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공연예술계 돌아보기 클래식 음악·국악·무용·연극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2월 13일 9:00 오전

Special

2021
공연예술계 돌아보기

클래식 음악·국악·무용·연극

코로나의 충격으로 혼란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위드 코로나’와 함께 새로운 운명이 시작된 해이다. 무대를 그리워만 하던 예술가들은 다시 무대에 올랐고, 관객은 거리두리와 함께 객석을 지켰다. 올한해 공연예술계의 시간을 되짚어 보고, 기억될 만한 공연과 키워드를 추려보았다.

 

Part1.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칼럼 “멈춤 뒤, 부지런히 움직인 한 해”

관현악 류태형

독주·실내악 김주영

오페라 손수연

현대음악 송주호

국악 윤중강

무용 심정민

연극 김옥란

 

Part2. 공연 현장을 누빈 ‘객석’ 기자들의 좌담

“공연예술계, 변화의 한가운데서”

장혜선·박서정·임원빈 기자


 

Part1.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칼럼

1 관현악 orchestral music


올해의 작품

얍 판 츠베덴/KBS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5번

올해의 악단

서진/과천시향

여자경/강남심포니

올해의 이슈

국내 오케스트라의 전성시대


국내 오케스트라의 전성시대

코로나는 분명 재앙이다. 그러나 한국 오케스트라에게는 기회이기도 했다.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내한 소식도 있었다. KBS교향악단을 지휘한 얍 판 츠베덴, 무티/빈 필은 음악 팬들에게 잠깐의 콧바람을 쐬게 해주었다.

얍 판 츠베덴/KBS교향악단(10.29/예술의전당)의 연주는 올해 국내 오케스트라 공연의 화룡점정이었다.

코로나 이후 2년 동안은 우리 내부의 모습을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해외 오케스트라에만 쏠렸던 관심은 국내 악단들로 향했고, 리사이틀을 여는 독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코로나는 소담스러운 우리만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꿀 기회였다. 일부가 기대했던 온라인을 통한 공연 감상은 특히 교향악 분야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공연장에서 쏟아지는 음의 샤워, 그 넓은 접점을 채우기엔 온라인 공간은 결핍만을 노출했다.

 

떠오르는 신흥 강자, 경기필·과천시향·강남심포니

관현악만을 보면 코로나 기간 동안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의 양강구도가 깨지고 경기필하모닉(이하 경기필), 과천시향, 강남심포니 등의 약진이다.

마시모 자네티/경기필(7.18/예술의전당)의 슈만 교향곡 전곡 사이클 중 1·2번 모두 암보로 지휘한 자네티의 손끝에서 빛과 그림자가 필름처럼 돌아가며 음악이 됐다.

베토벤 ‘Five for Five’ 시리즈(4.24~5.8/성남아트센터 외)는 자네티/경기필과 차세대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프로젝트였다. 선율이 연주한 1번은 타고난 예쁜 음색을, 정지원의 2번은 과감한 어프로치와 잠재력을 엿볼 수 있었고, 윤아인의 3번은 방대한 다이내믹 레인지와 드라마를, 박재홍의 4번은 선 굵은 서정성과 넉넉함을, 임주희의 5번은 높은 완성도를 들려주었다.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3.30~4.22/예술의전당)는 전국 오케스트라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고 의외의 드라마도 펼쳐진다. 올해 축제 중 가장 최고의 연주로 서진/과천시향(4.2/예술의전당)의 무대를 꼽았다.

여자경/강남심포니는 지난 10월 정기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선보였다. 근래 들은 연주 중 손 꼽을 만한 명공연이었다.

첫 곡인 베버(1786~1826) ‘마탄의 사수’ 서곡부터 범상치 않았다. 현악군부터 목관 금관 팀파니에 이르기까지 음의 입체적인 층위가 느껴지는 연주였다. 채재일이 협연한 슈타미츠(1745~ 1801) 클라리넷 협주곡 7번은 화사하고 모범적인 해석이었다. 시벨리우스(1865~1957)의 교향곡 1번은 앞으로도 회자될 것 같은 명연주였다. 집중력 있게 내리긋는 현과 시원하게 포효하는 관이 부딪치며 그려내는 풍경 속에 사람의 존재는 까마득하게 작아졌다. 두텁고 보드라운 현과 서늘한 금관, 따스한 목관은 드론이 담은 피오르의 장관을 떠올리게 했다.

강남심포니의 연주(10.26/예술의전당)는 여자경 음악감독을 맞아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줬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근래 들었던 연주 중 손꼽을 만한 명연주였다. 트럼펫·트롬본·호른 등 금관의 활약이 돋보였고 악장 이마리솔을 위시한 현악군은 절도 있었다. 땅이 꺼질 듯한 바순과 클라리넷 등 목관군의 앙상블도 빼어났다. 여자경의 지휘에 디테일이 살아났고 기계적인 맞춤이 아닌 조금씩 어긋나는 관과 현은 차이콥스키의 인간적인 고뇌를 증폭시켰다. 심준호가 협연자로 함께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역시 특유의 풍성하고 윤택한 음색이 고급스러운 그릇에 담겨 나온 느낌이었다.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을 이끈 반가운 얼굴

서울시향의 연주회는 늘 우리나라 애호가들에게 1순위로 관심을 끌지만 코로나로 인해 편성이 축소되는 등 변화를 겪었다. 그런 와중에 서울시향을 지휘한 마에스트라들이 약진했다.

달리아 스타세브스카(6.17·18/롯데콘서트홀)는 역동적인 동작으로 서울시향 단원들을 자극하며 청중을 흥분 상태로 몰아갔다. 브리튼(1913~ 1976)의 명곡 ‘진혼 교향곡’에 깃들인 긴장과 죽음, 평화로운 풍경이 3차원의 입방체로 살아났다. 김다미 협연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반주에서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예민함을 띠고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은 홀 전체를 뒤덮듯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에리나 야시마(9.30/롯데콘서트홀)는 모차르트 ‘마술피리’ 서곡에서부터 생동감 넘쳤고, 김한의 협연으로 만난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 K622에서는 우아한 곡선미가 잘 발휘되었고 라벨 ‘쿠프랭의 무덤’은 소담스러운 파스텔 톤이 인상적이었다.

김선욱은 지난 1월 KBS교향악단과의 지휘 데뷔 이후 7월 29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다시 올랐다. 1부의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겸한 모차르트 협주곡 27번은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물 흐르는 듯했다. 앉았다 일어났다 플루트와 대화하며 카덴차까지 소화하는 김선욱의 모습은 보통이 아니었다. 2부의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 3악장 후반부터 힘이 떨어지는 지휘자를 KBS교향악단의 뛰어난 현과 목관군이 커버했다.

얍 판 츠베덴/KBS교향악단(10.29/예술의전당)의 연주는 올해 국내 오케스트라 공연의 화룡점정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리드미컬하면서도 칼같은, 직선적이면서도 곡선을 섞은 예술적인 마감이 베토벤의 오랜 드라마에 색깔을 불어넣고 살아 숨 쉬게 했다.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에서도 현악군의 팽팽한 긴장감과 호쾌한 타악기의 타격, 금관의 포효가 곡의 진수를 제대로 알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해외 악단과 국내 민간 악단의 활약

끝판왕은 마지막에 당도했다. 올해 초만 해도 반신반의했었던 무대. 리카르도 무티/빈 필(11.14~ 17/예술의전당 외)이 내한했다.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슈베르트 교향곡 4번 ‘비극적’은 무티의 느려진 템포에 적응 못 하고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스트라빈스키 ‘요정의 키스’ 관현악 모음곡부터 목관과 금관이 아름답게 피어나더니 무티의 수구초심이 2부의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와 앙코르인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까지 견인했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4악장 ‘살타렐로’에서 무티는 격렬함에 음영을 드리워 입체적으로 제시했는데, 식지 않은 노년의 에너지가 회전목마를 타듯 아찔했다. ‘운명의 힘’ 서곡에서는 실키한 목질의 현의 노래에 익숙해질 즈음 트롬본을 위시한 금관이 불을 뿜었다.

이밖에 올해 코로나로 모두가 움츠린 가운데 함신익/심포니송과 한경필하모닉 등 민간 오케스트라들이 그동안 갈고닦았던 실력을 뽐내며 음악 애호가들에게 각인되었다. 새로운 사령탑을 맞이한 부천필과 코리안심포니에 거는 기대도 크다. 2022년 우리나라의 관현악 부문은 국내 오케스트라와 해외 오케스트라의 공존 시대로 복귀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국내 오케스트라들은 한 차례 도약을 할 수 있는 무대를 잘 준비해야 하겠고, 해외 오케스트라들은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 무대에 서야 할 것이다. 코로나가 안정화되고 띄어 앉기가 해제되어 더 많은 관객 앞에 교향악이 쏟아지길 기대한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Part1.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칼럼

2 독주·실내악 SOLO·chamber music


올해의 공연

클라라 주미 강·김선욱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

올해의 음반

김봄소리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DG)

올해의 이슈

해외 콩쿠르 입상


음악가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다

신보를 발매한 선우예권과 조성진은 전국 투어로 화제를 모았다. 손열음과 임윤찬은 비르투오소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클라라 주미 강과 김봄소리는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을, 목관 주자로는 김유빈과 조인혁의 신선한 시도가 눈에 띄었다. 정돈된 사운드의 에스메 콰르텟, 클라라 주미 강·김선욱의 리사이틀 역시 주목할 만한 공연이었다.

오래도록 기억될 2021년의 무대는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의 듀오로 연주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였다(9.12/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청중의 입장으로 음악회장을 찾을 때 연주자들만큼이나 필자를 주목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바로 다른 청중의 ‘옆모습’이다. 그들의 눈빛을 옆에서 보면 얼마나 무대에 집중하고 있는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 눈빛들이 더욱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요즘인데,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입과 코를 가리고 있는 마스크 때문이다.

몹쓸 바이러스를 피하느라 말(입)과 호흡(코)을 제한당한 청중의 눈을 통한 음악으로의 열망은 은밀한 스토리가 등장하는 독주와 실내악 무대를 만날 때 더욱 절절해진다. 올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은 어디든 무대가 있다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 연주자들에게 깊은 감동으로 환호해 주었다. 2021년을 돌이켜 보니 음악을 지키려는 우리들의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 훈훈했다.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피아니스트들

김봄소리의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 앨범(DG)은 지명도를 고려한 레퍼토리 구성과 입체적으로 짜인 편곡의 세련미가 돋보인다.

2020년 하반기 출시한 모차르트 음반(DECCA)을 통해 섬세하게 다듬어진 악상과 성숙한 음악성을 뽐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독주회가 상반기까지 전국에서 이어졌다.(1.26·30/롯데콘서트홀 외) 프로그램 후반부에 연주된 쇼팽의 레퍼토리들도 특유의 집중력과 우아한 해석으로 갈채를 받았는데, 난곡으로 소문난 ‘돈 조반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 Op.2의 화려한 피날레가 하이라이트였다.

 

조성진의 신드롬도 계속 이어졌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네 개의 스케르초를 담은 앨범(DG)으로 돌아온 조성진의 투어는 9월을 뜨겁게 달궜다(9.18/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외). 특히 스케르초 전곡과 함께 선곡한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는 기술적인 완벽함과 함께 라이브 연주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오라를 여유 있는 모습으로 선보여 대가의 면모를 느끼게 했다. 음반의 완성도 역시 탁월했는데, 스튜디오 녹음에서 느껴지는 인공미가 배제된 자연스러움이 무엇보다 훌륭했다. 조성진의 뒤를 이을 것이라 평가되는 ‘소년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프로젝트 역시 가을의 이슈였다(10.12/롯데콘서트홀).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에 도전, 흠잡을 데 없는 균형감각과 본능적으로 장착한 듯 보이는 비르투오소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이며 젊은 리스트로 변신했다.

예상을 깨는 행보, 그러나 의미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기획단계에서부터 선보이는 손열음의 카푸스틴(1937~2020)도 신선한 무대로 기억될 만하다(9.30·10.1/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외). 9월 마지막 날부터 이틀간 펼쳐진 독주회는 20세기를 마감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 30대의 피아니스트가 응당 보여야 할 프로그램의 좋은 예였다. 재즈 뮤지션이었던 카푸스틴을 위시로 볼컴(1938~), 글래스(1937~), 셰드린(1932~)을 오고 가는 손열음이 무대에서 보인 색감은 변화무쌍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2월에 작곡가 류재준(1970~)의 피아노 소나타가 포함된 프로그램으로 독주회(2.27/예술의전당 IBK챔버홀)를 열었던 일리야 라쉬콥스키는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피아니스트 중 가장 분주한 실내악 파트너로 코로나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종횡무진 활약했다. 유연한 음악성과 작품을 분석하는 빠른 센스가 돋보이는 라쉬콥스키의 존재감은 2021년에 무서운 속도로 증폭되었다.

 

바이올린, 목관 주자들의 질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2021년은 바흐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5월과 6월에 그가 만들어 낸 바흐의 또렷한 프레이징과 우아한 음색은 12월 다시 한번 재현될 예정이다(12.13/롯데콘서트홀). 부드러운 진행과 섬세한 아고기크로 호흡이 긴 드라마를 그려낸 클라라의 바흐는 그의 팬들에게 2021년을 잊지 못하게 만들어 주었다.

일치된 호흡과 극적이면서도 정돈된 사운드를 지닌 에스메 콰르텟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 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음반으로 돌아온 김봄소리의 독주 무대도 초여름을 강타한 연주회였다(6.26/롯데콘서트홀). 베토벤의 소나타로 시작해 시마노프스키, 비에니아프스키 등 폴란드의 레퍼토리를 강조한 이번 독주회는 한결 여유로워진 악상들과 세심하게 연출된 프로그램 배치에서 탁월했다. 코로나로 유럽 전역이 봉쇄되다시피 했던 열악한 조건을 뚫고 쟌카를로 게레로/브로츠와프 필하모닉과 호흡을 맞춘 동명의 앨범(DG)은 지명도를 고려한 레퍼토리 구성과 입체적으로 짜인 편곡의 세련미 등으로 올해를 대표하는 앨범이 될 만하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티스트 김유빈의 놀라운 행보는 올해도 힘차게 진행됐다. 19세기와 20세기를 관통하는 프랑스 레퍼토리로 청중을 매료시킨 3월의 통영 무대(3.30/통영국제음악당)에 이어서 8월에는 ‘블루밍 바로크’라는 제목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바로크 레퍼토리를 선보였다(8.2/롯데콘서트홀). 당대음악이 지닌 활기와 재치, 유머 감각을 유감없이 선보인 김유빈의 변신은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지는 무대였다.

 

바젤 심포니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경험을 쌓은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의 활동도 눈에 띄었다. 평창대관령국제음악제 폐막 공연에서 연주했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완숙미를 자랑했고(8.7/알펜시아 콘서트홀), 유럽에 활약했던 동료들과 함께 했던 9월의 ‘관악질주’(9.5/롯데콘서트홀)에서도 인상적인 음향을 만들어냈다. 그는 12월 서울에서의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독주자로서 분방한 활동을 선보일 예정이다(12.5/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한층 원숙해진 올해의 실내악

부소니 콩쿠르 1위 박재홍과 2위 김도현

일치된 호흡과 극적이면서도 정돈된 사운드를 지닌 에스메 콰르텟의 활약은 대중 친화적인 성격을 띤 꾸준한 소통으로 그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다. 올해 베르비에 페스티벌과 위그모어 홀 연주 등 굵직한 해외 일정 가운데서도 국내 팬들을 지속적으로 챙겼다. 이 팀의 연주 중 하이라이트는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 시리즈에서 들러주었던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 ‘불협화음’,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함께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5중주이었다.(5.11·16/롯데콘서트홀) 이어 ‘세종 체임버 시리즈’에서 에스메 콰르텟은 코른골트의 현악 4중주 2번을 한층 원숙해진 해석으로 다루며 또 한 번 화제에 올랐다.(10.16/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9월의 실내악 중 오래도록 기억될 또 하나의 무대는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의 듀오로 연주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였다(9.12/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20년 베를린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약 1년에 걸쳐 만들어진 전곡 녹음 발매(Accentus)를 기념하며 펼쳐진 이번 전국 투어에서 두 사람은 작품에의 신중하면서도 학구적인 접근 방법, 작곡가에 대한 깊은 공감과 노련한 무대 매너를 보이며 완성도 높은 공연을 이끌어 냈다. 김선욱의 안정적인 리드와 악보의 행간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내는 클라라 주미 강의 순도 높은 앙상블은 일 년 늦게 찾아온 베토벤의 특별한 해를 기념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올해의 이슈는 역시 해외 콩쿠르 입상 소식이다.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1위를 한 박연민, 바이올린 부문 2위 위재원, 첼로 부문 1위 한재민부터, 몬트리올 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 김수연, 프라하의 봄 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 이동하와 실내악 부문 1위 아레테 콰르텟, 부소니 콩쿠르 1위 박재홍과 2위 김도현이 선명히 기억난다. 쇼팽 콩쿠르에서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결과를 낸 피아니스트 이혁·김수연·최형록은 내년에도 지켜봐야 할 좋은 피아니스트라고 생각된다.

내년 피아노 독주회에서는 2022년 탄생 150주년을 맞는 러시아의 작곡가 스크랴빈(1872~ 1915)과 관련된 기획들이 등장할 듯하다. 독특한 작풍과 사상을 지녔던 문제 작곡가 스크랴빈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졌으면 한다. 아울러 2023년 탄생 150주년인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작품들과 믹스된 공연과 기획들도 내년을 기점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Part1.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칼럼

3 오페라 opera


올해의 작품

글로리아오페라단 ‘아이다’

올해의 축제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올해의 이슈

지역 국공립오페라단, 민간오페라단의 활약


다양한 오페라단이 제각기 존재감을 드러내다

서울과 국립오페라단이 주도해왔던 국내 오페라계 지형이 바뀌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지역 국공립오페라단과 민간오페라단이 그간 쌓아둔 저력을 과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팬데믹 시대, 한국 오페라는 분기점을 맞았다.


유럽의 오페라와 비교할 때, 한국 오페라는 국공립오페라단과 민간오페라단의 지분이 거의 반반에 달하는 특이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국공립오페라단이 안정적인 자본을 바탕으로 화제성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해왔다면, 민간오페라단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성악가를 발굴하고 오페라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올해는 한국 오페라의 역할 분담이 일정 부분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간 서울과 국립오페라단이 주도해왔던 한국 오페라의 지형이 다성성과 다양한 존재가 부각되는 시대로 변화하는 조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제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개막작이었던 글로리아오페라단의 베르디 ‘아이다

국공립오페라단의 중심, 서울에서 지역으로

 

국립오페라단은 올해 총 5편의 주요 프로덕션 중에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12.2~5/예술의전당)를 제외한 4편을 새 프로덕션으로 선보일 정도로 의욕을 보였다. 이중 전예은(1985~) 작·편곡의 서정오페라 ‘브람스…’(5.13~16/국립극장)는 한국 창작오페라로 초연된 것이고, 푸치니 ‘서부의 아가씨’(7.1~4/예술의전당)는 국내 초연, 베르디 ‘나부코’(8.12~15/국립극장), 생상스 ‘삼손과 데릴라’(10.7~ 10/예술의전당) 역시 국립오페라단으로서는 매우 오랜만에 무대에 올린 것이다. 적극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올봄 어렵게 준비한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코로나로 인해 공연 직전에 11월로 미뤄진 데 이어, 11월 공연도 다시 내년 3월로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이로써 서울시오페라단은 올해 그랜드오페라를 단 한 편도 공연하지 못하게 됐다.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재공연된 영남오페라단의 진영민 ‘윤심덕, 사의찬미’

국공립오페라단의 활약은 서울보다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올여름 광주문화예술회관과 국립극장이 공동주관하고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초연한 이건용(1947~) 작곡의 ‘박하사탕’(8.27·28/국립극장)은 좋은 평가를 얻었으며, 대구오페라하우스는 2년 만에 재개한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9.10~11.7)를 통해 대구 지역 공연예술 활성화에 기여했다. 특히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대구유네스코 음악제의 일환으로 외국 오페라극장장을 초청해 심포지엄(11.1)을 개최하고 팬데믹 이후 오페라계의 변화를 논의하는 등 어려운 가운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부산에서도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성공적인 건립을 기원하는 ‘부산오페라위크’(10.15~11.17)가 개최됐다. 2016년부터 시작된 이 릴레이식 오페라 공연은 부산 지역 공공문화예술기관이 모두 제작에 참여한다. 부산 시민들의 오페라에 관한 관심을 확대하는 데 좋은 마중물이 되고 있다.

 

 

한국 오페라를 지탱한 민간오페라단의 저력

민간오페라단은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4.6~25/예술의전당), 제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5.7~6.6/예술의전당)을 지속해서 개최하며 지난해와 같은 암흑기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유료 관객비율이나 제작 협찬 등의 상황은 여느 때보다 열악했지만 예술의전당과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기관 협조를 바탕으로 예정된 공연들을 무사히 마쳤다는 점에서 한국 민간오페라단의 강인한 생명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올해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개막작이었던 글로리아오페라단의 베르디 ‘아이다’는 우리나라 오페라 인력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밖에도 전주 호남오페라단의 푸치니 ‘나비부인’(10.29/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대구 영남오페라단의 진영민 작곡의 ‘윤심덕, 사의 찬미’(10.1/대구오페라하우스), 그리고 부산 솔오페라단의 벨리니 ‘청교도’(11.12~14/예술의전당) 등 지역을 대표하는 민간오페라단도 그랜드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며 저력을 보여주었다.

지역 국공립오페라단체의 약진과 민간오페라단의 고군분투가 올 한해 한국 오페라를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작동했다고 본다. 비바람을 견뎌낸 한국 오페라가 한바탕 더 성장한 모습으로 2022년을 마주하리라 기대한다.

글 손수연(오페라평론가)


Part1.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칼럼

4 현대음악 modern music


올해의 작품

류재준 교향곡 2번

올해의 인물

임희영(첼로)

올해의 이슈

창단 20주년을 맞은 TIMF앙상블 현대음악앙상블 ‘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진 동시대 음악

무대는 줄었으나, 작곡가들은 동시대 표상을 음표로 새기는 것을 지체하지 않았다. 지난해 보다 공연은 풍성했으며, 현대음악 앙상블의 움직임은 활발했다.

‘2021 서울국제음악제’에서는 류재준의 교향곡 2번이 초연 되었다.

국내 현대음악 공연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역할은 매우 크다. 올해의 ARKO 한국창작음악제(2.9~25/예술의전당)는 표현의 다양성이 크게 확장되었으며, 특히 국악기 협연이 눈에 띄었다. ‘차세대 열전 2020!’(2.4/예술의전당)에서도 다섯 명의 작곡가 중 네 명이 국악기 협주곡을 발표하여 작곡계의 트렌드를 보여주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한 ‘오작교 프로젝트’는 관현악단에 전속작곡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첼리스트 임희영은 일곱 명의 한국 여성 작곡가에게 위촉하여 리사이틀을 열고 음반(Sony)을 발매했다.

멈추지 않은 초연무대

 

연주 단체 및 개인의 자체적인 활약도 돋보였다. 정기연주회를 통해 현대음악을 소개해 온 서울시향은 박혜지(타악기)와 외트뵈시의 ‘말하는 드럼’(4.15·16/롯데콘서트홀), 박수예(바이올린)와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8.26·27/롯데콘서트홀), 신창용(피아노)과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5번(10.15·16/예술의전당 외)을 연주하며 작품과 연주자 모두를 각인시켰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지난 20여 년간 약 220곡의 한국 작곡가 작품을 초연한 저력 있는 단체로, 올해 3회에 걸친 ‘현대음악 렉처 콘서트’(6. 29·10.20·11.27/예술의전당)에서 역사적인 현대 작품들과 한국 작곡가 공모작을 연주하여 현대음악을 입체적으로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보기 드문 무대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현대음악 무대를 주도했던 실내악 단체로서는 한국의 양대 현대음악 단체인 현대음악앙상블 ‘소리’(대표 이숙정)와 TIMF앙상블이 나란히 20주년을 맞아 기념 연주회를 가졌다. 이와 함께 작곡가 최재혁이 이끄는 앙상블블랭크가 여러 음악제에 모습을 드러내며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과 소통했다.

솔리스트의 활약도 돋보였다. 첼리스트 임희영(1987~)은 일곱 명의 한국 여성 작곡가에게 위촉하여 리사이틀(8.24/일신홀)을 열고 음반(Sony)을 발매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9.30/예술의전당)은 대중의 접근성이 좋은 현대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특히 이미 발표된 프로그램을 변경하면서 손일훈(1990~)의 ‘변주곡 아닌데?’를 넣은 것은 인상적이었다. 스타 연주자일수록 국내 무대에서 현대 작품과 한국 작곡가 작품을 거의 연주하지 않는 현실에 튼실한 씨앗이 되길 몹시 희망한다.

 

현장 예술의 남겨진 과제

지난해 취소되었던 통영국제음악제(3.26~4.4/통영국제음악당 외)가 재개되었고, 제31회 대구국제현대음악제(8.25~27/대구콘서트하우스)는 지난해에 이어 국내 음악가를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제49회 범음악제(11.3~9/일신홀)와 ‘앙상블텐텐 국제교류연주회’(1.5~2.24)는 초청받은 해외 현대음악 연주단체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연주하고 온라인으로 송출하는 새로운 포맷을 선보이기도 했다.

‘2021 일신프리즘시리즈’(1.12~11.25)에서는 한국 연주자들에 의해 크럼(1929~), 리게티(1923~ 2006), 비트만(1973~) 등 주요 현대 작품들이 연주되어 주목받았고, ‘2021 서울국제음악제’(10.23~30/예술의전당 외)에서는 대규모 작품인 류재준(1970~)의 교향곡 2번이 초연 연주되었다. 시대의 기록으로서 예술의 의미를 실현했다.

올해는 공연장이 폐쇄되지는 않았지만, 해외 음악가의 내한이 여전히 제약받아 세계의 흐름을 읽는 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 국내 음악가들이 현대음악 무대에서 조명받는 기회가 많아지고, 국악기 사용이 일반화된 것도 눈에 띄었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듬해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질 교향악축제에서는 다수의 공모작이 연주될 예정으로, 한국 작곡가의 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새로운 트렌드가 된 온라인 생중계는 감상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현장성이 중요한 현대음악 공연의 특성상 접속자 수를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온라인 공연에 현장성을 더하는 방법이나 혹은 온라인 공연답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Part1.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칼럼

5 국악 traditional MUSIC


올해의 작품

‘세 자매 이야기’

올해의 인물 및 단체

유홍(대금)

입과손스튜디오

올해의 이슈

산조


오직 전통으로 충분히 새롭다

대면이 꺼려지는 시대에 ‘일인예술’ 장르인 산조가 크게 주목받은 한 해였다. 이 밖에도 수준 높은 작품이 지역 공연장을 중심으로 다수 제작되었다. TV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젊은 국악인이 쏠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세 자매 이야기’ 평생 굿판을 이끌어 온 세 자매 김영희(첫째)·김동연(둘째)·김동언(셋째)을 위한 헌정 공연이었기에 더욱 뜻깊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산조대전’은 산조를 넓고 깊게 보는 자리였다. 사진은 가야금 연주자 이지영(3.18).

문화예술계가 코로나 때문에 위축되었다고 얘기한다. 전통예술 분야는 질적인 면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예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들이 나왔다.

2021년 최고의 작품은 ‘세 자매 이야기’(6.2/서울남산국악당). 동해안별신굿의 역사·의식·인물을 하나의 프레임에서 볼 수 있었다. 평생 굿판을 이끌어 온 세 자매 김영희(첫째)·김동연(둘째)·김동언(셋째)을 위한 헌정 공연이었기에 더욱 뜻깊다. 굿판은 떠난 자와 남은 자의 해후라고 했던가? 세 자매를 통해서 굿판의 고인(김석출·김유선·변난호·송동숙·김미향)도 헤아릴 수 있었다. 굿만이 가능하고 전통예술만이 가능한 공연을 2021년에 격(格) 있게 만났다.

 

전주·광주·부산… 지역 공연장 맹활약

지역 공연장을 중심으로 한 양질의 공연도 화제가 되었다. 2020년에 시작된 국립무형유산원(전주)의 레지던시 ‘무형유산 예능풍류방’은 올해로 새롭게 이어지면서, 전통예술 ‘연구’와 ‘연행’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월가금무(月歌琴舞)’(9.1/국립무형유산원)가 대표적이며, 차명희(승전무 이수자)와 오경희(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의 중견 예인 듀오는 매우 돋보였다. 각각 통영과 해남에 근거를 둔 전통예술을 가져와서, 오직 전통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각인시켜준 무대였다.

‘이은혜의 맥(脈)’(10.10/국립부산국악원)은 ‘발굴’의 의미가 있는 공연이다. 유성기 음반에 수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부르지 않는 소리를 무대에서 직접 들려주면서 진정한 ‘소릿 속’을 탐구하는 ‘연구 형태의 연주’다. 광주시립창극단(예술감독 유영애)의 ‘적벽대전’(11.5·6/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은 사성구(대본)·김영봉(연출)·김성국(작곡·지휘)·한명선(안무)이 참여했고, “모두의 노력이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양승수 광주문화예술회관 공연지원과장) 등 지역민의 호평 일색인 공연이었다.

전주시립예술단의 연합공연 ‘시집가는 날’(7.8~ 10/한국소리문화의전당)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서 의미가 컸다. 전주시립예술단 4개단(국악단·극단·합창단·교향악단)이 참여했는데, 국악이 중심이 되었다. 임준희가 작곡을 맡았고, 심상욱(전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이 총감독과 지휘를 맡았다. 강길원(판소리), 조민지(국악 및 가요), 오윤지(클래식 음악), 이건일(뮤지컬)의 가창적 안배도 좋았다. 이들은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유망주이다.

 

 

‘입과손스튜디오’는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했다.

지금 아주 현대적인 전통, 산조

 

올해의 이슈는 단연 ‘산조’다. 산조는 궁극적으로 ‘일인예술’이다. 코로나 시대에 매우 합리적인 연주 형태다. 대면이 꺼려지는 시대에, 개인(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장르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산조대전’(3.17~4.25)은 획기적 기획이다. 산조를 넓고 깊게 보는 자리였다. 전통산조와 창작산조를 모두 대상으로 삼았다. 악기에 따라서 주자에 따라서 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 현재 ‘산조 완전체’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었다. 공연 후 합평회에선 앞으로 더욱 ‘산조’(일인예술)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연주자 선정에 있어서 보다 더 객관성과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지역의 산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김상훈 아쟁연주회 ‘진도의 산조’(3.7/국립국악원)도 콘셉트와 완성도 면에서 기록해두어야 한다.

2021년의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은 무엇을 했을까? 많이 했고 열심히 했다지만, 전통예술의 깊이와 넓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로서의 역할엔 아쉬움이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공감시대: 기악, 차이‘(10.6~14)는 국립국악원 공연의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국악의 현재적 모습과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판을 짠 공연으로, 기획자로서의 ‘고민’과 아티스트로서의 ‘고민’이 모두 보였다. 이런 고민을 전제로 해서 ‘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국립극장은 올해 뭘 했을까? 뚜렷하게 잡히는 게 없다. 국악과 시민이 만나는 데 가장 즐겁게 만나는 형태인 ‘국립극장 마당놀이’도 사라졌다. 의미를 하나 찾는다면 소리극 ‘옥이’(10.5~10/국립극장). 장애인 극단(다빈나오)과 국악(민소윤)이 만나서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전통의 무한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유홍과 입과손스튜디오

올해의 인물은 대금 연주자 유홍. 대금이라는 악기의 무한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10월 15일에서 24일에 걸쳐,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4회의 시리즈 공연을 선보였는데 정악(‘정악가무’), 민속악(‘서용석’), 현대음악(‘환희’), 즉흥음악(‘언제나, 순간’)을 펼쳤다. 즉흥음악은 유홍이 독보적이다. 앞으로의 대금음악에서 ‘창작음악’과 ‘현대음악’은 엄연하게 따로 봐야 한다. 유홍의 ‘현대음악’은 그간의 국내 창작음악과 다른 곡 해석과 연주법을 경험케 해주었다. 십여 년간 외국의 외유(外遊)를 통해서 축적한 노하우가 앞으로 국내 대금계에 긍정적 영향을 줄 걸 기대한다.

‘입과손스튜디오’처럼 2021년에 이토록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한 단체가 있을까? 서울의 국립극장(7.2·3)과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11.20·21)에서 연 ‘두 개의 눈’(무토·입과손스튜디오)은 협업 형태였다. ‘심청가’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에서 소리꾼 이승희와 김소진은 ‘따로 또 같이’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각자의 소리도 빛났지만, 둘이 함께 부를 때의 어울림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달의 전쟁’(11.5·6/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선 입과손스튜디오가 연출(이향하·김소진·이승희·김홍식·유현진)에 참여했다. 이들은 일찍이 이자람의 ‘사천가’(2007)를 비롯해서, 판소리에 기반한 음악극을 만든 경험을 살려서, 전라북도립국악원과 조화를 이루면서 최대치를 끌어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계속 다듬는다면 이 작품은 이 단체의 브랜드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다.

2021년의 전통예술계의 이슈를 ‘국악 오디션’을 뽑고자 하는 견해도 있다. 나는 전혀 다르다. 피상적인 현상만 본다면,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 MBN ’조선판스타‘와 JTBC ’풍류대장‘으로 젊은 국악인이 쏠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건 분명 일시적 현상이다. 국립민속국악원(남원 소재)의 ‘판소리마당-소리 판’(5·7월), 우진문화공간(전주 소재)의 ‘전주완창무대’(10.16~11.13)는 2021년에 더욱 빛났다. 거기서 미래의 명창을 만났다. 2021년을 돌아보면서 ‘전통’의 가치를 생각하면 올곧게 정진하고 있는 젊은 국악인에게 감사할 뿐이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이들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글 윤중강(국악평론가)


Part1.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칼럼

6 무용 dance


올해의 이슈 1

팬데믹을 뚫고 나온 창작 열기

올해의 이슈 2

온라인 스트리밍과 댄스필름의 강세

올해의 이슈 3

한국무용계의 컨템퍼러리화(化)


전례 없는 팬데믹에도 놀라운 적응력 보인 무용계

무용계는 2021년 봄부터 차츰 활기를 찾았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은 독립 무용단에 창작 산실 역할을 했고, 온라인 스트리밍과 댄스필름은 지역 소재 무용단과 축제의 활로를 넓혔다. 한편 한국무용계에 컨템퍼러리한 창작 춤 경향이 구축된 한 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무용계에 창작산실인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서울세계무용축제 개막작인 대구문화예술회관·경기도무용단 ‘디 오브젝트’

서울세계무용축제 특별초청작인 장유경무용단 ‘푸너리1.5’

 

 

 

 

 

 

 

 

 

올해 두드러진 무용계 현상은 ‘팬데믹을 뚫고 나온 창작 열기’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예기치 못한 코로나로 전 세계 공연예술계가 초토화되다시피 한 위기 상황을 우리 무용계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항상 난관을 헤쳐온 무용가들은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활로를 모색하였다.

 

창작 열기로 뜨거웠던,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올해 봄부터는 팬데믹을 뚫고 나온 열정적 공연 활동으로 인해 정상화에 가까운 양상을 느낄 수 있었다. 국제현대무용제(MODAFE), 한국무용제전, 대한민국발레축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등 주요 축제에서 국내 중견 및 신진 무용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국제 춤 축제의 경우에도 해외 초청공연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되면서 국내 공연 프로그램에 심혈을 기울인 측면이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 쏘아 올린 한 여름밤의 춤 열기였다. 우리나라 무용계에서 창작 산실이라고 불리는 극장이라고 한다면 아르코예술극장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우리 무용계의 르네상스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연간 엄청난 수의 창작 작품을 올리고 있는 데다가 극장 자체가 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으므로 무용가들의 선호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2009년부터는 아르코예술극장의 형제 격 극장인 대학로예술극장이 개관하여 무용공연을 분산 수용하고 있다.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온라인 상영된 다미앵 잘레 ‘The Ferryma’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온라인 상영된 호세 나바스 ‘겨울나그네’

2010년대 들어 무용 관련 축제나 기획공연이 난립하다시피 하면서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서는 공공성을 띠는 행사를 먼저 수용하려는 추세가 있었다. 이는 보다 많은 무용인을 포용할 수 있을지 모르나 개별적인 창작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낳았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7~8월에만 16개 정도의 독립 무용단과 동문 무용단, 그리고 작은 춤 축제를 수용하여 비수기인 여름 시즌에 도리어 개별적인 창작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비교적 젊은 창작자들의 활동을 고취하는 방향성까지 읽힌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여름 시즌이었다.

 

 

온라인 스트리밍과 댄스필름의 강세, 의외의 수혜자는

공연예술계의 거의 모든 영역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영역은 바로 영상 관련 분야다. 언택트 시대에 무용의 영상화가 대안을 넘어서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춤 축제들과 함께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 인 탱크(7.6~11/문화비축기지)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현장과 온라인에서 동시에 축제를 개최하였다. 그밖에 수많은 무용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댄스필름으로 재제작하는 일종의 붐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지원이 확대된 것도 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온라인 상영된 문라이트 모바일 씨어터 ‘Peeping Garden’

온라인 스트리밍의 효과는 지역 소재의 단체나 행사에서 더욱 뚜렷했다. 광주시립발레단, 인천시립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 같은 지역 소재의 시립무용단은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관객(시청자)과의 소통 경로를 다각화하여 자신들의 활동을 널리 알렸다.

부산국제무용제, 뉴댄스페스티벌, 세종국제무용제 등 지역 소재의 국제 춤 축제는 댄스필름의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의 국제 춤 축제의 경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무용가와 무용단을 초청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팬데믹으로 인해 교류 자체가 단절된 상황에서 세계적인 안무가의 댄스필름을 초청하여 온라인으로 스트리밍함으로써 사실상 국제 무용제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실제로 이러한 지역의 국제 춤 축제의 유튜브 채널에서 안무가 빔 반데키부스(1963~), 라미 비에르(1957~), 아크람 칸(1974~), 요안 부르주아(1981~) 등의 댄스필름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었다.

 

 

컨템퍼러리 댄스, 한국무용계의 약진을 이끌다

컨템퍼러리 댄스란 융복합을 주로 하는 동시대의 창작 경향으로, 1980년대 서유럽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컨템퍼러리 댄스가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이며 2000년대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정착과 발전을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현대무용계에서 두드러졌으며 뒤이어 발레계에서 동참하는 모습을 띠었다. 한국무용계의 컨템퍼러리화(化)는 다른 춤 장르에 비해 소극적인 편이었으나 몇 년 전부터 급격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올해 들어서서는 젊은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이젠 완전하게 컨템퍼러리한 창작 춤 경향이 구축되었다. 한국무용제전, 크리틱스 초이스 댄스 페스티벌 젊은안무자창작공연 등 서울에서 개최되는 주요 창작 경연뿐 아니라 전국무용제처럼 지역 무용가들이 참가하는 창작 경연에서조차 이러한 스타일의 작품들이 수상한다는 점은 컨템퍼러리한 한국무용이 완전하게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컨템퍼러리한 한국무용을 추구하는 창작자 중에서 장혜림과 정보경처럼 이미 잘 알려진 이들이 중심을 잡으면서 김민우, 한정미, 김주빈, 전수현 등 비교적 덜 알려진 이들이 새로이 두각을 나타냈다. 어려운 시기에 무용계에 신선한 활기와 비전을 제시할 역할은 아무래도 젊은 창작자에게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 펼쳐질 위드 코로나 시대에서 무용은 어떠한 양상을 보일 것인가? 한 원로 무용평론가가 ‘전쟁 중에도 춤 공연은 있었다’고 했듯, 어떤 상황에서도 춤 공연은 이어지리라 본다. 무용계의 단점이자 장점이 여기서 나타나는데, 항상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 춤 활동이 이어가고 있는 관계로 어떤 난관에서든 적응력과 돌파력이 남다르다. 물론, 큰 사회적 변혁기마다 새로운 흐름에 적응해가는 무용가와 그렇지 못한 무용가 사이에 자연스러운 교체가 일어나곤 했기 때문에 앞에 언급한 창작적 변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글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 SIDance


Part1.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칼럼

7. 연극 theatre


올해의 작품

‘순교’ ‘누룩의 시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올해의 인물

구자혜(극작·연출)

김풍년(극작)

한현주(극작)

올해의 이슈

노동

SF

퀴어


새로운 담론이 형성된 연극계

국립극장·국립극단은 공연실황 영상을 유료화하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국공립 극장에 배리어프리 공연이 빠르게 자리 잡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코로나 이후를 전망하며 ‘노동연극’과 ‘SF연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편 페미니즘 연극은 퀴어 서사로 명맥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2021년은 QR체크인, 거리두기 좌석제와 함께 보낸 1년이다. 갑작스럽게 극장이 폐쇄된 지난해와 비교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애써 위안해 본다. 반으로 줄어든 객석 수 탓에 티켓 구하기는 전쟁이었다.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은 100석~150석 미만 공연장들이 많다. 일례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소극장의 경우, 총 객석 수 20석으로 공연을 올려야만 했다. 지난해를 돌아보며 끝나갈 일들과 끝나지 않을 일들을 생각해 봤다.

 

국공립 극장의 새로운 시도

국공립 극장은 공연실황 온라인 중계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연극계에선 영국 국립극장 ‘NT Live’ 덕분에 공연실황 영상화 작업에 이미 익숙하다. 작년과 차이점이 있다면 무료 온라인 공연이 아니라, 2021년엔 국립극장과 국립극단이 유료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국립극장은 9월부터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롯데시네마·웨이브에 국립창극단 ‘귀토-토끼의 팔란’ 등을 상영하고 있다.

국립극단은 10월부터 ‘온라인 극장’의 문을 열었다. 올해 촬영된 ‘스카팽’ ‘파우스트 엔딩’ ‘X의 비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유료 상영하고 있다.

국공립 극장에 빠르게 자리 잡은 것으로 배리어프리(Barrier Free)도 꼽을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장애와 상관없이 볼 수 있는 공연으로, 자막해설과 수어통역이 제공된다. 국내에 배리어프리 공연은 2019년 남산예술센터 공연 ‘7번국도’에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이하 여당극)의 연출가 구자혜의 제안으로 적극 시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미아리고개예술극장 공연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올해 국립극단 ‘로드킬 인 더 씨어터’(10.22~11.14/명동예술극장)에 이르기까지 여당극 공연은 배리어프리 공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국립극장은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 일환으로 국립창극단의 ‘귀토-토끼의 팔란’을 롯데시네마와 웨이브에 상영했다.

국립극단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진행됐다.

극단 돌파구는 호시 신이치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순교’를 올렸다.

국립극단의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금융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다

‘위드 코로나’와 함께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논의들이 많아졌다. 최근 국제 여론조사업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계인들의 걱정거리 1순위는 코로나를 제치고 빈곤과 불평등이 차지했다고 한다. 일명 ‘집콕’ 기간 동안 인터넷 쇼핑과 전자결제가 늘어나고,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 영역이 급속히 성장했다. 플랫폼 노동이 새로운 노동형태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노동의 형태는 더 단기적이고 법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다.

 

올해 연극

계의 중심 화두 또한 ‘노동’이었다. 전태일기념관에서 제작한 ‘어쩔 수 없는 막, 다른 길에서’(3.19~25/전태일기념관)는 전태일을 다시 소환했다. 극단 고래의 ‘굴뚝을 기다리며’(6.10~27/연우소극장)는 해고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이야기를 ‘고도를 기다리며’에 빗대어 쓴 작품이다. 극단 코끼리만보의 ‘괴물B’(7.23~8.1/알과핵소극장)는 지난 백 년 동안 산업재해로 잘려나간 노동자들의 몸을 ‘프랑켄슈타인’ 모티브로 풀었다. 혜화동1번지 7기동인 가을페스티벌 작품으로 올라간 ‘만나면 좋은 친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및 신분을 이유로 행한 차별 진정 건’(10.18~24/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은 ‘만나면 좋은 친구’ MBC의 프리랜서 작가 등 비정규직 및 기술직 노동자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었다가 올해 뒤늦게 극장에 올라간 국립극단의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6.18~7.18/명동예술극장)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금융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우리가 각자 자신의 집에 머문 시간 동안 거리는 오토바이로, 매장은 키오스크로 채워졌다. 위드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지만 우리가 다시 돌아갈 직장은 없어지고 있다. 노동 문제는 신자유주의 이후 꾸준히 제기된 사회 이슈이지만, 특히 이번 해에 연극 무대에 집중적으로 올라간 것은 그만큼 노동 문제가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 문제가 주로 젊은 연극인들에게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 또한 주의 깊게 볼 대목이다.

 

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은 파우스트를 김성녀 배우로 캐스팅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팬데믹과 조우하고 있는 ‘SF연극’

미래 전망이 불투명해서일까? 올 한 해 SF연극도 주목할 만한 흐름을 이루었다. 극단 돌파구 의 연출가 전인철은 2018·2019년 연속해서 호시 신이치의 SF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는 살인자입니다’를 올렸고, 올해도 같은 작가의 작품 ‘순교’(10.9~ 17/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를 올렸다. 죽은 자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기계가 등장하고, 그 기계와 대화를 한 사람들이 줄지어 자살을 택하는 기괴한 자살기계 이야기는 흡사 카프카를 떠올리게 한다. “과학도, 죽음도, 자신도 믿지 않는 사람들만이 살아남아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미래,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작품 속 이 질문은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 외에도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신인류의 등장을 예고하는 연출가 김정의 ‘태양’(10.5~23/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AI를 다룬 작가 장우재의 ‘싯팅 인 어 룸’(4.2~11/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과 작가 홍사빈의 ‘A, 아이’(6.25~27/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도 ‘생각하는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페미니즘에서 ‘퀴어’ 서사로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활발하게 공연된 페미니즘 연극은 퀴어 서사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극단 여행자의 여성국극 스타일의 ‘베로나의 두 신사’(10.25~31/미아리고개예술극장)는 셰익스피어 희극이 원작이다. 남성 퀴어 서사인 국립극단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4.16~5.10/백성희장민호극장) 또한 희극이다. 퀴어 서사를 일상의 드라마인 희극으로 접근하고 있다.

반면에 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2.26~3.28/명동예술극장)은 파우스트를 김성녀 배우로 캐스팅하는 파격을 보여주었지만 조광화의 종말론적 세계관 속에서 ‘여성-파우스트’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페미니즘 연극은 전년도까지 활발했던 경향에 비해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 페미니즘 연극제를 중심으로 응집된 에너지를 보여주었던 여성 창작들이 기성 연극계로 흡수되고, 그 뒤를 이을만한 작가들이 보이지 않는다. 공동창작 방식의 배우 창작자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2월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의 극작가 이은용의 이른 죽음이 너무도 안타까운 이유이다.

위드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는 일상이다. 코로나 2년 동안 연극인들의 고군분투는 눈물겨웠다. 노동의 화두는 좀 더 정교한 질문으로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SF연극은 장우재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주목해 볼 수 있다. 장우재는 ‘싯팅 인 어 룸’에 이어 ‘지정’(9.3~5/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비인간(other than human)’ 관점의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극단 골목길의 연출가 박근형 또한 ‘코스모스 : 여명의 하코다테’(3.12~28/예술공간 혜화)와 ‘이장’(10.8~24/예술공간 혜화)으로 저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새로운 작가층이 두터워졌다는 것은 앞으로의 전망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다. 여러 좋은 작품을 선보였던 극단 여당극의 구자혜, 극단 작당모의의 김풍년(‘누룩의 시간’), 극단 907의 설유진(‘홍평국전’), 그리고 한현주(‘괴물B’ ‘집집’)의 작업은 내년에도 계속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Part2. 공연현장을 누빈 ‘객석’ 기자들의 좌담

공연예술계, 변화의 한가운데서

#클래식 음악

#음악가들의 국내 입지전

#내한 공연 가뭄

 

임원빈 지난해는 코로나로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는 본격적으로 공연이 많아진 추세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한할 수 있는 연주자들이 제한적이다 보니, 국내 연주자들로 꾸려진 무대나 축제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마시모 자네티/경기필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 ‘Five for Five’(4.24~5.8/경기아트센터 외)처럼 신예 연주자도 만날 수 있었고, 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이 무대에 설 기회도 많았던 것 같아요. 교향악축제(3.30~4.22/예술의전당)도 이번에는 미루거나 당겨지지 않고 원래 열렸던 4월에 개최할 수 있었던 것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혜선 올해 공연계는 멈추지 않았죠. 그 중심에 국내 아티스트들이 있었고요. 코로나 때문에 잠시 한국에 돌아온 음악가들도 많았고요. 예를 들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첫 동양인 관악기 주자로 발탁되며 주목받은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은 코로나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미국을 빠져나와 국내 활동을 시작했어요.

박서정 반대로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 가뭄 현상은 국내 공연 기획사들의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방증이지 않나 싶기도 해요. 하루 이틀 전에 갑자기 내한 공연 취소 공지가 올라온다거나, 어떤 기획사의 내한 공연은 대부분 그냥 공수표를 날린 셈이 됐잖아요. 그런 것들은 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임원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대에 설 수 있는 연주자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같은 레퍼토리가 돌고 돌았던 거예요. 예컨대 피아노 독주회 레퍼토리를 가지고 다른 축제나 합동 무대에서 또 연주하는 경우요. 레퍼토리의 다양성의 문제는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박서정 그건 이제 국내 아티스트들이 좀 더 책임감을 느껴야 될 부분이겠네요. 그 점에서 저는 10월호에서 피아니스트 문지영 커버스토리 기사를 쓸 때, 문지영의 하반기 공연 일정과 레퍼토리를 다 받아봤었는데요. 레퍼토리들이 거의 겹치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본인이 레퍼토리를 늘리고 싶은 욕심이 확실히 있고, 공연을 통해서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게 보였어요.

임원빈 비단 아티스트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몇몇은 공연 기획 자체를 급조한 느낌이었어요. 갑자기 빠진 사람을 대신하려고 아티스트를 불렀는데, 아티스트는 자기가 제일 잘하는 레퍼토리를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러니 본인이 가장 최근에 했던 레퍼토리를 연주할 수밖에요.

장혜선 국내 음악가들이 국내 무대에서 자신을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많아진 거잖아요. 그럴수록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내 팬층을 늘릴 수 있는 계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임원빈 그 점에서 올해 팬덤을 크게 늘린 신인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겠죠. 리스트의 초절 기교로 전국 투어(9.25~10.12/롯데콘서트홀 외)를 한 게 이슈였잖아요.

조인혁

임윤찬

경기필 베토벤 협주곡 전곡-박재홍

 

 

 

 

 

 

 

 

 

 

#전통예술

#힙한 국악에 대한 수요

#공연 기획자의 과제

 

박서정 저는 ‘힙한 국악’ 시장이 생겼다는 걸 말해보고 싶은데요. 그동안 ‘월드뮤직’이라는 장르로, 소위 ‘퓨전 국악’을 하는 팀이 개별적이고 단발적으로 존재해왔다면, 이젠 그들을 모아서 판을 깔아주는 시장이 생겼다고 봐요. 올해부터 국립국악원은 하반기 기획공연으로 창작 국악 중심의 ‘공감시대’ 시리즈(10.6~11.25)를 선보이고 있고, 국립극장은 여우락 페스티벌(7.2~24)을 아티스트 중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로 전환하면서, 10여 년간 창작 국악 활동을 해오고 있는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를 섭외했죠. 최근 TV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소소하게나마 반응을 얻는 걸 보면서 국악 공연 기획자들도 틀이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국악에 대한 수요와 시장성을 확인한 것 같아요.

‘슈퍼밴드 2’에 출연한 박다울 ©JTBC

추다혜차지스 ©국립극장

장혜선 저는 지난해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범내려온다’로 큰 주목을 받으며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는데, 올해는 소위 창작 국악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은 콘텐츠로 이슈화됐는지 오히려 질문이 생겨요. 그래도 국악이 예전보다 대중화됐다고 느끼는 지점은 일반 예능 프로그램에서 국악이 배경음악(BGM)으로 많이 나오는 거예요. 또는 ‘슈퍼밴드 2’에 나온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이 인기를 끄는 걸 보면서 대중은 굉장히 ‘매력적인’ 국악 아티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박서정 매력적인 국악 아티스트를 매력적으로 극장으로 불러들일 기획과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에요. 지금은 국악 공연장은 단순히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데 그치는 것 같아요. 추다혜가 나와서 춤추고 방울 흔드는데 극장에서 관객은 가만히 앉아서 봐야 하는 거죠. 만약 추다혜가 국립극장과 홍대 클럽에서 공연한다고 하면, 저는 클럽에서 추다혜 공연을 즐길 거예요.

장혜선 극장도 조금씩 ‘힙한 국악 아티스트’의 문화를 흡수하려고 하는 것 같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한 번도 그런 공연을 올려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런 공연을 원하는 관객을 맞이해 본 적도 없고요. 이전에는 국악 공연을 찾는 관객 연령대를 조금 높이 생각하고 있던 것 같아요. 작년부터 독특한 느낌의 젊은 국악 아티스트들이 인기를 끌면서 사실 일반 관객은 페스티벌 분위기를 즐기려고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하는 건데요. 그런데 국악 공연장은 너무 정적인 거예요. 관객은 좀 더 뛰어놀고 싶은 열망이 있는데, 분위기가 그렇지 못하죠. 예전에 의정부음악극축제에 잠비나이가 출연한 적이 있어요. 연령대가 높은 관객은 그냥 국악 공연이라고 와서 보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메탈 음향이 나오니까 화들짝 놀라면서 귀를 막고 나가더라고요.

 

국립무용단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국립극장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웨이브에 ‘온:클래식’을 선보였다

멀티뷰 기술 적용

 

 

 

 

 

 

 

#공연 콘텐츠 유통 구조의 변화

#공연장-영화관-안방

장혜선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공연계 플랫폼이 계속 확대되고 있죠. 그러면서 콘텐츠의 유통 공식이 다시 써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국립극장에서 메신저로 광고 문자를 보냈어요. 근데 주요 소식이 다 영상 콘텐츠에 관한 것이더라고요. ‘롯데시네마 스크린’ ‘앙코르 상영’ ‘웨이브 라인업’ 등의 게시물 제목을 보니 새삼스러운 거예요. ‘공연장-영화관-안방’이라는 공연 콘텐츠의 소비체인이 구축되고 있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박서정 국립극장이 이렇게 영상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혜선 작년 9월에 문체부에서 코로나 일상 속 비대면 예술 지원 방안을 발표했는데 그때 국립극장은 레퍼토리 공연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각종 OTT에 송출하겠다고 했어요. 최근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진출함에 따라서 국내 OTT 시장의 콘텐츠 전쟁이 예측되는데, 공연 영상도 어떻게 서비스가 될지 기대돼요.

임원빈 주요 OTT에서 공연 영상을 어떻게 서비스하고 있나 살펴봤는데요. ‘넷플릭스’는 뮤지컬 영화를 다수 서비스하고 있어요. ‘왓챠’에는 연극이나 뮤지컬 작품의 실황 영상이 꽤 있고요.

장혜선 ‘디즈니 플러스’ 같은 경우는 브로드웨이 히트작 ‘해밀턴’을 서비스하면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2022년에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뮤지컬화한 작품을 최초로 서비스를 할 예정이라고 하고요. 공연 영상의 1단계가 이전에는 온라인 실황 중계였다면, 이제는 공연장-영화관-안방으로 연결되는 사이클을 연동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소비자들은 뜨거운 OTT 전쟁 속에서 각 플랫폼이 공연 영상을 활용한 어떠한 승부수를 띄울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면 좋지 않을까요.

임원빈 그런데 이전부터 IPTV에서 제공하는 VOD의 카테고리에도 공연 장르는 항상 있었단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어떤 오페라 작품은 프로덕션별로 있고. 빈 필의 신년 음악회나 베를린 필 발트뷔네 콘서트 같은 축제는 항상 올라와 있고요. 그런데 OTT에서 상영한다고 해서 그간 존재해왔던 공연 영상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확 늘지는 의문이에요.

장혜선 클래식 음악에 한정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OTT로 즐길까 고민해봤거든요. 실황으로 접하기 힘든 해외 유명 오페라극장의 프로덕션은 저 역시 즐겁게 볼 것 같아요. 그런데 음악회 같은 경우는 반신반의하죠. 그래서 ‘웨이브’에서는 기술적인 변화를 주더군요.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공연 영상인데, 손만 클로즈업할 수 있더라고요. 다만 클래식 음악 콘텐츠는 시청자가 가지고 있는 디바이스 컨디션에 따라서 즐길 수 있는 게 너무 천차만별이니 문제죠.

박서정 영상 작업의 활성화가 공연 제작에 미칠 영향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해외 오페라는 영상화 작업이 일찍부터 시작됐잖아요. 그래서 영화감독이면서 오페라 연출도 겸하는 경우가 꽤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그런 흐름이 국내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국립무용단 신작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의 윤재원 연출가·미술감독도 시각예술 분야에서 주로 활동해왔거든요. 국립무용단에서는 이번 작품을 영상화할 계획이 있더라고요. 앞으론 영상 연출에 적합한 방식으로 공연이 만들어질지도 모르죠.

임원빈 이건 좀 번외 이야기인데요. 카라얀은 지휘자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영상 촬영, 구도, 연출까지 다 관여해서 영상을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어떤 영상에선 세모 오브제 위에 오케스트라를 올려두고 본인은 다른 데서 지휘한다거나 해서 그 영상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남기려는 시도를 이미 그때부터 했었더라고요. 그게 지금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다시 돌아오게 된 것 같기도 해요.

박서정 그런 점에서는 영상에 대한 감각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앞으로 좀 더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장이 생기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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