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연말을 채워줄 무대

국내외 송년공연 & 감상법 PART I 클래식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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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2월 2일 11:10 오전

SPECIAL

 

 

벌써 겨울이다. 2019년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지금, 올 한해도 열심히 달려온 당신에게 공연 한편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 ‘객석‘이 송년을 맞아 클래식 음악부터 무용·오페라·연극·뮤지컬·국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연말 공연을 소개한다. 연말 인기 레퍼토리 분석과 작품 속 뒷이야기 등을 통해 당신의 연말을 풍성하게 채울 공연을 찾아보자. 해외 통신원이 전하는 미국과 유럽의 연말 풍경도 놓치지 말자!

글 이미라·권하영·박서정(이하 ‘객석’ 기자) 송주호·서주원(음악 칼럼니스트)·지혜원(공연 칼럼니스트) 정옥희(무용 칼럼니스트)·배윤미·김동민·오주영·이성우(해외 통신원)

 

PART I 클래식 음악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베토벤 교향곡 ‘합창’이 초연된 때는 1824년 5월 7일이었다. 따뜻한 봄날의 음악이 송년음악회 프로그램으로 등장한 때는 1918년 12월 31일, 독일 노동운동의 일환으로 기획된 연주회는 밤 11시에 시작되어 이듬해 1월 1일에 끝이 났다. 이 이벤트는 이후 나치의 중요 행사로 열렸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동독에서 이어졌다. 동양에서는 일제의 주도로 1925년부터 NHK 교향악단이 12월 31일 밤의 송년음악회에서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합창’을 연주하는 송년음악회는 나치와 일제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이 두 정권이 패망한 이후에도 이 전통만은 살아남았다(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도 비슷한 경우이다). 이러한 전통은 1960년대에 들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합창’의 연주는 연주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하지만, 시대에 따른 양상도 눈에 띈다. 1953년 67세의 푸르트뱅글러와 빈 필의 연주는 장면에 따라 템포를 변화시키고 타악기를 강조하는 등 낭만주의자의 자유로운 해석이 엿보인다. 1년 후 로마 RAI 교향악단과의 46세 카라얀의 연주도 자의적인 템포 변화를 보이며, 독창과 합창에서 오페라적인 극적 효과를 들려준다. 1980년대에 들어 블롬슈테트/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녹음은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고급스러운 소리에 집중하며, 카라얀/베를린 필 또한 앞선 녹음에 비해 안정적으로 변화되었다. 음반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기록을 위한 모범적인 해석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1990년대에는 자필보를 들여다보는 시도가 나타났다. 아르농쿠르/유럽 챔버 오케스트라는 큰 자극을 주었고, 가디너/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의 빠르고 역동적인 연주는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데이비드 진먼/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도 여기에 동참하여 주목받았다. 최근에 발매된 슈이란/코펜하겐 필의 2013년 녹음은 빠른 속도와 절도 있는 리듬, 가벼운 음향을 들려준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원전 해석은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송주호

줄리안 코바체프

드미트리 마슬레예프

덴마크 로열 오케스트라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19세기 발레는 무용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음악은 무용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며, 극의 흐름에는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이콥스키의 발레곡은 혁명적이었다. 그의 음악은 이러한 극적 흐름에 집중하면서, 장면을 설명하는 음악적 효과가 드러나도록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호두까기 인형’의 경우 성탄 전야의 축제, 악령이 깨어나는 ‘밤 12시’, 전투, 그리고 환상의 나라라는 매우 극적인 요소가 결합되어있다. 인형이라는 인간 외적 요소가 예상치 않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의 요소도 있다. 그래서 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무용수들은 무용 실력뿐 아니라 연기력도 갖춰야 한다. 이러한 탓에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적인 가치가 있으며 심지어 유도동기를 사용할 정도로 음악적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있다. 서곡과 디베르티스망 부분의 음악을 모은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 발레보다 먼저 초연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특징이 바탕에 있으며, 이후 여러 편곡의 대상이 된 것 또한 그러하다. 니콜라스 에코노무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한 버전은 세계적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 두 대의 피아노가 주고받는 대화에서 이 곡에 숨겨진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미하일 플레트뇨프의 피아노 독주 편곡은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만큼 높은 수준의 실력을 요구하고, 에두아르트 랑어의 피아노 연탄 편곡은 한 대의 피아노에서 가능한 풍부한 음향을 이끌어낸다. 놀랍게도 올해 12월에는 관현악 모음곡과 이 모든 피아노 편곡들이 연주된다! 송주호

발레리 게르기예프 ©Alexander Shapunor

토마스 손더가든 ©Martin Bubandt

지용 ©Sangwook Lee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과거 어느 때보다도 손쉽게 온 세상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시대다. 그렇지만 마음 알아주고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존재는 여전히 드물고 귀하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정은 함께 예찬하는 가운데서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한계·결함·왜소함은 눈앞으로 밀어닥치는 숭고함 속에서 치유될 수 있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산문집 ‘예찬’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건축가이자 화가인 친구 하르트만과의 우정 속에서 탄생했다. 두 사람은 열정적인 민족주의자로서 예술적 이상을 공유한 절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이들이 함께 한 시간은 극히 짧았다. 하르트만이 39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무소륵스키는 큰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 하르트만의 죽음을 애도하며 친구들은 그의 작품들을 모아 추모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에 다녀온 무소륵스키는 그곳에서 받은 영감과 인상을 열 개의 곡에 담았다. 원곡은 피아노 작품이지만 라벨의 관현악 편곡으로도 자주 연주된다. 이 작품에는 작품과 작품 사이를 거니는 장면을 묘사한, 산책이라는 뜻을 지닌 ‘프롬나드’라는 독특한 간주곡이 들어있다. ‘전람회의 그림’은 음악으로 보는 전시회다. 걸음은 첫 곡 ‘난쟁이’에서 시작해 ‘고성’을 거치고 ‘카타콤’의 묘지를 지나 ‘키예프의 커다란 성문’에 이른다. 마지막 성문 앞 장엄한 소리의 행렬 속에서 감상자들은 “눈앞으로 밀어닥치는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무소륵스키는 이 의미심장한 작품으로 친구의 죽음을 영원히 살려냈다. 시간은 단지 흘러가고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과 추억 속에 오롯이 남는 것이다. 서주원

국립합창단

헨델 ‘메시아’

독일·이탈리아·영국 등 세계를 거침없이 누비며 오페라로 흥행 신화를 써 내려갔던 헨델은 1730년대 말 오페라단의 재정과 건강이 한꺼번에 악화되며 심신이 무너졌다. 이런 헨델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부터 자선음악회를 위한 작품 의뢰를 받은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헨델은 종교적 주제에 오페라 같은 음악적 효과를 가진 오라토리오에 전념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구약의 예언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찰스 제넨스의 대본으로 헨델은 1941년 여름, 약 3주간의 시간 동안 총 3부, 연주 시간 2시간, 그리고 연주곡이 53곡에 달하는 이 대작을 창작했다. 흔히 종교적 영감이라고도 해석되는 폭발적인 집중력으로 완성한 것이다.

초연은 1742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이루어졌다. 600석 공연장에 700명이 들어찼다. 열광적인 호응 속에서 연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오페라 창작으로 증명된 탁월한 극음악 작곡가 헨델은 종교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극작가로서의 강점을 발휘했다. 웅장하고도 감동적인 호소로 넘치는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에 몰입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는 헨델의 새로운 열정과 종교적 감동이 고동치고 있다. 1750년 영국 런던 초연 때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되던 순간, 당시 영국 국왕인 조지 2세가 벅찬 감동으로 벌떡 일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될 때 청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종교를 초월해 음악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헨델과 국왕을 넘어 우리 모두를 일으켜 세우는 음악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서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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