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ESSAY
안녕, 로즈마리
향기로 기억되는 사람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어릴 적 무척 좋아했던 책 ‘빨간 머리 앤’에서 ‘영혼의 단짝(Kindred Spirit)’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주인공 앤이 ‘영혼의 단짝(Kindred Spirit)’인 다이애나를 만난 것처럼, 나 또한 그런 인연이 생기길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데 같은 또래 친구를 만나기를 바랐던 기대와는 달리,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은 ‘영혼의 단짝’을 만나게 되었다. 기억의 창고에 아주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위기가 맺어준 운명
퍼셀 음악원 재학 당시, 비자 문제와 한국의 IMF 경제 위기가 겹쳐 원치 않은 귀국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사정을 들은 퍼셀 음악원 교장께서 후원자 음악회를 열어 학교 설립자와 지역 국회의원 등을 초청해 나의 사정을 알렸다. 그날 연주회에서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을 연주했다.
공연이 끝난 뒤, 나이 지긋한 한 여성분이 다정하게 다가오셨다. 오늘 연주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세프 하시드(1923~1950)를 연상케 하는 연주였다며 나를 후원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가 나의 ‘영혼의 단짝’이 된 로즈마리 라파포트(1918~2001)이다. 퍼셀 음악원 설립자이자 영국 왕립음악원(RAM) 바이올린과 교수였던 그는 예쁜 이름만큼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후 부모님과 함께 감사 인사차 로즈마리 댁을 방문한 것이 70년의 나이 차를 극복한 우정의 시작이었다. 또래 친구들과 나누지 못한 고민도 그녀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주말이면 자연으로 소풍을 떠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댁에 갈 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엘더플라워로 만든 주스를 준비해놓고 맞아 주시곤 했다.
당시 나는 영국 왕립 음악대학(RCM)의 바이올린과 교수인 안드리예프스키(1936~)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 참가하기 6개월 전쯤, 한 선생님께 오랜 기간 배웠으니 다른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주변 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영국 왕립음악원의 한 교수님께 오디션을 받으러 갔다. 그 결과 4년 전액 장학금과 함께 예상치 못한 입학 제안을 받게 되었다.
당시 만 14세였기 때문에 영국 왕립음악원 역사상 최연소 입학이었다. 이 기쁜 소식을 로즈마리에게 전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18세까지 중·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치기를 바란다며 음악적으로 잘 이끌어 주신 안드리예프스키 선생님과 더 공부하면 어떻 겠냐고 했다. 기대와 달리 회의적인 그의 반응이 의아했다.
이른 이별, 음악에 담은 그리움
2001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준비가 한창이던 그때, 불의의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정원을 가꾸고 있던 로즈마리께서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병원으로 달려가 평온히 잠든 로즈마리 앞에서 한없이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로즈마리 가족들의 요청으로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바흐의 ‘아다지오’를 장례식에서 연주했다.
4개월 뒤 학교에서 마련한 그의 추모식이 있었다. 하지만 추모식 날짜와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날짜가 겹쳐 두 곳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했다. 결국 콩쿠르 위원회에 사정을 말하고 내 순서가 첫날이라면 출전을 포기할 것을 알렸다. 다행히 위원회의 배려로 마지막 순서로 참가하게 되어 턱없이 준비가 부족했던 본선 곡을 며칠 더 연습 할 수 있었다. 로즈마리가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동안 로즈마리에 대한 그리움을 음악 속에 담았다. 그 결과, 2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콩쿠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로즈마리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나를 반겼다.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늘에서 지켜보며 미소를 지으시겠지’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꼭 안았다. 그녀를 향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전해들은 사실은 로즈마리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내가 계속 안드리예프스키 선생님과 공부하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나는 그 뜻에 따르기로 했다. 결국 영국 왕립음악원 입학을 미루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안드리예프스키 선생님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 다른 선생님께 갔으면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했겠지만, 나의 음악 세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안드리예프스키 선생님과 중요한 시기를 행복하게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탱하는 것
로즈마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바이올리니스트 요세프 하시드. 음반으로 만난 그의 연주는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영혼 가장 깊숙한 곳으로 무섭게 파고드는 벨벳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하이페츠(1910~1987)의 빛나는 플래티넘 소리와 크라이슬러(1875~1962)의 온기 가득한 소리처럼 그의 연주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지에 이른 소리였다. 하이페츠는 100년에 한 번, 하시드는 200년에 한 번 나오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말이 실감 났다. 지금도 그의 연주를 들을 때면 로즈마리와의 첫 만남을 생각한다.
로즈마리를 통해 맺은 음악의 인연은 하시드만이 아니다. 12세 때 로즈마리의 소개로 찰스 비어라는 세계적인 현악기 딜러를 알게 되었다. 위그모어홀 데뷔무대에서 만난 뒤로 오늘날까지 악기 관리를 해주고 계신다. 그뿐만 아니라 찰스의 소개로 지 금 사용 중인 스트라디바리 소유자를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최근 그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로즈마리를 함께 추억했다. 당시 그녀는 세계를 놀라게 할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의 악기 관리를 부탁한다며 찰스의 손을 꼭 잡았다고 한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로즈마리의 말대로 되어가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했다.
향기나 음악처럼 보이지 않는 것 속에 기억과 장면이 더 선명하게 간직된다고 한다. 인연도 그런 것일까? 음악을 들을 때 떠오르는 추억과 향기를 맡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줄이 신비한 방식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그 존재의 여운이 우리 곁에 ‘향수(鄕愁)’로 남는 것처럼. 음악은 어떤 것보다 진한 향기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그리고 마음 깊은 자리를 어루만지는 신비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플라톤은 ‘선한 방향이든 악한 방향이든 음악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도구’라고 했다.
로즈마리는 나의 음악적 세계가 자라나던 10대 때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선한 영향력이 현재 30대인 나에게 여전히 남아 나를 움직이는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앞으로도 음악을 통해 내 삶에 로즈마리가 엮어준 선하고 아름다운 인연의 줄로 청중에게 다가가려 한다. 엘더플라워가 피는 5월이면, 꽃향기와 함께 밀려오는 그녀와의 추억을 생각한다.
지네트 느뵈 & 요세프 하시드
지네트 느뵈(바이올린)/요세프 하시드(바이올린)/ 제럴드 무어(피아노)/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이자이 도브로벤(지휘) Opus kura OPK2110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1919~1949)와 요세프 하시드(1923~1950),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1899~1987)가 연주한 명곡들이 수록 되어 있다. 그 중 미국 작곡가 아크론의 작품인 ‘히브리 멜로디’의 첫 소절에 귀와 마음이 사로 잡혔다.
글 한수진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1986~)은 런던 퍼셀 음악원을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영국 왕립 음악대학에서 수학했다. 안드리예프스키·자카르 브론·아나 추마첸코·정경화를 사사한 그는 최연소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2위에 입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일러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2000~)는 장형준·신수정·강충모를 사사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을 SNS에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젊은 연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