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ESSAY 새로운 승리자
새로운 승리자
지휘자 진솔
얼마 전 JTBC ‘싱어게인’에서 이승윤이 최종 우승 을 차지했다.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나의 지 인들은 “노래를 잘하는 다른 가수들을 보면 배가 아프다”던 그의 솔직함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 다. 독특한 음악 스타일 역시 별로 와 닿지 않는다 고 평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첫 등장부터 그의 팬이 되었다. 이승윤은 반골 기질을 드러내면서도 청중을 휘어잡는 매력적인 음악을 했다. 단순히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는 가수가 아니라, 무언 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아티스트였다. 나 는 그 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십여 년간 남의 성공에 배 아파하며 살아왔다던 ‘방구석 아티스트’ 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의 방향성은 새로움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자랐다. 심한 갈등으로 인해 세상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까지 하곤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동화될 시기를 놓친 탓인지, 지금도 동종업계 사람 들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하 다. 남들은 쉽게 익숙해지는데 나는 어려움을 겪 기도 하고, 남들과는 다른 지점에서 감정의 동요를 느끼기도 한다. 무엇이든 해보고자 하 는 모험심 에 약간의 반골 기질이 곁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 다. 여러 가지를 시도한 끝에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기 위한 프로젝트 단체 ‘말러리안’이나 게임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플랫폼 ‘플래직’ 등이 가시적인 형태를 갖춰나갔고, 현재 나를 구성하는 중심요소가 됐다. 어찌 보면, 클래식 음악계의 현실적인 환경이 내가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수 있 다. 대부분의 예술계가 그러하듯이, 필요한 인력에 비해 공급은 터무니없이 많다. 학력과 경력의 정점 에 다다른 이들조차 생계를 완전히 보장받지는 못 한다. 아직 이렇다 할 자리에 오르지 못한 젊은 예 술가들은 막막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나를 포함한 젊은이들은 새로운 매체와 플랫폼을 이용해서 자신을 알리고, 낯선 분야에 도전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경계에서 깨달음을 얻다 최근 들어 가장 새로웠던 도전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지휘 보조 장치 테스트에 참여한 것이다. 도 미넌트 에이전시의 황도민 대표가 ‘버즈비트’로 이 름 붙인 이 장치를 직접 개발하고 있다. 그는 시각 장애인 연주자들이 지휘를 볼 수 없어 오케스트라 에 고용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연구 에 나섰다. 나는 첫 현장 테스트 겸 공연을 진행하 였다. 지휘자이자 실험대상이 된 셈이다. 움직임을 읽어내는 장치를 착용한 상태로 내가 지휘하면, 시 각 장애인 단원들은 촉각과 청각 형태로 신호를 전달받아 지휘를 인지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시각장애 연주자들과 함 께 연주할 방법을 만든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 다. 연주자들과 여러 차례 워크숍을 가지면서 지휘 의 기초와 앙상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관계, 그리고 앙상블에서 교감 의 중요성 등에 대해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본 경 험이었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또 다른 방향의 고민과 성찰을 내게 안겨주었다.
함께 승리하자 서두에서 이야기한 ‘싱어게인’의 중간 라운드에는 참가자를 둘씩 짝지어 듀엣 무대를 선보인 후, 다 시 그들끼리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라이벌전’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몇 주 동안 합을 맞추며 정이 든 상대와 적이 되어야 하는 현실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이때 이승윤이 무대를 시작하면서 꺼낸 이 야기가 아직도 귀에 맴돌며 감동을 준다. “누가 이기든 지든 심사위원을 패배자로 만들자. 너도 잘했고 나도 잘 해낼 것이다. 함께 승리하자.” 우리는 모두 특별하고 색다르다. 수많은 예술가는 승리할 만한 실력을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 리고 ‘새로움’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면, 승리에 가까워질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내 옆 사람과 경쟁하고 끌 어내리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경쟁 구도에 빠져 있 기보다는 자신과의 경쟁을 통해 모두에게 당당히 나 자신을 선보이면 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 실이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 렇기에 그 어려움을 감내하고 버텨서 승리한 이들 이 멋지고 빛나는 것이다. 과연 그런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 역시 남과 비교하고,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곱씹으며 스스로 자존감을 떨어뜨릴 때가 많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일 조금씩이나마 내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서 올라오려고 노력한다. 스스로를 극복하는 것을 내 면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나는 언젠가 모 두에게 환영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신할 순 없지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기존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승리하고 싶다.
공연 일정 진솔/국립국악관현악단 4월 11일 오후 3시 롯데콘서트홀
글 진솔 지휘자 진솔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만하임 음대를 졸업했다.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하거나 게임 회사 ‘블 리자드’와 정식 계약해 게임음악 공연 을 기획하는 등 도전적인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현대음악에도 큰 관심을 가 지고 연주단체 ‘아르티제’를 창단, 예 술감독으로서 국내외 작곡가와 지속 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2020년 서울학 생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위 촉됐다 일러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2000~)는 장형준· 신수정·강충모를 사사했다. 발레리 게 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 하며 이름을 알렸다. 취미로 그리는 그 림을 SNS에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 에도 적극적인 젊은 연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