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연주자 진윤경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3월 13일 9:00 오전

SHE IS NOW

 

피리 연주자 진윤경

사유思惟와 여유餘裕 그 사이로 낸 피리의 길

현대인의 바쁜 일상에 조용히 내려놓는 국악. 그 느림의 미학을 찾아서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취태평지곡을 음반에 담는다는 진윤경의 전화였다. 그런데 그녀가 이 음악을 놓고 “조용히 산책하며 들어보라”고 했을 적에 조금은 놀랐다. 나는 정악을 이러한 주문과 함께 소개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도심 속 산책로를 걸을 기회가 생겼다. 겨울이었지만 따스한 햇살이 발걸음을 조금 늦춰도 되는 여유를 주었다. 그 자리에서 이어폰을 꽂으니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진윤경의 소리가 선을 그리고, 권은영의 거문고와 서수복의 장구가 묵직한 점을 찍는다. 그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을 보니 그들은 바쁘게 어디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주문이 주술적 주문(呪文)처럼 기능했던 것인지, 음악을 통해 뭔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2022년 진윤경은 김영길(아쟁), 이승희(해금)와 함께 제6회 사야국악상을 수상했다. 2014년 사야문화재단이 제정한 상으로 국악인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이 음반은 사야국악상의 부상으로 주어진 것이다. 어떤 곡을 어떻게 담을지는 그녀의 몫이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이 음악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뭔가를 계속 남기는 것 같다”는 진윤경은 음반을 기획할 때 늘 무엇과 무엇을 잇는 것을 좋아한다. 이 음반에 앞서 2022년 발매한 그녀의 여섯 번째 음반은 ‘피리, 고려가요와 정대업을 만나다’였다. 동그랗게 생겨, 마치 시작과 끝이 서로 닿아 있는 것처럼 생긴 음반에서 고려가요와 조선음악 정대업은 서로 머리와 꼬리를 맞물었다. 2020년 발매한 다섯 번째 음반 ‘1960 1970 피리산조’에서는 지영희, 이충선, 정재국의 피리산조가 진윤경의 피리를 통해 서로 이어졌다.

이처럼 진윤경은 음반에 특별한 연결고리를 넣어 음악과 음악을 잇고 엮는다. 이번 음반에서도 그녀의 이런 모습은 변함이 없었으니 바로 취태평지곡과 ‘사유’와 ‘산책’이 이어졌다. 사유와 산책? 뭔가 현실적이고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코드다.

이러한 선잇기가 이뤄진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참으로 바쁜 세대에 속하는 음악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십이라는 중년에 진입했다”는 그녀는 전통음악의 후예이자, 창작음악의 리더로서 여러 음악을 빚고, 가르치고, 나누고, 기록하고 있다. 삶의 여러 변화가 있지만 변하지 않은 딱 하나는 ‘음악가’라는 점이다. 음악가란, 자신만의 밀실에서 외롭게 단련하고, 무대라는 광장으로 나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다. 내향성이 없으면 밀실에 스스로를 감금시킬 수도 없고, 외향성이 없으면 사람들 앞에 내세울 수도 없다. 이 냉수와 온수를 오가는 가운데 음악가는 지친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어느 날 기억과 손끝에 배어 있는 취태평지곡이 위안의 음악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음반에 어떤 곡을 담을까 고민하던 중, 공연 차 ‘사유원’이라는 공간에 들린 적이 있다. 경북 군위군에 위치한 아름다운 수목원이었는데, 그곳의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그곳을 산책하면서 문득 중년의 초입에 들어선 나의 시간도 느껴졌다. 나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이 짙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느낌이 지금 이 음반에 담긴 취태평지곡으로 이어졌다.”

 

음악으로 평안을 얻는다는 것

취태평지곡(醉太平之曲)은 평조회상(平調會相)의 아명(雅名)이다. 평조회상은 향피리가 중심인 영산회상을 뜻한다. 정악곡마다 이러한 아명들이 붙곤 하는데, 그것에는 세인의 바람(바램)이 담겨 있다. 왕의 장수를 축원하며 밑도드리에 수연장지곡(壽延長之曲)이라는 아명을 붙인 것처럼. 역시 취태평(醉太平)이란 아명은 평온함을 취하라는 의미, 또 취하고 싶다는 현실 속에서 붙이고 붙은 아명일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대해서 찾아보던 중 ‘고려사’ 악지(樂志)에 수록된 가사의 하나로, 이별한 애인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여인의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취태평. 끙끙대고 고민하고 있소. 끙끙대고 고민하고 있소. 저는 요즈음 사람이 뇌까리는 말을 들었지만, 처음 먹었던 마음을 잊어버리라고요(醉太平 厭厭悶者 厭厭悶者 奴兒近日聽人咬 把初心忘却). 이별 앞의 여인은 ‘취태평’을 주문처럼 외우며 끙끙거린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취태평지곡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그 여인이 ‘취태평’하고 싶은 마음이나, 평조회상을 연주하던 선조가 ‘취태평’하고 싶은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에는 고민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일까. 취태평에는 태평(太平)함에 취(醉)하고 싶어 하는 희망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태평지곡은 정악(正樂)에 속하며, 선비들이 즐겼던 풍류음악이다. 오늘날에 전승을 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음악이 되면서 이들의 뜻과 정신은 다소 딱딱해졌지만, 그 가운데서도 연주자마다 부지런히 정악의 매력을 발견하고 있다. 정악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리고 정악에 녹아든 선조들의 지혜란 무엇일까?

피리는 소리가 크고 뚜렷하다. 그래서 정악에서 주로 골격 선율들을 연주하여 음악의 틀을 명료하게 잡는다. 그렇다 보니 여러 명이 연주할 때 섬세한 시김새를 절제하고, 요성도 굵게 하여 연주한다. 그래서 피리로 연주한 정악을 듣다보면 굵은 선이 쭉 그어지는 느낌이 들고, 그런 획이 지나간 자리에는 담담하고 덤덤한 느낌이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마다 나는 유교에서 중요시했던 중용(中庸)이란 것을 떠올려본다. 정악도 유교를 신봉했던 선비들의 음악이었으니, 이러한 중용의 정신이 짙게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이 음악을 통해 선조들과 대화도 나눠보곤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을 단단하게 혹은 덤덤하게 만들어주는 위로가 필요한데, 선조들이 이런 음악을 즐겨 연주했고, 이 곡들을 담은 고악보가 오늘날에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때의 그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마음가짐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음악으로 평안을 얻는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중음악이나 영산회상 같은 풍류는 오늘날 ‘정악’이라는 장르로 묶인다. 궁중에서의 정악이 있고, 선비들의 풍류로서의 정악이 있는데, 공통되는 미학이나 혹은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정악이란 근대기에 전통음악이 재정립되면서 생긴 용어이고, 오늘날 ‘정악’이라고 한다면 정악보(正樂譜)에 수록된 음악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선비들이 즐긴 정악에는 동아시아 유교사상의 핵심인 중용(中庸)의 정신이 녹아 들어가 있다. 맑지도, 그렇다고 탁하지도 않은 상태가 가장 좋은 상태라는 그 중간에 대한 예찬이다. 그 개념을 음악적으로 풀어낸 것이 선비들의 정악이었다. 연주 형식도 다르다. 궁중 정악은 대편성으로 연주하고, 풍류로서의 정악은 단잽이(1인 연주자) 형태로 연주되는데, 후자가 더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선율과 음악을 구현한다. 궁중 정악은 ‘합’을 맞추기 위해 복잡한 가락이 절제된 반면, 단잽이가 연주하는 풍류 정악은 개인의 기량을 녹여 넣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기량과 기교에 따른 변주가 더 들어가고, 다 같이 맞춰야 하는 박자로부터도 훨씬 자유롭다.

 

멋을 불어 넣고, 생각의 옷을 입힌 진윤경표 정악

영산회상, 즉 취태평지곡에는 해탄 가락이 들어간다. 해탄(解彈)이란 원 가락을 변주하는 것을 뜻하며 이를 ‘풀가락’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정악(正樂)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르다’라는 뜻의 정(正)자로부터 온다. 왜냐하면 해탄 가락에 의해 음악은 정자체와 정자세를 기분 좋게 풀어 헤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유구(1764~1845)가 지은 ‘유예지(遊藝志)’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삼현도드리를 반복 연주하는 것이 지루하여 4도 아래로 변주(解彈)하였다.” 하여 정악이란 딱딱한 음악이 아니다. 차가운 음악도 아니다. 격자의 음악도 아니다. 그래서 인간의 감정(情)이 바를 정(正)자의 격자를 뚫고 들어가 녹아들기도 한다. 진윤경도 취태평지곡에 자신만의 음악적 설정과 주관을 녹여 넣기 위해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담았다.

 

진윤경의 음반 ‘취태평지고’

영산회상은 풍류방의 음악이었고, 음악가로 변모한 선비들이 그 방에서 음악으로 서로 소통했다. 그런 점에서 영산회상은 지음(知音)이 중요한 음악이다. 이번 음반에서 함께 한 권은영 부산대 교수, 서수복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과는 어떤 인연을 갖고 있나?

2022년 사야국악상을 수상했을 때 나는 부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사야국악상은 경상권의 국악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시상하는데, 이때 부산대 교수로서 수상했다. 연주를 함께 한 권은영 교수님은 부산대 재직 시 좋은 선배 교수이자 동료였다. 물욕도 없으시고, 산과 자연을 좋아하시고, 식물을 사랑하는 그는 한마디로 신선 같은 사람이었고, 그러한 그녀의 삶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영산회상은 음악적인 소통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교류와 소통도 중요하다. 그래서 함께 연주하고 싶어 제안했다. 권은영 교수님과 ‘진한’ 인연이라면, 서수복 선생과는 ‘깊은’ 인연이다. 대학 시절에 국립청소년국악관현악단에서 함께 활동했고, 이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재직 시절(2005~2018)에도 늘 한 무대에 함께 올랐다. 여러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연주단체 정음회를 통해 정악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호흡하는 음악가다. 이렇게 셋이 모여 하루 동안 풍류를 즐겼다.

취태평지곡으로부터 여유의 감정과 감각을 끌어내기 위해 음악적으로 설정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취태평지곡은 평조회상과 마찬가지로 중심음(宮)을 E♭조나 그보다 높이 잡곤 하는데, 이번에는 중심음을 2도 낮추어 연주해보았다. 때로는 째지는 소리도 나곤 하는데, 중심음을 낮추니 뭔지 모를 여유가 소리에 담기는 듯했다. 쨍쨍한 주장보다는 흥얼흥얼, 혹은 웅얼거리는 가운데 뭔지 모를 편안한 느낌도 들었다.

정악은 악보에 기록된 음악이고 이를 위해 감정보다는 객관의 옷을 입은 음악인데, 여기에 자신만의 주관과 변화를 입힌다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인가?

한국예술영재교육원(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재국 명인(국가무형문화재 피리정악 및 대취타 예능보유자)을 사사하면서 배운 게 있다. 피리를 인생의 업으로 삼는다는 게 참 ‘멋’진 일이라는 것을 배웠고, 연주에도 ‘멋’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승께서 상령산풀이를 연주하시고 ‘윤경아, 정악도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멋을 부리면 참 좋은 음악이고 듣기 좋단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역사와 기록을 찾아보더라도 1920년대의 정악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웠고 정형화된 옷을 많이 걸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정악에 여러 변주와 설정을 녹여 넣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 녹음에서도 이를 위해 지금까지 나와 있는 여러 피리 정악들의 사이와 차이를 탐색하곤 했다.

사유하고 산책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으로 추천했다. 그런 점에서 ‘진윤경의 정악 사용법’ 혹은 ‘진윤경의 취태평지곡 활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음악가의 이러한 추천에 의해 정악은 이 시대에도 잊혀지지 않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물어본다.

삼백 여년의 시간을 지나온 몇 안 되는 음악 중 하나다. 이러한 시간이 말해주듯 많은 사랑을 받다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그 모양새도 많이 바뀌었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입시곡이 되었고, 무조건 외워야 하는 곡이 되기도 했다. 혹은 공연장에서 숨 참고 들어야 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이게 오늘날 정악의 현주소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 음악을 배우고 공부했다. 하지만 이 음악은 선조들이 살았던 자연 속에서 연주된 음악이다. 그들이 모여 연주했던 한옥은 자연의 바람과 소리가 드나들던 열린 공간이었고, 이 음악도 그런 삶이 반영되어서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여백이 살아 있다. 음악이란 소리와 음표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소리와 소리 사이의 빈 공간에 숨 쉬는 여유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여유와 여백을 우리는 일상에서 부지런히 찾으려고 노력한다. 마음의 여유, 빽빽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이 주는 느슨한 여유. 소위 말하는 ‘불멍’도 빡빡한 정신을 불꽃 앞에 녹이는 시간이고. 취태평지곡을 녹음하면서 음악에 담긴 이러한 성향이 내 시간과 삶에도 녹아들었고, 역으로 음악에도 나의 시간과 상태가 녹아들었다. 결국 연주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그가 겪는 감정과 마음의 반영이 안 될 수가 없다. 녹음할 때 개인적으로 답답한 일들도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오늘날의 현대인처럼 여러 장르의 음악을 찾아들을 수 있었겠지만 내게 다가온 것은 이 음악이었다. 정악도, 취태평지곡도 오늘날의 고민을 녹이고 향유할 수 있는 생활 음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이 음악은 세상의 다양한 음악 중에서 굳이 잊혀질 음악은 아닌 것 같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진윤경(1983~) 국립국악고·한국예술종합학교(학사)·서울대 대학원(석사)·한국학중앙연구원(박사)에서 수학했다. 정악·산조·창작곡을 담은 여섯 장의 음반과 2종의 저서를 발행했다. 부산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진윤경 피리 렉쳐 콘서트

‘북한의 피리와 한민족 음악의 디아스포라’

3월 2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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