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술공간 거암아트홀의 기획자 피아니스트 허승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월 16일 9:00 오전

NEW Venue

피아니스트 허승연

새로운 가지를 뻗고, 기지개를 켜다

스위스·한국을 잇는 연주자에서 새 예술공간 거암아트홀의 기획자로 나서기까지

지난해 슈만의 작품을 담은 음반(Solo Musica) 발매 소식을 알렸던 허승연이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허승연은 현재 스위스 취리히 음악원 부총장과 아오이데 트리오의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팬데믹 때 스위스에 본사를 둔 ‘소누스아트’를 설립해 여전히 순항 중이다.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는 그녀에게서 또 다른 새로운 소식이라니. 다재다능한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에 다시 한번 힘이 실린다. 소누스아트는 지난해 12월 서울 신사역 인근에 개관한 거암아트홀의 위탁운영을 맡고 있다. 그의 음악적 생태계가 공연장 운영이라는 가지로 새롭게 뻗는 순간이다.

2020년 11월 기획사를 설립해 운영해 온 지도 벌써 2년째입니다.

코로나로 다들 문을 닫을 때 저희는 오히려 문을 열었어요. 저희 남편(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 미샤 그로일)은 오히려 역행이라고 좋아하더군요.(웃음) 한국과 스위스의 문화와 음악 교류를 위해 제가 더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스위스와 한국 두 곳에 지사를 열고 운영 중이에요. 이번에는 거암아트홀의 위탁운영을 맞게 되어 기쁩니다. 활동 폭이 또 한번 넓어진 것 같아요.

하지만 코로나 기간에는 공연에만 집중하기에도 굉장히 버거운 시기였잖아요. 오히려 활동 범위를 넓혀야겠다고 다짐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아버지가 편찮으시면서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유럽에 산 지도 40년이 되어 가는데, 아버지가 예술계에 남긴 공로를 이어가야겠다는 생각과 어머니까지 안 계시면 한국과의 연결고리마저 없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커다란 변화 앞에서

코로나 이후 한국과 유럽에서는 공연계가 어떤 양상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왕래가 쉬운 유럽과 달리 한국은 코로나 때 한반도에만 있었기에 오히려 기회였던 것 같아요. 해외 연주자들이 아닌 국내의 뛰어난 음악가들을 소개할 기회요. 연습실에서만 고립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무대를 만들면서 음악적 발전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코로나 이후 이들이 세계로 어떻게 뻗어나갈 것인가’입니다. 저는 유럽 연주자들과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앞으로의 기획 공연들에 반영이 될 것 같군요.

되면 너무 좋죠. 기획사를 세운 이유가 연주자들이 마음 편하게 연주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넘어서 스위스에서 많은 음악가들과 한국을 연결해 협업하는 꿈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국 음악가들도 점점 해외 페스티벌이나 무대에 세우는 게 목표입니다.

한국과 스위스는 올해 수교 60주년을 맞습니다. 이를 기념한 공연들이 올 한해 풍성할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오는 4월에는 수교 주년을 기념해 스위스 전통의 요들 듀오와 알프호른 듀오 등의 무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국에 스위스 전통 음악과 악기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스위스에서 활동하면서 스위스에 한국을 소개해 왔지만, 한국에 스위스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늘 있었어요. 오는 4월에 그 꿈을 이룹니다. 요들 듀오와 같은 스위스 전통의 공연을 한국에서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에요. 이번 무대를 위해 작곡가 다니엘 슈나이더에게 요들과 현악 4중주를 접목한 현대음악을 위촉했습니다. 아레테 콰르텟이 함께 초연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활동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있었을 지의 영향도 것 같습니다. 허참 선생님은 6남매 중 5자매를 예술인으로 키워내 ‘허트리오’를 끌어내며 국내 클래식 음악계를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로부터 예술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죠.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조언 중 지금도 힘이 되는 말은 무엇이었나요?

‘스스로 동굴을 들어가지 말고, 터널로 들어가라. 동굴은 나올 수 없지만 터널은 끝이 있다.’ 스위스에서 일하며 시기도 받고, 차별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입니다. 지금도 그 말이 저의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강조하셨던 건, 자신의 실력을 옳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알 때 나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셨습니다.

허트리오(바이올린 허희정·첼로 허윤정·피아노 허승연)가 창단되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 한국에는 어느 때보다 실내악 공연이 활발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실내악 발전과 변화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무엇을 가장 큰 변화로 꼽고 싶으신가요?

당시 대학 입학생 대부분은 솔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현재 국내에 많은 실내악단이 생기고 또 활동이 왕성한 건 긍정적입니다. 실내악이 발전할 수 있는 건, 모든 연주자가 비슷한 수준일 때 가능한데, 연주자가 고르게 성장했다는 것을 많은 실내악 무대가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갈수록 익어가는 음향

지난해 12월 거암아트홀이 개관했습니다. 지난 인터뷰에서 “굳이 큰 공연장에서만 관객을 만나는 것이 아닌 작은 공연장에서도 관객과 연주자가 긴밀한 소통하는 연주회를 기획하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는데요. 144석 규모의 공연장인 만큼 그 꿈을 실현하기에 좋은 환경을 비로소 갖춘 것 같습니다.

거암아트홀은 다른 공연장과 달리 관객과 아티스트가 친밀해질 수 있는 공연장입니다. 대형 공연장 특성상 음악가가 멀리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거암아트홀의 로비와 공연장 사이 동선도 짧고, 무대와 객석도 가깝습니다. 국내 거장 음악가들을 초청해 더욱 친밀하게 음악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습니다.

이러한 친밀한 소통이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거암아트홀이 갖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티켓을 검표하고 지정된 좌석에 앉을 때까지는 다른 대형 공연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형 공연장의 편견을 거암아트홀은 낮출 수 있을 겁니다. 막상 공연장에 왔는데 멀게만 느껴졌던 음악가가 가까이에 있고, 또 로비로 나와 관객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공연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도 낮춰줄 겁니다. 본격적인 개관에 앞서, 지난 11월 사전 공연을 했는데요. 타악기, 현악기, 관악기 편성의 공연들이 진행됐습니다.

사전 공연을 통해 보완해야 할 점과 홀의 장점이 잘 드러났던 공연은 무엇이었나요?

개관 공연으로 호르니스트 이석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끄는 ‘솔루스 오브 서울 브라스’의 연주를 듣고 금관 앙상블의 소리가 홀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요. 1주 뒤에 있었던 첼리스트 송영훈·심준호·조형준·이경준의 무대를 듣고, 그 사이에 홀이 여러 악기에 적응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공연장이다 보니, 습기도 빠지고 소리도 머금으면서 어느 편성에도 좋은 음향을 갖춰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월부터 3월까지 정비기간을 갖고, 4월부터 본격적인 공연들이 무대에 오를 텐데 그때는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 더불어 올해 피아니스트로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요?

아오이데 트리오(바이올린 클라이디 사하치, 첼로 사샤 노이스트로프·피아노 허승연)와 올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연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피아노 리사이틀이 스위스에서 예정되어 있습니다. 배우 로베르트 훙어 뵐러와 함께하는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소누스아트


허승연(1966~) 독일 하노버 음대를 졸업하고 쾰른 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2005년 발매한 리스트 ‘순례의 해’ 전집을 발표하며 화제를 모은바 있는 허승연은 현재 취리히 음악원 부총장, 기획사 소누스아트(SonusArts) 대표직을 맡고 있고, 허트리오와 아오이데(Aoide) 트리오 멤버로 활동 중이다. ————— 거암아트홀 (왼쪽부터) 첼리스트 송영훈·조형준·이경준·심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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