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를 위한 완전함, 지휘자 이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2월 5일 8:00 오전

FOCUS ON

 

지휘자 이든

오페라를 위한 완전함

 

콩쿠르로 검증받고, 단련 중인 차세대 지휘자. 국내 데뷔를 앞두고 오페라 지휘론을 들어보았다

 

오페라의 막이 오르기 직전, 오케스트라 피트로 핀 조명을 받으며 누군가 입장한다. 고개를 빼꼼 내어 쳐다봐야 겨우 눈썹 정도나 보일까. 관객이 눈치껏 앞 사람의 타이밍에 맞춰 손뼉을 치고 나면, 그의 손끝에 맞춰 오페라 서곡이 울리며 막이 오른다. 오페라 지휘자에 대해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다.

관객은 금세 그의 뒷모습은 잊은 채 무대 위의 음악과 연출에 매료되지만, 오페라 지휘자는 피트 아래서 쉴 새 없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동시에 갑자기 길게 늘어지는 성악가의 고음 뽐내기에도, 장치들이 움직이는 모든 타이밍에도 음악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공연 당일뿐이랴. 공연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오페라에 사용되는 언어를 이해함은 물론, 성악가를 지도할 발음에 대한 지식, 어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적 소양까지 요구된다. 100명이 넘는 프로덕션의 각종 스태프와 소통해야 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완벽한 준비 속에서도 유연함을 갖춰야 하는, 그야말로 ‘완전한’ 지휘자. 오페라 지휘자 되기가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때문에 한 명의 오페라 지휘자 탄생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오페라 전문 극장의 부재로, 오랜 시간 오페라 코치나 부지휘자로서 경험을 쌓으며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전무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1980년생의 한국 오페라 지휘자들(김은선·홍석원)은 국제무대에서의 경험을 부지런히 쌓으며 고국에 반가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든(1988~)이 이 행렬에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오는 2월, 국립오페라단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을 지휘한다. 2022년 구노의 ‘파우스트’를 콘서트버전으로 선보인 공연에 이어 정식 오페라의 전막 공연으로 국내 데뷔는 이번이 처음이다. 브장송 콩쿠르 특별 언급상(2021)에 이어 플로브디프 오페라 지휘 콩쿠르(2023)에서 우승하며 오페라에 대한 뚜렷한 관심을 표명해 왔던 그의 음악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곧 있을 오페라 리허설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와, 오페라에 대한 긴 대화를 나눴다.

 

2023년 플로브디프 콩쿠르 시상식 ©Plovdiv State Opera

본지와는 프랑스 브장송 콩쿠르 특별 언급상을 수상하며 인터뷰했다. 최근 우승한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오페라 지휘 콩쿠르는 오페라에 초점을 맞춘 콩쿠르였는데, 다른 점이 있었나?

모든 콩쿠르가 그래왔듯, 나를 돌아보고 완성하는 계기였다. 발레 지휘 콩쿠르가 따로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페라 지휘 콩쿠르는 교향곡·협주곡은 물론, 성악·합창·연출·언어가 포함된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큰 규모의 레퍼토리를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매번,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페라 지휘 콩쿠르의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특화되어 있나?

콩쿠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첫 라운드에서는 피아노 반주, 성악가들이 대기하는데 그 자리에서 심사위원이 경연곡 중 특정 파트를 지휘할 것을 정한다. 레치타티보가 많이 나오는 파트나 듀엣 혹은 아리아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라운드는 오케스트라와 경연곡의 서곡과 성악, 합창 부분을 연주한다. 서곡은 오페라를 설명해 주는, 책으로 치자면 머리말이다. 전체 오페라를 축소해 놓은 버전이기 때문에, 오페라를 잘 알지 못하면 서곡 역시 잘 연주할 수 없다. 결선 라운드에서는 대부분 성악가·합창단·오케스트라와 리허설 할 수 있는 시간이 1시간 정도 주어진다. 이때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욕심은 내려놓아야 한다. 보통, 리허설 다음날 최종 결선 연주를 하게 된다.

지속적인 콩쿠르 도전이 직접적인 오페라 무대 기회로 이어지기도 하나? 콩쿠르 현장에 음악계 관계자가 찾는 분위기인지 궁금하다.

유럽에서 열리는 주요 지휘 콩쿠르는 심사위원이 다양하다. 지휘자부터 에이전트, 극장장이나 음악감독 등이다. 주요 언론사나 비평가들을 포함해 더 많은 관계자가, 대부분 두 번째 라운드부터 무대를 지켜본다. 최종 본선 진출자나 수상자, 또는 마음에 드는 다른 참가자들에게 따로 연락을 주거나, 에이전트의 연락을 받는 경우도 있다. 콩쿠르에서 눈여겨본 지휘자의 다른 공연을 보러 가서 한 번 더 점검하는 경우도 있다. 확실한 건, 매번 편한 길이 열려 있지는 않다. 준비된 지휘자에게 기회가 간다.

 

오페라 지휘는 ‘함께’ 만드는 예술

 

다가올 공연 얘기를 조금 해보자.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은 오페라 부파로 분류되며, ‘가장 로시니다운 작품’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로시니다움’이란 무엇인가?

‘로시니다움’은 벨 칸토 선율과 언어의 뉘앙스를 살리며, 리듬을 잘 타는 것이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은 오페라 부파 안에서도 ‘드라마 지오코소’에 해당한다. 오페라 부파는 말 그대로 재밌는, 웃긴 오페라를 뜻하지만, 드라마 지오코소는 ‘유쾌한 드라마’를 뜻해 감상적이며 간혹 애처로운 줄거리도 갖고 있어 해피엔딩을 맞는다. 어떻게 보면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재밌는 에피소드들 사이에, 진지하고 음악적인 벨 칸토 선율이 매우 많다. 다른 한편으로, 로시니는 작곡할 때 타악기 리듬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 특징이 노래 선율에도 돋보인다. 실질적으로 가사에도 타악기 리듬을 접목하는 식이다. 레치타티보가 많은 오페라 장르여서, 그 뉘앙스를 살리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하다. 이탈리아어 프레이징 사이의 강약 조절, 디렉션의 방향을 잘 표현한다면 언어를 모르는 관객도 충분히 같이 웃고 즐기실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 내에서 개인적으로 감명 깊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나?

2막에서 이사벨라가 부르는 ‘조국을 생각합시다’ 파트다. 알제리에 납치되어 있던 이탈리아 노예들(합창)을 이끌고 고국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다. 로시니가 사랑했던 ‘대담한 여주인공의 모습’이 잘 나타나는 부분이며,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중요 장면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 외에 국내에서 지휘해 보고 싶은 오페라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푸치니 오페라의 ‘푸치니아나’적인 선율과 화성이, 제대로 이해되어 연주되는 경우를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성악가의 기량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 언어적 벽을 이겨내어 실제 푸치니의 선율과 화성을 통해 관객의 심금을 더 건드릴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

 

오페라를 위한 오케스트라의 부재

 

©OperUs Official

그간 오페라 지휘로 경력을 쌓아왔다.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 외에, 오페라 지휘자로서의 소양을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페라 지휘자는 모든 것에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완전한 지휘자(Direttore Completo)’가 되어야 한다. 성악도 알아야 하고, 코치분들을 존중하고, 연기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며, 사람을 대하는 법도 터득해야 한다. 내가 선 포디엄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음악의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분들이다. 당연히, 겸손과 존중이 중요하다. 그동안 멘토로 만났던 요르마 파눌라, 안토넬로 알레만디, 미셸 타바츠닉과 같은 지휘자들은 음악보다 철학·인문학·과학·신학 등의 이야기를 주로 많이 해주셨다. 음악만 아는 지휘자가 아닌,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지는 예술가가 되도록 이끌어주었던 것 같다.

국내에는 오페라 전문극장이 많지 않아 시스템 구현이 쉽지 않다. 실현해 보고 싶은 시스템이 있나. 실제로 본인의 리허설 준비 과정도 궁금하다.

오페라 지휘자로서 전문 극장도 중요하지만, 오페라를 위한 오케스트라가 없다는 것이 더 크게 체감된다. 물론 오페라만 하는 오케스트라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교향곡·협주곡 뿐만 아니라 오페라·발레 음악 역시 잘 알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제대로 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코치분들이 오페라 프로덕션에 더 많이 투입되어, 이탈리아 극장에서의 경험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내 리허설 방식은 즉흥적인 부분도 많다. 리허설을 완벽히 계산해도, 현장에서는 그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리허설의 방향은 늘 생각하지만, 상황에 따라 감정의 표현 방향도, 템포도 달라질 수 있다. 리허설을 통해 오페라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음악인들과의 시너지도 더 크게 발생하고 어떤 경우에는 더 좋은 해답이 나올 수 있다.

올해 어떤 공연 일정들을 계획 중인가?

루마니아·불가리아·이탈리아·프랑스에서 오페라 공연 및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시간이 된다면 지난해와 같이 아테네 국립음악원에 마스터클래스를 하러 갈 생각도 있다. 여름 중반에는 한국에서 오랜 음악적 파트너인 연출가 다니엘 피스코포와 다큐멘터리 오페라를 선보일 예정이다.

허서현 기자

 

이든(1988~)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피아노·성악을 전공하고, 매네스 음대에서 성악가 석사와 전문연주자과정을, 베르디 음악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석사과정을 마쳤다. 루이지 만치넬리 오페라 지휘 콩쿠르 우승(2018)·브장송 콩쿠르(2021)에서 수상했고, 플로브디프 오페라 지휘 콩쿠르(2023)에서 우승했다. 이탈리아 벨 오페라 페스티벌 총예술감독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국립오페라단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2월 22~25일 국립극장 해오름

최지형(연출), 이든(지휘), 키아라 아마루·김선정(이사벨라), 발레리 마카로프· 이기업(린도로),

권영명·전태헌(무스타파), 이혜진·이해원(엘비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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