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연계를 움직이는 TOP 매니지먼트 CEO 14인

팬데믹 후 우리가 꿈꾸는 부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0월 19일 9:00 오전

세계 공연계를 움직이는 TOP 매니지먼트 CEO 14인

팬데믹 후 우리가 꿈꾸는 부활

 

이번 기획은 국내 클래식 음악 산업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됐다. 클래식 음악 산업을 위한 제대로 된 법 하나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온 해외 매니지먼트계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코로나의 여파로 휘청이는 국내 기획사들을 보며, 우리가 가야 할 방향성을 오랜 역사와 더 큰 시장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획사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던 중, 90여 년 역사의 미국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소식은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있는 전 세계 에이전시와 아티스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다시 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물었다. “당신의 회사는 안녕한가요?”

글 이미라 기자

 

 

코닐리아 슈미트

KD Schmid · since 1959

독일 · KD 슈미트

코닐리아 슈미트 Managing Director

 

미래를 향한 열쇠

| 주요 아티스트 |
조성진(피아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피아노),
요요 마(첼로), 안드리스 넬손스(지휘),
발레리 소콜로프(피아노), 우치다 미츠코(피아노)

KD 슈미트(Konzertdirektion Schmid)의 역사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의 창립자인 한스 울리히 슈미트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공부를 마친 그는 우연한 기회로 독일 함부르크의 스타인웨이(Steinway & Sons)에서 일하게 된다. 매장 지하에서 작은 콘서트를 개최하며 피아니스트 칼 엥겔 같은 연주자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러면서 연주자들의 고충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마침내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기로 마음먹는다. 대표의 교감 능력 덕인지 KD 슈미트는 초창기부터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 소프라노 헬렌 도나트,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 지휘자 존 바비롤리와 게오르그 솔티,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등과 계약할 수 있었다.
60년이 흐른 지금, KD 슈미트는 그의 딸인 코닐리아 슈미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학업을 마친 코닐리아는 런던의 해럴드 홀트(Harold Holt)와 암스테르담의 인터래티스츠(Interartists)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후, 1986년부터 KD 슈미트에 합류했다.

 

KD 슈미트는 가족 기업의 좋은 예로 자주 언급되던데.
우리 회사는 다른 주주를 두지 않고 지금까지 가족 사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나는 아버지 덕에 클래식 음악을 늘 가까이하며 성장했다. KD 슈미트의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 독일과 영국 문화에 숙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30년 동안 여러 도전으로 경험을 쌓은 뒤, 1994년 경영을 이어받았다.

어린 시절, 당신이 지켜본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아버지는 자수성가형으로, 새로운 아티스트 발굴에 사명감을 갖고 일하였다. 회사 초창기부터 주요 음악가들을 설득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음악에 대한 깊은 지식까지 겸비하였다. 지금보다는 수직적인 구조로 회사를 운영했지만, 실험적인 혁신을 즐거워하셨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이어가고 있는 회사의 유산은?

아버지는 나에게 회사가 쌓아온 유산을 꼭 지켜야 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는 신뢰와 정직을 기반으로 예술가들에게 헌신하고자 한다. 아티스트 모두에게 충분한 관심을 갖기 위해 부티크(Boutique)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다. 회사 규모에 비해 적은 수의 소속 아티스트를 둔 편이다.

 

KD슈미트는 SNS와 홈페이지를 통해 소속 아티스트의 다양한 활동을 전하고 있다.

KD 슈미트의 주요 업무는 소속 아티스트와 오케스트라의 경력을 관리하는 것. 아울러 홍보는 물론 소셜 미디어 활동까지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KD 슈미트는 1968년부터 사내 잡지까지 발행하고 있어 흥미롭다. 창간호에는 소속 아티스트 에셴바흐의 미국 데뷔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현재는 하노버와 런던, 베를린 등 세 개의 사무실에서 35명의 직원이 의욕적으로 일하는 중이다. 회사를 이루는 네 개의 줄기는 아티스트 관리 부서, 오케스트라 투어 부서, 홍보 부서, 특별 프로젝트 부서이다. 본사인 하노버에서는 주로 오케스트라 투어와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1998년에 설립된 런던 사무실은 활기찬 웨스트엔드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는 맞춤형 아티스트 관리(부티크 스타일)를 진행한다. 2016년에 설립된 베를린 사무실에선 주로 젊은 아티스트 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다.

 

회사에 한국인 직원도 있는가?
아직까지 한국인 직원은 없다.

회사에서 선호하는 인재상이 궁금한데.
음악 전공자이면 도움이 될 순 있겠지만, 채용할 때 꼭 필요한 기준은 아니다. 이미 우리 회사에는 음악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진 직원이 많다. 대신 이 일을 사랑할 수 있는지, 예술가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외국어 실력도 필수.

하노버는 KD 슈미트가 시작된 곳이다. 이후 베를린과 런던에 사무실을 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런던에는 유럽 주요 음악 기획사가 위치해있다. 또한 선도적인 오케스트라 협회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국제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아시아 시장에 대한 접근을 위해 런던 사무실을 만들었다. 베를린은 독일 통일 이후 클래식 음악과 미디어의 중심지가 되었다. 베를린을 선택한 건 자연스러웠다.

 

KD 슈미트의 특이점은 오케스트라 투어를 관리하는 부서가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점이다. 회사는 1971년부터 보스턴 심포니와 시카고 심포니의 유럽 투어를 주관했다. 이후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들이 KD 슈미트와 협력해 유럽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로린 마젤/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피에르 불레즈/뉴욕 필, 앙드레 프레빈/피츠버그 심포니 등이다.
아쉽게도 올해는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주요 사업들이 대부분 중단됐다. 코로나19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상반기 주요 프로젝트가 대부분 취소됐다.
계획했던 오케스트라 투어 프로젝트 중 25%만 실현됐다. 공연장이 지금처럼 계속 멈춰있으면 오래전부터 기획했던 일들을 진행하지 못할 것 같다. 갑작스레 다수 공연이 취소되었고, 우리 아티스트들의 금전적 보상을 위해 싸우고 있다. 현재 소속 음악가들과 더 친밀함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중이다.

 

얼마 전, 미국의 대형 기획사인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CAMI)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코로나가 이유라고 보는가?

충격적이었다. 너무 비극적인 소식이다. CAMI의 사업 배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유일한 이유였는지는 확답하기 어렵다

. 현재 모든 기획사가 매우 위급한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우리의 문제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기획사들이 뭉쳐서 서로를 지지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조용히 죽어갈 것이다.

지속 가능한 회사 운영을 위해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지 다들 고민하더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매우 민첩해야 한다. 임대료와 인건비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고민이다. 특히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임대료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티스트와 매니저 비율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각 기업마다 주요 역점을 두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 아티스트와 프로젝트를 꼭 보유하길 권한다.

 

 

2019년, KD 슈미트는 창립60주년을 맞았다. 60주년을 기리며 소속 아티스트인 안드리스 넬손스의 지휘로 하노버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2018년은 런던

 사무실 창립 20주년이기도 했다. 코닐리아 슈미트는 “그동안 이룬 성과가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60주년 행사를 통해 “회사의 과거를 돌아보는 건 고무적이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KD 슈미트의 목표는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코닐리아 슈미트 대표는 “자연재해가 앞으로 클래식 음악 산업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견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 프로젝트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60년의 역사를 품고, 이제 그는 미래를 향한 열쇠를 찾고 있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KD 슈미트

 

 

 

 

 

 

제스퍼 패럿

 

HarrisonParrott · since 1969

영국 · 해리슨패럿

제스퍼 패럿 Executive Chairman

오랜 역사의 자부심

| 주요 아티스트 |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지휘·피아노),
파보 예르비(지휘), 장한나(지휘·첼로), 탄둔(작곡),
페테르 외트뵈시(작곡·지휘), 켄트 나가노(지휘)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오랜 역사가 주는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해리슨패럿이 가지는 자부심도 50년이란 오랜 역사를 근간으로 한다.
해리슨패럿은 1969년 10월, 제스퍼 패럿과 테리 해리슨이 영국 런던에 설립한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자들을 위해 새로운 스타일의 경영을 창출’하고자 만들어진 이곳은 5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국제적으로 다각화된 공연예술 매니지먼트로 성장했다. 2008년과 2018년에는 뮌헨과 파리에 지사를 설립하며 성공궤도를 이어갔고, 지난해에는 해리슨패럿 재단도 설립했다. 소속된 아티스트만 해도 250여 명, 신예부터 거장까지 말 그대로 핫한 이름을 모두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의 대형 기획사 CAMI가 무너지고, 많은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들이 덩치를 줄여가는 가운데, 해리슨패럿은 흔들림 없이 견고한 자세를 유지 중이다. ‘혁신과 전문성, 그리고 대응성’이란 오랜 가치가 그들을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설립부터 지금까지, 그 역사의 증인이 되어온 제스퍼 패럿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50년 역사에 걸쳐 꾸준히 성장해왔다. 빠르게 변화하는 음악 업계에서 여러 매니지먼트가 피고 지는 가운데, 이처럼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회사 초기에 도입했던 경영 원칙 중 상당수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항상 현장의 선봉에서 업계의 발전 과정에 참여하려 노력한다. 교육, 트레이닝, 홍보 마케팅 등에 있어 새로운 기술력을 갖추고, 기존의 방식을 검토하며, 고객의 이익을 위해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한다. 오케스트라·오페라단·극장의 해외 투어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프로모션 및 컨설팅 등 서비스 제공의 범위를 계속해서 넓혀온 것도 그 이유에서다.

 

뮌헨과 파리에 차례로 지사를 설립한 것도 해리슨패럿의 성장 근거일 것이다. 특별히 두 도시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더 많은 도시에서 치열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다. 음악과 예술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아티스트와 스태프 모두에게 이익이 될 거라 생각했다. 처음 시작한 뮌헨 지사가 성공적인 궤도로 성장하는 것을 보며 파리에도 사무실을 열기로 했다. 두 곳 모두 경영상의 전략이나 사내 문화에서는 런던의 본사와 다를 바 없지만, 각 지역에 대한 정보와 네트워크에 대한 이점은 확실히 지니고 있다. 현재 지사를 더 추가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나라의 지원이나 후원 없이는 회사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텐데.
런던은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의 중심지이다. 하지만 영국의 음악 시장은 그다지 강하지 않고, 정부의 지원도 매우 약하다. 그동안 선보인 국가 지원 정책은 실제 운영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 에이전시 간 경쟁이 아주 치열한데, 이런 분위기가 몇몇 매니지먼트들이 국제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데 일조했다. 런던의 음악계는 훌륭한 비평가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러나 현재 많은 인쇄 매체가 생존의 어려움을 겪으며 음악계의 상황도 덩달아 악화됐다.

 

지난 8월, 90년 역사의 미국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CAMI)가 문을 닫았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닥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업계의 여론은 ‘대형 에이전시의 시대는 끝났다’는 데로 모이고 있다. 하지만 패럿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시기에 대형 매니지먼트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자부한다. 200여 명의 아티스와 함께하는 또 하나의 대형 매니지먼트사인 해리슨패럿과 이를 이끄는 제스퍼 패럿. 이들이 그리는 음악 산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같은 대형 매니지먼트로서 CAMI의 폐업이 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CAMI는 지난 90년간 북미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물론 코로나19의 여파가 클래식 음악 사업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CAMI가 문을 닫게 된 것은 아마도 과도한 비용 기반과 시대에 뒤처진 업무 스타일 등이 오랜 시간 쌓여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건이 클래식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과 캐나다는 인재 양성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두 나라의 기획자와 음악학자, 축제 등도 세계 음악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왔고. 지금 미국 음악계가 겪고 있는 피해는 곧 새로운 인재 육성과 예술가들의 지속적인 커리어 개발 측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많은 공연이 취소되며 공연 수수료에 기반한 기획사의 재정에도 심각한 손실이 있었을 것 같다.
지난 6개월 동안 수입이 약 90% 정도 줄었다. 엄격한 비용 절감과 더불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하며 아티스트와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는 보건 당국이 제시하는 틀 안에서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프로젝트 개발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데, 곧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대형 매니지먼트의 운영 방식에 대한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규모가 큰 기업은 비교적 여러 부서를 두고,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격변하는 상황 속에서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보호할 수 있는 곳은 다양한 기반을 갖춘 대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안정적이고 생산적인 조직 모델이랄까.

 

제스퍼 패럿은 “예술적 가치를 단기적인 사업 이익 위에 두는 것”을 경영자의 의무로 꼽는다. 이러한 가치관이 멀리 보았을 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음악 산업에 뛰어들어, 유럽 최고 규모의 매니지먼트를 만들기까지 패럿의 경영 철학은 확고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도가 돌연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무엇이 계기였나?
워낙 어릴 적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잘하진 못했지만, 오보에와 리코더도 연주했고. 외교관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아버지 덕분에 브뤼셀, 모스크바, 프라하 등 유럽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훌륭한 예술가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음악 분야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때는 캠브리지 대학 졸업을 앞둔 때였다. 스물한 살에 당시 런던의 주요 에이전시 중 하나였던 ‘이브스 앤 틸렛(Ibbs and Tillett)’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4년 동안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브스 앤 틸렛’은 1900년대 전반에 걸쳐 런던의 음악계를 이끌었던 곳이다. 이곳을 떠나 본인의 회사를 설립하게 이유는 무엇이었나?
내 마지막 파트너였던 테렌스 해리슨과 함께 회사에서 해고당한 후, 우리만의 에이전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뛰어난 예술가들이 커리어를 쌓고,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돕고 싶었다. 예술가의 관점에서 보고 그들의 최대 관심사에 맞추어 헌신하는, 새로운 매니지먼트의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해리슨 패럿은 현재 75명의 직원이 함께한다. 이스탄불, 함부르크, 리가, 보르도, 암스테르담, 오슬로 등 20여 개국 출신의 직원과 15개 이상의 언어가 조화를 이룬다.
여러 분야에서 헌신적으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찾고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의 국제적인 안목과 다양한 배경, 기술을 중요하게 본다. 현재 한국인 직원은 없지만, 한국의 재능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언제나 문은 열려있다.

오랜 시간 업계에 몸담으며 느낀 필수 역량은 무엇인가?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여러 예술 장르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 좋은 글쓰기와 말하는 기술, 디지털 세계에 대한 관심과 개방적 시각, 충성심과 헌신, 그리고 열정이다.

 

2019년 10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1937~)부터 제스 길럼(1998~)까지, 무려 4세대를 아우르는 클래식 음악계 대표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해리슨패럿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해리슨패럿은 ‘50 Years in a Day’란 제목으로 10월 6일 하루 동안 3개의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중 ‘사랑과 우정’을 주제로 펼쳐진 마지막 무대는 해리슨패럿이 지켜온 오랜 가치와 앞으로의 비전을 모두 제시하는 자리였다. 아슈케나지와 파보 예르비,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 엘림 찬까지, 세대를 대표하는 네 명의 지휘자가 한 날, 한 무대 위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지난해 선보인 해리슨패럿의 창립 50주년 기념 공연이 참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세대와 배경, 장르를 아우르는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보며 해리슨패럿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약 250여 명의 아티스트를 대표하고 있으며, 그중 62명이 성악가다. 특히 지휘와 바이올린, 피아노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지만, 특정 분야의 아티스트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50여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예술가와 함께 잊지 못할 순간들을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아슈케나지와 함께한 55년의 세월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해리슨패럿은 영국 오케스트라 협회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아티스트 매니저’에 선정되기도 했다. 에이전시와 아티스트의 이상적인 관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서로 간의 신뢰가 오랜 파트너십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클래식 음악 시장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CD보다는 디지털 음원 소비가 늘었고, 홍보의 거점도 인쇄물에서 소셜 미디어로 확대됐다. 관객층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본토인 유럽에선 관객의 고령화 문제가 대두되었고, 상대적으로 젊은 관객층을 보유한 한국 시장과 거대한 자본력을 지닌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은 다수의 콩쿠르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고, 중국도 클래식 음악 교육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덩달아 아시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데. 

현재 아시아가 가장 중요한 클래식 음악 시장 중 하나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음악 활동에서는 한국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시장 개척을 위해 중국을 처음 방문했던 것이 1979년인데, 이곳 역시 이후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보였다. 정치적인 상황만 허용된다면, 중국은 향후 수십 년 동안 가장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다.

장한나(지휘)와 에스더 유(바이올린)도 해리슨패럿과 함께하고 있다. 한국 음악계와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도 계속됐을 것 같은데.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의 주요 수요층이 20~40대 여성이라는 소리를 듣고, 참 이례적인 현상이라 생각했다. 1970~80년대의 일본 시장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은데, 이후 어느 정도 평준화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의 변화를 보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제스퍼 패럿이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75년이다. 대중적으로는 아직 클래식 음악이 낯선 예술이었지만, 한편에선 정경화 등의 음악가가 그 길을 개척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부터 패럿은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와 함께했다. 그리고 2020년 현재, 그는 짧은 시간 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룬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감탄할 만한 일이다!”며 존경을 표했다. 앞으로 한국 음악계가 국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확신과 함께.

글 이미라 기자 사진 해리슨패럿

 

 

요렌츠 카바예로

IbermÚsica · since 1970

스페인 · 이베르무시카

 요렌츠 카바예로 Direcci?n General

이베리아반도를 넘어서

| 주요 아티스트 |
벨체아 콰르텟, 루카스 마시아스 나바로(오보에),
에스더 유(바이올린), 트룰스 뫼르크(첼로),
니콜라이 데미덴코(피아노), 예브게니 키신(피아노)

 

2019년은 요렌츠 카바예로에게 조금 미묘한 해였다. 그가 운영을 맡고 있는 카다케스 오케스트라(Cadaqués Orchestra)가 뜻하지 않은 안식을, 이베르무시카는 창립 50주년을 준비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음악을 공부한 요렌츠 카바예로는 1988년 카다케스 오케스트라를 설립했다. 이후 카다케스 오케스트라는 스페인 음악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2년마다 카다케스 오케스트라 지휘 콩쿠르를 주최해 젊은 지휘자를 발굴했는데, 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잔안드레아 노세다는 1994년 카다케스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임명된 바 있다.
30년간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악단을 운영했지만, 더 이상 민간 오케스트라를 끌고 가기에는 힘든 재정적 한계에 부딪혔다. 작년 요렌츠 카바예로는 스페인 언론을 통해 카다케스 오케스트라가 “안식년의 시간을 갖는다”고 발표했다.

악단의 ‘해체’가 아닌 ‘안식년’이란 표현을 썼다.
잠시 멈춰서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운영이 완전히 악화되고 나서 성찰기를 갖는다면, 아마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테다. 숨 고르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 돌아온다면 더욱 견고한 구조를 갖춰야 할 텐데.
몇 년 안에 어떠한 가능성과 성과를 보일 것인지 세세한 계획이 필요하다.

 

카다케스 오케스트라를 30년간 이끌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불확실성. 악단 보조금이 늘지 않으면 운영비용을 티켓 판매에만 의존해야 한다. 수익성을 확보하고자 많은 수의 공연을 소화해야만 했다. 안식년을 기회로 악단이 앞으로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민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요렌츠 카바예로. 그는 5년 전부터 스페인 이베르무시카의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이베르무시카는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1970년 알폰소 아히혼에 의해 설립된 이베르무시카는 ‘신뢰’가 ‘차이’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아티스트와의 소통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현재 회사는 클래식 음악 공연을 주최하는 ‘이베르무시카’와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적 커리어를 보조하는 ‘이베르무시카 아티스트’로 팀을 나눠 운영한다.

   

이베르무시카의 설립자인 알폰소 아히혼과 오랜 친구 사이라고.
알폰소 아히혼과는 1991년에 처음 만났다.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다. 그는 2001년에 나에게 이베르무시카에 합류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제안을 거절했지만 이후 이베르무시카의 운영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2015년에 알폰소 아히혼이 은퇴를 하겠다고 얘기했고, 30년을 지켜본 이베르무시카의 역사를 이제는 내가 이어가야 할 시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베르무시카와 카다케스 오케스트라는 그간 협력 관계였는데.
이베르무시카는 카다케스 오케스트라 지휘 콩쿠르의 컨설턴트 역할을 해왔다. 이 콩쿠르를 통해 오늘날 주요 공연장에서 활약하는 유명한 젊은 지휘자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이베르무시카’와 ‘이베르무시카 아티스트’의 궁극적인 차이는?
같은 회사다. ‘이베르무시카’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진행하는 공연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이베르무시카 아티스트’는 소속 음악가들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남미 지역 투어를 맡는다. 스페인 내에서만 진행되던 사업들이 점점 국제 시장으로 넓혀졌고, 마침내 스페인 음악가들을 전 세계에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선호하는 음악가 유형이 있는지?
특별히 장르를 구분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 회사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는 대부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남미인이다. 이외에도 회사 설립 이래 다니엘 바렌보임, 주빈 메타, 유리 테미르카노프와 같은 아티스트와 함께하게 된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1994년 카다케스 오케스트라 지휘 콩쿠르의 우승자인 잔안드레아 노세다와도 계약을 맺었다.

매니지먼트와 아티스트 간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상호 신뢰.

네만야 라두로비치

마이클 바렌보임

 

이베르무시카는 50주년을 기리며 2019/2020년 시즌, 2020/2021년 시즌에 50회 이상의 공연을 기획하고 있었다. 스페인 악단은 물론 빈과 베를린, 이스라엘, 런던에서 활약하는 오케스트라를 대거 초청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쳐온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5개월간의 모든 공연이 취소된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도움이 있었나? 스페인은 고용주가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게끔 보호하는 ERTE(Expediente de regulación deempleo)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우리 회사에도 비용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CAMI가 문을 닫은 이유가 전염병 때문이라는 여론이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코로나19가 중요한 요인이 됐을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그저 열심히. 그리고 행운이 깃들길.

인터뷰 말미, 요렌츠 카바예로는 “이베르무시카가 좀 더 국제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베르무시카가 쌓은 50년의 유산은 스페인 피아니스트 하비에르 페리아네스를 비롯한 남미 아티스트를 국민에게 알린 것이다. 이제는 “소속 아티스트를 전 세계에 소개할 시기”라고 한다. 자국 아티스트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느껴졌다.
그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비쳤다. “스페인에서 점점 많은 아시아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며, “한국의 음악가와 오케스트라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고, 앞으로 그들을 스페인으로 데려오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2020년은 한국과 스페인이 수교 70주년이다. 양국은 2020~2021년을 ‘한국-스페인 상호 방문의 해’로 지정했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잠시 멈춰있는 상태. 그 역시 “양국의 관심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원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이베르무시카

 

 

준이치 니헤이

Japan Arts Corporation · since 1976

 일본 · 재팬 아츠 

준이치 니헤이 President & CEO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모두

| 주요 아티스트 |
크리스티안 지메르만(피아노),
예브게니 키신(피아노),
미하일 플레트뇨프(지휘·피아노),
앨리스 사라 오트(피아노),
마린스키 발레, 메트 오페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한국과 재팬 아츠의 인연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과 러시아(소련)의 국교가 없었던 1988년, 재팬 아츠가 두 나라 간에 징검다리 역할을 했고, 이로 인해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의 일환으로 볼쇼이 발레가 내한할 수 있었다. 같은 해 일본에서는 재팬 아츠의 초청으로 매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첫 공연이 펼쳐졌다. 역사의 흐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본래 한 뉴스통신사의 문화사업부서로 시작된 재팬 아츠는 1976년에 독립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초기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해외 단체(극장·오케스트라·연주자·발레단 등) 초청을 주요 사업으로 했으나, 이후 일본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사업을 더하며 두 갈래의 중심을 잡았다.

설립 초창기부터 해외 초청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그만큼 직원들에게 다양한 능력이 요구될 것 같다.
우리 회사에서는 채용 시 학력이나 경력을 묻지 않는다. 직원 50명(한국인 1명 포함) 중 음악 전공자도 30% 정도에 불과하다. 음악적 배경보다는 오히려 사무 능력과 어학, 상상력과 업무 사이에서의 균형 등을 더 필수적으로 본다. 그중에서도 상대방을 파악하고 그보다 앞서나가는 상상력을 중시한다.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있다.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각각의 예술에 정통한 지식을 보유한 것과 그것을 일로 하는 것은 별개다. 발레에 대한 지식이 공연의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예술경영은 아티스트와 그의 예술성을 존중하면서도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경제적 이익만 생각해선 예술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고, 아티스트와 함께 꿈을 좇는 것만으로는 체계적인 비즈니스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예술적 가치’와 ‘경영상의 이익’을 함께 이루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술적 가치와 경영상 이익. 두 가지가 충돌하는 순간은 없었나?
이건 업계의 최대 논제이다. 경영자로서 수익이 없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서는 안 되지만, 때로는 선행투자라고 생각하며 수익을 포기하고 예술성을 우선시할 때도 있다. 그 판단에 대한 결과는 몇 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고. 이런 결정을 내릴 때면, 생전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곧 내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던 말러가 생각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준이치 니헤이는 졸업 후 지휘자 겸 오케스트라 에이전트로 일했다. 재팬 아츠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 입사 후 빈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마린스키 오페라·발레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초청 무대를 진행했다. 십여 년간 성실히 경험을 쌓은 그는 2014년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 자리에 올랐고, 4년 뒤에는 재팬 아츠의 대표로 선임됐다. 현재 일본 파데레프스키 협회(책임 프로듀서)와 아시아문화진흥연맹(부회장) 등 여러 직책도 겸하고 있다.

 

재팬 아츠 외에도 일본 내의 문화예술을 유지·활성화하는 대외적인 업무도 겸직하고 있다.
연륜이 쌓여도 성장을 필요로 하는 게 사람인지,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내 부족함에 대한 반성과 함께 배움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예술을 추구하다 보면 자칫 내면의 세계에 갇혀버릴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면,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매니저도 의식적으로 바깥 세계와 접점을 늘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많은 사람과 만나다 보면,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현대의 미디어는 텔레비전·신문과 같은 큰 규모에서 개인이 스마트폰으로 하는 가볍고 유연한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 공연 홍보의 주된 매체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본인의 SNS 채널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아티스트나 에이전트가 이러한 역할을 더욱 장려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감각으로 어떻게 세상에 클래식 음악을 전달하느냐, 현시대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나아가야 할까?
요즘은 매니저보다 팬들이 아티스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정보를 팔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아티스트의 가치를 어떻게 잘 선별하여 다루느냐가 업무의 중심이 되었다. ‘브랜딩’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아티스트만의 진정한 예술성은 지켜져야 한다. 정성을 쏟지 않은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유명세에만 매달리던 청중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재팬 아츠 사무실 전경

일본은 그간 아시아 최대 클래식 음악 시장으로 손꼽혀 왔다. 해외 유명 단체의 아시아 투어에서도 언제나 일본이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2012년 일본 문화청이 발표한 ‘문화데이터집’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제시한 문화부 예산은 총예산의 0.11%밖에 되지 않았다. 같은 해 한국은 0.87%였다. 국가의 예산 지원 부족에 대한 대책으로 일본 문화계는 최근 크라우드 펀딩이나 후루사토 납세제도(태어난 고향이나 응원하고 싶은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는 제도) 등 비교적 쉬운 형태의 기부제도를 마련하며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준이치 니헤이는 “서구식 후원 문화가 없는 일본은 ‘개인 기부’에 대한 인식이 낮은 데다, 기업 또한      ‘기부’를 ‘투자’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유로 밝혔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공익성을 추구하는 한국의 교향악단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프로 오케스트라 대부분은 공익재단 형태로 운영된다. 쉽게 말하자면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되는’ 조직 형태로, 문화청이나 지자체의 재정 지원에 크게 의존한다. 이번 코로나 영향으로 경제적 잉여금(내부유보)이 거의 없는 오케스트라들이 순식간에 경영난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 회사와 같은 사업자나 연주 단체, 아티스트에 대해 국가의 보조금이나 조성금이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손해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많은 연주 단체와 기획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재팬 아츠가 찾은 돌파구가 있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가능한 활동들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소극적 활동을 보안하기 위해 ‘온라인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라이브 공연의 유료 방송 외에도 딜레이 라이브(일종의 재방송)나 아카이브 방송 등을 통해 팬들에게 공연을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도 라이브 연주와 병행하며, 혼합된 형태의 새로운 공연 모델을 선보일 것이다.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의 주요 고객은 20~40대 여성이다. 그래서 여성 아티스트보다 남성 아티스트 위주의 기획이 많고, 한국 음악가의 공연보다 해외 음악가의 공연이 많이 선호되는 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라고 밝힌 준이치 니헤이는 “처음 예술의전당에 방문했을 때, 객석에 젊은 여성이 많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장래성을 생각하면 매우 부러운 일이다”라고 전했다.

 

일본 관객이 특별히 선호하는 공연예술 장르나 프로그램이 있는가.
일본 전통예술인 ‘가부키’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무대 위 배우들이 TV 등에도 출연해 대중적인 유명세도 얻고 있고. 뮤지컬 장르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일본 최대 규모의 ‘극단 사계’와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극단인 ‘다카라즈카’가 가장 유명하다. 특히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열광적인 팬층을 가지고 있으며 청중의 거의 100%가 여성이다. 이 외에도 오페라, 발레, 연극 등 모든 장르가 매일 상연되고 있다.

 

현재 재팬 아츠에는 240여 명의 아티스트가 있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엘리소 비르사라제·미하일 프레트뇨프·예브게니 키신(피아노), 발레리 게르기예프·유리 바슈메트(지휘) 등 창업 초기부터 오랜 신뢰 관계를 쌓아온 거장부터 앨리스 사라 오트, 조성진, 윤디 리 등의 젊은 스타들까지 나이도, 장르도, 배경도 다양하다.

 

수많은 아티스트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되는 만남이 있을 것 같다.
일본 피아노계의 대모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친 나카무라 히로코(1944~2016). 그는 예술가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존경할 만한 존재였다. 넓고 다양한 시각과 경험이 뒷받침된 명확한 의사결정, 여기에 따뜻함까지 갖춘 큰 인물이었다. 후진 양성에도 힘썼던 그는 하마마쓰 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 수많은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조성진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것으로도 유명하다.

재팬 아츠에는 조성진을 비롯해, 임지영, 김다미, 김한 등 다수의 한국 음악가와 함께한다. 앞으로 더 많은 교류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
한국의 아티스트를 만날 때면 개방적인 마인드와 더불어 특히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하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언어가 약한 일본 아티스트들이 본받았으면 한다. 이웃나라로서 앞으로 교류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좋은 의미로 절차탁마하여 서로를 통해 성장해 나갔으면 한다.

아시아의 클래식 음악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세계 최대의 성장 마켓이라 본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2021년에 개최 예정인 도쿄 올림픽과 함께 각 나라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이와 함께 문화적인 수준도 한 단계 높아졌다. 해외로 진출하는 훌륭한 음악가들도 계속 배출하고 있고. 그러나 일본은 한편으로 수급 불균형의 문제에 직면해 왔다. 좋은 아티스트는 많은데, 그들이 연주할 자리는 늘 부족하다. 이 문제는 곧 한국과 중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준이치 니헤이는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를 선택하라’는 말을 좋아한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이 바로 이 ‘스테디셀러’에 해당한다. 그가 ‘온라인’이라는 현재의 베스트셀러를 주목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스테디셀러, 클래식 음악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재팬 아츠

 

 

최성아

 

 

IMG Artists · since 1984

미국 · 한국 · IMG 아티스트
뉴욕 기획부장 존 에번스 Chief Operating Officer
& 서울 지사장 최성아 Executive Vice President

전설의 또 다른 도약

| 주요 아티스트 |
르네 플레밍(소프라노), 다니엘 뮐러 쇼트(첼로),
예브게니 키신(피아노), 힐러리 한(바이올린),
정경화(바이올린), 손열음(피아노)

 

IMG의 ‘간판스타’라고 하면 타이거 우즈와 박세리가 먼저 언급되던 시절이 있었다. 스포츠 스타를 거느리는 매니지먼트사로 출발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창업주 마크 매코맥은 친구인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와 골프를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카나와가 매코맥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예술이 뭔지 알려주지. 스포츠에 ‘하프타임’이 있다면, 우리에겐 ‘인터미션’이 있어.”
매코맥은 타고난 사업가였다. 그녀의 말에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스포츠 선수와 마찬가지로 음악가에게도 전문 매니지먼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스포츠 매니지먼트로 시작한 회사가 클래식 음악으로 영역을 넓혔다. 음악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했을 텐데.
마침 뉴욕의 작은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사였던 아믈랭란다우가 투자사를 찾고 있었다. 이들이 합류해 음악에 관한 전문성을 더했다. 그렇게 1984년 IMG 아티스트가 문을 열었다.

그간 쌓은 국제 네트워크 덕분이었을까. 이후 빠르게 세계 곳곳으로뻗어 나갔다.

1991년에는 런던 본부를 설립해 유럽 대륙으로 나아갔다. 현재 뉴욕·LA·파리·하노버, 그리고 서울 등에서 지사가 운영되고 있다. 세 개 대륙을 아우르는 거다.

 

존 에번스

각국에 위치한 지부별 특징이 있나?

각 지역의 시장 동향을 반영해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런던은 음악과 무용에, 뉴욕은 현대음악과 월드뮤직, 퍼포먼스 쇼에 집중한다. 올해는 서울 지사도 발족해 시장을 파악 중이다.

IMG 아티스트(이하 IMG)는 지난해부터 서울 지사 출범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도약을 위한 준비는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국내에선 최성아 지사장의 진두지휘로 진행됐다. 그는 아리랑 TV, 코리아 헤럴드 정치사회부 등에서 기자를 거쳐 외교부와 UN에서 활약한 바 있다.
IMG 서울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국내 아티스트에게 세계로 향하는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최성아 지사장은 그간 언론과 정부 기관, 국제기구 등에서 쌓은 노하우를 십분 활용할 준비가 돼 있다.

 

출범 첫해라 포부가 남달랐을 것 같다.
최성아 이를 기념하며 기업, 언론사, 정부 공공기관 등과 협업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의 여파로 모두 취소돼 아쉬울 따름이다.

 

아직 운영 규모가 크지는 않을 것 같다. 국내에 많은 클래식 매니지먼트는 직원 채용 시 음악전공자를 선호하던데, IMG 서울은 어떤가?
최성아 현재 팀원은 8명이다. 음악 전공자는 아직 없지만 기획이나 티켓 대행, 방송, 대중음악, 홍보 등의 분야에 종사했던 전문가들이다. IMG 서울을 이끌어나갈 머리와 팔다리가 다 있는 셈이다. 콘텐츠 기획에 있어서도 다방면 전문가가 모여 있어서인지 확실히 신선하다. 필요에 따라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 사태로 추가 채용이 늦어지고 있지만, 조만간 음악 전공자를 영입할 생각이다. 전공과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판적 사고력, 그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세다.

 

IMG는 지난 40여 년간 유망한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명성 있는 음악가들을 지지하며 이 시장의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다. 현재 르네 플레밍(소프라노), 조슈아 벨과 정경화(바이올린), 안토니오 파파노(지휘), 손열음(피아노) 등 400여 명의 아티스트가 IMG와 함께하고 있다.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는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다. IMG의 특성을 물으니 ‘다양성’이란 답이 돌아온다. 브라질·멕시코·일본·한국·파나마 등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개성 있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개성으로 무장한 수많은 아티스트를 관리하려면 체계도 보다 효율적이어야 할 것 같다. IMG 해외 지사에는 아티스트 계약 등과 관련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나? 국내에는 계약과 관련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혼선을 빚을 때가 종종 있다던데.
최성아 사실 해외에서도 회사마다, 아티스트마다 계약 조건이 매우 다르다. 아티스트마다 요구가 다르기 때문에 계약서 형식과 내용을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법률 검토인데, 국내에서는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회사와 아티스트를 모두 보호하기 위해서는 계약서 내용에 대한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존 에번스와 최성아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의 운영 방식에 다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몇몇 아티스트는 대형 기획사보다 긴밀하게 소통하는 부티크 에이전시를 주목하고 있다.
각 아티스트와 프로젝트에 최소 1~2명의 전담 매니저를 둔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에 대한 집중도와 통찰력은 부티크 에이전시가 제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IMG는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자원도 갖췄다. 업계의 최신 동향을 발 빠르게 파악해 아티스트의 미래를 위한 전략을 짜는 데에 능하다.

 

코로나19로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IMG는 낙관적으로 다음을 준비 중이다. 여러 제약 조건들 속에도 공연을 재개하기 시작했고, 9월 말에는 ‘MyLIVE’라는 이름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했다.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공연장이나 공연기획사들이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때, 홍보를 돕기 위한 플랫폼이다. 런던과 뉴욕 본부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존 에번스는 “다시 큰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상황에 민첩하게 적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이 이 시기 가장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IMG도 발 빠르게 이 흐름에 합류한 편인데.
최성아 상황이 심각해지기 시작한 지난 3월부터 IMG 아카이브 영상 자료들을 온라인에 풀기 시작했다. 사실 몇 개월이면 이 사태가 끝날 줄 알고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매니지먼트가 펀드 레이징으로 방향을 틀었다.

펀드 레이징의 사례를 제시한다면?
최성아 최근 IMG의 멕시코계 미국인 지휘자인 알론드라 데 라 파라(1980~)가 자신의 악단과 온라인 공연을 제작했다. 알론드라는 영상 플랫폼을 통해 단원들과 만나 연주를 진행하고, 각 영상을 하나로 모아 선보였다. 지휘자가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겸하게 됐다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아티스트가 있을 때, 지원금이 들어올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이 시대의 매니지먼트사에 주어진 새로운 역할일 것이다.

특별히 IMG 서울이 추진하고자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나.
최성아 우리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새로운 관중을 음악계로 유인하는 것이다. 새 관객을 영입하지 않으면 폭이 늘어나지 않는다. 이전까지 많은 클래식 아티스트가 크로스오버에 발들이기를 두려워했다. 다시 정통 클래식 음악계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요마, 최나경, 조수미 등 대단한 음악성을 갖춘 아티스트들이 가곡이나 대중음악, 크로스오버 등에 관심을 보이며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관중을 영입하기 위한 IMG 서울의 시선은 케이팝으로까지 가닿았다.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케이팝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뜨거운 이 시점, 글로벌 팬덤에 클래식 음악의 저력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란다. 최성아 지사장은 “현재 IMG 아티스트와 케이팝의 컬래버레이션을 준비 중”이라며 “새로운 관중에게 직접 다가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IMG 아티스트

 

 

 

 

 

소니아 지멘아우어

Impresariat Simmenauer · since 1989

독일 · 지멘아우어
소니아 지멘아우어 CEO

현악 4중주의 전진 기지

| 주요 아티스트 |
아르디티 콰르텟, 벨체아 콰르텟, 노부스 콰르텟,
에벤 콰르텟, 이자벨 파우스트(바이올린),
기돈 크레머(바이올린)

니아 지멘아우어의 주변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다. 첼로를 연주한 아버지 덕분에 집에선 종종 현악 4중주 연주가 흘러나왔다. 4명의 연주자가 만드는 호흡, 그리고 연주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호흡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지금 그가 빼어난 현악 4중단이 포진한 지멘아우어(Impresariat Simmenauer)를 이끌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소니아 지멘아우어 대표는 KD 슈미트의 실내악 파트에서 6년 반의 경력을 쌓았다. 둘째 아이를 가지면서 엄마의 삶에 집중하고자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그와 함께 일했던 현악 4중주단 모두가 그를 따라나섰다. 1989년, 결국 퇴사한 지 몇 주 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매니지먼트, ‘지멘아우어’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계획에 없던 회사 설립에 정신이 없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거의 혼자 일했다. 하지만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며 2000년에는 직원이 12명으로 늘었다. 2009년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는 직원 3명과 함께 다시 시작해야 했다. 현재 사무실은 쿠담 거리에 위치해 있다. 구 서베를린의 중심지로 품격 있는 장소다.

본격적인 매니지먼트 일을 경험한 것은 독일의 주요 기획사인 KD 슈미트에서였다.
프랑스 유명 에이전시에서 일했던 사촌 덕분에 그곳에서 잠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아직 어린 학생이었지만, 일을 시작하고 2주 만에 ‘이 일이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어학 공부를 시작했고, 여러 에이전시를 거치며 경험을 쌓아나갔다. KD 슈미트에서 참여한 여름 인턴십도 이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 회사로부터 실내악 부서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1982년부터 1989년까지, 7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KD 슈미트를 떠나 지멘아우어를 설립했다. ‘내 회사’를 차리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나?
현악 4중주만을 위한, 그들을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내게 현악 4중주는 여러 음악 장르 중에서도 가장 지적인 음악이다. 그런데 이 장르가 사업적 측면에서 비주류로 평가되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결국 현악 4중주를 비즈니스 전면에 내세운 것이 여러 아티스트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한 것 같다.
우리가 현악 4중주단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기돈 크레머를 포함한 몇몇 유명 솔리스트들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계에서 기대하는 일반적인 패턴에 맞추기보다 각자의 개성에 맞춘 케어를 원했던 거다. 그렇게 기돈 크레머와 킴 카시카시안, 콜야 블라허 등의 음악가들도 우리 회사와 함께하게 됐다.

 

기돈 크레머

설립부터 ‘현악 4중주단’이라는 뚜렷한 키워드를 두고 시작된 지멘아우어는 아티스트 각자의 가치와 음악에 중점을둔다. 솔리스트와는 또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관리해야하기 때문에 매니저의 역할도 크다. 각 팀만의 뚜렷한 색깔을 만들기 위해 음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들을 빛낼 수 있는 좋은 기획자를 찾아야 한다.

 

‘아티스트 매니저’의 역할은 어디에 있나?
에이전트는 아티스트를 대표한다. 사람들이 내 아티스트를 보게 하고, 그의 예술에 흥미를 갖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의 아티스트를 빛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최소한의 음악적 지식을 가지고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또한 예술가의 예민한 감수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인내심도 필요하다. 나를 드러내기 보단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만드는 데서 성취감을 느끼고, 아티스트의 예술성을 더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내 아티스트를 받쳐주면서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솔리스트와 비교해 실내악 팀 관리에 더 신경써야 할 점이 있다면?
솔리스트와 실내악 팀은 애초에 홍보의 대상이 다르다. 솔리스트를 홍보하는 데 있어 오케스트라나 지휘자와의 좋은 채널을 갖는 게 중요하다면, 실내악 팀의 경우에는 그들의 음악을 잘 나타내줄 수 있는 좋은 기획자와의 접점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실내악 연주를 찾는 대중은 연주자보다 음악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지멘아우어에는 현재 11팀의 현악 4중주단이 함께 하고 있다. 아르디티 콰르텟, 벨체아 콰르텟, 카살스 콰르텟, 에벤 콰르텟 등 모두 현재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 가고 명문 실내악 팀이다. 김수연(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악장)이 속한 아르테미스 콰르텟도 이곳 소속이고, 한국의 노부스 콰르텟도 2014년부터 함께 하고 있다.

 

노부스 콰르텟과 함께하게 된 계기는?
뮌헨 ARD 콩쿠르(2012)에 참가했을 때부터 눈여겨봤던 팀이다. 당시 무대를 보고 곧바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아주 지적이고 매력적인 연주였다. 노부스 콰르텟은 지난 8월 25일, 스위스 바젤의 오래된 음악홀인 슈타드카지노(Stadtcasino)의 재개관 축하공연에 슈만 콰르텟과 함께 올랐다.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음악 안에서 어떻게 통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아주 아름답고 성공적인 무대였다.

에벤 콰르텟

실내악이나 현악 4중주는 독주나 오케스트라 협연에 비하면 한국에서 크게 주목 받는 장르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이와 관련된 공연과 페스티벌이 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숨은 매력을 알려준다면?
현악 4중주단은 아주 특별한 음악적 언어를 선보이며 실내악의 ‘여왕’이라 여겨졌다. 작곡가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경험하게 하는 실험적 장르였기 때문에 피아노 문헌만큼이나 뛰어난 명곡들이 많다.

 

그의 모든 답변에서는 누구보다도 아티스트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묻어났다. 그에게 모든 아티스트는 저 높은 하늘 위로 날아갈 때까지 소중히 품어야 할 존재인 듯싶다. 지멘아우어는 스스로 전술과 전략에 능숙하지 못하다고도 밝혔다. 지름길을 찾기보다 정도의 길을 선택하는 그에게서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단단한 결과물을 만들겠단 의지가 느껴진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홍보수단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온라인 채널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아티스트의 가치와 작업 방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음악가에게 음악가로서의 역할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이제는 매우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꼭 음악과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의 온라인 채널은 국제적인 커리어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활동이 천천히, 유기적으로 쌓아가는 커리어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SNS를 통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야기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아티스트는 무엇을 소통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과연 이들이 정말로 음악에 관심이 있을까?’

 

노부스 콰르텟

‘디지털화’와 ‘세계화’를 음악계가 변화한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30년 전에는 아주 극소수의 예술가들만이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행이 보편화되고, 전 세계적인 교류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며,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렸다. 하지만, 팬데믹이 지난 30년의 판세를 단숨에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운영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 몇 년간 성공궤도를 달려온 민간 기업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파산의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회사도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해 직원들에게 휴가를 주고, 예비금을 사용하며 회사를 유지 중이다. 결국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유연성’에 있지 않을까.

지난 30년간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 업계는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지멘아우어도 함께 성장했다. 소니아 지멘아우어 대표는 시대에 발맞춘 회사 운영을 위해 젊은 직원들을 계속해서 채용하고, 그들이 가진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3년 전부터는 그의 아들인 아놀드 지멘아우어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더욱 젊은 감각이 더해진 지멘아우어의 새로운 도약이 기대된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지멘아우어

 

 

 

 

 

Judson Management Group, INC · since 1992

미국 · 저드슨 매니지먼트 그룹
스티븐 저드슨 President

시대의 변화를
목격하다

스티븐 저드슨

| 주요 아티스트 |
안드레아 그리미넬리(플루트),
하비에르 페리아네스(피아노), 레너드 엘셴브로히(첼로), 요나스 알버(지휘), 율리시스 콰르텟,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

 

1982년 탱글우드 음악제. 노장의 지휘자가 새파란 청년을 붙잡고 감사 인사를 전한다. “저드슨 씨, 당신의 할아버님인 아서 저든슨 씨는 제 은인입니다. 그분 덕분에 지금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지요.”
그는 유진 오먼디(1899~1985)였고, 청년은 음악제 인턴으로 갓 경력을 쌓기 시작한 스티븐 저드슨이었다. “성이 같을 뿐,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이하 CAMI)의 창립자인 아서 저드슨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해명하려고 했지만, 흥분한 마에스트로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라고 저드슨은 이날을 회상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세계적인 기획사 CAMI와 그의 인연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맨해튼에 위치한 저드슨 매니지먼트 그룹 본사

 

보스턴대학교 예술대학 졸업 후 CAMI에 입사했다. 아서 저드슨과 친척이냐는 오해가 더욱 잦아졌겠다.(웃음)
아서 저드슨(1881~1975)이 설립하고, 로날드 윌포드(1927~2015)가 성장시킨 CAMI는 가히 클래식 음악의 성지였다. 당시 세계 최정상의 음악가는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

어떤 부서에서 일했나?
탱글우드 음악제에서 인턴을 경험하면서 클래식 음악 산업 중에서도 경영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예약부(booking department)에 자원했다. 연주자를 위해 공연 기회를 만들고, 공연에 따르는 제반사항을 협상하는 일을 맡았다.

 

클래식 음악의 산업성을 고민하던 그는, 일찍이 예술 후원 분야에 잠재된 가능성을 알아봤다. 미국 예술계를 떠받치는 후원 자금의 상당수는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과 개인 기부자로부터 나온다. 그렇기에 후원 의사가 있는 기업과 후원이 필요한 예술가를 매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저드슨의 아이디어는 타당한 것이었다.
뛰어난 경영자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다. 스티븐 저드슨은 25세에 CAMI 역사상 최연소로 부사장이 된 인물이다. 그는 CAMI를 떠나, 1992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자신의 이름을 딴 저드슨 매니지먼트 그룹(이하 JMGI)을 설립했다. 예술 후원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기획사였다. 갈수록 전문화, 세분화되는 최근 클래식 음악 산업계의 경향을 앞서간 셈이다.

 

승승장구하던 회사를 떠날 만큼 예술 후원 사업에 확신이 있었나?
실은 CAMI에 후원 부서를 만들자고 먼저 제안했었다. 아직 미국에서 예술 후원 분야가 사업화되기 전이었다. 즉, 실패할 위험이 있었고 회사는 이를 감당할 의사가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의 막대한 자본 중 일부라도 예술을 위해 쓰인다면, 전 세계인에게 예술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로린 마젤, 교향악단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기업 크레디트 스위스·크라이슬러·제너럴 모터스·메르세데스 벤츠 등이 JMGI의 고객이다. 이 목록에 CAMI도 이름을 올렸었다.
최고경영자였던 로날드 윌포드는 비록 내 제안을 거절했지만, 내가 아이디어를 추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실제로 CAMI는 우리의 초창기 고객이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90년 역사의 CAMI가 문을 닫았다. 코로나19로 연이어 공연이 취소되면서 수익이 감소한 것이 폐업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번 사태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 기획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산업 호황기에나 유효하다. 공연이나 음반 등의 수익에서 일정한 수수료를 취하는 방식으로는 이제 대형 기획사를 운영할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 게다가 CAMI는 지난 몇 년간 핵심 인력들이 회사를 떠나며 재정난에 시달렸다. 악재에 악재가 겹친 것이다.

JMGI는 직원 수 10여 명 규모의 중소형 기획사다. 예술 후원 사업 외에도 공연기획과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담당한다. 안드레아 그리미넬리(플루트)·하비에르 페리아네스(피아노)·레너드 엘셴브로히(첼로) 등 8명의 음악가와 율리시스 콰르텟이 이곳 소속이다.
저드슨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형 클래식 음악 기획사는 사라질 것”이라며 냉철하게 전망했다. 클래식 음악 산업이 호황을 이루던 때와 달리, 공연 당 10~15퍼센트에 이르는 수수료 수익으로는 비용을 감당하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대표이사로서 경영상의 이유로 다른 무언가, 예컨대 예술성 같은 것을 포기한 적이 있다면?
경영상의 이익과 예술적 가치가 상충한다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매니저의 역할은 예술적인 동시에 충분한 보상이 가능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객 중에는 기획사에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예술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경우든 최대한 고객을 지원하려고 한다.

북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3월부터 2021년까지 공연이 대거 취소됐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수익성은 기업의 존폐를 가르는 조건일 텐데.
말한 대로, 팬데믹은 클래식 음악 산업에 치명타를 입혔다. 공연이 열리지 않으면 기획사는 일차적인 수입원, 즉 최소한의 수익마저 낼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다수의 클래식 음악 기획사에 해당되는 중소기업을 위한 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렇다면 산업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 기획사의 쇠퇴는 불가피하다고 보는가?
많은 기획사가 예술을 사랑하는 헌신적인 개인에게 의존하는 실정이다. CAMI의 실패는 상당한 자본이 투입되지 않는 한, 다른 대형 기획사 역시 존속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 클래식 음악 산업은 어떻게 바뀔까?
소규모 기획사, 나아가 개인 사업자가 전통적인 기획사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다. 이 산업의 안정성에 관해 묻는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간단하다. 다시 공연을 열 수 있을 때까지 버텨내야 한다, 이것뿐이다.

JMGI는 상반기에 미국 정부로부터 대출을 지원받아 간신히 정리해고를 면했다. 그러나 대출자금이 고갈된 6월부터 여러 중소 기획사가 직원 수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기금 모금을 위한 온라인 공연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 대표이사 스티븐 저드슨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저드슨 매니지먼트

 

 

 

제이콥 솔베르그

 

Nordic Artists Management · since 2006

덴마크 · 노르딕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제이콥 솔베르그 CEO

견고하게 닦은 지역의 색깔

| 주요 아티스트 |
이지윤(바이올린), 이자벨 파우스트(바이올린),
트리오 콘 브리오, 데이비드 비외크만(지휘),
안드레아스 브란텔리드(첼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피아노), 마르크 수스트로(지휘)

 

2014년, 로린 마젤이 84세로 타계했다. 여덟 살에 데뷔해 76년이란 긴 세월을 지휘자로 활동한 그는 전 세계 2백여 개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7천 회 이상의 무대를 가지고, 300여 장의 음반을 남기며 클래식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신동에서 거장으로의 긴 여정을 마치고 인생의 끝에 서 있던 마에스트로. 그 곁에는 제이콥 솔베르그가 있었다.
“마젤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이틀 전, 그의 집을 찾아갔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함께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겐 큰 영광이다.”
솔베르그는 클래식 음악산업 분야에서만 3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다. 연주자로서 먼저 클래식 음악계에 발을 디딘 그는 덴마크 왕립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졸업 직후 곧바로 덴마크 외레순 페스티벌(Öresund Festival)에 매니저로 참여하며 예술경영 관련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연주를 멈춘 것은 아니었다. 이후 17년간 덴마크 내셔널 심포니 바이올린 단원으로 무대에 오르고, 자폴스키 콰르텟의 멤버 겸 매니저로 활동하며 연주자와 경영자로서의 경험을 함께 쌓아 올렸다. 코펜하겐 경영대학원(CBS)에서 공부를 이어간 것도 그 연장선에서였다.
그러던 2006년, 솔베르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기반을 둔 노르딕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영국의 매니지먼트사인 아스코나스 홀트(Askonas Holt)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북유럽 최대의 기획사가 탄생한 것이다.

 

덴마크 왕립음악원을 졸업하고 바로 예술경영 분야에 뛰어들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내 경험을 다른 음악가를 돕는 데 사용하고 싶었다.

연주자로 시작해 매니지먼트 업계에 발을 디뎠다. 현장에서 음악 전공자가 가지는 이점이 있었나?
어떤 포지션을 맡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현재 내가 운영 중인 노르딕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는 음악 전공자가 반이고, 나머지 반은 경제를 공부한 사람들이다. 아티스트나 공연을 홍보하는 시작점에 있어서는 음악적 배경이 주요하게 작용하지만,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후자의 경험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예술경영에 참여하는 여러 방법이 있었을 텐데, 매니지먼트를 설립한 이유가 있는가?
6개월간 영국 버밍엄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영국의 클래식 음악 에이전시인 아스코나스 홀트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북유럽 현지의 에이전시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노르딕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만들었다.

 

노르딕 아티스트는 지역적 색깔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견고히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작은 지역을 대표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스타와 지역의 영웅 모두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소속 아티스트를 보면 금세 파악할 수 있다. 지휘자, 기악연주자, 성악가, 앙상블, 영아티스트까지 90여 명의 아티스트 중 대다수가 북유럽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

 

지역 기반의 아티스트가 대다수인데, 이들을 통해 느끼는 북유럽 특유의 감성이 있는가?
대부분의 북유럽 음악가들은 민속적 성격이 강한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음악에서 우울함과 자기성찰적 느낌도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그, 닐슨, 시벨리우스 등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정직함과 겸손한 사고방식도 특징일 것 같다.

소속 아티스트의 거의 절반이 지휘자이다.
그동안 젊은 지휘자를 위한 말코 콩쿠르를 진행해왔는데, 이것이 많은 지휘자와의 교류로 이어졌다. 지휘자는 다른 아티스트에 비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더 많은 연륜과 성숙한 음악성도 느낄 수 있고. 요즘에는 특히 창의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여성 지휘자들이 눈에 띈다.

소속 아티스트로 덴마크 방송교향악단에 재직 중인 홍수진(악장)과 홍수경(첼로 수석) 자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악장 이지윤 등 한국인 연주자도 눈에 띈다. 한국 연주자들의 현지 활동은 어떤가?
콩쿠르에 입상한 한국인 연주자들을 보면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아직 북유럽 클래식 시장을 뚫고 들어오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수경·수진 자매가 멤버로 있는 트리오 콘 브리오는 북유럽 지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덴마크 피아니스트가 함께하며 이 지역의 앙상블로 인식된 것이 성공 요인 중 하나일 것 같다.

트리오 콘 브리오

 

노르딕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는 현재 7명의 직원이 90여 명의 아티스트와 함께하고 있다. 지역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함과 동시에 오케스트라 투어, 칼 닐센 콩쿠르 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 중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흔들리는 지금, 솔베르그는 “더 많은 지역 예술가와의 협업”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지금과 같은 팬데믹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클 것 같은데.
덴마크의 모든 문화기관은 100%의 세금보조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음악생활(미술, 건강관리 포함)을 위한 민간 자금이 마련되어 있다. 현재는 국가로부터 급여와 고정 지출 비용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다.

 

데이비드 비외크만

이지윤

코로나 여파로 국가 간 장벽이 더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대다수의 투어 연주가 취소되기도 했고. 앞으로 지역 중심의 기획과 운영이 더욱더 강화될 것 같다. 아무래도 예술가들의 이동도 줄고, 오케스트라 투어도 제한적으로 이뤄질 테니까. 우리도 더 많은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위기를 극복해보려 한다. 온라인 플랫폼 활용도 생각 중이고.

 

 

 

 

 

노르딕 아티스트 직원들과 사무실 전경

전 세계 사람들이 공연장에서의 온기와 열기를 그리워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온라인 스트리밍이 과연 최고의 대안일까? 

스트리밍 공연은 계속해서 빠르게 발전해가겠지만. 라이브 무대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 CD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CD가 공연을 대체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많은 공연장이 폐쇄되고 라이브 무대가 금지된 지금, 대부분의 예술가와 단체는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노르딕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도 최근 작은 공연장이 있는 새로운 사무실로 이전하며 라이브 스트리밍에 대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솔베르그는 “온라인 공연이 라이브 무대를 대체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체 방안을 찾기 위한 그의 시도는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노르딕 아티스트 매니저먼트

 

 

 

섀넌 리우와 제고시 코토프

LIU KOTOW International Management & Promotion · since 2009

미국 · 리우 코토프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 & 프로모션
섀넌 리우, 제고시 코토프 Managing Director

흔들리지 않는 가치

| 주요 아티스트 |
루돌프 부흐빈더(피아노), 이보 포고렐리치(피아노),
김봄소리(바이올린), 콜야 블라허(바이올린),
다니엘 호프(바이올린), 미도리(바이올린),
스티븐 이설리스(첼로), 자비네 마이어(클라리넷)

유망 아티스트를 발굴할 때 입상 경력보다 내면의 음악성을 본다. 아티스트 매니저를 채용할 때도 경영이나 행정 전공생보다 음악도를 선호한다. “음악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음악 시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이런 태도에 루돌프 부흐빈더·이보 포고렐리치(피아노), 콜야 블라허(바이올린), 자비네 마이어(클라리넷), 하겐 콰르텟 등이 신뢰로 화답했다. 리우 코토프가 이렇게 음악의 가치를 힘주어 강조하는 이유는 하노버 국립음대를 졸업한 두 명의 대표가 한때 음악가의 삶을 살아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루돌프 부흐빈더와 함께

하노버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클라리네티스트로 활동했다. 그러다 독일 대형 매니지먼트사인 아스트리드 쇠르크 아티스트에서 실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리우
 알프레드 브렌델·루돌프 부흐빈더·하인리히 쉬프 등의 공연을 관리한 회사였다. 당시 아티스트 매니저로서 주요 직무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악단의 아시아 투어를 성사시키며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09년 리우 코토프를 창립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리우
 성공적인 투어 프로젝트를 몇 차례 마치고 나서, 또 다른 아티스트 및 악단과 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토프가 합류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코토프 대학 졸업 후 현악 4중주단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교육자, 음악 축제의 예술감독 등으로 활동했다. 현악 4중주단에서 팀의 매니저 역할을 도맡으면서 아티스트 관리나 공연 기획 비즈니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리우의 파트너로 함께 된 건 2016년의 일이다.

핀커스 주커만과 섀넌 리우

두 사람 모두 음악에 대한 탄탄한 이해를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음악 전공’, 이 업계에서 필수적인 걸까?
리우 아티스트 매니저라면 음악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당연히 큰 이점이다. 20~30년 전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중에는 이미 높은 인지도를 보유한 아티스트의 시장성에 기대어 비즈니스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혹은 여러 해 동안 이 음악 시장을 지켜보면서 쌓은 경험이나 본능적인 결정에 맡기기도 한다. 음악 그 자체가 기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것, 그야말로 투자의 성격을 띠는 이 일에 관해서는, 음악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시스턴트나 투어 매니저라면 어떨까?
리우 아티스트 매니저만큼의 음악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이들의 직무는 전반적인 사회 경험과 문제 해결 능력을 더 필요로 한다.

 

 

제고시 코토프

리우 코토프는 최근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2021년에 개최될 콩쿠르 입상자들을 위한 세계 투어 공연을 기획하는 것은 물론, 수상 영역에 들지는 못 했지만 콩쿠르에서 충분한 음악성을 보여준 연주자를 발굴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사실 리우와 코토프는 이미 여러 콩쿠르의 심사위원이나 해설자로 초청돼 수많은 젊은 연주자를 지켜봐 왔다. 유망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일은 그들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다.
하지만 신인 발굴 사업은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더욱이 리우 코토프는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보다 오래 지켜보아야 하는 음악성에 주목한다.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성공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리우와 코토프는 단호히 ‘노(No)’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사업 이윤을 위해 디자인된 프로젝트는 따로 있다”는 것. 아티스트 발굴은 그 범위 밖에 있다. 전적으로 ‘투자’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투자’라는 말, 장기적으로 바라보겠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리우 즉각적인 결과나 이윤을 추구한다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인내심을 갖고 아티스트의 성장을 위한 관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

김봄소리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발굴된 건가. 그녀가 듣는다면 무척 감동할 것 같다.
코토프 김봄소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2016)에서였다. 폴란드 내 가장 큰 음악 행사 중 하나인 이 콩쿠르는 전국으로 생중계된다. 당시 나는 TV 생중계 진행자로 참여했다. 그때 봄소리의 연주를 처음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최근 아시아 출신의 실력파 연주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봄소리의 연주는 뭔가 달랐다. 그녀만의 개성으로 무대를 휘어잡고 있었다.

특히 김봄소리에 대한 확신을 얻은 지점은 무엇이었나?
코토프 많은 젊은 연주자가 독주나 리사이틀 무대에는 강하다. 그런데 큰 악단과 진정한 공연을 만들어내는 이는 드물다. 특히 모차르트의 협주곡에서 봄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확신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악단과 호흡했다. 음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증명해 보인 순간이었다.

수상 발표가 있기도 전에 봄소리를 찾아갔다고 들었다.
코토프 그녀가 이 경연에서 어떤 상을 받게 될지는 상관없었다. 수상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봄소리를 먼저 찾아가 앞으로의 커리어를 우리와 함께 쌓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보통 콩쿠르 우승자와도 계약을 맺는 데에 큰 관심이 없는데, 그녀는 예외였다.

 

이후 봄소리는 리우 코토프와 함께하며 워너 클래식이나 도이치 그라모폰 같은 메이저 음반사에서 음반 발매를 이어나갔다.
코토프 전 세계 수많은 메이저 기획사와 악단들에 봄소리를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그렇게 루체른 페스티벌,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 라인가우 페스티벌 등에도 그녀의 데뷔 무대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티스트의 성공은 한 번의 공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데뷔 이후 재초청 여부가 중요하다.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매니저들은 가끔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진짜 커리어는 무대 위에 선 아티스트가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다.’ 김봄소리는 이 무대들에 다시 초대되어 직접 자신의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노버에 위치한 코토프 사무실

최근 많은 아티스트들은 전반적인 활동 계획을 관리하는 전담 매니지먼트 이외에도, 세계 각지의 지역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는다. 리우 코토프는 전담 아티스트의 해외 투어를 진행할 때, 이런 지역 에이전시와 긴밀히 소통한다. 에이전시는 그 지역의 시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공연장 대관이나 홍보 마케팅에 있어서 보다 세세한 기획을 가능케 한다.

소속 아티스트의 해외 투어를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리우 아티스트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연이어 공연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고, 그 사이에 휴일을 필요로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아티스트마다의 특성을 반영해 세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코토프 루돌프 부흐빈더처럼 어느 경지에 도달한 아티스트들을 위해서는 최상의 공연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이 원하는 음향 수준에 따라 선택지를 꾸려야 한다. 실황 녹음을 선호하지 않는 아티스트나 악단의 공연에서는 라디오나 TV 중계를 진행하지 않도록 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당분간 해외 투어에는 제약이 클 것 같은데.
리우 몇 년간의 노력이 집약된 공연들이 모두 무산됐다. 하지만 리우 코토프가 세계 각지에 아티스트를 둔 글로벌 매니지먼트사라는 점을 살려 위기를 타개하고 있다. 아티스트들은 지역적으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공연 업계에 엄청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고.
리우 우리 회사는 그로부터 큰 혜택을 받지 않았다. 이 지원책들은 대부분 존폐 위기에 처한 회사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런 도움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다.

특별히 이 시기를 추억하게 할 에피소드가 있나.
리우 시대적 어려움을 뚫고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스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할 음반을 작업했다. 아직 외출이 어려운 상황이라, 카미유는 파리의 자택 옥상에서 영상물을 제작해 신보 홍보에 활용했다. 이 영상들은 이미 전 세계 미디어 플랫폼에서 수백만의 조회 수를 달성했다.

김봄소리는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된 독일 라인가우 페스티벌의 새로운 온라인 콘텐츠에 참여했다.
리우 라인가우 페스티벌 온라인 공연은 독일의 메이저 디지털 콘서트 플랫폼인 텔레콤 마젠타무지크360에 업로드되었다. 봄소리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영상은 이 플랫폼에서 조회수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리우 코토프는 현 클래식 음악계가 관통하고 있는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으로 아시아가 클래식 음악 시장의 리더가 될 잠재성을 지닌다는 것이 그중 하나. 이미 대중음악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단다. 코로나 19로 온라인 공연 트렌드에 가속도가 붙은 것도 또 다른 변화다. 공연 콘텐츠의 측면에 관해서는 “1960~70년대 전위적인 현대음악이 주목받았고, 이내 영화 음악이 콘서트홀로 입성했다. 최근에는 게임 음악이 가장 인기다. 기존과는 다른 관객층 유입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화에 대한 단상을 끝맺으며, 다시 클래식 음악의 본질로 돌아간다. “이런 트렌드가 클래식 음악의 본질을 뒤바꾸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아티스트들이 평생에 걸쳐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리우 코토프

 

코이치 이리야마

AMATI Inc. · since 2009

일본 · 아마티
코이치 이리야마 CEO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새 시대

| 주요 아티스트 |
마티아스 괴르네(바리톤), 대니얼 하딩(지휘),
니콜라이 루간스키(피아노), 라덱 바보락(호른),
루돌프 부흐빈더(피아노), 김선욱(피아노),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 다니엘 호프(바이올린),
바딤 레핀(바이올린), 주커만 트리오

무조건 이름 있는 대기업을 선호하던 흐름은 한풀 꺾였다. 이제 자신의 신념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할 수 있는 스타트업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경향은 클래식 음악 업계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형 매니지먼트사와 대비되는 ‘부티크’ 기업의 파이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부티크는 운영자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소규모 점포를 의미했다. 이내 금융·법조계에서는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을 일컫는 용어가,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몇몇 아티스트를 ‘전담 마크’하는 소규모 매니지먼트사를 뜻하는 단어가 됐다.
코이치 이리야마도 25년 역사의 카지모토 콘서트 매니지먼트에서 근무하다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2009년 아마티를 창립했다. 그는 이러한 소규모 매니지먼트사의 출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더 나아가, “이제 소규모 부티크 매니지먼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법을 전공한 이력으로 클래식 음악 업계에 입성했다.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 일본 매니지먼트사에는 음악 전공자가 드물었다. 오히려 다양한 실무 능력을 두루 갖춘 인재를 선호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채용 시에 음악 전공자를 우대하지 않는다. 물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아티스트 매니저를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건이라면?
창의력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시각. 보다 실용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업 스킬이나, 외국어 소통 능력이다. 이 모두는 인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매니저의 주된 직무는 사람 간 의사소통을 중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루간스키

아마티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의 기업과 협업할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
빈체로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해프닝피플 등과 국제 투어를 함께 추진한 바 있으며, 최근 프로젝트로는 2019년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 부부의 투어 프로젝트를 위해 롯데문화재단,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업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의 클래식 음악 역사에 대해 들어볼 기회는 흔치 않다. 언제 처음 유입되었나.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화기를 거치며 정부는 서양으로부터 여러 산업과 기술, 문화를 수입했다. 클래식 음악도 그중 하나였다. 이후 클래식 음악은 교양 있는 사람들의 매너나 고급문화로 받아들여졌고, 학교에서는 필수 교양과목으로 지정됐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유럽·미국과 일본 사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매니지먼트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가.
유럽이나 미국의 매니지먼트는 해외 투어 기획에 큰 비중을 두는 반면, 일본은 국내에서 선보일 자체 공연에 집중한다. 또 서양에서는 매니지먼트와 콘서트홀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데,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클래식 음악을 받아들인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매니지먼트사가 공연 기획과 아티스트 관리를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일본의 클래식 음악계는 어떠한가.
일본이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렸을 때, 정부는 새로운 공연장을 짓고 많은 클래식 음악 공연을 개최하는 데 열을 올렸다. 기업들은 공연을 후원할 스폰서를 자청하고 나섰다. 기업 이미지를 고급화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제가 악화되면서 정부와 기업의 이런 의지는 천천히 희미해졌다. 최근 클래식 음악을 위한 지원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김선욱

코로나19로 그 어려움이 배가 되었을 것 같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공연을 열 수 없게 되니 모든 수입이 끊겼다. 일본 내 97개 회원사가 함께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 기획사 연합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7월 말까지 3,000개 이상의 공연이 취소됐고, 1,500여 개의 공연이 연기됐다. 이 통계는 오직 클래식 음악 공연에 한한 것이다.

경제적 손실이 막대할 것 같다.
피해액이 11억 엔을 웃돈다. 사태의 끝에 이 숫자가 얼마나 치솟을지 상상조차 힘들다. 공연 업계를 위한 정부지원책이 여럿 마련됐지만, 이 역시 충분하지 않은 상태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황금기를 이끈 90여 년 역사의 컬럼비아 아티스트(CAMI)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클래식 음악 업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CAMI의 붕괴는 현 매니지먼트계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코로나가 계기였다고는 하지만, 분명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라 짐작한다.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던 매니지먼트의 업무가 인터넷의 보급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온라인상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티스트는 온라인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스스로를 홍보하며 ‘셀프 매니지먼트’를 할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세계화의 흐름이 지역화로 회귀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한때 대규모 유명 아티스트들을 관리하며 전 세계 음악 업계를 좌지우지하던 거대 매니지먼트의 종식을 가리키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상황 속, 부티크 매니지먼트계의 성장이 괄목할 만하다.
이제 이 업계에서도 저마다 개성 있게 소규모로 운영하는 부티크가 각광받고 있다. 부티크 내에서 영업·공연 기획·제작·홍보 등과 같은 분업화의 관례는 불필요하다. 한 명의 매니저가 거의 모든 일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무 방식은 아티스트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태동기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과 긴밀한 사이를 유지해온 그는 “유럽·미국 아티스트나 악단의 투어에 의지하지 않고, 아시아 각국의 매니지먼트가 적극적으로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교류와 네트워크는 아티스트와 악단은 물론 각 나라와 지역에 기반한 공연장에까지 활용할 수 있다”며 앞으로의 아시아 시장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이러한 연결구조를 통해 한국-일본을 오가는 관객들의 교류 문화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글 박찬미 기자 사진 아마티

 

아마티 사무실 전경

 

 

 

리비 에이브러햄스

 

 

Keynote Artist Management · since 2014

영국 · 키노트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리비 에이브러햄스 Director

 

유연성을 발휘하다

 

| 주요 아티스트 |
테오도르 쿠렌치스(지휘), 올라 보이란(소프라노),
엘렌 그리모(피아노), 선우예권(피아노),
헹크 네벤(바리톤), 마틴 콘스탄틴(연출),
데이비드 파운트니(연출)

 

여섯 살 때부터 음악은 리비 에이브러햄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줬다. 대학에서는 음악을 전공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대’는 오르기 힘든 태산처럼 느껴졌다. 무대 위 아티스트가 될 만한 자질이 없다는 건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산에 오르기보다는, 산에 오르는 이들을 위해 길목 곳곳에 이정표를 세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왕 결심했으니 세계 굴지의 매니지먼트사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 좋을 터. IMG 아티스트에 입사하여 설계도 그리는 법부터 차근차근 습득했다. 20년의 시간을 쌓은 후, 그는 마침내 IMG 아티스트 부사장(Senior Vice President)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세계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는 IMG 아티스트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겠다.
큰 회사를 떠나니 월급에 대한 걱정이 생겨서 끔찍하긴 했다.(웃음)

매니지먼트 설립을 결정한 가장 큰 계기는?
권위 있는 글로벌 아티스트 기획사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이 경력은 유연하면서도 혁신적인, 동시대 감각에 걸맞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꿈꾸는 것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어쩌면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을 텐데.
내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했다. 명료했다. 나는 음악가를 직접 관리하고 싶다. 모든 대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승진할수록 실무에서 제외되니 재미가 없더라. 작은 규모 회사에서 적합한 수의 아티스트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고, 함께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싶었다.

2014년 1월, 키노트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부티크(Boutique) 기업이다. 요즘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 ‘부티크’라는 명칭이 많이 붙는다. 부티크 기업이란 규모는 작아도 개성적인 의류를 취급하는 점포를 뜻하는 용어였다. 금융·법률 영역에서는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을 일컫는다. 가볍게 비유하자면 IMG는 백화점, 키노트는 전문샵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규모가 궁금하다.
직원 한 명과 세 명의 아티스트로 회사를 시작했다. 운 좋게도 엘렌 그리모(피아노), 테오도르 쿠렌치스(지휘), 토마스 하누스(지휘) 등 세 명의 멋진 아티스트와 처음을 함께할 수 있었다. 사업 파트너인 찰스 에이드리언슨의 지원도 받게 됐다. 지금은 여섯 명의 직원과 스무 명이 넘는 아티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소규모 회사여서 직원 간의 유대 관계가 중요할 것 같다. 직원들은 대부분 당신처럼 음악을 전공했나?
우리 모두는 음악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동료의 전공은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클래식 음악을 알고 즐기면 업무에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감성과 지성을 가지고, 예술가들과 공감하며, 그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가 무엇보다 ‘유연성’을 중요시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때때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상황”에 부딪힌다고 한다. 그때마다 유연한 감성으로 모든 일에 대처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키노트는 올가을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와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함께하는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 투어를 준비 중이다.

 

‘유연성’을 키노트의 핵심으로 보아도 되는가?
때때로 우리는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투어를 하다 보면 피아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다. 우리는 평일 밤이나 주말에도 어떤 일이든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다. 모든 순간이 도전적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직업의 매력이다. 어떤 험난한 상황에도 음악가에게 필수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어 보람차다.

‘유연성’이 전염병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우리 회사는 수입의 80%를 잃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앞으로 어떤 공연이 열릴지, 공연이 재개된다면 음악가들이 어떠한 검역 규칙을 가지고 투어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기에 앞으로의 시즌을 계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음악가들이 프로모터와 계속 접촉하고, 융통성 있게 생각하고, 토론하고, 용기 내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때까지 인내심을 유지하고자 한다.

불가항력 사태를 대비하는 정부 지원 사례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곳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는 상업적인 회사다. 현재 정부 기관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고 있어서 대답할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우리 업계에 몸담은 모두가 파트너로서 예술 분야의 정부 지원 기관과 협력해야만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매니지먼트가 연주를 일삼는 음악가에 비중을 많이 두는 대신, 키노트는 창작자에 대한 관심도도 높다. 마크 바우덴은 작곡가, 마틴 콘스탄틴·톰 거스리·데이비드 파운트니는 오페라 연출가이다. 마트 헤네크는 사진작가로 키노트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리비 에이브러햄스는 “예술가들의 모든 창작 과정에 대한 관심이 깊었고, 그 일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고 밝혔다.

창작자 그룹의 존재가 다른 매니지먼트와 가시적인 차별점인 것 같다. 이들과 연주자 간의 교류가 이뤄지기도 하는가?
성악가와 오페라 연출가가 연결되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 창작자 부서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건 나름대로 일리 있는 결정이었다. 이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즐겁다.

아티스트 매니저로서 고민되는 것들은?
균형. 예술성과 사업성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그래도 나에겐 예술적인 가치가 항상 우선순위다. 예술가들이 원하는 가장 좋은 방향으로 지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업성도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

 

 

아티스트와는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나?
정직하고 수평적인, 동반자 관계

안정적인 사업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알맞은 규모로, 적당한 숫자의 아티스트를 갖는 것. 그래야지만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다.

 

현재 키노트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협력하여, 우승자 투어 공연을 진행한다. “그 덕에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함께하게 되었다”라며, 그는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의 성장을 예고했다. 여러 해 동안 한국 동료들과 긴밀하게 일해 왔다는 에이브러햄스는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얼른 한국 투어 계획을 세우고 싶다”고 밝혔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키노트 아티스트

 

 

 

 

 

 

샬럿 리

Primo Artists · since 2015

미국 · 프리모 아티스트 

샬럿 리 President

가장 혁신적인 감각으로

| 주요 아티스트 |
이츠하크 펄먼(바이올린), 조슈아 벨(바이올린),
니콜라 베네데티(바이올린), 베아트리체 라나(피아노),
조성진(피아노), 크리스티안 마첼라루(지휘),
윈튼 마살리스(작곡)

“샬럿, 무대 없이도 살 수 있다면 다른 일을 하렴. 그만한 열정이 없이는 참 고달픈 일이란다.” 고등학교 졸업을 1년을 앞두고, 레슨 선생님이 건넨 말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간직하겠다고.
샬럿 리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됐다. 4세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았다. 졸업 후엔 뉴욕에서 클래식 음악 산업에 뛰어들었다. 1998년 IMG 아티스트 뉴욕에 입사한 그는 에이전시 역사상 가장 어린, 30세의 나이로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리고 2015년, 17년간 몸담았던 IMG를 떠나 부티크 형태의 에이전시, 프리모 아티스트를 창립했다.

 

 

 

 

샬럿 리는 에이전시 운영에서 여성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연을 선보이고 있다

텍사스 주립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음악 비즈니스 업계로 방향을 바꾸었다.
대학 졸업 후 로스쿨에 합격했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답은 음악 산업에 있다고 확신했다.

1998년 IMG 뉴욕에 입사해 서른 살에 최연소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곧 이곳을 떠나 프리모 아티스트를 설립했는데, 무엇이 계기가 됐나?
IMG에서 일한 17년 동안 감사하게도 업계의 전설적인 세 명의 멘토, 에드나 란다우, 엘리자베스 소볼, 찰리 햄린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그들이 회사를 떠난 후,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아티스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집중적이고 빠른 접근방식으로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

 

2015년에 설립된 프리모 아티스트는 이제 5주년을 맞은 신생 회사다. 원격근무부터 전문적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 관리까지, 요즘 시대의 감각과 기술을 잘 활용한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주목받고 있다.

요즘 가장 핫한 에이전시로 손꼽힌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훨씬 이전부터 원격근무로 시작한 최초의 에이전시다. 자율적이면서도 헌신적인 팀원들과 신뢰를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사무실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플랫폼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메시지(iMessage), 슬랙(Slack), 페이스타임(FaceTime), 줌(Zoom), 웨어바이(Whereby)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모든 파일은 클라우드(Cloud)에 저장하고 있다.

이러한 원격근무 방식이 주는 장점은?
아티스트를 관리하고, 기획자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우리만의 방식을 가지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원격근무 방식은 현장 업무부터 아티스트의 소셜 미디어 홍보까지, 모든 일을 전략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 관리도 전문적이다.
어떤 에이전시에도 밀리지 않을 만큼 큰 규모의 소셜 미디어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의 업계 사람들이 우리 회사와 아티스트의 활동을 지켜본다. 3개 채널에 걸쳐 2만 명에 달하는 팔로워가 있는데, 이 중 3분의 1이 미국과 한국에 거주 중인 한국인이다.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 부서를 새로 만들어 15개 채널을 운영 중이다.

 

프리모 아티스트는 뉴욕에 거점을 둔 부티크 에이전시다. 북미 최고의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라는 자부심을 지닌 이곳은 단 열 명의 ‘선별된’ 아티스트와 함께한다. 이츠하크 펄먼(1945~), 조슈아 벨(1967~), 제임스 가피건(1979~), 윈튼 마살리스(1961~)를 비롯해 떠오르는 신예 니콜라 베네데티(1987~) 등과 함께 한다. 조성진(1994~)의 미주 활동도 바로 이곳에서 담당한다.

 

니콜라 베네데티

업계에서 처음으로 만난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그와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내가 처음으로 계약한 아티스트는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베네데티(1987~)다. 2005년, 그가 ‘BBC 올해의 젊은 음악가상’을 받은 직후였다. 뉴욕 머킨 홀 무대를 걸어나오는 그의 모습에 매료됐던 기억이 난다. 나를 포함해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끌어들일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바이올린 소리도 너무나 매혹적이었고. 지금도 그가 무엇을 연주하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열 명의 아티스트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프리모 아티스트는 직원도 열 명이다. 모두 다른 업무로 소개되는 이들 중에는 눈에 띄는 이도 있다.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류보리 작가이다. 그는 작가로 입봉하기 전, 여러 공연장과 기획사에서 근무했다. 프리모 아티스트는 그를 ‘한국 담당자(Korean Affairs Consultat)’로 소개한다.

 

프리모 아티스트가 선호하는 직원의 모습은 무엇인가?

팀원 대부분이 음악 전공자이거나 혹은 부전공으로라도 음악을 배웠고, 학위가 없다 하여도 전문가 못지않은 음악 교육을 받았다. 클래식 음악에 탄탄한 배경지식과 섬세함,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깊은 열정과 헌신은 필수다. 예술경영 학위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이지 학위가 아니다. 종종 농담으로 업계에서의 2년 경력이 예술경영 석사 학위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에이전시와 아티스트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모든 관계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열린 소통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서로의 말을 더 잘 듣고,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서로의 능력에 대한 상호 간의 신뢰와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은 어느 쪽에도 망설임이나 의심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함께 꿈을 이룰 수 있다.

샬럿 리 대표는 2015년 ‘뮤지컬 아메리카’가 선정한 ‘올해의 영향력 있는 전문가 30인’에 선정됐다. 색다른 시도로 클래식 음악 산업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따랐다. 그는 프리모 아티스트를 이끄는 것 외에도 여러 대학 강의와 콩쿠르 심사에 참여하며 시야를 넓히고 있다. 그가 바라본 코로나 이후의 클래식 음악계가 궁금했다.

 

이츠하크 펄먼

클래식 음악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은 어떤가?
미국은 클래식 음악계에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고, 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일절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문화예술산업은 연간 8,770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이는 국내 총생산량(GDP)의 4.5%에 해당한다. 하지만 매년 삭감되어 곧 없어질 위기에 처한 예술국가기금(National Endowment of the Arts)은 1억6천2백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 GDP의 0.0001847%에 불과하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연간 예산의 절반밖에 안 되는 숫자다!

팬데믹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지원도 없었나?
코로나19는 업계에 닥친 가장 큰 살상 무기다. 2022년 이전에 정부 지원이나 금융 모델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100% 수수료로 운영되는 우리 회사는 올해 말쯤에 폐업 위기에 처할 것이다. 예술 분야 구호 기획의 필요성이 이토록 시급했던 적이 없다. 이것이 내가 공연예술 산업의 165개 에이전시로 구성된 공연예술경영자·에이전트 연합(PAMAC, Performing Arts Managers and Agents Coalition)을 설립한 이유다.

 

공연예술경영자·에이전트 연합(PAMAC)을 통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국회의원들에게 코로나가 우리 산업에 끼친 영향과 경제적인 지원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각인시키고 있다. 얼마 전 미치 맥코넬 상원 원내대표의 고위 참모들과 전화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음악 산업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리고, 이를 도울 기회를 주는 것이 목표였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사회의 치유, 그리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멈추지 않도록 말이다. 이와 관련한 입법 개혁이 없다면, CAMI 이후에도 업계의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공연예술경영자·에이전트 연합(PAMAC)을 이끄는 샬럿 리의 목표는 비영리 단체, 예술 산업 및 에이전시, 아티스트, 공연 근로자 등 음악 산업을 이루는 모든 이들을 대표하는 데 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음악과 예술의 구제’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프리모 아티스트

 


 

INTERVIEW

 

해외 매니지먼트
현장을 뛴 한국인들

 

이번 해외 매니지먼트 특집기사를 준비하며 미국과 유럽, 아시아권의 여러 매니지먼트를 둘러봤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사의 이모저모를 살피던 중 익숙한 한국계 이름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실제로 각 회사의 대표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직 세계 매니지먼트 업계 속 한국인의 비중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 불모지를 먼저 걸어간 이들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박선민과 김정민에게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미국과 아시아, 그리고 유럽에서 활동하며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계 매니지먼트 업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글 이미라 기자

 

뉴욕 필·IMG아티스트·CAMI 박선민

예술경영 업계로 들어서기까지 매일 두드림의 연속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트럼펫과 예술경영를 공부한 박선민은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에 입사해 2년간 해외 업무를 맡았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뉴욕대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던 중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킹’ 팀과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CAMI)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졸업 후엔 뉴욕 필하모닉 기획팀에서 공연 기획, 투어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아시아로 활동 지역을 옮긴 그는 홍콩과학기술대학교 MBA를 취득하고 IMG아티스트 싱가포르에서 경력을 이어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성균관대 예술협동과정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여러 문화적 배경 속에서 쌓은 다양한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박선민은 현재 한양대에서 예술 경영 강의를 하고 있다.

 

디즈니와 CAMI로 시작해 뉴욕 필, IMG 아티스트 싱가포르까지, 경력이 다양하다.
첫 직장인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에서 공연기획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배웠다. CAMI에서는 더그 셸던(1941~) 밑에 있었다. CAMI에서만 50년 이상을 일한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내게 “항상 긴장하고 깨어있으며 겸손해라. 도덕적으로 일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져라”라고 말하며, 매니저로서 ‘여러 색깔의 얼굴’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뉴욕 필에선 외국인 최초 정직원으로 고용되어 오랜 시간을 보냈다.
처음 인턴으로 들어갔고, 이후 4번의 인터뷰를 거쳐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뉴욕 필에서는 모든 단원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배웠다. 이곳에선 단원들과의 사적인 식사 자리도 금지다. 최고의 오케스트라라는 자부심을 지닌 단체인 만큼 그에 걸맞은 프로페셔널한 자세도 요구됐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지정되는 옷차림이 있었다. 투어 시엔 비행기 내에서도 정장을 입어야 했고, 어떤 가방을 들어야 하는지도 정해줬다. 무엇보다도 미리미리 생각하고 진행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한마디로 ‘머리 쓰는 법’을 배웠달까.

내외부적으로 느낀 차별은 없었나?
일하는 방식에서의 차이는 있었지만, 차별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아시아계 단원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뉴욕 필은 ‘동료의식’이 아주 강한 곳이다. 특히 기획팀의 우애가 굉장히 끈끈한데, 서로의 부족함을 알아서 채워주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뉴욕 필에서는 자리 이동이 거의 없다.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 정도다.

현장에서 느낀, 필수자질을 꼽아본다면.
철저한 시간관념과 세밀함, 정확성, 그리고 아티스트와의 신뢰감이 중요하다. 체력도 바탕이 되어야 하고. 백스테이지에서 ‘절대 뛰지 말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조급함에서 오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해외 클래식 음악계가 바라보는 아시아 시장은 어떤가.
투어를 통해 적자를 메우는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대체로 아시아권에서 아티스트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요구하기 전에 미리 다 해주는 방식이다. 단적인 예로 뉴욕 필의 경우 대기실에 두 병의 물만 놓으면 끝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과자, 빵, 음료수까지 기본적으로 준비해 놓는 것이 많다. 아무래도 첫인상이 중요해서인 것 같다. 첫인상을 잘 만들고, 또 그것을 계속해서 좋은 관계로 잘 유지하는 것은 한국이 최고인 것 같다.

현재 한양대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한다. 국내 예술경영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우선 이론과 현장을 모두 갖춘 사람이 강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계속 변화하는 트렌드도 잘 파악해야 한다.

국내 매니지먼트 업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꾸준히 발전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연주자가 많기 때문에, 매니지먼트 업계 또한 더욱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오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음악 산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언해준다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라. 겸손함과 책임감, 아티스트와 파트너로서 공존한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긍정적인 포커페이스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늘 연극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뒤셀도르프 톤할레·런던 필·해리슨 패럿 김정민

 

김정민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오랜 경험을 쌓았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활동을 시작으로 정명훈 상임 시절 서울시향의 제1바이올린 수석을 역임했고,이후 런던 필의 제2바이올린 부수석까지 올랐다. ‘무대 위’에서 ‘무대 뒤’로 시선을 옮긴 것은 런던 필에서 9년의 시간을 보낸 후였다. 국제 매니지먼트사 중 하나인 해리슨 패럿에 입성하여 지휘자 전담으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업무를 시작했고, 투어 및 국제 프로젝트 부서도 거쳤다. 최근까지는 뒤셀도르프 심포니 예술감독 미하엘 베커를 보좌하며, 뒤셀도르프 톤할레에서 시즌기획과 페스티벌 운영에 중점적으로 참여했다.

어떻게 매니지먼트 업무에 종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연주 외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아주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재택근무로 허드렛일을 했다. 스케줄 작성, 비행기 예약, 웹사이트 사진 업로드, 피아노 조율 및 페이지 터너 요청 등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이후 홍보 메일 발송, 계약서 검토, 시장 조사까지 하게 됐다. 이 분야의 일을 제대로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회사에 지원했을 때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실무를 익힌 상태였다.

영국 오케스트라 협회의 ‘Find your way’에 참여했다. 어떤 프로그램인가?
영국 오케스트라 대표자들 사이에서 차세대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되며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오케스트라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해 리더십에 필요한 통찰력을 기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연주자 출신이 오케스트라의 대표가 되는 전통이 있는데, 클라이브 길린슨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런던 심포니 첼로 단원 출신으로 같은 악단의 대표를 거쳐 현재 카네기 홀 대표로 재직 중이다. 그래서인지 여섯 명을 선발하는 중 한자리가 연주자에게 주어졌다. 여기에 뽑혀 9개월 동안 일종의 오케스트라 맞춤형 MBA 교육을 받았다.

업계의 인재를 키우기 위한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다면.
미국 오케스트라 리그(League of American Orchestras)에서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최근 독일에서도 이에 대한 필요성을 논의 중이다. 예전에는 도제식으로 일을 배웠다.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엘프필하모니 대표)도 알렉산더 페레이라(라 스칼라 대표) 밑에서 배웠다. 내가 뒤셀도르프 예술감독 미하엘 베커 밑에서 일한 것도 이와 같은 예다.

실제 업계에는 어떤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가?
오케스트라냐 공연장이냐 에이전시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학부까지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많다. 요즘은 예술경영 석사학위를 가지고 오는 경우도 많은데, 학교와 현장이 많이 떨어져 있고, 예술경영 내에서도 클래식 음악은 작은 부분이기 때문에 필수요소는 아니다. 리더급에서는 경영·마케팅·법률을 전공한 사람도 있지만, 실무자 중에는 드물다. 무엇을 전공했느냐가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음악을 알고 연주해본 경험은 짧은 시간 내에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분명 도움이 된다.

 

현장에서 느낀, 에이전트의 필요 자질은 무엇인가.
에이전트는 개성이 강한 사람들과 일한다. 입장이 다른 여러 사람 사이에서 아티스트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전략적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공연예술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 많은데다 여러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빨리 반응하고 판단하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 업계의 직원 복지는 어떤가?
나라마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이 산업 자체가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만큼 다른 업계와 비교하면 박봉이다. 근무시간도 불규칙적일 수밖에 없고. 이제까지 본 계약서에는 필요에 따른 야근 및 주말근무, 출장이 있고, 특별 수당은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단 수익이 난 해에는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사회의 성향에 따라 일 처리 방식도 다를 것 같다.
독일처럼 소득세율이 높고 오케스트라나 공연장 예산의 대부분이 정부에서 나오는 구조와, 영미권의 비영리 단체, 즉 수익을 내고 모금하는 것이 업무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구조는 철학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에이전시도 이들의 방식에 맞추게 되고.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그 근간에는 청중이 있다. 꾸준하고 안정적인 관객이 있다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마다 에이전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전문 에이전시의 필요성은 영미권에서 조금 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딜 가나 아티스트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고, 에이전시를 걸림돌 내지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기획자들이 있다. 아티스트를 대변하는 에이전트가 협상 테이블에서 기획자 반대편에 설 때도 있지만, 결국은 협력과 상생의 관계를 이뤄가야 한다.

자신을 홍보하고 어필하기 위해 아티스트들이 보내오는 이메일도 있을 것 같다. 그중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면.
본인을 소개하는 글에서 자기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호감이 간다. 비디오나 오디오는 필수이고. 그러나 내용이 어떻든 간에 직접 연주를 보기 전에는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는 없다.

 

해외 클래식계가 바라보는 아시아 시장은?
아시아는 중요한 시장이다. 특히 중국 시장에 대한 엄청난 기대가 지난 10~20년간 있었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장인 데다 인구수도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어와 협업 프로젝트가 꾸준히 성장세를 보였으며, 중국 현지에 직원을 두고 있는 회사들도 꽤 있다. 일본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지만,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온 시장이다. 반면, 한국은 젊고 열성적인 관객과 더불어 음반의 수요도 있어서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다.

요즘 소규모의 부티크 기획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구매자’ 입장인 오케스트라나 공연장, 페스티벌은 종종 대형 기획사일수록 상업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는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아티스트의 연주료에서 일부를 받는다는 수익 구조는 어디나 다 마찬가지이고. 일반적으로 커리어가 안정 궤도에 들어선 아티스트라면 앞으로의 전략적 선택을 위해 큰 회사보다는 세세한 맞춤 관리를 해주는 부티크가 더 유리하다. 사실상 개인 비서만 쓰는 아티스트도 많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의 네트워크와 자본, 인력, 노하우는 분명 무시할 수 없다. 아티스트를 발굴해 장기적으로 키워내는 일 또한 전통적으로 큰 회사나 거물급 에이전트의 역할이었다.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전문 분야가 따로 있다고 본다. 아티스트도 많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의 네트워크와 자본, 인력, 노하우는 분명 무시할 수 없다. 아티스트를 발굴해 장기적으로 키워내는 일 또한 전통적으로 큰 회사나 거물급 에이전트의 역할이었다.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전문 분야가 따로 있다고 본다.

 


EPILOGUE

세계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 대표 14인의 인터뷰를 마치며

 

음악의 가치 보존과
실제적 대안이 필요할 때

참석 박찬미·박서정·장혜선·이미라 기자 정리 이미라 기자·권소현(서포터즈)

 

유럽과 미국, 일본의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 12곳과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1959년에 설립된 유럽의 KD슈미트부터 2015년에 문을 연 미국의 프리모 아티스트까지, 클래식 음악산업의 역사와 함께해온 12명의 전문가와 나눈 인터뷰의 후기를 한 자리에서 풀어보기 위해서다.
이 지면을 통해 세계 매니지먼트 업계의 흐름과 역사, 그리고 각 기회사의 대표들이 전한 업계의 현황과 대안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미국·일본을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 매지니먼트의 역사와 현황

 


 

이미라

해리슨패럿·재팬아츠·지멘아우어·
노르딕 아티스트·프리모 아티스트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설립된 회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음악 매니지먼트의 역사를 살펴본 기분이 들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대규모 에이전시로서 해리슨패럿(1969년 설립)이 지닌 자부심,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다루며 유럽과 아시아의 다리가 된 재팬아츠(1976년 설립), 음악 산업의 비주류였던 현악 4중주의 가치를 높이 끌어올린 지멘아우어(1989년 설립), 지역 예술가와의 협업에 초점을 맞춘 노르딕 아티스트(2006년 설립), 그리고 현대 테크놀로지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혁신을 이뤄가는 프리모 아티스트(2015년 설립)까지, 저마다 특색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장혜선 

KD 슈미트·키노트 아티스트·이베르무시카

영국(키노트 아티스트)과 독일(KD 슈미트), 스페인(이베르무시카) 매니지먼트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KD 슈미트는 런던·하노버·베를린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꽤 덩치가 큰 회사로 유명 아티스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반면, 키노트와 이베르무시카는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곳이다. 이베르무시카는 남미 아티스트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 키노트는 창작자 그룹(작곡가, 사진작가, 오페라 연출가)이 따로 마련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회사 내 창작자와 연주자의 협업으로 공연이 기획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박찬미 

IMG 아티스트·리우 코토프·아마티

대체로 부티크 회사(리우 코토프)가 대기업보다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을 더 보여주는 답변을 줬다. IMG는 1980년대부터 지속되어온 대기업이고, 리우 코토프와 아마티는 모두 2009년에 설립된 젊은 회사다. 공통적으로 매니지먼트 업계의 오래된 경영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한 새로운 관중 모색에 대해 입을 모았다.

 

박서정

 저드슨 매니지먼트 그룹

1980년대부터 활동한 스티븐 저드슨(저드슨 매니지먼트 그룹 대표)은 클래식 음악 산업계에 비관적이었다. 산업 규모의 파이가 작아지다 보니, 수수료를 챙길 수 없는 거다. 그러니 수익을 늘리는 방안 대신 유지비가 적게 드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경제호황기에는 기업들이 스폰서를 자처했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위축된 지금 저드슨 매니지먼트 그룹의 주력 사업인 후원 유치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가 미국 최초로 예술 후원을 사업화했듯, 새로운 시장을 발견할 때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vs 부티크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박서정

먼저 ‘부티크 회사’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1980~90년대부터 시작된 흐름으로 보이는데, 특정 주력 분야(예컨대 오페라·실내악)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규모의 차이인지 궁금하다. 대체로 부티크 회사에서 관리하는 아티스트는 10~20명 정도다.

박찬미

부티크 회사 설립의 주목적은 소수의 아티스트와 소통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 안에서 특별 장르를 선택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미라 작은 규모를 선호하는 이유로 경영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기획사의 수입구조는 대체로 연주자의 공연 수수료(10~15%)에서 발생한다. 아티스트 수가 많아질수록 가시적인 숫자도 늘 테지만, 이에 따른 제반 비용 증가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지금처럼 공급과 수요가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는 상황에서는 덩치가 클수록 버티기 힘들 것이다.

박서정

경영자의 개인적인 관심에 대한 예로는 저드슨 매니지먼트가 있다. 컬럼비아 아티스트(CAMI) 부사장에 올랐던 저드슨은 미국의 예술 후원 사업에서 시장성을 발견하고, 이를 중심 사업으로 한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장혜선

키노트의 리비 에이브러햄스 대표도 IMG 아티스트 부사장에 올랐던 경력이 있다. 하지만 승진할수록 실무에서 멀어지는 것이 재미없다고 했다. 그는 IMG를 나온 이유로 아티스트와의 1:1 소통의 부재, 아티스트를 위해 모든 아이디어를 분출할 수 없었던 것을 꼽았다.

이미라

반면 해리슨패럿은 대기업이 가장 안정적 구조라는 것을 어필했다. 더욱 세분화되고 다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에이전트가 되기 위한 조건

언어능력, 음악적 지식

 


 

박찬미

독일의 리우 코토프는 새로운 유망 아티스트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아티스트와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풍부한 음악적 지식을 지닌 사람을 선호한다. 반면 IMG 서울은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던 전문가들로 회사를 꾸렸다. 직원 중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이를 통해 새로운 기획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장혜선

음악 ‘전공자’에 대한 선호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언어 능력, 특히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재팬 아츠 대표가 “한국 아티스트들이 영어를 잘해서 부럽다”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아티스트의 영어 능력까지 중요해졌다.

 

이미라

예술가의 섬세한 감수성을 이해하고 인내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헌신적인 마인드와 나를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도 여러 번 강조됐다. 서로 친구처럼 열린 마음으로 감정을 교류해야 하지만, 아티스트가 내 ‘고객’임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각국의 지원 정책과 대안

부족한 인식, 부족한 정책

 


 

이미라

문화예술에 대한 복지가 잘 마련되어있을 거라 예상했던 미국, 유럽 국가들이 예상과는 달라 의외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공기관이나 단체에 대한 지원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민간 기업에는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12곳 중 유일하게 덴마크 노르딕 아티스트에서만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제이콥 솔베르그 대표는 덴마크의 모든 문화기관이 100%의 세금보조를 받고 있고, 음악생활을 위한 민간 자금이 마련되어 있다고 전했다. 현재 국가로부터 급여와 고정 지출 비용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대답은 다른 에이전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혜택이었다.

 

장혜선

독일은 민간 기업에 공적자원을 잘 투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KD 슈미트 대표는 독일과 영국의 시스템을 비교하며, 독일의 지원 시스템이 인건비 조달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 신(scene)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다. KD 슈미트가 독일에 여러 지사를 둘 수 있었던 것도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박찬미

반면 또 다른 독일의 매니지먼트인 리우 코토프는 정부의 혜택이 대체로 존폐 위기에 있는 회사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전했다. 넓은 범위의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영국의 상황은 더 심각해보였다. 영국의 로열 앨버트 홀은 최근 파산 직전까지 가서야 정부의 긴급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고, 가까스로 회생했다.
박서정 미국은 민간후원에 의존을 하고 있다. 가장 유용했던 정부의 혜택은 기부금을 내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었다. 미국도 코로나 피해가 크다 보니 중소기업 대출자금을 마련했다.

 

이미라

대규모의 유명 단체가 많은 미국에 제대로된 제도가 없다는 것도 의외였다. 프리모 대표인 샬럿 리는 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일절 없다며 미국 정부의 문화예술산업에 대한 무관심을 꼬집었다. 예술국가기금은 매년 줄고 있고,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한 어떤 지원도 없다며, 미국 내 매니지먼트 사업의 존폐위기를 거론했다. 국내에도 클래식 음악 산업을 위한 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과 오버랩 됐다.

 

박찬미

표준계약서의 유무에 대한 질문에는 “아티스트마다 요구가 달라 표준화된 계약서를 만들 수 없다”는 답이 대부분이었다. IMG 서울의 최성아 지사장은 국내 계약서의 문제점으로 “법률 자문을 구하는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꼽았다. 해외 기획사들 대부분은 회사 내에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인력이 갖춰져 있었다.

 

장혜선

계약서를 포함해 여러 지원 제도나 법제화에 있어서는 각 나라가 지닌 클래식 음악의 역사와 맞물릴 것 같다. 아무래도 그 역사와 함께 매니지먼트의 역사도 길어졌을 테니, 그 시간에서 나오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코로나 이전, 코로나 이후

지역화·유연성·디지털 미디어를 바탕으로

 


 

박찬미

많은 기획사가 현재 ‘지역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외 아티스트들은 투어를 통해 많은 수입을 창출한다. 그러나 지금은 해외 투어가 막히며 아티스트 각자의 본 고지에서 작게나마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장혜선

키노트를 비롯해 많은 대표가 ‘유연성’에 대해 강조했다. 공연장, 기획자, 연주자 등 서로 취소하는 상황이 많아졌는데, 이 부분에 있어 유연성과 융통성,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다. 특히 부티크 회사는 상호 신뢰에 대한 개념이 굉장히 중요하다. 관계가 틀어지면 그만큼 접점이 줄어들 테니까.
이미라 공통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의 적극적인 활용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영상, 소셜 미디어에 대한 인식과 활용이 코로나 전후로 확실히 달라졌다. 해리슨패럿은 디지털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에 적극 투자하고 있고, 프리모 아티스트도 최근 SNS 채널을 3개에서 15개까지 확대하고, 독립적인 부서를 두어 운영하고 있다.

 

박서정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은 국내에서도 활발하다. 스테이지원의 박진학 대표가 진행하는 ‘유명하면 못 나오는 쇼’ 등 유튜브와 팟캐스트가 주로 활용된다.
이미라 특별히 코로나19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도 있다. 봄아트프로젝트의 ‘방구석 클래식’이 대표적인 경우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지난 2월 말부터 시작된 랜선 음악회다. 챌린지 형식으로 총 32회 진행되었으며 누적 관람객 수 5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최근 시즌2도 진행 중이다.

 

박찬미

하지만 영상 콘텐츠를 지속 가능한 수입원으로 보지 않는 곳도 있었다. IMG에서는 코로나 시점을 기준으로 아카이빙 영상을 풀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길게 이어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상 콘텐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보였다.

 

이미라

소셜 미디어 활성화를 달갑게 보지 않는 곳도 있었다. 지멘아우어 대표는 아티스트가 SNS 채널을 통해 직접 나서서 홍보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는 아티스트 본연의 역할 이상을 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물론 즉각적인 효과와 파급력은 있지만, 이는 기획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변화하는 트렌드

지금, 클래식 음악계는?

 


박찬미

독일에서는 ‘영화음악’이 한 풀 꺾인 자리에서 ‘게임음악’이 뜨고 있는 것을 음악계 트렌드로 꼽았다.

이미라

전체적으로 지역, 성별, 문화 배경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의견도 많았다. 특히 여성 지휘자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장혜선

스페인에서도 음악계 내 남녀평등에 대한 이슈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인쇄매체의 경영 고전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KD 슈미트는 꽤 오랫동안 자체 매거진을 발행해왔는데, 현재 영상 플랫폼을 적극 모색 중이다.

 

이미라

해리슨패럿이 영국 클래식 음악계가 영국의 평론가들과 함께 성장하고 하락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그는 공연을 평론하거나 보도하는 매체들이 줄거나 사라지면서 음악 산업도 하향세를 걷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장혜선

과거에는 음악평론가들에게 선택 받고 호평을 받았다는 데에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평론가들에게 선택받는 것보다 관객에게 선택받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박서정

연초 ‘트렌드 코리아 2020’에 발표한 용어 중 ‘특화생존(Make or Break, Specialize or Die)’이 생각난다. 차별화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제는 ‘선택된 소수의 확실한 만족’이 더 중요해졌다. 클래식 음악 산업의 트렌드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결국엔 콘텐츠

역할의 재정립이 필요할 때

 


박서정

세계 경제 불황과 대기업 후원이 줄며 클래식 음악 산업의 수익 자체가 계속해서 줄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유니버설뮤직은 음반 산업이 점차 감소되는 추세를 보며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했다. 레코드 회사에서 음악 회사로 변경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연 기획사와 아티스트 에이전시도 자신의 정체성을 ‘아티스트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라

이는 아티스트의 ‘예술성’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말과 통할 것 같다. 아티스트가 가진 개성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 얼마나 잘 브랜딩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게 될 테니까. 이제 에이전트의 역할은 아티스트의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재팬아츠 대표(준이치 니헤이)는 “이제는 에이전시보다 팬들이 아티스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추고 있다”며 매니지먼트의 역할이 정보 전달처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변해가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장혜선

이미 대중음악을 다루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사에서는 이런 방식을 잘 취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 산업도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다. BTS가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브랜드 마케팅의 역할이 크다.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몇몇 기획공연을 통해 이러한 브랜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에이전시에서 그만한 인력을 갖추고 있느냐이다.

 

박찬미

전통적인 대형 클래식 매니지먼트인 IMG도 변화에 합류하고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를 위해 펀드레이징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IMG 서울에서는 케이 팝과의 컬래버레이션도 생각 중이다.

 

 

SPECIAL THANKS TO

KD SCHMID, HarrisonParrott, Ibermúsica, Japan Arts Corporation, IMG Artists, Impresariat Simmenauer, Judson Management Group, Nordic Artists Management, LIUKOTOW, AMATI, Keynote Artist Management, and Primo Artists.
This article has been prepared over the past month with great help from these 12 classical music management groups. I would like to thank the representatives and officials who responded to the request of <Auditorium> and gave meaningful answers.
Everyone is in a difficult situation due to COVID-19, but I look forward to the day we meet again and wish you victory in all your endeavors.
*Interviews are listed in the order of the year of the agency’s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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