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믿으세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1월 16일 9:00 오전

ARTIST’S ESSAY

 

자신을 믿으세요

소프라노 손나래

 

©임주희

이 정도면 자전거 타고 출근할 수 있겠군. 오늘도 어김없이 흩뿌리듯 내리는 안개비를 맞으며 희뿌연 회색빛의 함부르크 거리를 가로지른다.

일조량이 그 도시의 패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지. 나는 독일에 와서야 알았다. 해가 귀한 이곳의 겨울은 늘 낮은 채도의 풍경을 하고 있다. 덕분에 한국에서 즐겨 입던 쨍한 색깔의 옷을 그대로 입으면, 어딘지 영 이 도시의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배경과 인물이 서로 전혀 다른 화풍으로 그려진, 어색한 그림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대신 오늘은 함부르크에서 산 회백색 코트를 둘렀다. 두 발로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서 양 입술로 트럼피터 마냥 앙다문 채로 허밍(입을 다문 채 콧소리로 발성하는 창법)을 시작한다. 아침 요가를 하느라 계획보다 시간을 더 써버렸는데, 이렇게 하면 목을 푸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함부르크 극장의 전설

한창 달리다 보니 헨델(1685~1759)과 마테존(1681~1764)이 혈투를 벌였던 갠제마르크트(Gänsemarkt)가 보인다. 함부르크 극장의 전신인 갠제마르크트 오페라하우스에서 동료로 만난 이 둘의 사이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헨델보다 네 살 많은 마테존은 이미 함부르크에서 성악가로, 그리고 작곡가 겸 작가로 인정받고 있었고, 처음에는 헨델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사건은 헨델이 작곡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할 때 일어났다. 그의 오페라 ‘불행한 클레오파트라(Die unglückselige Cleopatra)’에 테너로 선 마테존이 극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죽는 연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치고 있을 때였다. 더이상 견딜 수 없던 헨델이 지휘와 하프시코드 반주를 멈추고 나가버린 것이다. 분노한 마테존이 따라 나가 헨델의 따귀를 걷어붙이며 결투를 신청했고, 그 유명한 ‘갠제마르크트의 혈투’가 벌어진다. 마테존이 결정적 한 방으로 검을 휘두른 순간, 헨델의 금박단추가 검을 부러뜨렸다. 그 덕에 오늘날 우리는 ‘음악의 어머니’라 불린 헨델이 남긴 찬란한 유산들을 향유할 수 있었다.

요즘 극장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리허설이 한창이다. 나는 아델레 역의 복장을 갖춰 입고 지휘자 조너선 달링턴(1956~), 연출가 르노 두세, 동료들과 함께 작업을 이어 나간다.

나를 투영하는 무대

무대만큼 거짓이 안 통하는 곳도 없다. 완전히 벌거벗겨져서 이런 척 저런 척, ‘척’하는 옷을 입기 어렵다. 무대 위 몸짓은 연주자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노래하고 대사를 말할 때는 물론이고, 연주자가 들이쉬는 호흡, 또 약간 뒤틀린 눈썹에도 뉘앙스가 담긴다. 음악에 연주자의 인격과 개성이 묻어날 때, 비로소 관객은 어떤 식으로든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나를 온전히 보여주기가 두려웠다. 그동안 오직 무대에서만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나를 보여줄 수 있어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처음 해보는 아델레 역할에 본래의 내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했다. 노련한 지휘자 조너선과 연출가 르노 앞에서 실수할까 봐, 짐짓 나를 포장하면서 연기하고 있었다. 정해진 지시에 따르는 고전적인 연출 방식이 낯선 까닭도 있었다. 여태껏 큰 틀에서 자유롭게 내 감각을 따라 장면을 만들어가는 연출 방식을 좋아했다. 그럴 때 연출가들은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매서운 눈썰미로 캐릭터를 살리는 좋은 점은 남기고, 때론 방향을 틀어주기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나갔다. 작년에 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레타 ‘모스크바, 체료무시키(Moscow, Cheryomushki)’의 연출가 베라 네미로바(1972~)가 그랬다. 직감이 허락된 자유가 좋았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르노는 연출 연습 시작 최소 8개월~1년 전에 동선과 각 마디마디의 구체적인 연출이 모두 적힌 연출 책(영화감독 봉준호의 스토리보드북처럼, 이미 르노가 구상한 연출이 완벽하게 짜여 있다)을 이미 완성해 놓고, 1시간 단위의 리허설 시간표까지 1년 전에 공지하는 사람이다. 또한 르노는 대단히 감각적인 사람으로, 리허설에서 책에 쓴 대로 장면을 통제하면서 성악가에게 자신이 만든 동기를 이해시킨다.

이미 잘 색칠된 르노의 그림 안에 나를 어떻게 덧그려야 하는지 보이질 않았다. 보여주기식으로 하고 나니 공허한 느낌만 들었다. 솔로 발레 무용수로 시작해 발레 마스터·안무가·배우를 거쳐 현재 연출가로 30편이 넘는 작품을 성공시킨 르노는 나의 공허함을 꿰뚫어 봤다. 연습 3일 차, 1막 연습 중에 르노가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가까이 다가와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내 눈을 보면서 얘기했다. “자신을 믿으세요. 당신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잖아요.” 그의 말이 내 안의 본질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애써 나를 다른 누군가로 포장할 필요가 없었다. 르노는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연기하기를 원했다. 아델레는 이미 내 안에 있으니까.

폴 아브라함 ‘그랜드호텔의 동화같은 이야기’ ©Brinkhoff/Mögenburg

깊게 가라앉아 날아오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저녁에는 폴 아브라함(1892~1960)의 오페레타 ‘그랜드호텔의 동화 같은 이야기(Märchen im Grand-Hotel)’의 시즌 마지막 공연이 있다. 어느덧 공연 시작이 3시간 앞으로 다가오고 다시 극장으로 향한다. 나는 이 오페레타에서 몰락한 스페인 왕가의 마지막 공주, 주인공 이사벨라 역할을 맡았다. 첫 등장 직전 어두컴컴한 무대 뒤. 한 발짝 거리에는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커튼 너머의 세상이 있다.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관객석에 앉아있는 분들에게 마음이 닿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사벨라가 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제한된 관객 수에도 계속되는 환호와 이어지는 커튼콜. 감사하게도 관객들은 이 유쾌한 오페레타를 잘 즐겨주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전거 페달을 돌릴 힘도 없다. 문득 르노가 아침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때때로 장애물에 부딪히는 게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을 잘 다독여 장애물을 넘을 힘을 주어야 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명상 영상을 튼다. 눈을 감고 명상지도자의 말에 따라 의식을 흘려보낸다. “자, 이제는 손끝에 의식을 두세요. 당신의 손은 강합니다. 당신의 손은 평화롭고 행복해집니다. 이제 팔에 의식을 둡니다. 때때로 여러분의 마음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때면, 차분히 의식을 다시 몸에 집중하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다려진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들이킨 것처럼, 일렁이던 마음의 물결이 이내 잔잔해진다.

온전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전제조건은 인정이다. 완전하지 않은 나를, 때로는 모순덩어리인 나를, 알고 보면 이렇게 못난 구석을 가진 나를, 과연 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까 싶은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용기가 필요하다. 흘러가는 의식 속에서 있는 그대로 나를 인지하고 나니, 이런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찾은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해졌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말이다.

 

 

손나래

손나래(1990~)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함부르크 음대에서 석사 및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모차르트 콩쿠르·엘리제 마이어 콩쿠르·이화 경향 콩쿠르 등에서 우승했다. 함부르크 극장의 오펀스튜디오를 거쳐 현재 소속 가수로 활동 중이다. 오는 12월 31일에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켄트 나가노의 지휘로 바흐 칸타타 BWV140를 연주할 예정이다

 

 

 

 

일러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2000~)는 장형준·신수정·강충모를 사사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을 SNS에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젊은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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