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 캔들라이트 콘서트, 안드라스 시프 독주회 외 지난 11월 기억해야 할 화제의 공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12월 2일 9:00 오전

EDITOR’S NOTE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비밀에 부친 프로그램

안드라스 시프 피아노 독주회

11월 6일 롯데콘서트홀

공연장 로비는 어리둥절한 관객들로 가득했다. 프로그램 북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섰던 이들이 책을 펼치고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안드라스 시프(1953~)는 이번 내한 공연의 프로그램을 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 작품을 연주할 거라는 힌트만 준 채, 공연 직전까지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무대에는 책상과 마이크가 피아노와 함께 놓여 있었다. 이윽고 시프가 무대로 걸어 나오고,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그의 통역사로 등장했다. 시프는 “공연의 프로그램을 미리 아는 건, 마치 수년 뒤에 먹을 저녁 메뉴를 미리 정하는 것과 같다”는 다소 그 다운 이야기로 프로그램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첫 번째 곡으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가 그의 설명과 함께 연주됐다. 약간의 안도감과 여전히 무슨 곡이 더 연주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객석에 감돌았다.

공연은 시프의 해설과 박재홍의 친절한 통역으로 진행됐다. 음악 칼럼니스트의 글 대신, 연주자의 해석이 곁든 음악을 들으니 객석의 집중도가 올라갔다. 마스터클래스처럼 진행된 공연으로 관객은 순식간에 학생으로 변모했다. 이어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5번,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32번 등이 연주됐고, “3악장은 너무 빨리 연주되는 경향이 있다”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를 설명했다. 마치 관객이 빠르게 3악장을 쳐왔다는 듯 “느리게 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공연의 1부는 2시간을 넘기고서야 종료되었다. 20분의 휴식 동안 로비는 허리를 두드리는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포착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해설이 곁들여진 연주가 싫지는 않은 얼굴들이다. 2부에서 연주한 모차르트의 론도 K511과 슈베르트 소나타 20번 D959는 그의 또렷한 타건과 확신에 찬 음색이 공연의 시간을 잊게 했다. 4시간의 대장정 연주였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

 


시프의 피아니즘이 전수된 시간


안드라스 시프 마스터클래스

11월 8일 신영체임버홀

 

시프는 마법 같은 프레이징과 화성 분석을 보유한 피아니스트다. ‘잘 치는’ 연주자는 있지만, ‘시프처럼 치는’ 연주자는 없다. 피아노 지망생들이 그의 음반을 교과서 삼는 이유다. 이번 내한에서 시프가 그 비법을 공개하는 일정을 가졌다. ‘공개 레슨’ 형식의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한 것. 그는 한 번도 쉬지 않고 3시간여의 마스터클래스를 이어나갔다.

첫 순서는 지나 바카우어 콩쿠르 우승자(2018) 신창용. 슈만의 ‘유모레크스’ Op.20을 끊지 않고 들은 시프는 예상보다 꼼꼼하게 레슨을 이어나갔다. 시프처럼 유명한 연주자의 마스터클래스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음표를 어떤 의성어와 허밍으로 표현하는지 들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4분의 3박자의 리듬을 ‘읏-타타’로 말하는지, ‘음-파파’로 말하는지 말이다. 실제로 이날 시프는 “노래하는 것”을 강조했다. 올해 헨레 피아노 콩쿠르 전체대상을 수상한 이주언(초등학교 5학년)이 쇼팽의 마주르카풍의 론도 Op.5를 연주했는데, 멜로디 라인을 찾아주기 위해 시프는 “직접 노래해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쑥스러움에 망설이자 그는, “마리아 칼라스 같을 순 없지만, 피아니스트는 꼭 노래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문지영이 선보인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Op.13이었다. 관객도 깊게 빠져들어 감상했다. 시프도 거듭 “Very Good”을 말하며 레슨을 이어갔는데, 작품의 일부를 골라 연주한 이유를 묻는 대화부터 디테일한 손목의 모양까지 다루는 설명이 광범위했다. 진정한 기술자들의 노하우 공유 현장 같았달까. 문지영은 “며칠 전 선생님의 연주를 보고 압도된 상태여서 연주하기 쉽지 않았지만, 정말 놀라운 영감을 주시는 내용이 많았다”라고, 마스터클래스가 끝난 후의 소감을 전했다.

글 허서현 기자

 


 


노란 빛으로 담아낸 음악

캔들라이트 콘서트 ‘쇼팽’

11월 4일 오후 7시 정동1928 아트센터

샹들리에의 흔들리는 촛불, 악보를 보기 위해 피아노 위에 놓였을 양초까지 전구가 발명되기 이전인 1700년대 중반, 당시 공연장 모습을 상상해보자. 세계 90여 개의 도시에서 열리고 있는 캔들라이트(Candlelight) 콘서트는 수백 개의 촛불(가짜 초가 쓰인다)로 꾸며진 무대를 연출해 수백 년 전 촛불을 켜 놓았을 공연장을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다. 공연은 각 도시를 대표하는 오래된 공간에서 선보이고 있고, 서울에서의 첫 공연은 지난 9월 세빛섬에서였다. 기자는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장을 가기 위해서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노란 정동길을 지나야 한다. 그 길 끝에 다시 공연장의 노란 초가 관객을 맞는다. 공연장 입구부터 수놓아진 촛불을 따라가다 보면, 초에 둘러싸인 피아노를 만난다. 멍하니 불빛을 들여다보다 보니 귓가에 음악들이 형체 없이 들려왔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 중 미뉴에트와 같은. 하지만 이번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이누리는 쇼팽을 택했다. “좋아하는 곡들로 선곡했다”라는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영국 캔들라이트 콘서트에서 연주를 해왔다. 쇼팽 녹턴 2번 Op.2가 연주되자 음악은 촛불과 함께 무르익어 갔다. 무대를 둘러싼 관객은 저마다 음악과 함께 그 풍경을 눈과 귀에 담으려는 듯했다. 이어 연주된 전주곡 중 15번 ‘빗방울 전주곡’도 추억을 더 했다. 연습곡 12번 ‘혁명’ Op.10과 즉흥 환상곡의 뉘앙스는 당시의 분위기와 상반되었으나 작품 곳곳에서 피력되는 쇼팽의 서정성이 분위기를 돋우었다. 12월에는 노란 은행잎 대신, 하얀 길이 관객을 맞을 것이다. 소복이 쌓인 눈 길 끝에 만난 촛불이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그 무언가를 만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음악이어도 좋고 인연이어도 좋다. 새로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피알원

 


 

미완성 엿보기

부소니 글로컬 프로젝트

11월 10일 스타인웨이 갤러리 서울

문지영(2015), 박재홍(2021)에 이은 또 한 번의 우승자가 탄생할 것인가.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부소니 콩쿠르의 예선 ‘부소니 글로컬 프로젝트’는 참가자들이 각 거주지의 스타인웨이 갤러리에서 연주하는 방식이다. 올해 ‘부소니 글로컬 프로젝트’ 참가자는 110명. 총 11개국에서 치러지며, 그중 30명이 선발된다. 이날 서울에서 연주한 9명을 포함해, 뉴욕(2명), 독일의 함부르크(3명)와 뮌헨(2명), 이탈리아(1명)에서 다수의 한국인 지원자들이 ‘부소니 글로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장에 관객이 있게 해달라’는 것이 부소니 콩쿠르 측의 또 하나의 지침. 이에 20여 명이 넘는 관객이 자리해 젊은 도전자들의 연주를 숨죽여 지켜봤다. 부담감을 떨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연주자를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이들이 보여준 면모는 모두 달랐다. 해석의 논리나 풍부한 표현력 등 본연의 장점을 감상함과 동시에 ‘미완성의 연주자’의 모습을 엿보는 재미도 있었다. 해당 영상은 부소니 콩쿠르 홈페이지를 통해 11월 18~25일까지 공개됐다. 투표 참여도 가능해, 다득표 4인은 심사위원 결과와 무관하게 무려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부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신의 ‘원픽’에게 투표했길!

글 허서현 기자 사진 스타인웨이 갤러리 서울

 


 

본능은 사회와 타협할 마음이 없다

연극 ‘에쿠우스’

11월 8일~2023년 1월 29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무엇 하나 가벼운 흥미로 끝내지 못하고, 끝장을 봐야 할 정도로 무겁게 파고든다. 소년이 일곱 마리의 말의 눈을 찌르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열일곱 살의 소년은 중간을 모른다. 어머니는 광신도, 아버지는 무신론자. 태생부터 모순적인 아이가 자라는 환경은 중도가 없이 모든 것이 극에 달해있다.
연출가 이한승은 이 아이의 편에 서고 싶었던 걸까? 대사도, 배우도, 무대도 모두 극단으로 몰린 듯이 정신이 없다. 외래어가 잔뜩 섞여 쉽지 않은 대사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무대를 오르내리며 뛰어다니는 말의 발소리는 그 빠르고 어려운 대사를 더욱 가려버린다. 모든 배우의 열연에도 관객의 정신은 극에 빠져들지 못하고 계속 극장 밖으로 쫓겨난다.

어쩌면 극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아는 소년에게 중간을 하지 말라는 정신과 의사의 마지막 의도처럼, 관객은 중간보다 극한을 찾으러 극장에 들어서면 될지도 모른다.

 

장두이·최종환·한윤춘(마틴 다이사트)/김시유·강은일·백동현(알런 스트랑)/채시라·박수연(질 메이슨) 외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아트리버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라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11월 10일~2023년 1월 15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

“지저스 크라이스트, 뭐라고?” 어느새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뮤지컬이지만, 제목을 처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여전히 단어의 조합은 낯설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어 뒤에 ‘수퍼스타’를 붙인 이 뮤지컬은 당대 예수를 따르던 제자·추종자들과 무대 위 가수를 동경하는 팬덤의 경계를 허문다. 애초에 ‘광신도’를 뜻하는 말에서 만들어진 단어가 팬덤이니, 구분을 지을 필요도 없다.

종교가 있든 없든, 음악 앞에 평등하다. 성전 앞 파렴치를 ‘샤우팅’하며 쫓아내고, 운명으로 정해진 자신의 희생을 절규하는 예수의 노래에 관객은 어느새 두 손을 꼭 모으고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하고 있다. 마지막 기립박수 속 노래 ‘수퍼스타’를 끝내고 나면 관객의 머릿속에선 마치 록스타의 이름을 연호하듯, ‘지저스’를 부른다. 이보다 예수의 신도를 만들 수 있는 극이 있을까?

 

마이클리·임태경(지저스)/한지상·윤형렬·백형훈·서은광(유다)/김보경·장은아·제이민(마리아)/김태한·지현준(빌라도) 외

 

 

 

 

 

 

 

 

 

 

글 이의정 기자 사진 클립서비스

 



뜨거운 그들의 쿨한 넥스트 스텝

이날치 ‘물 밑’

10월 28일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홀

1집이 잘 팔린 팝 밴드의 2집에는 갖은 이목이 쏠리기 마련이다. 결과는 두 갈래로 나뉜다. 대중성을 의식해 개성을 잃거나, 예상을 뛰어넘는 개성을 선보이거나.

‘범 내려온다’가 수록된 1집 ‘수궁가’(2020)로 사랑받은 이날치가 신작 ‘물 밑’을 공연으로 선보였다. ‘수궁가’ 역시 음악극 ‘드라곤 킹’에서 발전된 결과물임을 생각해보면, 이들에겐 당연한 수순. 판소리에 바탕을 둔 전작과 달리, 천문학자가 생명의 근원지인 ‘물 밑’을 찾아간다는 완전히 새로운 텍스트다.

세간의 뜨거움이 무색하게, 이날치의 신작은 자신들의 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리’(일상적 어조의 말로 하는 부분)의 비중도 높았고, 전통 창법에서도 조금 벗어났다. 대신 그 자리를 악기의 새로운 음향이 채운다. ‘멜로디’보단 ‘사운드’에 더 중심을 둔 듯 보인다. 멤버들이 객석 중앙에 모여 있어, 심리적 거리도 더 멀다. ‘콘서트’를 기대하고 온 관객이었다면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명을 찾아 떠난 천문학자가 ‘물밑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 웅덩이’로 그 근원을 발견했듯이 이날치를 둘러싼 넘쳐나는 ‘관심 밑’ 이들이 진정 추구할 음악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서는, 여정을 떠나야 하는 관객의 몫이 남았다.

글 허서현 사진 LG아트센터

 


 

이희문(소리)/이태훈(기타)/김재호(베이스)/김다빈(드럼)

 

불운이 슬프기만 할쏘냐

이희문의 쏭폼스토리즈

‘강남 오아시스’

11월 4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주황 빛깔 정장에 잘 땋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소리꾼이 또각또각 걸어온다. 반반한 검은 정장에 상대를 내려다보는 무채색 포스터를 조소하듯, 붉은 조명 아래서 이희문은 유유히 노래에 맞추어 골반을 살랑였다. 공연 전 참사를 애도하였기에 관객은 다소 경직돼 있었지만, 빼어난 소리가 뻣뻣한 분위기를 풀어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재능인 걸까, 전통음악의 특징인 걸까.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인 아버지의 부재와 연고 없는 타지에서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의 노고는 슬프게 탄식해도 모자라지 않을 소재였으나, 객석에서는 웃음과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아픈 상처에 웃으며 이야기하는 광경은 그가 이미 과거를 극복했다는 걸 보여줬다. 과거는 이미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생명력 넘치는 ‘오아시스’이니 말이다.

‘오아시스’에서 터져 나온 줄기는 세 갈래로 갈라져, ‘어머니의 이야기’ ‘나의 기억’ ‘아버지가 해줄 이야기’로 흘렀다. 각 부분을 전환하는 방식으로 밴드 멤버의 아버지 이야기를 삽입하였는데, 아쉽게도 이는 보다 설명이 필요했다. 공연의 막바지에 화자를 바꾸어, 떠난 아버지로 이입하는 부분은 갑작스러웠으니. 그러나 불쾌가 아닌 유쾌를 다루는 게 이 소리꾼의 강점이다. 아버지에게 듣고 싶은 진심은 뚜렷이 전해져, 더 이상 쌓을 수 없는 유대임에도 아버지를 향한 그의 마음이 두터워지고 있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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