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박혜상,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월 29일 8:00 오전

SPOTLIGHT

 

소프라노 박혜상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삶의 지혜를 담은 두 번째 음반 발매와

오랜만의 국내 리사이틀을 앞둔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

 

©Sangwook Lee / Jewelry by Tiffany & Co. / Dress by GIVENCHY

 

 

 

 

도이치 그라모폰(DG)이 선택한 아시아 최초의 여성 성악가, 소프라노 박혜상. 그는 첫 음반 ‘I am Hera’(2020/DG) 발매 이후 지금까지도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3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열었으며, 메트 오페라 ‘팔스타프’에서 나네타 역을 맡았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에는 뉴욕필과의 협연 무대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불렀다. 지난해 가을에는 메트 오페라 ‘잔니 스키키’ 공연 전체가 취소되며 해외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오랜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박혜상이 돌아왔다. 정성과 공을 들인 새 음반과 공연 소식으로.

 

 

 

 

 

 

 

첫 음반 발매 이후 4년 만의 신보 소식이다. 오는 2월 선보이는 ‘Breathe’(DG)의 콘셉트가 궁금하다. 첫 번째 음반 녹음 당시와 달라진 점, 그리고 이번 음반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팬데믹 기간에 느꼈던 극심한 두려움에서부터 비롯된 음반이다. 모든 걸 버리고 먼 곳으로 떠나 위안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새 음반에 들어갈 레퍼토리를 선별하며, 나만의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문득, ‘두려움’은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죽음의 의미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 용기가 생겼다.

이번 음반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를 담고있는 ‘세이킬로스의 비문’에서 영감을 얻었다. 비문에는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결코 슬퍼하지 마라. 인생은 잠시 동안만 존재한다. 그리고 시간은 그 대가를 요구한다’라는 구절이 적혀있다. 기원전에 살았던 한 남자의 눈물에 담긴 삶의 지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레시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회복력을 음반에 담았다.

조성진, 김봄소리와 더불어 DG 아티스트 중 몇 안 되는 한국인 음악가로 손꼽힌다. DG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음반을 작업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감사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감과 무게감도 크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나를 자주 괴롭히곤 한다. 불완전한 모습으로 평생 남을 음반을 낸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2022년 7월 초, 처음 녹음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벌써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시의 그 모습이 나의 최선이었다면, 지금은 지난 시간보다 조금 더 성장했다고 스스로 위로하곤 한다. 과거도, 미래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삶은 바로 이 순간이라는 것에 집중하고, 감사함 외에 모든 두려움은 버리려고 노력한다.

고혹적인 음반 표지가 인상적인데, 촬영 중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소개해 준다면?

녹음을 마친 어느 날, 신비로운 꿈을 꿨다. 꿈속의 나는 실크드레스를 입고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지난날이여 안녕’을 부르며 물속으로 고요히 들어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물속에서 편히 숨을 쉬며 유영하고 있었는데, 그때 보았던 내 모습을 이번 음반에 재현하고자 했다. 촬영에 필요한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위해 동남아에 일주일간 머물렀고, 베를린에서 오페라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프리다이빙 개인 레슨을 받았다.

음반의 뮤직비디오와 표지 촬영을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렀을 때, 촬영을 위해 8시간 가까이 물속에 있었던 적이 있다. 물 밖에서 촬영팀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물속에서는 그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다른 세계에 다녀온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깨달음

©Sangwook Lee / Jewelry by Tiffany & Co. / Dress by GIVENCHY

음반의 머릿곡을 루크 하워드의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으로 정했다. 다가올 공연의 첫 순서를 장식하는 곡이기도 한데.

어떠한 상실의 여정에는 슬픔과 두려움 외에도 죽음 너머 탐구할 것이 더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사랑이 있고, 삶에 대한 놀라운 찬란함이 있다. 앞서 이야기 한 세이킬로스의 비문에 담긴 가장 큰 메시지를 이번 음반에서 전하고 싶었고, 스스로 세이킬로스가 되어 그의 입장에서 보는 인생을 이번 공연에 녹여내고 싶었다. 그의 즐거웠던 시간, 혼란, 회고, 그리고 깨달음의 경지가 담긴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몽살바헤의 ‘다섯 개의 흑인 노래’나 그레베르의 ‘사랑한다 말했지요’, 퐁세 ‘작은 별’ 등은 기교 없이 편안하게 부를 수 있지만, 인생의 깊이를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이러한 곡들이 청중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으면 하는가?

이런 곡들은 노래할 때 내 몸이 텅 빈 원통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힘을 들이지 않고 온전히 주어지는 무게감만으로 조심스럽게 깊은 선율을 어루만지면 그저 도구로서 존재하는 나를 경험하게 된다. 숨결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곡들이다. 세이킬로스가 느낀 순수한 빛이 이러한 곡을 통해 잘 표현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다.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중 ‘방황하는 마음’과 R.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리치니오 레피체의 ‘체칠리아’ 중 ‘고마워, 여동생들아’ 등의 선곡 이유도 궁금하다.

‘카르미나 부라나’를 통해 세이킬로스에게 닥친 혼돈과 광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가 묘비 앞에서 회상하는 행복했던 시간은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가곡에서 표현되리라 생각한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레피체의 작품에서 꽃이 핀다. 천천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숨을 쉬면 공기가 바뀌고, 마음이 변한다.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삶의 고단함이 더 이상 무겁지 않게 느껴진다. 이 곡은 성녀 체칠리아의 임종 고백이다. 그녀는 해야 할 말들을 하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등지며 돌아간다.

작곡가 우효원의 작품들도 눈에 띈다. 가곡 ‘가시리’를 부르고, 소리꾼 고영열과 함께 ‘어이 가리’와 ‘새야 새야’를 노래한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 가곡에 대한 생각을 들려달라.

작곡가 우효원의 곡은 한국적인 색채가 뚜렷하다. ‘어이 가리’는 아쟁 소리에 사람의 목소리를 더하고, 상례에서 부르는 노래를 레퀴엠과 접목한 곡이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에게 조금만 더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현한다. 결국은 이생을 떠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니, 남아있는 자들은 그들의 온전한 평화를 기도하며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조심히 가라는 간절한 위로를 전한다. 우리는 때때로 가장 단순한 것에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한다. 죽은 이들의 고요함도 그러하다. 아쟁의 단선율 반주와 어우러지는 단순한 멜로디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에너지로 그 공간을 채우고, 그 에너지를 들을 뿐 아니라 반응하고 집중하게 한다.

새 음반은 베르디의 ‘오텔로’ 중 ‘아베 마리아’, 벨리니의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으로 끝을 맺는다. 두 곡의 아리아로 마무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가피한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말라고 한 세이킬로스의 말이 ‘오텔로’와 ‘노르마’ 속 두 여인에게도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데스데모나와 노르마는 미래를 알고 있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자아를 내려놓으면 불행한 이야기도 사라진다. 이들은 자신의 고결하고 진정한 사랑에 대한 헌신을 굳건히 지키며, 오히려 자신을 아프게 하는 이들을 용서하고, 모든 사람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드린다.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낙담하지 않는다. 죽음 뒤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결국 사랑인가보다.

함부르크·메트 오페라, 가드너/런던필, 두다멜/LA필과의 협연 등 2024년의 일정이 화려하다. 올해의 계획과 꼭 이루고픈 소망이 있다면?

계속 성장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 힘든 순간에도 결국은 음악이 가장 좋은 치료제가 된다. 매일 연습하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음악가가 되고 싶고, 매일 영혼을 들여다보며 좋은 기운을 전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뻔하고 지루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내 존재에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없을 것 같다.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ANRC

 

박혜상(1988~)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줄리아드 음악원 석사과정과 전문 연주자 과정을 전액 장학금으로 마쳤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5위, 2015년 몬트리올 콩쿠르와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20년 5월 DG와 전속 계약을 맺었으며, 2021년 음반 ‘I am Hera’를 발매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소프라노 박혜상 리사이틀 ‘Breathe: 숨’

2월 13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루크 하워드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카를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중 ‘방황하는 마음’, 우효원 ‘가시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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