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 손민수 피아노 독주회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5월 30일 9:00 오전

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아리아 다카포’로 다시 불러보는 평화

손민수 피아노 독주회

5월 2일 명동성당 대성전

 

1898년에 완공된 명동성당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성당의 높은 첨탑에는 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한 신앙인들의 고백이 녹아 있다. 기도 소리와 신의 음성이 빚어지는 이곳에서 손민수는 바흐의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 BWV645(부소니 편곡)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 대언자로서 바흐의 신앙 고백을 이곳 강단에 봉헌한 셈이다.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는 바흐의 같은 제목의 칸타타 BWV140 중 ‘시온은 파수꾼의 노래를 듣고’를 바흐가 오르간으로 편곡한 곡이다. 파수꾼이 예수의 강림 소식을 시온성에 전하며 예수를 맞이하는 충만한 기쁨을 가사로 한다. 성당의 높은 천장 때문에 선율은 시차를 두고 뒤엉켰다. 선율의 메아리는 마치 음악의 허상처럼 보였다. 음악은 현의 파동에서 점점 멀어져 신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연이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 성당의 자연스러운 공명을 최대한 이용하며 즉흥적인 꾸밈음을 절제하는 듯했다. 소리의 지나친 울림으로 인해 자칫 소리들이 지저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자연스러운 공명의 또 다른 이름은 ‘무질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반의 해머를 통해 울린 음은 성당의 울림을 타고 무질서하게 뻗어나가기에, 연주자의 손아귀에서 정돈되지 않는다. 우리는 눈을 감고 그의 연주를 들었지만, 그 소리와 사투하기 위해 그가 흘렸을 땀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손민수가 바흐의 음악을 탐구하며 “발견되지 않은 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처럼 하나하나의 변주가 작은 우주를 이루고, 그 우주가 모여 또 다른 거대한 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앞의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작고 허무한지 반추하게 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여정은 길었다. ‘아리아 다카포’(처음 아리아를 반복하라)로 작품의 끝에 섰을 때, 응답받지 못할 것 같았던 기도의 답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 기도는 삶에서 누리는 영원한 평화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흐와 손민수의 기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자는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이들의 가슴 한쪽에 바흐와 손민수의 기도가 자리 잡기를 바랐다. 삶의 어느 순간에 오늘의 음악이 불현듯 나타나 그들을 보듬어주기를, 오늘의 평화를 기억해주기를 기도했다.
이번 무대의 수입금은 명동성당에서 이어갈 ‘코리안 영 아티스트 시리즈’의 출연진을 위한 장학금으로 전액 사용된다. 피아니스트 정지원(8.22)·바이올리니스트 정누리(9.19)·아레테 스트링 콰르텟(10.17)·피아니스트 임윤찬(11.14)·홍민수(12.12)가 무대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목프로덕션

 



피 묻은 돈

연극 ‘보이지 않는 손’

4월 26일~6월 30일 아트원씨어터 2관

 

한창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올해 초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전쟁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오고 있을 때, 지인들은 슬슬 주식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런 기회를 잘 파고들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아찔해졌다.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1723~1790)가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시장경제의 핵심을 짚은 표현이다. 개인의 이기심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을 하면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원리에 의해 사회적 이익이 극대화, 경제발전에도 기여한다는 의미다.
‘금융 스릴러’를 표방하여 연극열전이 제작한 이 공연(연출 부새롬)은 파키스탄 무장단체에 납치된 미국인 투자 전문가 닉(성태준)이 옵션거래로 자신의 몸값 1천만 달러를 벌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인 ‘보이지 않는 손’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2013년 퓰리처상 희곡 부문을 수상한 파키스탄계 미국인 극작가 에이야드 악타가 희곡을 썼다(번역 반영록). 금융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배경은 월스트리트의 한복판이 아니라 파키스탄의 벙커 안이다.

김주헌·성태준(닉 브라이트 역)/김동원·장인섭(바시르 역)/김용준·이종무(이맘 살림 역)/류원준·황규찬(다르 역)

무대는 단조롭다. 어둡고 쓸쓸한 감옥이 관객을 마주하고, 음울한 음악이 고막을 울린다. 그런데 그 작은방에는 거시적인 세계가 응축되어 있다. 환경적인 요소가 한정된 극장에서 섬세한 조명, 꽉 차있는 텍스트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장면 사이, 정적이 있을 때마다 배우들의 낮은 호흡이 관객의 조용한 숨소리와 뒤얽혀 묘한 긴장을 불러온다.
파키스탄 무장단체의 수장과 조직원은 닉의 투자 과정을 지켜보며 자본주의에 눈을 뜬다. 인민에게 좋은 세상을 주고자 했던 그들은 결국 비자금을 챙기고, 돈을 불리기 위해 도시에 폭탄 테러를 시도한다. 인간의 목숨이 거래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과정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지구 반대편의 전쟁을 바라보며 글로벌 증시에 관심을 쏟고 있는 우리네 모습을 보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보이지 않는 손’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듯하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연극열전

 


명랑한 춘향이 건네는 판소리로의 초대

국립창극단 ‘춘향’

5월 4~8일 국립극장 해오름

 

2020년, 팬데믹 한복판에서 초연했던 창극 ‘춘향’이 일상 회복에 대한 설렘을 몰고 올해 봄 그의 한복판에서 제대로 돌아왔다.(극·연출 김명곤, 작창 유수정, 작곡·음악감독 김성국, 안무 장현수) 초연에 비해 더 화려해진 연출은 대극장용 공연으로 적합했다. 국립무용단이 선보이는 장구춤이나 칼춤이 전통의 멋을 더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무용 단원들의 입·퇴장이 명확히 보이며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진 못했다. 오히려 단원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시장 한복판에서의 노래가 자연스러운 볼거리를 더한다. 능청스럽게 몽룡을 타박하는 말로 분장한 단원의 연기나, 비녀장수의 소리 한 소절이 관객의 반응을 끌어낸다. 대사로 이어지는 몽룡과 월매의 신경전, 방자와 몽룡의 대화도 자칫 지루하다. 새롭게 추가된 사또의 신연맞이 장면도 화려하고 신명 나지만, 춘향의 감정에 몰입해 있는 관객에게는 굳이 필요 없다. 기생을 앞에 두고 사또가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며 외모를 희화화하는 장면은 시대착오적인 웃음이다.
그럼에도 세심한 연출에 따라 춘향의 캐릭터는 충분한 동시대성을 갖췄다. 원래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면서도, 몽룡과의 약조나 여성의 정조보다는 사랑에 빠진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위해 행동하는 춘향이 등장한다. 자연스럽게 극은 춘향의 감정을 따라 흐르며, 1막 마지막 몽룡을 떠나보내고 부르는 ‘이별가’는 그녀가 주인공으로서 극의 묵직한 서사 중심에 자리 잡게 한다. 이소연(춘향)의 절창이 이 서사의 감정을 제대로 마음 한복판에 꽂아 내린다. 소리꾼의 실력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것은 김준수(몽룡)가 부르는 ‘어사출도’도 마찬가지다. 잠시 극 자체를 잊고, 음악으로서의 ‘소리’에 흠뻑 빠진다. 구구절절한 서사보다는 ‘귀 떨어지고 엎더지고 덜미치고 상투치고 달아나며’의 소리 한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 판소리 본연의 예술성이 겹겹의 세월을 제치고서도 오롯이 살아남아 있음을 실감한다.
영상을 활용한 연출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연출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은 ‘사랑가’가 아닐까. 무대와 의상의 활용, 무용에 가까운 발림(극적 내용에 맞춰 표현하는 몸짓)이 한데 어우러져 매혹적이면서도 설렘 가득한 ‘사랑가’가 연출됐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는 구성진 옛 소리가 아니라, 둘만의 세계에 흠뻑 빠진 사랑의 속삭임이다. 원래 소리가 가지고 있는 정통성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극의 흐름을 돕는 형태로 채워진 화성 또한 몰입감에 한몫을 차지했다.
우리를 찾아온 ‘춘향’은 2022년이라는 현재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관객을 긴 그네에 태워 옛 시절 걸출한 판소리가 펼쳐지던 흙 마당 바닥으로 안내한다. 전통의 멋을 한껏 살린 무대와 의상, 단원들이 선보이는 제대로 된 창이 그 주체다. 극보다는 창이 중심이 되는 창극을 만들고자 했던 작창의 의도에 따라, 창극 ‘춘향’을 타고 객석은 ‘얼쑤절쑤’ 추임새를 넣으며 한바탕 흥에 겨웠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국립극단

 

이소연(춘향 역)·김준수(몽룡 역)·김차경(월매 역)·조유아(향단 역)·유태평양(방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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