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의 미학, 완벽의 고통, 완창 판소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9월 4일 9:00 오전

SPECIAL

완결의 미학, 완벽의 고통

완창판소리

웃음과 눈물을 품은 긴 노래의 여정

긴 시간 동안 판소리 한바탕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소리꾼이 경지에 오르는 순간이자, 관객의

수준도 한 단계 올라가는 순간이다. 이번 호는 완창 판소리를 둘러싼 여러 지식을 모았다.

더불어 완창 공연을 만나볼 수 있는 전주세계소리축제(9.15~24) 소식도 담았다. 긴 시간의 노래를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이와 이해를 더해보자.   기획·총괄 이의정 기자

➊ 사설
‘완창’이란 무엇인가? _최동현
➋ 음반
고음반에 담긴 완창 _최동현
➌ 기억
세간의 인기를 누린 완창 _김강민
➍ 명인
다시 한번, ‘완창’ _이의정
➎ 예인
젊은 소리꾼의 도전 _홍예원
➏ 축제
세계인을 초대하며 _홍예원
➐ 여흥
영상·공연물 속 판소리 _김강민

©국립극장

 


➊ 사설

‘완창’이란 무엇인가?

완창 판소리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가
‘완창’이란 판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리에서 부르는 공연 양식을 가리킨다.
비슷한 용어로 ‘전판 공연’이 있는데, 이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작품을 공연한다는
의미로, 횟수와는 상관없이 쓴다. 그러니까 완창은 한자리에서 한 번에 부르는 전판 공연이다.

완창, 오래된 전통일까?

판소리의 서사적 구조, 당시의 공연 관습이나 장소 등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완창은 판소리 역사의 이른 시기부터 있었던 공연 양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판소리는 구조적으로 부분창이 가능한 양식이며, 판소리를 연구했던 김흥규는 이를 ‘부분창이 가능하고도 효과적일 수 있는 예술’이라고 했다. 그러니 판소리는 부분창이 중심인 예술이라고 해야 옳다.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하고 감상하기에는 너무 길다는 점,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 혹은 불일치가 많다는 점은 판소리가 부분창이 중심일 때 이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로식의 저서 ‘조선창극사’에 ‘더늠’(어떤 소리꾼이 새로 만들었거나 고쳐 불러서 유명해진 대목) 혹은 ‘특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소리 명창들이 불렀던 판소리의 특정 대목을 모아놓은 것도 판소리가 부분창 중심의 예술이라는 방증이다.
판소리가 부분창이었던 이유는 공연 장소의 특수성에서도 찾아볼 수도 있다. 판소리 형성기에 판소리는 다른 창우희(편집자 주_소리꾼과 고수가 서사를 구연하는 민속음악), 예컨대 줄타기 또는 땅재주 등과 함께 광장에서 공연되었다. 전성기에는 판소리만을 누상(樓上, 누대 위)이나 방중(房中, 방안)에서 공연했으므로, 한두 시간짜리 판소리는 몰라도 대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판소리를 한 번에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방중 공연은 사적인 공간에서 소수를 상대로 하는 공연으로, 쉬어가면서 며칠에 걸쳐서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근대 이전의 판소리는 이론적·현실적으로 부분창이 보편적인 공연 양식이었을 것이며, 설령 판소리 한바탕을 다 부르는 일이 있다고 해도 극히 이례적인 경우이거나, 몇 차례에 걸쳐 한바탕을 다 부르는 방식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럴 경우 한자리에서 끝까지 부르는 요즘의 완창과는 다르다.
근대적인 판소리 공연의 시작은 1902년 협률사가 설치되고 시작된 극장식 공연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때부터 판소리는 서양식 극장에서 공연되기 시작했다. 판소리가 서양식 무대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공연 관습도 서양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 시간에 제약이 있어, 일반적인 공연 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길이의 판소리는 한자리에서 끝까지 다 부르는 방식을 채택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 시기의 주된 공연 방식은 옴니버스식 공연으로, 전통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모아 공연하는 것이었다. 이런 공연에서 판소리 역시 창자의 장기 위주로 불렀다. 전체 공연이 두 시간쯤 되므로 판소리를 해도 짧은 토막소리 외에는 부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 흥행예술로서의 판소리가 절멸의 상황에 처했던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1964년 처음으로 판소리 부문을 무형문화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김연수(1907~1974), 김소희(1917~ 1995), 김여란(1907~1983), 박록주(1905~1979), 정광수(1909~2003), 박초월(1917~1983) 등 6명이 ‘춘향가’ 한 대목씩을 불러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았다. 그러다가 1973년에는 창자마다 판소리 한 바탕씩을 불러 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즉, 1964년 판소리 무형문화재를 인정할 때까지도 판소리는 부분창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히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
소리꾼들이 부분창으로 불렀던 대목은 대개 유명한 더늠이다. 소리꾼이 직접 만들기 때문에 더늠 이름 앞에는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붙인다. 임방울 ‘쑥대머리’, 송만갑 ‘박타령’, 송광록 ‘긴 사랑가’ 등이 예이다. 판소리는 이런 더늠들이 모여서 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부분창에서 즐겨 불렀던 대목은 이런 더늠으로, 판소리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난 대목이었다. 이미 예술성이 검증된 대목이므로, 소리꾼의 존재는 이런 대목을 부르는 것에 있었다.

완창의 탄생과 번성

이러한 상황에서 판소리의 완창을 처음으로 창안해 낸 사람은 박동진(1916~2003)이다. 1968년 9월 30일 박동진은 다섯 시간 동안 ‘흥보가’ 전편을 한자리에서 불렀다. 이 공연은 국립국악원과 유엔군총사령부방송(Voice of United Nations Command/VUNC) 공동으로 주최되었는데, VUNC의 방송을 위한 녹음과 국악문화영화 ‘국악’(가칭)의 제작을 겸하고 있었다. 정오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휴식 없이 국립국악원 대연주실에서 박동진은 방송사상 최장의 공개 녹음방송을 하였다. 이를 그때는 계창(繼唱, 이어서 부름)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완창’의 탄생이다.
이를 두고 국악계에서는 ‘참 별일이 났다’고 수군대기까지 했다고 한다. 박동진에 의해 창안된 완창 판소리는 멸실 위기에 처한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완창에서 판소리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였고, 소리꾼들도 희망을 가지고 너도나도 완창을 시도하였다. 완창 판소리는 사멸해 가던 판소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사건이 되었다.
판소리에 대한 관심의 고조에 발맞춰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음반사 ‘뿌리깊은나무’에서는 100회에 걸쳐 전판 공연을 하였다. 이 감상회는 전판 공연을 함으로써 잃어버렸던 온전한 판소리 작품의 복원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부분창으로만 남아 있던 판소리는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를 통해서 온전한 작품으로 회복될 수 있었다. 현재 부르고 있는 판소리 바디(편집자 주_더늠과 달리 판소리 한 바탕 전부를 뜻함)들은 거의 다 이때 발견 또는 복원된 것들이다.
완창은 판소리 창자들에게 전판을 한자리에서 부르는 공력을 닦게 하였다. 20~30분 소리에 만족하던 사람들이 이제 두세 시간 이상의 공연을 감당해야 했으므로 보다 많은 수련을 해야 했다. 당연히 완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판소리 창자들의 기량 또한 향상됐다. 또한 완창은 판소리 경연대회나 판소리 공연의 양상을 바꾸었다. 권위 있는 판소리 경연대회의 경우에는 완창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출전할 수 있게 됐으며, 판소리 공연은 완창 공연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여러 소리꾼들은 완창 공연을 통해서 자신의 기량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오정숙(1935~2008), 성우향(1935~2014), 성창순(1934~2017), 이일주(1936~2023), 안숙선(1949~) 등 명창들은 완창을 통해서 자신의 기량을 입증하여 명창 대접을 받았다.

변화를 요구받다

그러나 완창은 이제 판소리를 배우는 젊은 소리꾼들의 전유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판소리가 부활의 기미를 보이던 1980년대 이후에 판소리를 시작한 소리꾼들은 어려서부터 소리를 배웠기에 어린 나이에 이미 판소리 전판을 부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완창 공연을 해서 이름을 날렸는데, 이자람(1979~)이나 유태평양(1992~) 등의 소리꾼들이다. 수련 중인 젊은 소리꾼들이 완창 공연에 나서자, 이미 명창으로 지위를 확고히 한 사람들은 완창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 완창 공연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곳은 국립창극단, 국립국악원,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그리고 전주의 우진 문화공간 정도이며, 흥행을 위한 것이 아닌,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으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완창 판소리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판소리는 본래 사적인 공간에서 시간 제약 없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한자리에서 다 부르기에는 너무 길다. 완창은 체력적인 부담이 엄청난 공연이다. 완창에 나선 소리꾼들이 인간의 체력적인 한계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했다는 이야기를 전할 때면, 완창 공연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끼게 된다. 완창은 고수에게도 힘든 일이다. 소리꾼만 아니라 고수도 몇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서 북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청중도 마찬가지다. 다섯 시간, 여섯 시간, 때로는 여덟 시간까지 이어지는 완창 판소리 공연은 인간의 집중력의 한계를 벗어난다. 게다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사설은 고통을 가중한다. 판소리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완창이 넘을 수 없는 큰 벽이 아닐 수 없다.
완창이 공연자에게나 청중에게나 힘든 일이라고 해서 완창 판소리 감상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판소리는 완전한 작품이어야 한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말은 ‘완결성’과 ‘완전성’을 뜻한다.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갖추고 있어야 한다. 부분으로만 존재해서는 완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박동진에 의해서 시도된 완창 공연은,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판소리도 완전성과 완결성을 갖춘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므로 판소리 감상은 판소리 작품을 부분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감상하는 것이어야 한다. 부분적으로만 감상하고 만다면 이는 코끼리의 다리만 만져보고서 코끼리를 이해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완창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잘해야 한다. 창자에 대한 정보, 감상할 작품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보아야 한다. 가능하면 작품의 사설집을 미리 구해서 읽어볼 필요도 있다. 판소리 감상의 어려움은 가사의 어려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판소리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판소리는 언제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과정을 겪어 오늘에 이르렀는지, 판소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이며, 판소리의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어떤 것인지, 장단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판소리를 훨씬 잘 이해할 것이고, 재미도 있을 것이다. 재미가 있으면 긴 시간도 지루하지 않게 견디면서 완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평소에 판소리를 자주 듣는 일이다. 판소리에 자주 접촉함으로써 판소리의 감성에 깊숙이 빠져든다면 완창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완창만이 정도(正道)가 아니다

물론, 모든 판소리 공연이 완창 공연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소리꾼이나 고수나 청중이나 편안한 가운데 판소리의 예술성을 최고도로 발휘하고 음미할 수 있는 새로운 완창의 양식이 개발되어야 한다. 긴 판소리를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부르는 방법도 괜찮다. 앞서 말했듯이, 서양의 공연 예술과 달리 판소리는 본래부터 부분창이 가능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판소리 한 바탕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부르는 방식은 이미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에서 시도되어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국립극장 완창 발표회에서도 몇 차례 시도 된 바 있다. 오정숙은 다 부르는 데 여덟 시간이 걸리는 ‘춘향가’를 한 번에 부르지 않고 두 차례에 걸쳐 나누어 부른 적이 있다. 성창순도 ‘춘향가’를 두 번으로 나누어 부른 바 있다. 기어코 한자리에서 끝까지 부르라고 강요할 일이 아니다. 몇 시간을 계속해서 불렀느냐 하는 양을 중요시할 필요는 없다. 예술은 양이 아니라 질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긴 판소리에서 감상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부분들을 빼서 적당한 길이로 만들어 부를 수도 있다. 실제 판소리 공연에서는 몇몇 중간을 건너뛰고 부르는 일이 허다하다. 이렇게 해도 판소리 감상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판소리의 전승 과정에서 본래의 것이 줄어든 경우도 있다. 예컨대 김연수(1907~ 1974)의 ‘춘향가’는 8시간 6분이나 되는데, 수제자 오정숙은 이를 줄여 7시간 43분 짜리로 만들어 불렀다. ‘심청가’도 35분을 줄여서 불렀고, 이후 제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원본 작품과 너무 다르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작품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SP(Standard-Playing Record, LP이전의 음반)로 발행된 전집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길이가 두 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SP 한 면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은 3분 정도인데, 음반 수를 무한정으로 늘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대개는 20장 내외로 만들었다. 창극으로 만들 때도 전편을 두세 시간 정도의 시간에 맞추어 만들어 공연한다.
‘춘향가’ 외에 나머지 바탕은 완창하는 데에 3~4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중요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줄여서 적당한 길이로 수정하여 부르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 정도의 길이로 조정한다면 원작의 의미를 크게 훼손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길이를 조정한다고 해서 판소리 전판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완창 공연용으로 따로 길이를 조정해서 부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완창이 꼭 원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불러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현대 공연 관습에 맞추어 길이를 조정하거나 횟수를 늘려 다양한 공연 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우리가 용납하자는 것이다.
판소리는 지금과 다른 문화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한다. 우리는 장편소설을 몇 차례에 걸쳐 단속적으로 읽는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판소리도 그래야 한다.
글 최동현(군산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국립국악원·국립극장

|  초기 명창들의 세계  |

송만갑(1865~1939)
전남 구례 출신으로,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명창이다. 동편제와 서편제를 가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리로만 부르던 ‘춘향가’ ‘심청가’를 창극화했다. 192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설립하여 후학을 길러냈다.
박록주(1905~1979)
12세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20대부터는 송만갑을 사사했다. ‘조선성악연구회’ ‘조선창극단’ ‘대한국악원’ 등에서 활동했으며, 국가무형문화재 ‘춘향가’ 보유자로 지정됐다. 서편제가 많았던 판소리계에서 동편제 제자를 많이 길러냈다.

|  완창을 시도한 국악 신동  |

이자람(1979~)
은희진-오정숙-송순섭을 사사했다. 10세 때부터 소리를 시작하여 1997년 ‘심청가’, 1999년 ‘춘향가’, 2007년 ‘수궁가’, 2010년 ‘적벽가’를 완창했다. 1997년에는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 장원, 2004년에는 일반부 장원을 받았다. 현재 ‘아마도이자람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태평양(1992~)
1996년 MBC 프로그램 ‘기인열전’에 출연하며 판소리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8년 ‘흥보가’를 완창했다. 2012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일반부 금상을 받았다. 현재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제1회 박동진 완창 판소리 ‘흥보가’(1968년 9월 30일) ©국립국악원

제3회 박동진 완창 판소리 ‘심청가’(1970년 4월 21일) ©국립국악원

안숙선(1949~)
전북 남원 출신으로 9살 때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20대 때에는 김소희를 사사했으며, 그 뒤에 정광수, 성우향, 박봉술, 오정숙 등에게 사사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춘향가’ 보유자이며, 2004년에서 2008년까지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안숙선 완창 판소리 ‘춘향가’(1988년 12월 24일) ©국립극장


➋ 음반
고음반에 담긴 완창

판소리의 ‘순간’을 담다

녹음이 등장한 20세기. 완창 판소리가 기록되기 시작하다

우선, 완창 판소리 공연은 수없이 있었지만, 완창 판소리를 실황으로 녹음한 음반은 매우 드물다. 녹음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서 녹음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록을 살펴 보자면, 임방울(1904~1961)의 ‘적벽가’와 ‘수궁가’가 대표적인 완창 실황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임방울은 자신의 소리가 녹음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하는데, 이 음반들은 아마도 임방울 몰래 녹음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궁가’는 1956년 11월 24일 국립국악원 주최 국악감상회 실황 녹음이며, ‘적벽가’는 1957년 9월 21일 연세대학교 주최 국악감상회 실황 녹음이다. ‘수궁가’의 고수는 누구인지 불분명하며, ‘적벽가’의 고수는 한일섭(1929~1973)으로 되어 있으나 김재선(1900~?)이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녹음은 임방울의 최전성기 소리를 담고 있어서 임방울의 소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중에서도 ‘적벽가’는 최고의 완창 실황 음반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소리꾼의 소리와 고수의 북소리, 추임새의 조화가 절묘한 경지를 보여준다. 다만 음질이 떨어져서 무슨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섞여 있는 것이 아쉽다. 이 음반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발매되었다.

판소리 녹음의 시작을 찾아

판소리는 공연자와 청중 혹은 관중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역동적인 상황을 연출해 내기 때문에, 실제 공연 현장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실황이 희귀하기 때문에 음반 제작을 위해 따로 스튜디오에서 소리를 녹음한 음반을 찾아볼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소리는 아무래도 현장의 역동적인 상황이 제거되어 있어 담담한 편이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완창 판소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판소리를 줄여서 녹음했지만, 그래도 전편을 녹음했기에 완창 음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완창 전집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은 1935년 폴리돌(Polidor) 레코드에서 발매한 ‘적벽가’와 1937년 빅터(Victor) 레코드에서 발매한 ‘춘향전’이다. 폴리돌에서 발매한 ‘적벽가’는 당시 최고의 명창들인 이동백(1867~1950), 김창룡(1872~1943), 정정렬(1876~ 1938), 조학진(1877~1951), 임소향(1918~1978)이 출연한 음반으로 고수는 당대 최고의 명고수 한성준(1874~1941)이 맡았다. 1993년에 복각하여 발매되었다. 빅터의 ‘춘향전’은 일제강점기에 발매된 음반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이 음반은 발매된 후 대단한 인기를 끌어, 다른 음반 회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음반을 내기도 했다. 정정렬, 임방울, 이화중선(1898~1943), 박록주, 김소희가 출연하였으며, 고수는 마찬가지로 한성준이 맡았다. 이 음반은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복각되었다.
해방 후에 나온 음반 중에서 명반으로는 박록주의 ‘흥보가’, 박초월의 ‘수궁가’, 정광수의 ‘수궁가’, 김소희의 ‘춘향가’와 ‘심청가’, 박동진의 ‘적벽가’와 ‘변강쇠가’, 강도근(1918~1996)의 ‘흥보가’, 성창순의 ‘춘향가’와 ‘심청가’, 안숙선의 ‘춘향가’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한 사람이 다섯 바탕 전부를 녹음한 전집류도 있는데, 김연수, 오정숙, 이일주가 다섯 바탕 완창 음반을 냈다. 다섯 바탕 전집은 한 사람의 판소리 예술세계 전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상으로 완창 판소리 음반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만, 판소리는 공연 예술이다. 공연 현장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녹음은 공연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일부만을 담고 있다. 판소리의 깊은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공연장을 찾아 판소리를 직접 들어야 할 터이다.
글 최동현(군산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국립국악원

‘춘향전’ (1937, 빅터)

판소리를 녹음한 명인들

정정렬

이화중선

임방울


➌ 기억
세간의 인기를 누린 완창

판소리의 ‘인기’를 누리다

한 시대의 인기를 그러모은 음반. 뿌리깊은나무 전집에 담긴 완창 판소리 

한국브리태니커회사와 판소리학회가 공동주최한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는 1974년 1월 18일에 시작되어 1978년 9월 29일까지 약 4년 8개월 동안 이어졌다. 13회까지는 ‘금요 판소리 감상회’ ‘브리태니커 판소리 감상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가, 1976년 잡지 ‘뿌리깊은 나무’가 창간되면서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지금은 모두에게 익숙한 완창 판소리 공연 또한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감상회에서 소리꾼 박동진이 완창 판소리를 선보인 것이다. 당시는 부분창이 판소리를 즐기는 보편적인 방식이었으며, 완창 판소리라는 개념이 없던 때였다. 완결된 이야기를 전하는 완창 공연은 부분창과는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매료했고, 판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를 통해 사람들이 판소리를 진지하게 감상하기 시작하면서 크고 작은 전통음악 공연이 활발히 열렸다. 청중은 정통성 있는 소리꾼을 만날 수 있었고 소리꾼은 무대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에, 감상회는 청중과 국악인 모두에게 의미가 있었다.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는 100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1984년부터 시작된 국립극장의 완창 판소리 무대를 비롯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음반 발매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는 판소리 음반 전집을 발매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판소리 부흥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정통 판소리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기회로 이어진 것이다. 브리태니커 판소리 전집이라고도 불리는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전집은 1982년에 발매되었다. 판소리 감상회의 실황 공연을 녹음한 것이 아닌, 음반 제작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였다.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을 담은 음반 22장과 단가 11편이 담긴 음반 1장, 총 23장의 음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시 명창의 소리와 함께 판소리 전승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국문·영문 해설 사설집이 음반과 함께 제공되어 누구나 판소리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사설집은 따로 묶여 ‘판소리 다섯 마당’으로 출판되었다. ‘판소리 다섯 마당’은 판소리의 의미와 판소리 발성법과 장단 등 판소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내용들로 시작해 다섯 바탕(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의 해석으로 이어진다. 자세한 주석, 전승 계보 안내, 영문 해설 등 책에 담긴 내용에서 판소리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했던 당시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1990년 무렵,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전집에 이어,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다섯 바탕’ 전집도 발매되었다. 두 전집 모두 소리꾼의 소리와 고수의 북장단이 조화를 이루어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글 김강민 수습기자  자문 김희선(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사진 국립한글박물관·국립박물관 e뮤지엄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

‘판소리 다섯 마당’


➍ 명인
제자를 키워내는 우리시대 소리꾼들
스승 김일구 · 제자 김도현

청명한 물길 위로

적벽의 화염을

내지르다

성장을 도모하고, 전통의 풍성한 곡간을 여는 완창의 계승

국가무형문화재, 명창. 수많은 이력을 줄이고 또 줄여 두 단어로 적어내도 소리꾼 김일구의 위엄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내인 김영자 역시 국가무형문화재 소리꾼이며, 아들 김도현과 며느리 서진희 역시 소리꾼이다. 그의 인생은 전통음악 없이 설명할 수 없으며, 그의 주변에는 여전히 전통음악 가락이 맴돈다. 그는 2001년 전주시에 ‘온고을소리청’의 문을 열어 ‘김일구 일가’의 음악을 전수하고 있다. 전주에 자리 잡은 이유를 여쭙자 “전라도는 동편제·서편제의 갖가지 유파를 가진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고기는 물을 만나야 잘살 수 있어요. 예술인이 많은 곳에 있어야 배울 것이 많습니다”라며 그가 지내는 물이 어찌나 청명한지 밝은 목소리로 전했다.
그런 맑은 물가에서 지낸 김도현 역시 다재다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일찍이 젊은 20대에 기악부문에서 최연소로 장원을 따내고, 30대에는 소리로도 장원을 수상했다. 이런 이력을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다가도 “다양한 분야를 모두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 사람 소리 참 잘해’가 아니라 ‘그 사람 음악 잘해’로요”라고 말할 때면, 전통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엿보였다. 배울 것이 많은 맑은 물은 그저 그곳에 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리라.
부자(父子)가 소릿길에 오르기까지 고민이 있었다고요. 소리는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김일구 7살 때부터 박봉술(1921~1989)·공대일(1911 ~1990) 선생을 비롯한 여러 명창에게 배웠죠. 그때는 여성국극이 활발했던 시기이고, 소리로 먹고살기 어려웠습니다. 기악 공연이 더 많아서 소리를 그만두고 악기로 여러 단체에서 반주를 했어요. 그러나 ‘가야금 소리가 아무리 좋아도 대금 소리보다 못하고, 대금 소리가 아무리 맑아도 목소리보다 못하다’라는 옛말에 통감한 후론 다시 판소리를 시작했습니다.
김도현 음악은 악기가 만들어지기 전에 사람 목소리에서 탄생하고, 파생됐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소리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저는 소리와 악기 모두를 학업 스트레스로 시작하게 됐는데, 보고 들은 것 덕분인지 그 시작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여름·겨울 방학 때면 부모님이 산공부를 데려갔거든요.(웃음) 그때는 어린 마음에 그것이 참 싫었는데, 시작한 이후로는 남들보다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밤새 연습하는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됐었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말씀대로 두 분 모두 판소리뿐만 아니라 기악으로도 대통령상까지 받으셨어요. 소리와 악기를 모두 다루면 둘 모두에 큰 도움이 되겠어요.
김도현 맞아요. 판소리를 들어보면, 모든 악기가 가질 수 있는 음과 박자가 모두 포함되어 있어요. 악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면 소리를 할 때 더 여러 방향에 관해 연구할 수 있게 되죠.
김일구 도움을 넘어 서로 영향을 받습니다. 이전에 국립창극단장을 맡으셨던 故최종민 교수는 “김일구류 아쟁 산조는 동편제이다”라고 하셨죠. 흔히 알고 있듯이, 판소리에는 동편제·서편제가 있는데,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듯이 강하고 힘찬 소리를 가진 것이 동편제, 서쪽에서 해가 넘어가는 듯이 애상 깊은 소리를 내는 것이 서편제예요. 저는 동편제인 박봉술제 계보를 이어, 아쟁에서도 동편제 소리가 나는 것이죠.
소리에는 악기가, 악기에는 소리가 담긴다는 이야기군요!
김일구 그렇죠. 나아가 판소리를 악기에 접목하는 것은 국악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제자 중에 바이올리니스트 박소현 씨(故나운영 외손)가 있는데, ‘김일구류 아쟁 산조’를 시카고에서 바이올린으로 공연하기도 했어요.

시대에 제언이 될 ‘적벽가’

이번 공연에서 두 분이 함께 부를 박봉술제 ‘적벽가’가 더욱 기대됩니다. 박봉술제 ‘적벽가’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김일구 박봉술제는 송만갑(1866~1939) 선생으로부터 뻗어 나와 박봉래-박봉술의 계보를 잇는 동편제입니다. 그리고 ‘적벽가’는 소리를 배우는 사람들이 보통 가장 나중에 배우게 되는 바탕이죠.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먼저 배우고, ‘수궁가’ ‘적벽가’를 나중에 배우거든요. 남성의 기교, 힘, 우애를 다루고 있어서 강한 소리가 특징입니다.
김도현 박봉술제 ‘적벽가’는 동편제 중에서도 아주 강한 편이에요. 그러면서도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 것이 매력이죠. 다들 ‘적벽가’에서 박봉술제를 꼽는 이유가 그런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벽가’는 장단 중에서도 빠른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숨이 정말 많이 필요한데, 박봉술제에서는 이를 힘 있고 뚜렷하게 표현하는데 탁월합니다.
3시간에 달하는 완창을 부를 텐데, 두 분이서 함께하는 것이 이럴 때는 위안이 되나요?
김일구 여러 제자들과 함께한 공연이 있지만, 자식과 함께하는 공연이 주는 느낌은 다릅니다. 신경이 많이 쓰여요. 소리를 하러 무대로 나가면 전쟁에 가는 기분인데, 나이가 80세를 넘어서니 완창 공연이 힘이 드는 것도 있지요. 그래서 이번엔 아직 젊은 아들에게 많이 의지하려 합니다.(웃음)
김도현 공연을 여럿 해봤지만, 아버지와 함께하는 공연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더욱 긴장돼요. 그렇지만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게 판소리의 매력이니, 분명 딱딱하지 않게 관객과 소통하며 풀어나갈 수 있을 거예요.
1960~1970년대에 주로 명창들이 도전하던 완창과 비교하여 요즘의 완창은 조금 젊어진 것 같습니다. 완창이 젊은 소리꾼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김일구 제가 젊을 때는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남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전통음악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전통음악 외에 그럴 수 있는 것이 다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젊은 소리꾼들이 창작 판소리도 많이 하지요. 완창 판소리는 그런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와서 할 수 있는 전통음악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을 지키는 방법의 하나지요.
김도현 완창 공연 한 번으로 명창의 반열에 오를 수는 없어요. 한 바탕을 배운 후에 몇 번씩 닦기를 반복해서 내 소리를 만들어야 명창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완창을 해보는 경험은 중요합니다. 관객 앞에서 부르는 것과 혼자 연습하는 것은 정말 다르거든요. 저는 처음 완창을 했을 때 완급조절에 실패해서 낭패를 본 경험이 있어요. 5~6번을 하고 나서야 그 마라톤 같은 공연을 하는 법을 알게 되더라고요.
‘적벽가’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대목은 어디인가요?
김일구 눈대목인 ‘자룡 활 쏘는 대목’이 여전히 긴박감이 있고 좋아요. 요즘 창작 판소리를 하는 젊은 소리꾼들이 이 대목을 새롭게 부르기도 하더군요.
김도현 저는 조조가 관우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대목을 좋아해요. 군사들이 우리 장군님을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우정을 부를 때면 항상 뭉클해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적벽가’가 줄 수 있는 교훈이 있을까요?
김일구 의리와 도덕입니다. 요즘 시대에는 남을 배려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가 뉴스에 자주 나오지 않습니까? 자기 욕심만 차리는 이야기가 가득하죠. 옛이야기 속 장수들이 보여주는 우애가 의미 있는 때예요.
김도현 저도 요즘이 개인주의가 더욱 도드라지는 각박한 세상이라는 것에 동감해요. ‘적벽가’는 군사부일체뿐이라 느낄 수 있지만, 장군과 병사 간의 신뢰와 신의, 끈끈한 우정이 잘 드러나 있고, 그게 현대인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
김일구(1940~) 1962년에는 장월중선에게서 아쟁 산조, 1968년에는 원옥화에게서 가야금 산조를 이수했다. 국립국악원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온고을소리청의 대표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2020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지정됐다.
김도현(1981~) 2006년 경주신라문화재 전국국악대제전 기악특장부 장원·2016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받았다. 현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전주세계소리축제 ‘국창열전 완창판소리 적벽가’
9월 19일 오후 3시 전주동헌 (고수 이태백·강길원)

➍ 명인
제자를 키워내는 우리시대 소리꾼들
스승 신영희 · 제자 한아름·조수황

구르는 소리와

목청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소리에 담긴 뜻을 잇고, 격을 높인다는 것의 의미

20세기 텔레비전 방송인에겐 소위 ‘딴따라’부터 시작하는 각종 멸칭이 줄을 이었다. 그중 코미디 프로그램은 대화에 쉽게 오르내리는 특히나 가벼운 오락으로 취급됐으니, 출연만으로도 같은 업계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업계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말이다. 그러나 당시 ‘객석’은 코미디 프로그램 ‘쓰리랑 부부’(1988~1990)에 출연했던 소리꾼 신영희를 다음과 같이 포착했다. ‘코미디 프로의 격을 높인 다재다능한 국악인.’(본지 1988년 6월 호 발췌)
“우리 음악이라는 좋은 패물을 농에다만 넣어 놓지 말고, 자꾸 착용해서 결혼식도 가고 친구도 만나야지요. 좋은 보석을 보여주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요.” 그의 말대로 보석을 매일 낀다고 돌이 되겠는가. 오히려 착용자의 기품이 더욱 올라갈 뿐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그와 함께하는 두 제자의 성품있는 언행은 이를 더욱 역설한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신영희는 소리를 전수하며 자신 주변 모든 것의 격을 높이고 있다. 9월 22일,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선 세 소리꾼이 ‘춘향가’의 소릿길을 펼친다. 이를 통해 함께 하는 완창 판소리가 무엇인지 만나볼 차례이다.

만정제, 그 뿌리의 뜻을 따라

이번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춘향가’를 함께 공연합니다. 공연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만정제 ‘춘향가’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아름 이번 공연에서는 만정(晩汀) 김소희(1917~1995) 선생님의 특징인 청아한 목 성음을 보여줄 수 있는 대목들을 꼽았어요. 김소희 선생님께서는 음악적 감각이 탁월하셔서 정응민제나 정정렬제의 좋은 소리들을 모으고, 필요에 따라 본인이 직접 추가도 하면서 만정제 ‘춘향가’를 만드셨거든요.
신영희 제 스승인 김소희 선생님은 소리는 동편제로만 있어도 안 되고, 서편제로만 있어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소리는 모두 담는 거죠. 만정제는 그래서 지저분한 소리가 없어요. 음의 끝도 깨끗하게 마무리합니다.
조수황 여러 유파 중 만정제는 정말 고급스러운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사에 맞춰서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잘 느껴져요. 신영희 선생님 말씀대로 깔끔하고 세련됐어요. 또, 저희 선생님의 특징인데, 성별에 맞추어서 소리를 전수하신다는 거예요.
아, 여창과 남창이 다른 건가요?
한아름 맞아요. ‘이 부분에서는 남성적으로 소리를 해야한다’라고 하시면서 성별에 맞추어서 소리를 구분해주십니다.
신영희 여선생님에게 배운 남학도가 여자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남창은 소리가 남자다워야 해요.
조수황 성차별이 아니라, 차이가 있는 거예요. 여창은 높고 기교가 발달했고, 남창은 체격적으로 목소리가 굵고 넓은 소리를 내죠. 판소리 안에서는 가사와 장단에 맞게 이를 조절해야 하고요.
그래서인지 신영희 님이 부르신 ‘춘향가’ 음반의 ‘사랑가’ 대목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지금까지 ‘사랑가’를 들을 때면 16세 어린 청소년들의 소꿉장난같이 느껴졌는데, 신영희 님의 소리에서는 두 명의 애정 어리고 살짝 긴장되는 분위기까지 느껴져서 흥미진진하더라고요.
신영희 그때의 16세는 어린 나이가 아니에요. 13~14세면 결혼을 했으니, 16세면 성인이죠.
한아름 선생님 소리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통성으로 부르시기 때문에 소리가 주는 깊이와 느낌이 강해요.
소리꾼마다 인물을 해석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춘향가’에 등장하는 각 인물의 해석을 조금 더 알려주신다면요?
신영희 춘향이는 기생의 신분을 스스로 거부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죠. 월매와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월매 역시 춘향이에게 신분을 강요하지 않아요. 변 사또가 와서 본인을 기생처럼 여기며 수청을 들라고 해도 목숨을 걸고 절개를 지키잖아요. 춘향이는 아주 대단한 인물입니다.
조수황 맞아요. 저는 춘향이라는 인물에 인의예지가 모두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춘향가’가 다뤄질 때면 여성의 절개만 강조되곤 하는데, 남성 역시 절개를 지켜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어요. 이몽룡이 절개를 지키지 않았다면, 그는 장원급제도 하지 못하고 걸인이 됐을 거예요. 고전에서 권선징악은 중요한 주제였으니까요.
제목이 ‘춘향가’인만큼 춘향이의 면모가 다채롭게 나온다는 것이네요. 인물을 표현하기 어렵지는 않나요?
한아름 어려워요.(웃음) 본인 신분에 상관없이 꼿꼿하게 대항하는 인물이잖아요? 후반부의 변 사또에게 수모를 당하는 대목들은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판소리는 동물 소리같은 자연의 모든 소리가 담기는 게 매력이지만 그걸 표현하는 입장에선 쉽지 않죠.
신영희 ‘춘향가’의 어떤 인물이든 어려운 점이 있죠. 월매를 할 때는 맛난 간장 같은 역할을 잘 해줘야 하고, 딸을 바라보는 애틋한 자식 사랑도 필요하니까요. 방자도 향단이도 각자 다 마찬가지예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릿길

제자 두 분은 완창 판소리 공연을 하지 않으셨는데, 이에 대한 고심이 있는 걸까요?
조수황 젊은 시절에 함부로 완창에 도전하는 것이 주객전도가 될 수 있죠. 김소희 선생님도 그렇고, 이를 처음 시작하신 박동진 선생님께서도 완창 판소리는 본인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완창을 하셨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니까요. 완창을 업적으로 여기는 것을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아름 기록으로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에 하는 만정제 ‘춘향가’도 눈대목만 부르면 알 수 없는 부분을 듣는 계기를 마련하니까요. 그렇지만 ‘춘향가’는 8시간에 달하고, 이를 완창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에요.
소리꾼에게 정말 고된 일이죠.
신영희 관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 공부를 얼마나 하느냐가 중요하지, 완창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에요. 듣는 사람도 한 시간 앉아있으면 몸을 막 비틀잖아요. 단가 한마디를 듣고도 ‘아, 저 사람은 솔찬히 소리를 했구나’라고 느낀 뒤에 박수치고 떠나면 돼요. 맘에 든 소리꾼이 어디선가 다른 대목을 부른다고 하면 보러가게 되고, 그렇게 공연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운을 남겨야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몇 시간씩 한 번에 보려고 하니 관객도 지칠 수밖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필요가 없는 것이군요.
신영희 스승님께서 국가무형문화재로 보유자로 인정받으실 적에는 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모두가 다섯 바탕을 조금씩 고루 알고 있었죠. 저희 스승님도 춘향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하시지 않았고, 살아계실 때도 완창 판소리를 없애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조수황 김소희 선생님의 호가 늦을 만(晩)에 물가 정(汀)으로 죽을 때가 되서야 소리께에 다다랐다는 뜻이에요. 그 겸손한 자세를 배워서 우선은 좋은 소리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
신영희(1942~) 11세부터 부친 신치선에게 소리를 배웠다. 1963년 남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 신인부에서 최우수상, 1977년 같은 대회에서 명창부 최우수상을 기록했다. 1986년 배우로서 제22회 백상예술대상 연기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지정됐다.
한아름(1994~) 제20회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일반부에서 최우수상, 2019년 숲쟁이 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종합대상을 받았다. 현재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판소리 전임교사로 재직 중이다.
조수황(1996~) 제32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일반부 금상, 제24회 대한민국 남도민요경창대회 명창부에서 최연소 대상을 받았다. 현재 국립부산국악원 성악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전주세계소리축제 ‘국창열전 완창판소리 춘향가’
9월 22일 오후 3시 전주동헌 (고수 김청만·김규형)
2023년 만추 남도민요의 밤
12월 3일 오후 6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➍ 예인
라이징스타들의 도전
소리꾼 김율희

진정한 소리를

만나는 시간

긴 호흡일 때만 보이는 소리의 길이 있다

2016년 강도근제 ‘흥보가’ 2021년 김세종제 ‘춘향가’에 이어 지난 2월, 강산제 ‘심청가’ 완창 무대를 선보인 김율희가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 ‘라이징스타 완창판소리’ 무대에서 ‘심청가’를 선보인다. 이미 여러 차례 완창 무대에 오른 바 있는 그에게 완창의 의미를 묻자 “나를 진정으로 대면하는 과정이자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볼 수 있는 무대”라고 답했다. 소리가 점점 깊어져 다음이 기대되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는 그의 완창을 기대하며, 이번 무대에 오르는 소감을 물었다.
축제의 완창 판소리 무대를 제안 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완창을 한다는 것은 소리꾼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할 수 있을까’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어요. 말 그대로 부담 반, 설렘 반이었죠. 토막소리만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완창을 준비하면서, 무대에 올리면서 새롭게 깨닫고 있어요. 완창 후, 전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제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힘든 과정이다 보니 한번 하고 나면 다신 안 해야지 하다가도 또 도전하게 되네요.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무대에서 선보일 강산제 ‘심청가’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강산제는 박유전-정응민-성우향으로 이어져 온 소리로, 서편제 명창 박유전의 호를 따 ‘강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19세기 말, 박유전이 말년에 머물던 전라남도 보성에서부터 소리가 전파되었는데, 그에 따라 일명 ‘보성소리’라고도 불립니다. 맺고 끊음이 분명해 단정하고, 절제된 소리가 특징입니다.
연습하는 동안 어렵거나 힘든 점이 있었다면 어떤 부분이었나요?
시간이 흐를수록 저도 귀명창이 되다 보니 소리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져요. 선생님께 받은 소리에 제 생각을 담아내려 고민하고, 연습하는 일이 어렵지만 재밌기도 합니다. 더 정교해지려고 노력하죠. 전주는 귀명창이 가득한 곳이라 부담이 크기도 하지만, 연습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 무대 위에서는 완전히 즐기려고 하고 있어요.
이번 축제 무대를 통해 완창 판소리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완창 판소리의 매력을 알고,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으시면,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추임새를 장착하신다면,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거예요.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의 공연이 아닌 관객과 함께 만드는 공연이니까요. 저와 함께 즐겁고, 슬프고, 감동적인 멋진 무대 만들어주시길 바랄게요.
글 홍예원 기자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
김율희(1988~) 중앙대 국악대학 및 동대학원 한국음악학과 졸업 후, 서울대 음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로, 2022년 KBS 국악대상 판소리상을 수상했다. 강도근제 흥보가(2016)·김세종제 춘향가(2021)·강산제 심청가(2023)를 완창한 바 있으며, 현재 ‘우리소리바라지’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전주세계소리축제 ‘라이징스타 완창판소리 심청가’
9월 17일 오후 2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 (고수 이준형)

소리꾼 이봉근

소리의 뿌리를

찾아서

불어넣은 노력을 투명하게 확인하는  순간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 적벽가 완창을 위해 ‘소리꾼 이봉근’으로 무대에 오르는 그는 영화 ‘소리꾼’(2020)에서 판소리 가락에 연기를 더한 영화배우로 자리매김하기도 한 인물이다. 축제의 완창 판소리 제안에 망설임 없이 응했다는 그는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전통 무대에 소홀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으로, 지금도 4시간 남짓 걸리는 적벽가 완창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적벽가’ 완창을 준비하고 계신데요.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나요?
소리를 하다 보면, 각 나이대가 갖고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전에는 소리가 더 영글고 완성된 상태에서 완창을 선보이고 싶었는데, 벌써 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네요.(웃음) 나이에 맞는 소리를 들려드리고자 차근차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번 무대에서 선보일 곡으로 박봉술제 ‘적벽가’를 선정한 이유가 있나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제가 남원 출신이다 보니, 동편제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동편제 소리꾼은 우직하고 남성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적벽가는 전쟁과 전투에 대한 표현이 많다 보니 굉장히 빠르고 장단의 변화가 무쌍한 편이에요. 이러한 부분이 제 소리의 동편제 성향을 나타내기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 선정하게 됐습니다.
‘적벽가’에서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지 궁금합니다.
적벽대전을 가장 좋아합니다. 전쟁과 관련된 여러 군상과 풍자적인 부분이 나오는데, 이러한 시각적인 요소를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평범한 민중이었던 군사들이 원치 않는 전쟁에 동원되어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자식을 그리워하는 등 각각의 절절한 사연을 이야기하는 ‘군사설움’이라는 대목이 있는데요. ‘적벽가’는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오늘날의 상황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 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이 대목에 공감하실 거라 생각해요.
긴 공연 시간임에도 관객들이 완창을 찾고,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장의 집중력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서 긴 시간 동안 소리에 몰두하는 집중력이 관객에게도 전해져 관객과 소리꾼 모두 무대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소리꾼이 기교와 테크닉을 구현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였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어떤 소리꾼으로 남고 싶으신가요?
창작 판소리를 포함해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전통을 지키는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연어가 결국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내가 하고 있는 판소리의 매력이 무엇인지, 나를 끌어당기는 판소리의 힘이 무엇인지 찾다가 결국에는 다시 ‘소리꾼 이봉근’의 판소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글 홍예원 기자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
이봉근(1983~) 국악전문단체 ‘타루’의 창단 멤버이자, ‘앙상블시나위’ 등에서 활동했다. 2020년 KBS 국악대상 종합 대상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음악극 ‘심청’, 영화 ‘소리꾼’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며 대중에게 판소리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전주세계소리축제 ‘라이징스타 완창판소리 적벽가’
9월 16일 오후 2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  (고수 김태영)
성웅 충무공 이순신가 콘서트
11월 17일 오후 7시 30분 아산시 평생학습관 아트홀

소리꾼 한윤경

꽃봉오리를

터트릴 그날까지

관객에겐 ‘흥’을, 소리꾼의 성장엔 ‘부흥’을!

어린 한윤경에게 판소리는 삶의 전부였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태중에서부터 들었던 소리는 어느새 자장가가 되었고, 조금 더 자란 뒤에는 어머니의 공연을 보고 듣는 것이 그녀의 취미이자 놀이가 되었다. 지난 3월, 미산제 ‘흥보가’로 첫 완창 무대에 오른 젊은 소리꾼이 선보이는 청춘의 소리는 무엇일까. 단단한 뿌리 속 수많은 소리를 품고, 마침내 피어날 그녀의 소리를 기대해 본다.
지금까지 판소리를 배우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가르침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주선 선생님께서 “소리에 끌려가지 말고, 네가 소리를 끌고 가야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한마디가 제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지금까지 음정, 박자, 시김새 등의 여러 요소를 생각하며 틀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 것이 오히려 소리의 본질을 흐리고 있던 것이죠. 여전히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지침이 되는 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판소리를 배우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지도 궁금합니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처럼 하나의 과제를 끝내면 또 다른 과제가 생기고, 새로운 고민이 생기는 편이에요. 지난 완창 무대를 준비하며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그는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 어려운 점이 있어야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겠어?”라고 답했고, 그 말에 저는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제가 판소리를 좋아하고, 즐기고 있기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친구가 이번 ‘청춘예찬 젊은 판소리’ 무대에 함께 오르는 고수 김광윤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어떤 마음으로 완창 무대를 준비하고 있나요?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MZ 소리꾼’이 들려주는 흥보가는 어떠한지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실, 훌륭한 선생님들, 선배님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이번 완창 무대에서 보여드릴 흥보가의 ‘흥’은 한자로 ‘일어날 흥’자를 쓰는데요. 어진 심성의 흥보가 부흥하듯, 저의 소리로 관객 여러분의 마음에도 흥겨움이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최근 짧은 온라인 콘텐츠의 유행 속에서 젊은 관객들이 판소리 및 완창 판소리에 관심을 갖고 즐길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인생 영화, 혹은 인생 드라마를 다른 사람들이 요약된 짧은 영상으로만 본다면 어떨까요? 아마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들 겁니다. 판소리의 묘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짧은 영상보다 줄거리를 알 수 있는 긴 영상을 보고, 여유가 된다면 영상보다는 직접 공연장에 와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판’+‘소리’라고 합니다. 그 판에 직접 와서 즐겨보시면 그 묘미에 흠뻑 빠지실 거라고 자부합니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
한윤경(2001~) 국립국악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악과에 재학 중이다. 온나라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부문 은상,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부문 일반부 차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에는 한국문화재재단의 ‘화음’ 가객으로 선정됐다. 미산제 흥보가(2023)를 완창한 바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전주세계소리축제 ‘청춘예찬 젊은판소리 흥보가’
9월 24일 오후 1시 전주한옥마을 전주대사습청 (고수 김광윤)

➏ 축제
한국의 소리, 세계인을 초대하다
김희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완창, 세대를 잇는 소릿길의 역사

김일구(김도현), 신영희(한아름·조수황), 김율희, 이봉근, 한윤경이 오르는 전주세계소리축제 내 완창 시리즈 공연은 노장과 젊은 예인이 함께 하는 귀한 장이다. 올해부터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이 되어 축제의 장을 꾸리고, 세대와 세대, 세대와 시대가 만나는 소리판을 꾸리고 있는 그를 만나 완창을 중심으로 한 공연이 갖는 의미, 이를 둘러싼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았다.
올해 축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닷새 동안 연이어 제자들과 함께 20시간 동안 진행하는 ‘국창열전 완창 판소리’ 다섯 바탕 무대입니다. 김일구, 김수연, 정순임, 신영희, 조상현 명창이 한 무대에서 연일 완창 무대를 선보이는 일은 전무후무하죠. 하지만,  축제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젊은 소리꾼들이 따라갈 수 없는 선생님들만의 깊이 있는 소리와 성음이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명창들의 소리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설적인 기회로, 판소리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창뿐 아니라 젊은 소리꾼들의 완창 판소리 무대도 이어집니다.
판소리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음악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시대의 살아있는 음악으로서 판소리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봉근, 김율희처럼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 소리꾼들에게는 완창 수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관객은 이들의 뿌리 역시 ‘판소리’에 있음을 알고, 전통의 소리를 접할 기회를 얻게 되죠.
완창 판소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소리꾼이 완창 판소리에 도전한다는 것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에요. 그뿐 아니라,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수련의 요소입니다. 관객에게도 완창 판소리의 경험은 매우 특별한데, 소리꾼이 가장 깊은 ‘소리의 우물’ 안으로 들어가 수련의 과정을 겪고 나온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은 숭고함과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판소리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이 보다 재미있게 즐길 방법이 있다면요?
판소리의 내용을 미리 알고 보는 것이 좋아요. 사설집을 미리 읽고 그 대목들에 집중해서 듣다 보면 음악으로서의 판소리가 들립니다. 문학을 판소리 언어로 표현하고, 음악적으로 담아냈을 때의 그 쾌감이 참 절묘해요. 소리꾼이 맛있게 전달하니 소리도 좋고, 재담까지 들리니 판소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죠!
글 홍예원 기자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
전주세계소리축제(9.15~24) 완창 판소리 일정표
일시 소리꾼 고수 바탕 장소
9.16 이봉근 김태영 적벽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명인홀
9.17김율희이준형심청가
9.19 김일구·김도현 이태백·강길원 적벽가 전주한옥마을
전주동헌
9.20 김수연·강경아·
강태관이태백·한수산수궁가
9.21 정순임·정경옥·
조애란 조용복·정성용·
김철준흥보가
9.22 신영희·한아름·
조수황김청만·김규형춘향가
9.23조상현·주소연박시양·임영일심청가
9.24 한윤경 김광윤 흥보가 전주한옥마을
전주대사습청
정윤형윤승환춘향가
이이화도경한수궁가

➐ 여흥
영상·공연물 속 판소리

팝콘, 콜라, 그리고 판소리

영상과 첨단 시청각 시대인 요즘, 소리꾼과 판소리를 만나는 다양한 방법

이젠 완창 판소리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판소리를 즐기게 되었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창작 판소리, 크로스오버로 국악의 색다른 멋을 보여준 예능 ‘풍류대장’과 ‘조선판스타’, 판소리 다큐드라마 ‘신(新)우해이어보’ 등 판소리는 장르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더불어 소리의 세계를 그린 영화들은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영화와 뮤지컬을 통해 판소리 세계에 한 발짝 다가가보는 건 어떨까.

영화 ‘서편제’(1993)

임권택(1936~) 감독의 ‘서편제’는 이청준(1939~2008)의 소설 ‘서편제’(1976)를 원작으로 한다. 소리꾼 오정해(1971~)가 주인공 송화를 연기하며 몰입감을 높였다. 송화는 유봉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소리를 완성하는 일에 집착하는 유봉은 그녀의 소리에 한(恨)을 더하고자 송화의 눈을 멀게 만든다. 판소리와 한을 소재로, 소리꾼에게 소리가 갖는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2007년 개봉한 ‘천년학’은 ‘서편제’의 후속작이다. 이복남매 동호와 송화의 사랑과 그리움을 그렸다. ‘천년학’에서도 오정해가 송화 역을 맡았다.

뮤지컬 ‘서편제’(2010)

뮤지컬 ‘서편제’는 전통적인 판소리 가락보다 현대적인 선율의 노래를 활용해 영화와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한다. 특히 송화와 어린 송화가 함께 부르는 노래 ‘살다 보면’은 감성적이고, 뭉클한 가사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2010년 초연으로 시작해 2022년에 다섯 번째 시즌이 마무리됐다. 2022년 무대에서 동호 역을 맡은 소리꾼 김준수는 2022년 8월 호 본지 인터뷰에서 “소리꾼의 삶을 다뤄 더 특별한 작품”이라며 뮤지컬 ‘서편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 ‘춘향뎐’(2000)

소리꾼이 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한 작품도 있지만, 소리꾼의 노래에 영화를 덧입힌 작품도 있다. 바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다. 소리꾼 조상현(1939~)이 부르는 춘향가를 배경으로 고전소설 춘향전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영화는 소리꾼 조상현의 춘향가 공연으로 시작해, 판소리 흐름에 맞춰 춘향과 몽룡이 등장하며 영화 장면으로 전환된다. ‘춘향가’ 외의 다른 음악을 사용하지 않아 판소리의 매력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춘향과 몽룡은 배우 이효정과 조승우가 연기했다.

영화 ‘광대: 소리꾼’(2020)

판소리 고법 이수자인 조정래(1973~) 감독이 조선의 판소리를 영화에 담았다. ‘광대: 소리꾼’은 납치당한 아내 간난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는 소리꾼 학규의 이야기를 다룬다. 조정래 감독은 고수로 활동해 온 국악인답게 주인공 학규 역에 소리꾼 이봉근을 캐스팅하며 영화 속 등장하는 판소리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봉근은 판소리가 정립되기 이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춰, 기교는 덜어내고 정서 전달에 집중한 소리를 선보였다. 극중극 형식을 활용해 학규가 부르는 심청가와 영화의 흐름이 절묘하게 섞이며 흥미를 더한 작품이다.
글 김강민 수습기자
자문 김희선(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

영화 ‘서편제’

영화 ‘서편제’

뮤지컬 ‘서편제’(2017)

영화 ‘춘향뎐’

영화 ‘광대: 소리꾼’

영화 ‘광대: 소리꾼’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