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이어야 한다는 누명 국립무용단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연출·미술감독 윤재원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2월 6일 9:00 오전

SPOTLIGHT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누명

 

국립무용단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11.11~13

연출·미술감독 윤재원

 

“관객이 해석할 여지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영상 일을 하는 사람의 직업적인 조바심일 수 있는데,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까 봐 사전 인터뷰에서는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첫째 날 공연을 마치고 만난 윤재원은 무사히 난관을 지나온 사람처럼 안심한 기색이었다. 그는 국립무용단의 신작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11.11~13/국립극장)에서 작품의 콘셉트와 미장센 전반을 책임졌다. 아직 공연계에선 낯선 이름이지만, 사진·뮤직비디오·다큐멘터리 등 시각예술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공연예술을 워낙 좋아해 대본을 쓰거나 시각예술가로 공연 작업도 하다가 뮤지션 장영규와 인연이 닿았다.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장영규가 음악감독을 맡은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의 연출가로 윤재원을 추천하면서, 이번 프로덕션이 구성됐다.

 

샤먼(무속인)을 소재로 한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는 앞서 윤재원이 말한 대로 여러모로 해석이 가능한 다층적인 작품이었다. 작품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는 촘촘히 의미를 품고 있다. 제목부터 그렇다. 일상에서 흔히 주고받는 인사말로 제목을 정한 데엔 ‘샤먼’을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내림굿’을 주어진 소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삶의 모습으로 해석하고자 한 윤재원의 뜻이 담겨있다. 하나 더. 제목은 샤먼의 역할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기도 하다. 윤재원은 죽음과 이별을 애도하는 샤먼의 노동은 곧, 이 세상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고 했다.

 

공연 시작 전, 관객에게 자신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까,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까 우려했던 윤재원은 이젠 마음 놓고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영상으로도 제작된다. 따라서 이 기사는 이미 현장에서 관람한 관객에겐 친절한 코멘터리가, 앞으로 공연영상을 통해 작품을 접할 관객에겐 흥미로운 예고편이 될 테다. 이런 흐름이 공연 기자로서도 반갑다. 그간 공연 작품만큼, 공연 작품에 관한 기사도 유효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마음껏 작품에 주석을 달기로 했다.

 

시각예술이 주가 되는 무용 공연일 거라 예상했는데, 빗나갔다. 조명과 영상의 쓰임은 극도로 절제된다. 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른 매체가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무용 공연을 볼 때 테크놀로지를 보여주려다 몸을 죽여 버리는 공연을 선호하지 않는다. 영상과 사진은 무용의 흐름을 최대한 서포트하면서, 다른 감각을 열어줄 수 있을 정도로만 배치했다.

 

흔히 ‘굿’하면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형형색색의 의상, 귀가 찢어질 듯한 굿 음악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작품의 차별성은 샤먼과 내림굿이라는 특별한 소재를 통해 ‘각자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모든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이 밖에 샤먼이라는 소재에서 비롯된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 샤먼에 대해 섣불리 다루고 싶지 않아서, 구술자료부터 내림굿을 상세히 묘사한 1980년대 자료까지 다양하게 찾아봤다. 굿을 관장하고 행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유동적으로 느끼더라. 어머니 대부터 이어져 온 과거사가 한 번에 펼쳐지는가 하면, 길게는 며칠씩 걸리는 내림굿 이후 변화하는 과정을 ‘찰나로 이루어진다’라는 감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자연스레 ‘시간성’은 이번 작품의 중요한 맥락이 됐다. 실제로 신내림 과정에서 샤먼이 체감하는 건 무한의 시간일 테지만 그 변화의 시간은 찰나라는 것. 이 점을 큰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도 함께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시간성’과 ‘일상성’이라는 정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을 어떻게 구체화했나. 시간이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따라서 서사의 연결성보다는 이미지의 연결을 중심으로 각 장면을 구성했고, 전체 3막이지만 내림굿이 이뤄지는 2막은 상대적으로 길게, 이후 3막은 짧게 구성해 러닝 타임을 달리했다. 시간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감각은 조명으로 그림자에 변형을 주어 표현했다. 일상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걷는 모습이 여러 번 필요했고, 국립무용단의 안무팀이 몸의 언어로 풀어내 주었다.

 

일렬종대의 구도, 걸어가는 이미지, 패셔너블한 현대식 의상으로 인해 국립무용단의 공연이 마치 패션쇼처럼 보였다. 일렬의 대형을 통해 샤먼의 길이 무한히 이어질 것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집단 간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데도 유효했다. 무용수들이 일렬로 서는 장면에서 내가 안무팀에게 보여준 것은 극지방에서 운석을 찾는 탐험대의 사진이었다. 누가 운석을 찾을진 모르지만, 서로 간격을 유지한 채 운석을 찾아 나가는 모습으로, 광활한 공간에서 길을 잃지 않게 서로가 서로의 구조대가 되어주는 거다. 마찬가지로, 작품에서 조무자는 시공간을 알 수 없는 무속의 세계에서 입무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오르내리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조무자들이 어떤 축을 담당하는 해시계같이 보이기를 바랐다. 이들이 쓴 방울 모자도 소리로 신호를 주는 장치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굿을 그대로 재연하지는 않되, 필수적인 요소는 넣고 싶기도 했고. 조무자의 ‘방울’ 모자를 비롯해 주무자의 ‘부채’, 공연 시작과 끝에 나오는 ‘무가(巫歌)’는 그래서 들어갔다.

 

공연의 시작과 끝에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번 작품에 쓰인 음악 중 유일하게 가사가 있는 음악이다. 엔딩곡의 ‘밤에도 선명하고/낮에도 캄캄하네/겁이 나 무서워도/눈을 감지 않아’라는 가사가 인상 깊다. 한 번쯤은 샤먼이 자신의 목소리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봤다. 인트로의 노래는 이해경 만신이 다큐멘터리 ‘사이에서’에서 부른 무가를 토대로 재편집·편곡했다. 이북 지역의 무가로 알고 있다. 엔딩곡(작곡 장영규/작사 윤재원)에서는 모든 것을 다 겪은 뒤 샤먼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번 공연에서 영상은 크게 두 번 쓰인다. 신내림 의식 전 일상의 이미지를 비출 때, 그리고 신내림 이후 형형색색의 산천을 보여줄 때다. 신내림 이후에 나오는 영상은 샤먼의 내면을 묘사한 풍경이다. 황해도 굿에서 쓰이는 지전(紙錢)을 모티프로 삼았다. 돈 모양으로 만든 종이인데, 굿을 할 때 무당들이 저승길에 노잣돈으로 쓰라고 흔든다. 산천의 진한 초록빛은 무구를 닦는 안료에서 착안했다. 이 장면 이후에 무구가 해석된 장면이 나오기에 이미지적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내림굿이 치러지고 난 뒤 2막 후반, 거대한 무대 벽이 회전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임팩트가 강렬했다. 이 장면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샤먼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객이 물리적으로 체험하게 확장하고 싶었다. ‘이 길로 들어서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을 극대화할 방법으로 벽체 회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 잘 보면, 징의 놋쇠를 연상시키는 황동색의 금속 벽면이 먼저 돌아가고 나서, 도심의 마천루 창문을 형상화한 유리 벽면이 돌아간다. 관련 논문을 찾아봤을 때, 고립되었던 개인이 오히려 무속인의 삶을 받아들임으로써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된다는 문구가 와닿았는데, 이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무속의 길이 열림으로써 다시 현실에 발 디딜 수 있게 된 모습 말이다. 서랍처럼 만든 벽체는 납골당을 생각했다. 샤먼은 이 시대에 필요한 애도라는 행위를 대신해주는 직업임을 일깨우고 싶었다. 벽체에 작게 뚫린 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떠나간 누군가이고, 그 따뜻한 빛을 안고서 비로소 샤먼도 외로운 길이지만 일상으로 걸어 나간다. 작별의 순간이자, 만남의 순간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공연과 영상 연출의 가장 큰 차이는 카메라의 유무다. 영상은 연출가가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콕 집어 보여줄 수 있지만, 공연은 다르다. 관련해 고민한 지점이 있었다면? 아울러, 추후 제작될 공연 영상에서 더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애초에 무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움직임 중에서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봐도 무방하도록, 여러 겹의 레이어를 두고 작품을 연출했다. 어느 한 가지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그것만 중요해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 공연 영상에서도 누군가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함축적인 작품에서 관객이 창작자의 의도를 모두 읽어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직관적이다, 혹은 그렇지 못하다.’ 공연계에 발을 디딘 창작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최종선고와도 같은 평가다. ‘난해하다’는 공연 평 앞에서 작품이 지닌 다른 가치는 금세 무색해진다. 유독 공연예술에서 직관적일 것이 강조되는 이유는,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공연 관객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공연을 다시 돌려 볼 수도, 시간을 멈춰가며 꼼꼼히 뜯어볼 수도 없다. 그러느라 공연계가 놓친 것은 해석의 재미다. 관객 사이에서 예술가들이 생각지 못한 해석이 자유롭게 이뤄질 때, 작품의 생명력은 길어진다는 점에서 아쉬운 일이다.

 

다만, 국내에서 코로나 이후 본격화된 공연영상의 활성화는 이러한 판도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 선두에 선 국립극장은 영화관과 OTT를 통해 자체 레퍼토리를 배급하고 있다. 국립무용단의 이번 신작도 영상으로 제작해 상영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이제 공연의 현장성과 일회성에서 비롯된 ‘공연은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철칙도 깨질 차례다.

박서정 기자 사진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샤먼을 중심 소재로 삼지만, 굿의 연희적인 특성을 재연하기보다는 인간이 마주하는 소명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감정을 내림굿에 빗대어 무용으로 펼쳐낸다. 46명의 무용수는 내림굿 의식에 참여하는 입무자·조무자·주무자 세 그룹으로 나뉘어 무대에 오른다. 예기치 않은 소명을 맞닥뜨려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람(입무자·入巫者), 무당이 되는 길을 먼저 걸어왔고 입무자가 소명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조무자·助巫者), 오래전 무당의 삶을 받아들여 내림굿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주무자·主巫者), 세 그룹의 삼각 구도가 만드는 긴장과 이완이 작품을 이끌어간다.

 

윤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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