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2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
그의 ‘벨 에포크’는 바로 지금!
클래식 음악은 물론 영화,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매력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오래된 푸조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선다. 차를 타고 이끌리듯 도착한 곳은 콜 포터의 ‘Let’s Do It’이 흐르는 1920년대 프랑스 파리. 알렉상드르 타로(1968~)의 손끝에서 번지는 ‘사랑에 빠져보자’라는 속삭임은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2) 속 한 장면을 그렇게 재현해냈다. 재즈 풍의 연주로 1920년대 파리의 분위기를 한껏 담은 음반 ‘지붕 위의 황소’(2012, Erato)는 이 프랑스 피아니스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타로의 이름을 다시 만난 건 영화 ‘아무르’(2012)에서였다. 극 중 피아니스트로 분한 그의 슈베르트 즉흥곡 연주는 영화 속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에 잔잔한 감동을 더했다.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의 영향으로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작년, 영화음악을 담은 음반 ‘시네마’(2022)를 발매했으며, 지난여름 피아니스트 장 마르크 루이사다의 신보 ‘오늘 밤 영화관에서’(2023)의 편곡을 맡기도 했다.
꾸준한 음반 작업과 연주를 이어 오고 있는 알렉상드르 타로가 오랜만에 한국을 찾는다. 그의 최근 소식을 듣고자 신보 작업을 마친 타로에게 메일을 보냈다. 음악가의 내면을 다룬 에세이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2017년 출간/2019년 번역)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한 그는 여러 인터뷰 질문에도 꼼꼼하고 섬세한 답변을 보내왔다.
음악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의 기억
최근까지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와의 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업이 당신의 음악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언제나 저와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진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즐깁니다. 그들과 작업하는 모든 순간은 제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지요. 특히, 영화 ‘아무르’에 참여했을 당시, 감독 미카엘 하네케(1942~) 및 배우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지금까지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를 촬영할 때만큼은 연주자가 아닌, 감독님의 악기가 되었죠.(웃음)
작년에 영화음악이 담긴 음반(‘시네마’)을 발매하고, 올해는 장 마르크 루이사다의 영화음악 신보 편곡에 참여했습니다. 평소에도 영화음악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저를 매료시키는 것은 주로 영화음악 작곡가들입니다.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 미셸 르그랑(1932~2019), 존 윌리엄스(1932~), 필립 사드(1945~)와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은 정말 천재적이죠! 대부분의 훌륭한 영화음악은 클래식 음악에서 비롯되었지만, 클래식 음악계는 종종 그들을 제쳐 두곤 했습니다. 요요 마, 안네 소피 무터, 나탈리 드세이 그리고 저와 같은 연주자들이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아직 많지는 않지만, 곧 여러 음악가가 영화음악에 관심을 갖고, 자주 연주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반 작업도 흥미롭습니다. 1920년 파리의 카페를 연상시키는 ‘지붕 위의 황소’(2012), 샹송 가수 바르바라(1930~1997)의 20주기를 기념하는 ‘바르바라’(2017) 등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다양한 장르이지만 각각의 음반들에 서로를 보완하는 결속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시로, 샹송 가수 자크 브렐(1929~1978)의 음악을 노래했던 바르바라도 실은 슈베르트, 라벨과 멀리 있지 않아요. 그녀의 음악 곳곳에는 제가 사랑하는 작곡가들의 음악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매 음반을 녹음하기 전, 작곡가 에마뉘엘 샤브리에(1841~1894)의 무덤에 꽃을 놓고 온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에게 샤브리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그의 무덤과 웃는 얼굴을 담은 흉상이 있습니다. 음반을 녹음하기 전, 저는 그곳에서 샤브리에와 대화를 나누고 입맞춤을 보내지요. 그것은 저에게 행운을 가져다줍니다. 샤브리에는 드뷔시, 라벨, 그리고 프랑스 6인조(Les Six, 뒤레·오네게르·미요·타유페르·오리크·풀랑크)로 시작하는 20세기 프랑스 음악의 초석입니다. 피아니스트로서 프랑스 음악을 잘 연주하고,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샤브리에의 작품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는 이전에 볼 수 없던 색채와 대위법, 더블베이스의 사용 등 매우 많은 것들을 발명했는데, 심오하고도 가벼운 그의 음악에서 프랑스 정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크로크무슈(햄과 치즈를 껴넣은 프랑스식 샌드위치) 같은 캐비어, 레드 와인 같은 샴페인 그리고 피갈(몽마르트의 환락가) 같은 베르사유 궁전처럼요. 이것이 곧 프랑스라고 할 수 있죠!
오는 10월, 새로운 음반 발매를 앞두고 있습니다. 음반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요.
이번 음반에는 라벨의 협주곡 두 곡을 담았습니다. 라벨 연주에 익숙한 루이 랑그레/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작업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더불어 마누엘 데 파야(1876~1946)의 ‘스페인 정원의 밤’을 녹음했는데, 이 곡은 제가 오랫동안 꾸준히 연주해 온 작품이기도 합니다.
라모부터 라벨까지, 프랑스 음악이 흐르는 가을
타로의 내한은 2016년 이후, 무려 7년 만이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며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오랜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소회를 묻자, 그는 “한국에서의 지난 일정은 모두 환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라고 운을 뗐다. 2006년 첫 방문 이후,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한국을 찾고 있는 타로는 시간이 날 때면 서울의 역사적인 동네 혹은 사찰 등을 방문한다고 전했다. 지난 공연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던 그가 올가을에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무대를 프랑스 음악으로만 구성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제 공연에서 많은 프랑스 음악을 연주하고, 이 음악들을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즐깁니다. 특히, 프랑스 음악에서 라모와 쿠프랭은 매우 상호보완적인 한 쌍입니다. 라모는 자연과 즐거움, 우주와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쿠프랭은 내향적이고, 정확하며 극도의 섬세함을 지니고 있지요. 이러한 조합은 이번에 연주할 20세기 프랑스 작곡가인 드뷔시와 라벨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음악을 중심으로 선보이는 무대인 만큼, 음악에서 프랑스적인 요소는 어떠한 특성을 보이며, 어떻게 해석하는지, 본인만의 방법을 소개해 주세요.
프랑스 음악을 잘 해석하려면 음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어느 정도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때로 피아니스트들은 음악을 ‘악보대로’ 연주하느라 즐거움과 우아함을 잊어버리곤 하죠. 예를 들어, 라벨의 음악은 악보에 모든 디테일이 담겨 있지만, 무대 위에서는 쉽게 흘러가듯 연주해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프랑스 음악을 해석하는 데 가장 주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라벨은 밤에 자주 놀러 나갔으며, 레어 스테이크를 즐겼고, 재즈를 사랑했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마세요!
앞으로의 연주 계획이 궁금합니다.
요즘은 바로크 음악 중심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입니다. 내년에는 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많이 연주하려고 합니다. 라벨의 ‘볼레로’와 그의 삶을 추적하는 안느 퐁텐(1959~) 감독의 영화 ‘볼레로’에도 출연할 예정입니다. 영화 속에서 저는 라벨을 경멸하는 끔찍한 비평가 역을 맡았고, 그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하기도 합니다. 이를 위한 녹음 작업도 벌써 마쳤고요. 이번 공연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라 발스’에 이어 내년에도 라벨 중심적인 한 해를 보내게 될 것 같네요.(웃음)
글 홍예원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라벨: 피아노 협주곡 & 파야: 스페인 정원의 밤
Erato 5419766071
알렉상드르 타로(피아노)/루이 랑그레(지휘)/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알렉상드르 타로(1968~)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독보적인 예술관을 자랑하는 연주자로 손꼽힌다. 25개가 넘는 음반을 발매했으며, 바흐·슈베르트부터 20세기 프랑스 작곡가들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해석력을 보인다. 클래식 음악 외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이루며, 2013년에는 라파엘 아엘리그 레그니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알렉상드르 타로: 르 탕 데로베’를 발표한 바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알렉상드르 타로 피아노 독주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