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공존은 국적과 이념을 초월한다, DMZ 오픈 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임미정

세계 콩쿠르 우승자들이 가장 긴장된 장소에서 전할 평화의 메시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0월 16일 9:00 오전

FOR THE PEACE

DMZ 오픈 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임미정

평화와 공존은

국적과 이념을 초월한다

세계 콩쿠르 우승자들이 가장 긴장된 장소에서 전할 평화의 메시지

때아닌 이념논쟁에 초가을이 시끄럽다. 이제는 지나간 시대의 용어라고 생각했던 말들이 다시금 보이니, 이 나라는 과연 이념으로 총을 들었던 땅이라는 걸 실감한다. 이분법과 흑백논리의 단어로 누군가를 낙인찍는 행태는 언어로 인륜을 가리고 본질을 놓치던 지난 세기의 오류들로 연결된다.

올해 광복절에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의 누적 관객 수가 300만 명을 돌파했다.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과 그 이후의 매카시즘을 다루는 이 영화는 전쟁과 그 이후 민중을 향한 사상검증이 하나의 세트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영화의 줄거리는 종전이 선언되지 않은 이 나라에 왜 이념논쟁이 시시때때로 피어오르는지 알려준다.

말뿐인 언어가 오해를 쌓는다면, 실제적인 행동은 이를 와해한다. 우리 사회가 점점 경직된 이념을 강조한다면, 우리에겐 이를 풀어낼 수 있는 유연한 매개체가 필요하다.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말이다. 올해 정전협정 70주기를 맞이하여 경기도는 DMZ 관련 행사를 모두 묶어 ‘DMZ 오픈 페스티벌’(5.20~11.11/경기북부 DMZ 접경지역)로 개편했다. DMZ 오픈 페스티벌의 총감독이자 DMZ 오픈 국제음악제(11.4~11/고양아람누리 외)의 예술감독을 맡은 피아니스트 임미정은 가장 긴장된 장소에서 진행하는 유연한 예술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통한 평화의 이야기를 전했다.

“DMZ가 군부대만 들어갈 수 있는 공포의 땅이라는 인식보다,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참여할 수 있는 지역이라 여겨지길 바랍니다. 함께 문화 예술을 즐기면서 인식 변화가 있기를 바라요. DMZ는 평화와 공존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주는 장소입니다.”

지난 5월부터 시작한 DMZ 오픈 페스티벌은 가장 중요한 위치인 축제의 대미를 국제음악제로 두었다. 평화를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꼭 이뤄져야 할 실제 행동으로 여기는 DMZ 오픈 국제음악제, 그 예술감독인 임미정과 대화를 나누었다.

 

DMZ 오픈 국제음악제를 비롯해 평화마라톤, 전시 등 ‘DMZ’의 이름을 사용하던 여러 장르의 행사가 다양한 장소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행사가 명확히 무엇인지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DMZ 축제의 이야기는 2005년 8월 파주시의 평화누리공원 조성부터 시작한다. 공간이 조성되니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니 다양한 행사가 이뤄졌다. 학술포럼, 마라톤 대회, 음악회 등의 행사가 별개로 진행되다가, 이들이 묶여 2019년에 ‘Let’s DMZ’라는 하나의 종합행사로 출범했다. 안타깝게도 그 직후 코로나가 찾아와서 행사가 위축됐는데, 팬데믹이 끝나고 정전 70주년을 맞이하여 ‘DMZ 오픈 페스티벌’로 재탄생하게 됐다. 지난 5월 20일에 DMZ 평화걷기로 시작한 행사는 크게 포럼·스포츠·공연·전시라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내가 예술감독을 맡은 DMZ 국제음악제는 공연 분야에 해당한다.

 

이들은 어떻게 모였을까

여러 행사가 포함된 DMZ 오픈 페스티벌에서 DMZ 국제음악제가 차지하는 의의는 무엇인가.

우선 네 가지 분야 중 가장 많은 행사가 이어지는 것이 공연 분야이다. 그중 DMZ 국제음악제가 올해 DMZ 오픈 페스티벌의 폐막식을 맡게 됐다. 출연진도 단순히 국제적 명성을 중심으로 참여자 목록을 작성한 것이 아닌, 평화와 반전에 의미를 더해 주는 아티스트로 초청했다.

참여 아티스트가 평화의 의미와 이어진다는건 무슨 뜻인가?

페스티벌 개최에 앞서 국제콩쿠르세계연맹의 사무총장인 플로리안 리임(1968~)과 대화를 나눴다. 국제콩쿠르세계연맹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제명한 단체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개최되던 호로비츠 콩쿠르를 올해 제네바에서 안전하게 개최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호로비츠 콩쿠르에서는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로만 페듀리코(2004~)가 우승했고, 그렇게 그를 DMZ 국제음악회의 개막공연 협연자로 초청하게 됐다. 나는 이러한 배경과 행동이 평화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축제에는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수상자인 안나 게니우셰네(1991~)와 드미트로 초니(1993~),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의 우승자 한재민(200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수상자인 김태한(2000~)과 율리야 무지첸코(1994~)가 출연한다. 이들 역시 유사한 배경으로 초청됐는지?

미국인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1934~2013)은 냉전 시대였던 1958년 소련의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우승자였다. 당시 미국인이었던 그가 소련의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생애에도 한국전쟁과 이념전쟁의 아픔이 남아있다. 러시아 출신 율리야 무지첸코의 경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보도가 많이 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상기하고자, 우크라이나 아티스트와 더불어 러시아 음악가를 초청하고 싶었다. 마침 올해 바리톤 김태한이 우승하면서 화제가 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눈에 들어왔다.

공연의 레퍼토리 선정도 평화와 반전과 관련이 있나?

기획 취지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연주자의 자율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으로 조율했다. 또한 작곡가 김신(2022년 제네바 콩쿠르 우승/1994~)에게 이번 개막공연을 위한 작품을 위촉하여 그의 작품 ‘치유하는 빛’을 세계 초연한다.

흐르는 눈물이 녹인 경직

DMZ는 사회 현실, 정치와 맞닿아 있는 곳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이번 음악제는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진행되지만, 그 외의 DMZ 오픈 페스티벌 행사들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인 캠프 그리브스, 도라산 전망대 등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 장소는 통일부, 국방부, 코레일 등 다양한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청중 관람 허가도 1~3주까지 걸린다. 또한 일정 수준 이하의 데시벨(dB)을 유지해야 하거나, 북쪽을 향한 사진 촬영이 금지되는 등 지켜야 하는 수칙들도 여럿 있다. 국제음악제에서도 이러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나, 아직 협의 중이다.

강원도 PLZ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경험도 있고, 2000년에는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DMZ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나?

고3이었던 1983년, KBS교향악단과 협연 녹화를 하러 KBS 본관을 방문했는데, 당시 KBS는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모든 카메라와 방송 시설이 외부로 쏠리게 되어서 녹화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없었고, 나는 몇 번씩 KBS를 방문해야만 했다. 그때 며칠간 직접 눈으로 본, 눈물을 흘리며 가족을 찾는 이산가족들의 슬픔이 뇌리에 남아있다. 남북한 관계와 평화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더라.

그렇다면 DMZ 국제음악제를 통해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뜻이 있을까?

DMZ가 군부대만 들어갈 수 있는 공포의 땅이라는 인식보다,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참여할 수 있는 지역이라 인식하기 바란다. DMZ 오픈 페스티벌에서는 남북 간의 평화뿐만이 아니라 DMZ의 생태와 환경의 평화도 이야기하고 있다. 평화와 공존을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주는 장소이다. 다만 이 축제는 ‘진지하고, 유쾌한’ 페스티벌이다. 진지하다고 재미없고 딱딱하게 바라보지 말고, 함께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버드케인

임미정(1965~) 서울대 음대에서 학사,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 평양 방문, 2005년 (사)하나를위한음악재단 설립하여 여러 평화 음악회를 선보였다. 2019년 PLZ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올해 DMZ 오픈 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 선임되어 3년간 활동할 예정이다.

 

DMZ 국제음악제 일정(11월)
4일
치유하는 빛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로만 페듀리코(피아노), 김신(작곡), 임헌정(지휘), 경기필
로만 페듀리코

©Elza Zherebchuk

 

5일
영화가 삶에게 말해주는 것들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율리야 무지첸코(소프라노), 김은채(바이올린), 안두현(지휘), 과천시향


김은채

 

6일
JSA의 음악

공동경비구역(JSA) 인근

율리야 무지첸코(소프라노), 김은채(바이올린), 임희영(첼로), 로만 페듀리코·임미정(피아노)


율리야 무지첸코
임미정

 

7일
예술감독 콘서트 1 ‘진지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김은채(바이올린), 임희영(첼로), 임미정(피아노)


임희영

 

8일
예술감독 콘서트 2 ‘다양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정인호(베이스), 임희영(첼로), 로만 페듀리코·임미정(피아노), 박혜지(타악기)


박혜지 ©Elza Zherebchuk

 

9일
대지의 노래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율리야 무지첸코(소프라노), 김태한(바리톤), 정인호(베이스)


김태한
정인호

 

10일
냉전을 넘어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안나 게니우셰네·드미트로 초니(피아노)


안나 게니우셰네
드미트로 초니

 

11일
그리고 내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김태한(바리톤), 한재민(첼로), 정명훈(지휘), KBS교향악단


한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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