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풋과 아웃풋의 균형을 맞추다, 피아니스트 원재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9월 18일 9:00 오전

CLOSE UP

 

피아니스트 원재연

인풋과 아웃풋의 중심을 맞추다

즐기는 자가 노력까지 할 때 일어나는 변화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티가 난다. 귀로 들어오는 선율과 리듬, 음색은 머리를 거치면서 변모하여 다양한 아이디어로 새어 나오니, 숨길 수가 있을까. 원재연(1988~)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연주에 관한 고민에도,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생각이 넘쳐흐른다. 어떤 사람은 글이 가득한 종이에 한 줄을 덧붙이는 것에도 쓸 말이 없다고 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은 새하얀 백지를 주어도 거침없이 생각을 빼곡히 채워나간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처음 연주하는 작품을 마주할 때면 유명한 곡을 연주하는 것보다 더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무궁무진하게 연습해 보니,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해석할 거리가 더 멀리까지 간다는 걸 알았어요.”

9월 27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독주회를 갖는 원재연의 프로그램에는 낯선 작품이 많다. 이 공연뿐만이 아니다. 데뷔 음반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레퍼토리로 선별할 수도 있지만, 원재연은 본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택했다. 다양성이 부족한 레퍼토리로 항상 고민이 많은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그는 꼭 필요한 아티스트임이 분명하다.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하반기에는 공연 일정이 많고, 최근에는 새 작품을 익히는 시기라서 자는 시간 외에는 연습하기 바쁘다.(웃음) 여유가 있을 때는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취미인 운동도 하면서 환기를 하는데, 요즘에는 여의치가 않다.

연습하며 지키는 루틴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공연하고 난 뒤, 당일 밤 또는 다음 날 오전에 연주 프로그램을 다시 연습해 보는 습관이 있다. 그때 스스로 발전하는 것을 느낀다. 이 방식으로 새로운 영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은 습관이다.

새로운 작품 연습을 즐기는 것 같다. 이번 연주 프로그램에도 낯선 작품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처음 연습하는 곡이 유명하면 이미 귀에 익숙해진 해석이 있어서 연습할 때 오히려 어려움을 느낀다. 청중도 잘 알고 있는 작품은 각자 익숙해진 요소들이 있어서 감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가.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마주할 때면 유명한 곡을 연주하는 것보다 더 자유롭다고 느낀다. 데뷔 음반에 있는 리스트의 ‘발현’ S.155(필자 주_ ‘유령’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이 작품의 제목을 이렇게 불렀다)를 연주할 때 꼭 그랬다. 무궁무진하게 연습해 보니, 자유로움이 훨씬 크고, 느끼는 부담도 적더라.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해석할 거리가 더 멀리까지 간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런 작품을 청중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이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음반이나 관련 서적 등 연주를 위한 레퍼런스는 많이 참조하는 편인가?

전설적인 연주와 좋은 리코딩이 있는데 감상하지 않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초반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의 음반을 듣다 보면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당시 녹음은 편집이 쉽지 않아서 훨씬 생생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잊힌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알렉산더 요켈레스(1912~1978)의 슈베르트 연주를 들으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공부하는 작품의 포르테 피아노·쳄발로·오르간 연주가 있으면 여러 번 듣는다. 같은 작품이어도 피아노 외에 다른 건반악기로 연주한 것을 들으면 아이디어가 여럿 생겨난다.

연주 전에 작품을 위한 공부를 착실히 하는 것 같다. 이전에 유튜브에서는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거나, 작곡가를 소개하는 영상도 찍은 적이 있던데.

다른 연주자들이 공부하는 만큼 하는 정도이다.(웃음) 아무래도 좋은 스승을 여럿 만나서 좋은 지식을 배운 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보 외 작품의 배경은 무대에서 연주할 때 첫 번째로 중요한 지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음악을 즐기는 청중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 객석에서 무대를 감상할 때도, 연주자의 마음가짐이 좋은 경우와 그렇지 않을 때는 다른 소리가 난다. 언제나 이 점을 유념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가을날 공연을 방문할 청중을 위하여

이번 공연 프로그램 역시 범상치 않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C.P.E.) 바흐의 소나타 W55-4, 하이든의 소나타 Hob.XVI:48처럼 낯선 작품으로 시작한다. 작품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카를 바흐의 작품은 아버지인 바흐와도, 18세기 후반인 하이든, 베토벤과도 다른 그사이의 개성이 있다. 이번에 연주하는 소나타는 신나고 재치 있는 작품이라 시작 인사로 적합하다. 다음으로 연주하는 하이든 소나타는 쉼표를 유의해서 들으면 재미있다. 쉼표에 하이든 특유의 유머가 많으니, 그 의미를 감상해 보시길!

베토벤의 작품도 마찬가지로 자주 연주되지 않는 피아노 환상곡 Op.77을 선택했다.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 작품은 동료 피아니스트인 안드레이 골로간(1992~)의 연주를 본 후, 고르게 됐다. 베토벤과 꼭 닮은 여러 주제가 작품에 등장하는데, 이를 어떻게 청중에게 들려드릴지 고민 중이다. 변화무쌍하고 틀을 깨는 작곡법이 재미있는 매력이 아닐까.

작품 설명을 하나씩 들으면 끝이 없을 것 같다.(웃음) 독주회에서 연주하는 스크랴빈의 환상곡 Op.28은 음반 추천으로 설명을 대신한다면?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1901~1961)의 해석이 좋은데, 음질이 나빠서 듣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르카디 볼로도스(1972~)의 연주를 유튜브로 감상하는 것도 추천한다. 그의 연주는 정말 천상의 연주로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로서 꿈꾸는 앞으로의 방향은 무엇일까?

언제나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발전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마르타 아르헤리치(1941~)가 80세가 넘어서 ‘이제야 조금 잘 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고 한 것처럼 평생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의정 기자 사진 스테이지원

 

원재연(1988~) 선화예고·한국예술종합학교·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수학했으며, 강충모·클라우디오 마르티네즈 메너 등을 사사했다. 2017년 부소니 콩쿠르에서 준우승과 청중상을 받은 바 있으며, 2020년 음반 ‘바흐부터 버르토크까지(Bach to Bartók)’를 발매했다.

 

원재연의 추천 음원

볼로도스의 스크랴빈 환상곡


 

 

Performance information

원재연 피아노 독주회

9월 27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C.P.E. 바흐 건반 소나타 W55-4, 하이든 건반 소나타 Hob:16/48, 베토벤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Op.77, 스크랴빈 환상곡 b단조 Op.28, 바그너-리스트 오페라 ‘탄호이저’ 중 ‘오 그대 나의 사랑스런 저녁별이여’ S.444, 리스트 b단조 소나타 S.178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