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야쿠프 흐루샤, 체코 르네상스를 향하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3월 10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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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

체코 르네상스를 향하여

3월, 독일 악단에 흐르는 뜨거운 피를 느껴볼 시간

©Marian Lenhard

내가 야쿠프 흐루샤(1981~)에게 관심 갖게 된 것은 한 장의 음반이 큰 역할을 했다.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여 2020년 발매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Accentus ACC40482)이었다. 오늘날 흐루샤와 함께 음악적 방향지시등을 체코 쪽으로 틀고 있는 밤베르크 심포니는 믹싱과 가공을 거치지 않고 소리가 곧바로 디스크에 새겨지는 아날로그 녹음 방식을 통해 한정판 LP로 이 음반을 세상에 내놓았다. 디지털 레코딩과 달리 녹음된 음원에 대한 후반 보정 작업은 전혀 허용되지 않는 바이닐(LP) 녹음은 어떤 가공도 허용하지 않기에 최고의 연주를 완성할 지휘자가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다. 흐루샤와 밤베르크 심포니는 최고의 기량을 뿜어내야 할 ‘순간’에, 체코의 음악적 ‘시간’을 담았던 것이다.

그의 체코 음악과 예술에 대한 사랑은 이처럼 남다르다.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서 날아온 메일에는 체코 음악가와 예술가들의 이름이 수두룩했다.

체코 르네상스를 위해 성장한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는 1981년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피아노와 트롬본을 공부했다. 지휘에 점차 관심을 두게 된 그는 프라하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지휘를 공부한다. 무엇보다 학생으로서 운이 좋았던 것은 재학하던 무렵에 훌륭한 교수진이었다. 체코의 음악 유산으로 20세기 오케스트라 지도를 다시 그린 라도밀 에리스카(1931~2019), 레오시 스바로프스키(1961~), 그리고 이르지 벨로흘라베크(1946~2017)가 교편을 잡고 있었다.

“벨로흐라베크는 평생 음악을 사랑하며 살았다. 지휘자라는 직업에 대한 그의 사랑, 젊은 세대에 대한 폭넓은 지원, 그리고 인간미가 결합된 지휘 교육은 그만의 장점이자 강점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지휘자의 역할과 지휘관이 뚜렷했다. 그래서 명확한 역할론과 지휘론을 학생들에게도 뚜렷이 전달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나는 많은 영감을 받았다.”

악기를 다루거나, 음표를 매만지는 작곡가 출신의 지휘자들과 달리 지휘로 직행했던 흐루샤는 지휘 콩쿠르에 출전했다. 2003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열린 로브로 폰 마타치치 지휘 콩쿠르였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흐루샤는 2004년 루돌피눔에서 졸업 연주회를 가졌다. 프라하 라디오 심포니와 함께 체코 작곡가 요제프 수크의 교향곡 2번 ‘아스라엘’로 음악적 정체성을 굳혔다.

다음 세대를 이을 체코 출신의 젊은 지휘자 공백기도 흐루샤에게 지렛대 역할을 했다. 여러 악단의 포디엄이 젊은 그를 반겼다. 스승 벨로흘라베크가 맡고 있던 체코 필의 부지휘자(2002~ 2005)를 시작으로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필하모닉(2005~2006) 수석지휘자를 맡았다.

프라하 필하모닉과 함께 본격적으로 체코 음악의 터를 닦았다. 흐루샤는 드보르자크와 수크의 음악들로 일관했다. 체코 필하모닉의 수석 객원지휘자(2005~2008) 시절에는 악단과 함께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담았고, 수석지휘자(2008~2015) 시기에도 방점은 역시 드보르자크에 찍었다. 마르티누, 스메타나로 폭을 넓히며 체코 음악의 차로를 넓혔다. 흐루샤의 음악적 색채가 짙어지고 뚜렷해지는 시기였다.

“체코는 인구 1천만 명에 불과한 나라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명성 있는 작곡가들을 나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예술가들의 활약이 컸던 이유는 14세기 카를 4세(체코어로는 카를) 이후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지 못했던 체코인들이 예술을 통해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며 고통과 절망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체코의 음악은 국경을 넘어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다. 순수하고, 단순하고, 민속풍의 음악들이다.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 마르티누 모두 체코의 민속문화와 음악을 자랑스럽게 드러낸 주인공들이다.”

체코 음악에 대한 ‘확신’과 ‘확산’

브람스-드보르자크 커플링 음반 (Tudor TUD1744)

2015년, 흐루샤는 다섯 번의 객원 지휘를 통해 밤베르크 심포니와 인연을 맺으며, 2016년부터 활약할 수석지휘자로 지명되었다. 그의 나이 34살 때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데뷔도 끝낸 상태였다.

독일의 밤베르크 심포니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불씨가 꺼져갈 무렵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쫓겨난 독일어권 음악가들이 설립했다. 그들이 독일로 나올 때 손에 들고 온 것은 악기뿐 아니라 체코의 음악 유산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밤베르크 심포니의 ‘보헤미안 사운드’를 빚는 데 중요한 상징 자본과 역사적 원천이 된다.

전임(前任) 수석 지휘자 조너선 노트는 악단의 재정 안정화와 더불어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음악감독 시절에 연마했던 현대음악에 대한 감각으로 ‘모던 밤베르크’를 만들었다. 이러한 시간을 바탕으로 입성한 흐루샤는 남달랐다. 그는 악단에 내재한 체코 음악의 유전자를 새롭게 조합하는 공학자이자, 체코와 독일의 음악적 색채를 조합하는 연금술사로 ‘체코 르네상스’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2016년 밤베르크 심포니와 공식 첫 음반을 통한 국제적인 선포에서도 그는 스메타나 ‘나의 조국’ (Tudor TUD7196)을 택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드보르자크와 브람스에 집중하고 있다. 일례로 교향곡 4번(브람스)과 교향곡 9번(드보르자크)이 나란히 담은 음반(Tuder TUD1744)이 있다. 두 곡 모두 ‘e단조’의 작품이다. 이를 통해 흐루샤는 똑같은 조성에서 추출한 독일과 체코의 음악적 정서는 무엇이 다르며, 또 무엇이 같은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드보르자크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을 사랑하고, 그의 작품은 이제 밤베르크 심포니의 핵심 레퍼토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보헤미안 사운드가 어떤 것인지 이 인터뷰에서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다. 하지만 이는 분명 내 기억과 체험에 스며 있으며, 이를 통해 이 소리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독일 악단이 그들에게 이상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내한에서 연주하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은 “생애 처음으로 지휘해본 풀 편성의 작품”이라며 “가장 친밀감을 느끼는 교향곡”이자, “밤베르크와 함께 연주할 때 아주 편안함을 느끼”는 작품이라 한다.

2025년부터 그의 행보는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도 새롭게 시작된다. 입성과 함께 그의 ‘체코 르네상스’는 성악가들의 노래와 함께 어떻게 시작될까.

“런던에서도 체코의 음악을 애써 소개하기보다는 지금과 같은 관심과 애정으로 일관하면 될 것 같다. 드보르자크의 ‘루살카’를 비롯하여 스메타나 ‘팔려간 신부’(참고로 이 오페라는 말러가 꼽은 3대 코믹 오페라 중 하나다), 마르티누 ‘줄리엣’과 ‘그리스 수난곡’ 등이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야나체크의 오페라도 독창성과 음악적 효과에서 뛰어나기에 나는 20세기 전반기를 이룬 오페라 천재로 야나체크, 푸치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꼽곤 한다.”

흐루샤는 현재 드보르자크 협회(The Dvořák Society)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그 협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좋고 협회의 일들을 대표하기 위해 나의 이름이 기분 좋게 쓰여 역시 기쁘다.”

‘확신’에 찬 믿음, ‘확산’의 힘으로 빚은 그의 지휘와 함께, 이제 드보르자크의 음악으로 빠져들 시간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사진 빈체로

 

야쿠프 흐루샤(1981~) 체코 출신으로 밤베르크 심포니 수석지휘자이자 체코 필과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지휘자다. 2025년부터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음악감독직을 맡는다.

 


Performance information

야쿠프 흐루샤/밤베르크 심포니(협연 김선욱)

3월 29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8일 대구콘서트하우스, 30일 경기아트센터

브루크너 교향적 전주곡, 슈만 피아노 협주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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