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옆의 새로운 나침반 – 피아니스트 김정원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2월 6일 9:00 오전

FOCUS

건반 옆의 새로운 나침반

피아니스트 김정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견 피아니스트 김정원(1977~)이 ‘Timeless-시간의 배’라는 제목의 연주회로 한국 데뷔 20주년을 기념한다. 생애 첫 연주회는 12세 때였지만, 기획사에서 ‘데뷔 리사이틀’이라는 제목으로 연주회 타이틀을 붙여 일반에 티켓을 판매한 것은 26세 때인 2001년.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그 시간으로부터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는 이제 40대 후반의 경험 많은 연주자가 되었다.

 

“실은 올해가 20주년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올 초에 연주회에서 한 팬이 ‘올해가 데뷔 리사이틀로 따지면 20주년인데 특별한 이벤트 없나요?’ 물어와서 알게 되었죠. ‘그랬나요?’ 하다가 문득 이 해를 기념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아콩쿠르 1위, 뵈젠도르퍼 피아노 콩쿠르 1위,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빈 심포니, 런던 심포니, 휴스턴 심포니와 협연하고, 베르비에 페스티벌·베토벤 페스티벌·쇼팽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그의 커리어는 쉴 틈이 없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EMI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쇼팽 24개 에튀드 등을 녹음해 발매했고,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앞에서의 연주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러시아 문화원 후원으로 모스크바 음악원 볼쇼이홀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1,500여 명의 관객을 위한 연주를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연주 인생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걸어온 20년

홀로 빛나는 리사이틀 연주뿐 아니라 실내악에도 관심이 깊은 그는, 베를린 필 스트링 콰르텟, 야나체크 스트링 콰르텟과 공연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첼리스트 송영훈,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함께 MIK 앙상블을 결성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20주년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처음 연주를 시작한 순간부터 쭉 돌아보게 됐어요.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 제 삶의 방식, 음악이 내게 주는 것, 연주 스타일…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혼자 온 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죠. 음악 친구들, 선후배, 스승님들, 가족들, 같이 걸어온 길이었어요.”

그렇게 같이 걸어온 길에, 이번 ‘Timeless-시간의 배’ 무대에 함께 설 피아니스트 임동혁(1984~)과 지휘자 아드리엘 김(1978~)이 있다. 십 년이 훌쩍 넘은 우정의 이야기가 있는 임동혁과는 이번 공연에서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D940을 연주한다. 두 연주자가 수년 전 남긴 같은 프로그램의 공연 영상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유튜브에서 조회수 12만1천 회를 넘어선 상태로, 두 연주자의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호흡을 기다릴 이들이 다수 오프라인에서 대기 중임을 짐작게 한다.

“임동혁은 정말 친동생 같은 느낌이에요. 주변에 피아니스트가 많지만 연락을 가장 자주 하는 동료이자 동생이고요. 나이 차이는 있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약간 센 말투 때문에 이 친구에 대해 오해할 수도 있는데 너무 여린 사람이고, 남에게는 단점일 수 있는 부분도 저에게는 이 친구의 솔직함과 순수함을 보여주는 장점으로 보여요. 음악적으로도 물론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이번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아드리엘 김 같은 경우는 주로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서로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함께 연주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아드리엘 김 지휘로 협연해 보았을 때 정말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하고요.”

 

음악과 만나는 어제의 김정원, 오늘의 김정원

2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인 만큼, 그는 프로그램에 들어갈 한 곡 한 곡을 공들여 선택했다. 모아서 들었을 때 음악적으로 어울리면서도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음악, 어제까지의 회상과 내일의 계획표가 어우러진 그 무엇을 원했다.

“첫 곡으로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제프 바이어(1852~1913)의 발레음악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 중 전주곡과 결혼식 군무가 연달아 연주됩니다. 저는 오스트리아에서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서, 오스트리아를 제2의 고향으로 느끼고 있거든요.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124년 전 바로 ‘한국’을 소재로 작곡한 음악이고, 아드리엘 김이 감독을 맡고 있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세계 초연한 곡이라는 의미에 더해,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두 문화를 받아들인 저 자신과도 맞닿아 있는 느낌의 곡입니다.

피아노 협주곡은 베토벤의 협주곡 5번 ‘황제’와 브람스 협주곡 1번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여태 베토벤 연주를 많이 해오지 않아서 베토벤을 싫어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었는데, 사실 마음속으로 늘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곡가가 베토벤이에요. 단지 친구처럼 느껴지는 슈베르트나 연인 같은 쇼팽에 비해서 베토벤은 ‘다가가기 힘든 어른’ 같은 느낌이어서 선뜻 선택하게 되지 않았고, 얼마나 큰 세계인지 알기에 연주하기에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이제부터 차차 베토벤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 베토벤의 끝(5번)과 브람스의 시작(1번)이 무언가 어제의 내가 내일의 나로 이어지는 느낌도 있어서 두 협주곡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두 곡 다 강인하고, 그런 가운데 섬세한 감성적 요소도 많아서 ‘오늘의 나’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룻밤에 두 협주곡을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어제의 김정원’에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어렸을 때는 음악을 향한 집념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와서 보면 욕심을 부린 것이었다는 사실도, 음악을 우선순위에 놓는 것이라 말했지만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강행군도,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음악을 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잡았다.

“음악에 과다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음악에 대한 나의 애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사람 사이의 관계도 너무 집착할 때보다 거리를 둘 때 더 아름다워지는 게 있잖아요. 음악도 그런 것 같아요. 음악에 집착하는, 음악을 쥐는 힘을 풀었을 때 오히려 무대에서의 연주도 더 편안해집니다. 그럴 때 음악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온라인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던 ‘김정원의 V살롱콘서트’에서, 롯데콘서트홀에서 그의 음악과 이야기에 동시에 빠져들 수 있었던 ‘김정원의 음악신보’에서, 아트센터인천에서 현재 그가 안내하는 음악의 ‘김정원의 낭만가도’를 달리며 기뻐하는 팬들은 다시 새로운 세계로 떠날 준비가 되었다. 그가 가진 모든 힘으로 이끌어 온 예술이라는 시간의 배는, 이제 막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떠난다.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크라이스클래식

한국 데뷔 20주년 콘서트 ‘Timeless-시간의 배’
12월 10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아드리엘 김/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김정원·임동혁(피아노) 바이어 발레음악 ‘코레아의 신부’ 중 전주곡과 결혼식 군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슈베르트 네 손을 위한 판타지 D940,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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