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공연수첩”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5월 1일 9:00 오전

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Editor’s Note

 

세 개의 컨트롤 타워

‘김두민의 얼굴’Ⅰ-김두민·이지혜·이한나

4월 6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연세

피아니스트는 바흐의 작품을 연주할 때, 하나의 ‘컨트롤 타워’가 되어 복잡하게 얽힌 선율을 통제하고, 정리한다. 그리고 주제에서 나온 감정의 연결고리를 각 선율에 전달한다. 만약 그 컨트롤 타워가 세 개라면?

첼리스트 김두민은 ‘김두민의 얼굴’이라는 시리즈의 첫 공연으로 독특한 공연을 기획했다.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현악 3중주 버전으로 선보인 것.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1954~)의 현악 3중주를 위한 편곡으로 새롭게 태어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98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초연되었다. 김두민을 필두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비올리스트 이한나가 앙상블을 이루었다.

현악 3중주에서 바이올린 한 대가 누락된 편성은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세 명이 주도하는 독립적인 각 성부는, 한 명이 떠안아야 했던 부담감을 나누어 가졌다. 확실한 건, 손가락의 속주보다 현악기의 보잉이 더 안정적이고 민첩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관객은 작품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고, 서로의 선율에 기대어 음악을 이어가는 연주자의 애틋함도 느꼈다.

이음매 없이 나른한 아리아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어지는 제1변주에서는 현을 깊이 눌러 퉁겨지는 탄성으로 소리를 이었다. 피아노 속 해머가 현을 때리는 탄성보다, 활이 현을 당기는 탄성이 훨씬 격정적으로 느껴졌다.

상행 선율은 하행하는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에 매끄럽게 넘겨주었다. 속주에서는 선율이 궤도를 이탈할 여지가 보였지만, 이지혜가 서두르는 연주자를 자신의 템포로 끌어왔다. 김두민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했듯, 앙상블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다. 2004년부터 2022년까지 뒤셀도르프 심포니의 수석을 역임한 그만의 앙상블 능력과 이해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나서지 않고, 선율이 지나도록 길을 여는 친절함이 돋보였다. 첼로가 나서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가 피치카토나 베이스 선율로 박자를 잡아가야 할 때는 지휘자의 면모로 음악을 다듬어 갔다.

5월 25일은 ‘김두민의 얼굴’ 시리즈 중 두 번째 시간이다.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함께 브리튼·드뷔시·슈베르트·보케리니의 첼로 소나타를 선보인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두 연주자이기에 능숙한 호흡이 기대된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어색함이 주는 전율

양인모·김다솔 듀오 리사이틀

4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을 감상한 후, 프로그램 노트에 적혀있는 양인모의 글이 더욱 눈길을 끈다. “‘오늘은 꼭 그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어’라고 마음먹고, 그것을 가장 매끈하게 전달할 방법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리허설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이런 어색한 순간들은 우리의 기억에 스며들어 우리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말해줍니다.” 머릿속으로 이상향을 그리고, 뜻대로 되길 바라지만 결국 좌절되는 경험. 우리의 일상, 그 자체이다.

자신들의 공연을 예견해 쓴 글은 아니겠지만, 공연에 대한 감상이 이와 같았다. 먼저, 직설적으로 말하면 양인모와 김다솔의 조합에서 음색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김다솔의 피아노 음색은 안개같이 부드러운데, 양인모의 바이올린 음색은 매끈하게 닦아놓은 금속 같아서 서로 어우러지지 않았다. 브람스 소나타 1번 Op.78을 연주할 때, 다이내믹이 넓어져야 하는데 피아노가 따라오지 않았다거나, 바이올린이 반주 역할을 해야 하는데 주인공처럼 들렸던 것은 그들이 이 작품을 잘 해석하지 못했거나 연습이 충분치 못했다는 인상이 아니라, 각자의 스타일에서 함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연주자들의 모습처럼 비춰졌다. 2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 Op.30-2를 연주할 때, 1부의 아쉬운 점이 꽤 보완됐다는 것이 그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베베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작품 Op.7과 베아트 푸러(1954~)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을 연주할 때는 그들의 음악적 담화가 확실히 달랐다. 베베른의 각 작품은 하나의 특성을 짧은 시간 동안 간결하게 발표하는 것이 특징인데, 처음 작품을 듣는 청자도 그 특성이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써낼 수 있을 만큼 효과 있게 전달했다. 베아트 푸러의 기악 가곡을 연주하기 위해 양인모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위치하는 피아노 건반 옆이 아니라, 성악가가 무대에 서는 피아노 뚜껑 쪽으로 이동한 섬세함이 놀라웠다. 그 작은 차이가 바이올린 소리를 더욱 성악답게 바꿔주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멘델스존의 무언가 Op.109, 바그너의 소품집, 포레의 뱃노래, 프란츠 리스의 ‘라 카프리치오사’는 짧은 순간에도 각각의 페르소나로 갈아입은 듯 연주해 탄성이 터져 나왔다. 둘의 조합이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공연은 아니었지만, 작품을 표현해내려는 꾸준한 섬세함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충분히 알려주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크레디아

 

화려한 2시간짜리 예고편

연극 ‘파우스트’

3.31~4.29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홀

고전은 길고 어렵다. ‘고전만한 것이 없다’는 고전 찬가를 외친다 해도, 1분짜리 플랫폼이 일상인 생활에선 공허한 메아리다. 하물며 괴테가 60년에 걸쳐 쓴 선과 악에 대한 희곡은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읽혀야 하는 것은 읽혀야만 한다. 인류 유산의 위대함은 지금의 나를 더 나은 존재로 가늠하게 할 테니까. 고로 연극 ‘파우스트’는 고군분투한다. ‘고전 부활시키기’ 전문가 양정웅이 연출을 맡았고, 방송에서 주가를 올린 배우 박해수가 투입됐다. 현장은 그의 유행어 ‘식사는 잡쉈어?’를 듣고 싶은 관객들로 붐볐다.

극은 관객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은유가 가득한 괴테의 문장들은 훌륭한 앙상블을 이룬 조연 배우들, 무용·마술 효과 등의 시시각각 변하는 요소, 몰입도 높은 음악(음악감독 장영규)으로 지루하지 않게 배분됐다. LED 스크린으로 무대 뒤 연기를 송출하는 시네마 시어터 기술도 선보인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적절한 조합을 이룬다. 유인촌(파우스트 역)의 노련한 호흡은 문장 그 자체의 무게를 담았고,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박해수(메피스토 역)의 직관적인 연기는 극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끌어냈다. 후반부에선 박은석(젊은 파우스트 역)이 유인촌의 무게를 이어받았고, 원진아(그레첸 역)는 연속되는 연기의 자극 속에 쉴 틈이 된다. 어려운 단어와 문장을 ‘한바탕 연극으로 풀어보겠다’던 연출가의 의지는 극 곳곳에 최선을 다해 녹아들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파우스트’는 장장 165분을 달려낸다. 60년에 걸쳐 완성한 창작물을 두 시간의 무대로 만들어 냈으니 엄청난 압축이다. 원작의 1막만을 다뤘는데도, 생략은 불가피하다. 제 손으로 아이까지 죽게 한 그레첸의 서사를 잠깐 놓치자, ‘굳이 이렇게까지 괴로울 이유가 없어’ 보인다. 장면은 눈길을 사로잡지만, 플롯이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본디 예고편의 목적은 궁금증 유발이다. 예고편에는 영화의 모든 스토리가 담기지도, 그 결말을 알 수도 없다. 화려한 장면과 멋진 대사가 군데군데 짜깁기 되어있을 뿐이다. 연극 ‘파우스트’는 괴테의 희곡에 대한 ‘2시간짜리 예고편’이다. 이 한 번의 관람으로 우리는 파우스트를 모두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1분짜리 영상이 아닌 60년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LG아트센터·샘컴퍼니·ARTEC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대가

뮤지컬 ‘인터뷰’

3.4~5.28 예스24스테이지 2관

띵동, 베스트셀러 작가 유진 킴(정성일 분)의 사무실에 작가 지망생 고든 싱클레어(손유동 분)가 찾아온다. 띵동, 띵동. 벨이 세 번 울리고, 그들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차분하게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는 싱클레어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로 점점 고조된다. 그리고 보조 작가를 뽑기 위한 인터뷰는 추리소설 ‘인형의 죽음’으로 알려진 오필리어 살인범을 찾기 위한 인터뷰로 바뀐다. 시시각각 변하는 싱클레어의 모습과 함께 그의 흩어진 기억 속 파편들이 하나씩 퍼즐을 맞춰가고, 관객 역시 긴박한 호흡에 맞춰 그의 기억을 쫓는다.

창작 뮤지컬 ‘인터뷰’(연출 추정화, 작곡 허수현)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을 겪은 싱클레어의 ‘해리성 정체 장애’로 인해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다. 해리(解離)는 ‘떨어져 풀어진다’는 뜻으로, 한 사람의 인격에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다중 자아가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무대 위 등장하는 인물은 유진 킴과 싱클레어 그리고 싱클레어의 누이 조안(박새힘 분)까지 단 세 명뿐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1인 2역 이상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몸짓과 노래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극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노 한 대의 연주(피아니스트 양찬영)로 이어진다. 전반적으로 스산하고 외로운 느낌을 주지만, ‘자장가’ ‘조안의 이야기’ 등 서정적인 가사로 이뤄진 넘버들은 불행했던 어린 시절, 서로를 돌보며 “사랑 중 사랑으로 사랑했던” 싱클레어 남매의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극은 후반부에 이르러 유진 킴의 목소리로 싱클레어와의 만남에 숨겨진 진짜 목적을 밝히며, 폭력을 묵인하고 눈 감아 버린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발한다. 그러나 폭력을 겪은 피해자 모두가 이러한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조각낸 괴물이 되어버린 싱클레어의 서사는 피해자를 지워냈다. 폭력으로 얼룩진 수면 아래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마음을 조금 더 섬세하게 들여다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띵동, 또 다시 벨이 세 번 울리고 싱클레어가 찾아온다. 그는 누구이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이제 우리는 문을 열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MARK923

 

통영국제음악제 3.31~4.9 스케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만 같이

파치 앙상블 ‘플렉트럼과 타악기 춤’

4월 1일 오후 5시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

해리 파치(1901~1974)는 미국 작곡가이자 이론가로, 본인이 직접 만든 악기로 작곡을 해 이름을 알렸다. 한 옥타브를 43개 음으로 나누는 악기를 만드는 등, 미분음의 극단적인 실험을 보였다. 덕분에 무대 위에는 난생처음 보는 악기가 가득했다. 몇몇은 악기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마림바 또는 덜시머와 유사해 보이기도 했지만, 각 조각을 미분음으로 구성해놨기 때문에, 그와 같은 소리를 기대해서는 안 됐다.

이를 연주하는 ‘파치 앙상블’은 해리 파치의 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단체이다. 1991년에 해리 파치와 더불어 작곡가 루 해리슨(1917~2003)의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처음 결성됐으며, 2004년 디즈니 홀에서 해리 파치의 ‘비터 뮤직’ 초연, 2005년에 해리 파치의 12번째 악기를 완성하면서 ‘파치 앙상블’이라는 이름으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즉, 해리 파치 음악을 실황으로 감상하는 데 이 앙상블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하다. 이날 연주하는 두 곡은 모두 한국 초연이었으며, ‘초연’이라는 단어는 이 앙상블에겐 일상일 것이다.

첫 곡은 ‘모래 언덕의 다프네’로 나무 음색의 빠르고 일정한 리듬 위에 다양한 소리를 쌓는 방식으로 도입한다. 이 일정한 리듬은 음정이 조금씩 변하거나, 다른 악기로 연주되기도 하지만, 큰 변동 없이 곡 전체를 관통하여 작품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 리듬은 중간에 끊어지곤 하는데, 이것으로 작품의 형식을 판단할 수 있다. 중간에 침범하는 다른 리듬은 금속성의 음색을 가져, 각 부분을 더욱 구분했다. 제목을 통해 이 구분되는 소리가 각각 아폴론과 다프네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모래 언덕 위의 다프네가 제대로 뿌리를 내렸을지는 갑작스럽게 끝나버리는 곡의 종지에 대한 각자의 해석에 달렸을 것이다.

공연명과 같은 이름인 ‘플렉트럼과 타악기 춤’은 조명·무용·무대연출이 함께하는 작품이지만, 이날의 공연은 무용 없이 연주로만 진행됐다. 총 3부로 나누어지며, 2부와 3부에는 가사가 있다. 그러나 가사는 영어와 불어가 섞여 있으며, 말라르메의 시나 이상의 시를 읽듯 어렴풋한 인상을 줄 뿐, 그 문장을 말끔히 이해하기 어렵다. 구조를 탈피한 악기와 구조를 탈피한 가사, 무대를 종횡무진으로 가르며 분주히 악기를 두드리는 연주자들. 모든 것이 형식과 구조를 무너뜨리고 순간의 인상만을 꾸준히 내비치는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관습적인 장·단조 구조를 완전히 탈피하니, 모든 소리가 낯설어 음악에서 특정한 감정인 기쁨·슬픔·분노 등을 읽을 수가 없었다. 처음 배우는 언어를 듣고 있는 낯섦. 그러나 낯섦의 연속이 한 시간 동안 이어지니 이에 적응하여 회전하기 시작하는 머릿속 여러 생각은 이 공연의 가치가 ‘관객으로서 경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전해주었다.

글 이의정 기자

 

낯선 제목, 익숙한 선율

홍석원/국립심포니 (협연 마티아스 괴르네)

4월 1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홍석원/국립심포니는 축제의 이튿날,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했다. 드보르자크의 ‘정오의 마녀’를 포함해,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과 국내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말러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가 공연을 장식했다. 익숙한 작곡가들의 낯선 곡. 통영국제음악제이기에 가능한 조합이다.

1부의 공연은 서사가 명확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잔혹동화에 기반한 ‘정오의 마녀’와 뵈클린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고, 곡 제목도 동명으로 붙인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이 무대에 올랐다. 국립심포니로서는 두 작품 다 영리한 선택이었다. 자칫 2부 괴르네의 등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뺏길 수 있었지만, 오페라와 발레 작품으로 단련된 국립심포니의 유연한 연주가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카펠마이스터(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롤 오페라극장) 경력에 빛나는 홍석원의 지휘는 대본 없는 오페라에 가사와 연기를 입히듯 작품의 서사를 이끌어갔다. 괴르네가 노래한 말러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는 소프라노와 바리톤을 위한 가곡으로 동명의 독일 민담시집의 시를 가사로 했다. 수록된 가곡 가운데 상당수가 말러 자신의 교향곡에 사용되었다. ‘물고기에 설교하는 파두아의 성 안토니우스’와 이번 무대에서 만났던 ‘근원의 빛’은 말러의 교향곡 2번에 사용되었고, ‘세 천사가 노래한다’는 교향곡 3번에 쓰였다. 이번 무대는 그 중 ‘아름다운 트럼펫 소리 울리는 곳’ ‘지상의 삶’ ‘북치는 소년’ 등 여섯 곡을 발췌해 노래했다.

괴르네는 친절한 성악가였다. 시어에 어울리는 음색과 함께 그에 걸맞은 동작과 표정이 따라온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배포된 가사집이 있었지만, 통영의 다채로운 봄의 풍경만큼이나 풍부한 그의 묘사가 시어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게 했다. 가사에 인물과 해설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각 인물에 어울리는 괴르네의 오페라적 묘사가 돋보이는 무대였다. 글 임원빈 기자

 

시간에 통제된 미술, 행위에 통제된 음악

‘온드레이 아다멕: 디너’

4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

5시 공연을 앞두고 여유 있게 음악당에 들어섰다. 3시부터 시작한 카운터테너 김강민과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공연이 콘서트홀 로비에 중계되고 있다. 아름다운 미성의 노랫자락이 지나치는 발걸음을 잡는다. 몇몇 관객은 아예 걸음을 멈추고 모니터로 공연을 감상 중이다. 그중 조금 있을 자신의 공연을 앞두고 핀 마이크를 착용한 작곡가 온드레이 아다멕(1979~)의 모습도 보인다. 음악제 기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통영국제음악제’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현장을 방문하고자 상주 음악가의 공연을 택했다. 8일 공연에서는 그가 직접 진공청소기 두 개를 합쳐 개발한 ‘에어머신’을 활용한 작품 ‘특히 희거나 검은 결과물’, 그리고 ‘디너’를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마주한 ‘에어머신’은 미디 키보드로 조작되는 긴박한 리듬감, 분주하게 움직이는 연주자의 퍼포먼스가 돋보였다. 연주자 로메오 콩테이로는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구성에 때에 맞춰 다양한 음색의 도구를 갈아 끼운다. 목·금관 악기부터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케 하는 음색, 장난감 같은 트럼펫이나 소리가 나는 돼지 모형 인형도 등장한다.

이날 온드레이 아다멕 작품의 공통점을 찾자면 ‘현대음악을 모를 관객에게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어진 ‘디너’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음악은 다짜고짜 실험적 구성을 들이밀지 않는다. 테이블보를 쓸어내리는 소리에서 시작해 숟가락의 부딪힘, 잔에 물을 따르는 소리 등 일상적인 행위에서 시작해 점차 치밀한 음악적 구성을 더해간다. 음악은 화가 샤를로트 기베의 움직임에 맞춰 시작된다. 그녀는 식사를 통제하는 웨이터였다가, 영상이 비친 흰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퍼포머가 되기도 한다. 이 친절한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음악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음향적 구조를 구축해 들려주고 있다. 총 5막으로 구성된 저녁 식사는 음악적으로 4막 ‘밤, 조명 속의 얼굴’에서 클라이맥스를 보여준다. 식탁의 구성원이었던 앙상블 모데른은 자리를 이동해 악기를 본격적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현악기부터 금관·피아노·하프·타악기까지 그 악기 구성도 다양하다. 5막은 다시 식탁의 자리로 모두가 돌아온다. 흰색에서 시작된 테이블에는 색색깔의 물감이 담긴 그릇들이 놓여있다. 공연은 연주자들이 일어서 접시를 앞으로 쏟아내며 끝이 난다. 시각적 효과, 극적 요소가 음악과 잘 버무려진 만족스러운 한 끼의 식사였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지중배/경기필하모닉(협연 에스메 콰르텟)

음악이 스스로 말하도록

4월 14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국내 주요 관현악단으로서 많은 주목을 받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큰 신뢰를 얻고 있는 지휘자 지중배(1982~)와 함께 ‘마스터피스’ 시리즈 중 여섯 번째 공연을 선보였다. 이 공연에서는 ‘환상교향곡’ 등 베를리오즈(1803~1869)의 작품과 함께 존 애덤스(1947~)의 ‘완벽한 농담’을 연주하여 더욱 흥미를 끌었다.

현악 4중주와 관현악을 위한 ‘완벽한 농담’에서는 네 현악기의 완벽한 조화를 일깨워주고 있는 에스메 콰르텟이 협연했다. 최근 공석이 된 비올라는 샌프란시스코 음악원 교수인 디미트리 무라스가 대신했다. 작곡가 존 애덤스는 10대 시절부터 재즈와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활동했으나, 27세 때에 스티브 라이히(1936~)의 음악을 듣고 미니멀리즘만의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30대가 된 197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며 포스트-미니멀리즘 음악으로서 큰 주목을 받았다. 요즘에는 다양한 주제 선율로 극적인 내러티브를 만드는 등 미니멀리즘의 전형으로부터 한참 멀어졌지만, 제스처와 리듬의 반복으로 감성을 고조시키는 전개 방식은 여전하다.

‘완벽한 농담’(2012)은 바로 이러한 특징을 가진 작품이다. 애덤스는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 모음곡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의 작품은 이 곡과 지향점이 매우 다르다. 베토벤의 여러 작품에서 단편을 가져와 풍자적인 제스처로 취급하여 완전히 새로운 서사를 구성했기에, 경기필의 이번 연주에서는 베토벤의 인상보다 애덤스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한 것은 합당한 선택이었다. 에스메 콰르텟은 대조되는 두 정서를 격정과 나른함의 대비로 풀어가면서 현악 4중주로서 보기 드문 과감하고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어떠한 흐트러짐도 없는 네 악기의 호흡으로 관현악에 대등하게 맞섰다. 경기필은 이 곡이 집착하는 부점 리듬에서 에너지를 얻어 추진력을 잃지 않고 나아가며 분위기를 점차 고조시켰다. 하지만 절정의 환희에 이르기에는 다소 부족했는데, 정교함이 필요한 이 작품에서 감정을 충분히 부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완벽한 농담’에 앞서 공연의 서곡으로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와, 2부에서는 ‘환상교향곡’이 연주되었다. 베를리오즈는 악기를 통해 문학적 서사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교향곡’이라는 제목을 붙였음에도 절대음악과 음악적 표현이 매우 다르다. ‘로마의 사육제’는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 중 사육제 장면의 주제를 활용하여 만든 관현악 서곡으로, 경기필은 이 작품에 내재하여 있는 사육제의 디오니소스적 성격을 한껏 펼쳐 보였다.

‘환상교향곡’은 기악으로 서사를 풀어가는 대표적인 표제음악으로, 베를리오즈는 다양한 장치를 넣어 음악이 말하는 동안 감상자가 상상 속에서 장면을 그려보도록 했다. 따라서 음악적인 특징을 먼저 부각하여 감상자가 이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중배가 지휘하는 경기필은 이러한 독특한 의도에 중점을 두고 각 부분의 성격을 준수하게 드러냈다. 간혹 일부 섬세한 부분에서 앙상블이 고르지 않고 음악적인 표현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장면을 서술하는 특징적인 제스처를 명확히 드러내어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경기아트센터

 

백혜선 피아노 독주회

중견 피아니스트의 ‘지금’을 전시한 현명한 레퍼토리

4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인생이든 일이든 시작과 끝에 주목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더 세심히 살펴야 할 것은 그 중간 ‘과정’이다. 이른바 ‘중간 점검’인데, 삶은 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에 나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피아니스트 백혜선(1965~)의 이번 독주회(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특별 음악회)는 원숙기에 들어선 자신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고 미래를 점치는, 의미 있는 중간 점검의 자리였다.

음악회 제목 ‘온고지신, 새로운 탐구와 노스탤지어’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전반부는 모차르트와 함께 여성 음악가로서의 정체성 중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이색적인 분위기의 프로그램을, 후반부는 러시안 피아니즘의 대표작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통해 그녀를 줄곧 지지해 온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추억을 제공했다.

첫 곡 ‘스냅사진’(한국 초연)의 작곡가인 플로렌스 프라이스(1887~1953)는 20세기 초 여성 작곡가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든 선구자적 인물 중 하나다. 연주 전 백혜선은 직접 흑인 여성 음악가로 살아 온 작곡가의 삶을 설명했다. 프라이스의 작품에서 백혜선은 드뷔시에 한껏 경도된 프라이스의 영감 속 감성을 차분하게 표현했다.

인상파적 소재를 통해 그려낸 작곡가의 상념은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프레이징으로 정돈되었으며, 밝고 건강하게 마무리되었다. 이어진 모차르트의 소나타 15번 K533은 연주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타로 밝힌 만큼 사려 깊은 시선과 애정으로 소중히 새기듯 연주되었다. 여유와 격조가 느껴지는 템포와 뉘앙스가 전곡에서 풍겨 나왔는데, 표면적인 미감보다는 모차르트적인 대위법의 아기자기함을 강조한 1악장과 조리 있는 구성 감각을 통해 고전파적 매력을 설명한 2악장, 사색적인 아름다움과 화성 변화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깔끔한 다이내믹으로 나타낸 3악장 등 백혜선은 전 악장에서 탁월한 균형감각을 보였다.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한 서주리(1981~)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봄’은 이날이 세계 초연으로, 백혜선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네 악장으로 이루어진 소나타의 각 악장은 우리나라의 사계를 상징하며, 에필로그처럼 뒤따르는 마지막 섹션은 친숙한 가곡 ‘고향의 봄’을 넣어 변주 형식을 지닌 작품의 뿌리를 깨닫게 했다. 백혜선은 피아노의 색채감을 살리는 동시에 묘사하려는 대상의 은유적 표현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작품 전체를 감도는 훈훈한 인간미는 악보를 세밀히 연구하고 느낀 연주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분위기였다.

후반부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연주와 전람회가 함께 이루어지는 연출로, 하르트만과 칸딘스키의 작품, 그 외 작품명과 일치되는 그래픽 등이 중앙 모니터에 번갈아 등장했다. 국민음악파 작품 특유의 소박하고 토속적인 색채감과 함께 백혜선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 것은 긴 호흡으로 나타낸 여유로운 선율미, 그리고 리스트적이라 할 수 있는 낭만 피아니즘의 비르투오시티였다. 단단한 심지가 느껴진 프롬나드와 정교한 기교가 돋보인 ‘리모주의 시장’, 음산한 분위기와 슬픔의 정서를 동시에 나타낸 ‘카타콤’과 넉넉한 연주력으로 거대한 스케일을 단숨에 정복하듯 소화한 ‘키예프의 성문’ 등은 우리가 늘 사랑해 온 비르투오소 백혜선이 여전히 믿음직스럽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예술의전당

 

OPERA

서울시오페라단 ‘마술피리’

‘징슈필’에 방점 찍고 만든 가족 오페라

3월 31일~4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박혜진(예술감독)/이병욱(지휘)/연출(조수현)/김순영·황수미(파미나)/박성근·김건우(타미노)/유성녀·김효영(밤의여왕)/이철민·이준석(자라스트로)/ 양준모·김기훈(파파게노)/신혜리·김동연(파파게나) 외

 

오페라보다 ‘오페라의 유령’을 자주 봐서 그랬을까? 오페라 ‘마술피리’가 새삼스러우니 말이다. 넓은 무대를 악기의 연주와 가수의 노래만으로 넉넉히 채우는 것도 그렇고, 대사는 우리말인데 노래는 독일어인 것도 그렇다. 배우의 발성보다 마이크의 음량에 익숙했던 공간에서 온전히 소리로 듣는 음악은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들더라. 하지만 오페라의 진짜 재미는 보는 데 있다. 오페라는 무대연출과 함께 발전해온 장르이기에 더 그렇다.

특히나 ‘마술피리’는 다른 작품에 비해 무대의 상상력이 더 필요한 작품으로 이미 유명하다. 이야기 자체가 동화에 가까워서 무대가 만들어내야 할 환상의 몫이 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공연사에 유독 놀라운 무대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인형을 사용한 줄리 테이머(1952~)의 연출이나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베를린 코미셰 오퍼의 작업을 보면 ‘우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박혜진)이 ‘마술피리’에서 힘을 싣고자 했던 지점도 바로 무대다. 이야기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무대언어는 바로 영상. 아예 영상 디자이너를 연출자(조수현)로 세워 시각적 이미지에 집중하는 무대를 구축하고자 했다. 의미 있는 시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간과한 게 있었으니, 환상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인 공간의 원리가 잘 구현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의 영상이 움직이는 그림을 넘어서 마술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대규모의 합창단이 등장하고 퇴장할 때나, 아직 배우가 되지 못한 가수들의 움직임에서, 장면의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 전환될 때도, 연출의 매무새는 자주 비어있기 때문이다.

영상보다 더 중요한 그림은 바로 사람인 것을. 대극장을 운용할 수 있는 연출이 드문 것은, 그만큼 이 공간에서 사람의 그림을 그리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래저래 너무 쉽게 생각했다.

‘징슈필’(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있는 독일어 노래극)로 분류하는 ‘마술피리’는 오페라가 스스로 갱신해온 장르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모국어로 말하고 노래하는 언어의 혁신, 대중을 아우르는 관객의 혁신,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공간의 혁신 등 갱신의 방향은 언제나 ‘지금 여기’였다. 징슈필은 지금 여기의 장르로 오페라의 맥락을 바꿔냈다. 당대의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야말로 가장 혁신적인 것임을 증명했다고나 할까.

지금 여기의 관객들에게 독일어로 노래하고 한국어로 말하는 이 공연은 모차르트의 시대만큼 대중적일 수는 없다. 더 많은 관객을 이 우아한 세계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징슈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상상력이 소극장에서는 창작 오페라의 이름으로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삶의 리얼리티를 담은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페라의 옷을 입어 보니 말이다. 그렇다면 고전 오페라가 발휘해야 할 갱신의 상상력은 무엇일까.

고전의 시대에 징슈필은 오페라의 영역을 구석구석 확장했다. 지금 여기의 오페라에 필요한 것도 다르지 않다. 노래하는 가수는 연기하는 배우로, 이야기의 경쾌함은 놀이 같은 재미로, 음악의 청각적 추상은 무대의 시각적 환상으로, 우리 시대에 통용되는 ‘징슈필의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고전의 충실한 해석일 거다. 그 일을 하는 것이 공공단체의 책무가 아닐까. 서울시오페라단이 있어야 할 이유다.

글 정수연(뮤지컬평론가) 사진 서울시오페라단

 

THEATER

서울시극단 ‘키스’

판타지의 달콤함에 반비례하는 현실

4월 7~30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공연명이 참 말랑말랑하다. 멜로드라마일까? 그런데 포스터 속 여인은 겁먹은 듯한 표정이다. 관계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작품일까? 갖가지 상상 속 서울시극단(단장 고선웅)의 2023년 첫 작품을 관극했다. 홍보문구 ‘허를 찌르는 반전’이 정확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기예르모 칼데론(1971~)의 극작술과 세계관에 감탄했고, 이 작품을 무대화한 우종희 연출가의 감각에 놀랐다. 발견과 각성이 전장의 폭탄처럼 산발적으로 터지는 공연이었다.

시간과 공간은 ‘DAMASCUS 2014’. 세련된 거실에서 네 인물의 엇갈린 사랑이 펼쳐진다. 연인인 하딜과 아메드, 그리고 바나와 유세프는 하딜 집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런데 일찍 도착한 유세프가 하딜에게 청혼하고 하딜 역시 유세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이때 등장한 아메드 역시 하딜에게 청혼하고 그에 응답하는 하딜. 뒤늦게 도착한 바나는 오는 길에 누군가와 키스했다고 말하고 하딜에 의해 조금 전의 일들을 알게 된다. 꼬여버린 네 명의 관계로 괴로워하던 하딜은 심장이 멈춰 죽는다.

일명 막장드라마가 무대에 펼쳐졌다. 내전 중인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총소리 한 번도 없는 막장드라마를 공연한다고? 커튼콜 박수를 치면서도 당황한 관객들에게 우종희 연출가가 무대에 실제로 등장해 양해를 구한다. 대본대로 공연했지만 작가와 소통하지 못해서 답답한 부분이 많았는데, 지금 연결되어 대화를 나누려고 하니 관객들도 함께 해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허를 찌르는 반전은 이것이었다). 이후 적십자에서 보호받고 있는 작가와 영상통화가 진행되었고 작품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작품을 쓴 아미라는 죽었고 대화한 사람은 그 언니였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깔끔한 무대는 허물어지고 황폐해졌다. 배우들은 같은 대사를 전혀 다른 현실의 언어로 바꿔냈다. 바나의 ‘키스’는 시리아에서만큼은 경찰에 의한 구금이었고, 하딜의 죽음은 생화학무기에 의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판타지의 달콤함을 걷어냈더니 현실의 고통이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판타지·막장의 욕망은 현실 고통의 반영이며, 전쟁 중인 시리아에선 이 판타지를 꿈꾸는 것조차도 어려운 현실이었다. 3부로 나누어 막장의 판타지를 구현하고, 그것을 전복시키는 현실투사의 장면을 배치했고, 그 후 민낯을 드러내는 구성은 판타지와 현실, 전쟁에 대해 화두를 쉴 새 없이 터뜨렸다.

연출가는 각각의 장면을 무대장치와 조명으로 선명하게 구분했다. 아쉬운 점은 직접적 출연이다. 연출가가 등장하는 순간 연극적 몰입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가상의 작가인 아미라도 실존하는 인물처럼 인지되었다. 가상의 장면을 실제화한 것이 유효했는지는 의문이다. 배우들은 좋은 앙상블을 보여줬다. 비슷한 연령대 배우들이 빚어내는 에너지가 막장 드라마와 전쟁을 관통하며 사랑과 고통의 정서를 유연하게 전달했다. 서울시극단 신입단원인 정원조·이승우 배우는 시극단에서의 첫 작품이지만, 그동안 갈고닦은 역량을 충분히 펼쳐냈다.

이제는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욕하지 않고, 감사해하며 봐야 할 것 같다. 판타지의 일상을 향유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재기발랄하고 놀라운 작품인 ‘키스’ 덕분에 서울시극단, 그리고 고선웅 단장이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더 궁금해졌다. 다른 방식, 다른 접근, 그러나 그것들이 수렴되는 근원을 탐색하는 연극인들이 만들어 낼 서울시극단의 하모니가 사뭇 기대된다.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사진 서울시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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