스트레이션상을 받았다. 호평 속에 2017년에는 한국 초연되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연극적 요소로 가득하기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자연스럽게 뮤지컬로 제작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속 미장센은 굉장히 극적이고 상징적이다. 엄마의 과거가 시작되는 장면은 잘 짜인 연극의 도입부 같다. 회상 장면에 처음 나오는 프란체스카는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있다. 라디오에는 마리아 칼라스의 ‘카스타 디바(Casta Diva)’가 흐르고 있다.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의 아리아다. ‘노르마’는 희생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이스트우드는 이 아리아를 통해 프란체스카의 희생을 앞서 상징한다. 더불어 프란체스카가 오페라를 좋아하는 감성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족들은 무신경하게 문을 쾅 닫고 들어오고, 그때마다 프란체스카는 신경병적 아픔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딸아이는 묻지도 않고, 라디오 채널을 돌려버린다. 프란체스카는 가족들을 보면서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가족들은 모두 외면한다. 침묵 속에 프란체스카는 외롭다. 혼자 있고 싶다. 가족들이 경연대회로 모두 떠난 뒤, 홀로 남은 프란체스카는 그제야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아리아를 듣는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그대 음성에 내 마음이 열리고’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멀리 로버트가 탄 차가 그녀를 향해 다가온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프란체스카의 외로움과 아픈 사랑 이야기를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아리아와 오페라를 통해 상징함으로써 처음 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마는 순간을 촘촘하게 직조해 낸다. 실제로 마리아 칼라스는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날 선 이물감 속에서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 프란체스카는 그녀의 노래를 통해 이방인의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받는다. 자칫 중년 여인의 일탈처럼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세기의 로맨스 명작으로 끌어올린 데는 메릴 스트립의 역할이 크다. 흡사 낮은 한숨조차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은 그녀의 연기는 권태로운 여인의 모습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의 아름다움까지 하나의 캐릭터에 오롯이 담아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공기처럼 가벼워 공허한 여인의 외로움과 낯선 끌림 사이에서 프란체스카라는 여인이 선택한 성숙한 사랑의 의미를 골 깊게 새겨둔다. 달아나는 것보다 남는 것으로 사랑을 지키는 프란체스카의 선택은 성숙한 사랑의 의미를 오래오래 되짚게 만든다.
글 최재훈(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후 각종 매체에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