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27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연재 |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01 아라벨라 아츠 대표 스테파나 아틀라스 … 23 라 스칼라 극장 대표 도미니크 마이어 24 부소니-말러 재단 예술감독 피터 폴 카인라트 25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대표 니콜라스 폰트 26 스타인 웨이 앤 선즈 대표 벤 스타이너 27 밴 클라이번 콩쿠르 대표 자크 마르퀴스
사람과 도시의 예술적 동반 성장을 꿈꾸다
2022년 임윤찬을 배출한 콩쿠르. 올해도 또 다른 스타를 기다리고 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대표 자크 마르퀴스
자크 마르퀴스(Jacques Marquis) 경영학과 음악 학사를 취득했고, 몬트리올 콩쿠르, JMC 재단을 거쳤다. 1998년부터 몬트리올 메트로폴리탄에서 일했으며, 최근 세계 국제 음악 콩쿠르 연맹 이사회에서 9년간 재직했다. 2013년부터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CEO로 임명되었고, 지역 서비스 확대, 주니어 콩쿠르 개최 등을 시작했다.

콩쿠르가 열리는 바스홀 ©Richard Rodriguez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도시 포트워스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4년마다 개최되는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유명 콩쿠르다. 올해 콩쿠르는 초여름(5.21~7.6)에 열릴 예정이다. 현재 1차 오디션을 통과한 이들은 77명. 그중 한국 피아니스트는 10명이며, 이들 중 30명의 참가자가 본 콩쿠르에 참여하게 된다.
역대 한국인 수상자도 많다. 손열음(2009, 준우승), 선우예권(2017, 우승)을 이어 2022년 임윤찬이 역대 최연소로 우승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승 후 그는 세계 무대에서 사랑받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뛰어난 연주 실력도 이유지만, 밴 클라이번 콩쿠르 측에서 제공한 스트리밍, 즉 우승을 거머쥐게 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를 온라인으로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 그를 대중에게 많이 알린 계기가 되었다. 신들린 듯한 연주를 마치고 난 후의 지휘자와의 강렬한 포옹이, 우리에겐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선물이었다.
올해, 콩쿠르 개최를 앞둔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대표 자크 마르퀴스를 화상으로 만났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캐나다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11번의 콩쿠르를 경험했다. 이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컨설턴트로 일을 시작했고, 2013년부터 CEO로 일하고 있다.
음악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었나? 어떻게 음악계에서 일하게 되었나?
매주 일요일마다 몬트리올에 있는 대성당에서 합창을 했다. 인지도가 있는 합창단이라 매주 합창 공연을 했는데,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피아노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막상 전공을 하니 피아노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경영학을 공부했다. 30년 전에, 내 나름대로 예술과 경영을 접목시킨 셈이다.(웃음) 당시 음악 산업에서는, 음악가들에게 경영 감각이, 경영자들에게 음악적 지식이 부족했다. 대학 졸업 후 몬트리올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에서 행정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음악으로 하나 되는 세계와 도시

2022년 수상자 ©Ralph Lauer
2022년 우승자 임윤찬은 밴 클라이번 콩쿠르 입장에서도 특별한 연주자일 것 같다.
대단한 연주자다. 음악에 몰입하고, 청중도 자신의 음악 세계로 끌고 간다. 높은 웹캐스트 조회수만 봐도,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발생했다. 임윤찬의 우승으로 우리 콩쿠르가 한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된 것 같다.(웃음) 한국 팬들이 임윤찬을 많이 응원해 줬고, 덕분에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국제적 영향력도 커졌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1958년은 밴 클라이번 콩쿠르 시초에 영향을 준 특별한 해다. 밴 클라이번(1934~2013)이 러시아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당시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탁월함을 알리기 위한 대회라고 여겨졌는데, 텍사스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엄청난 이변을 만든 것이다. 이는 정치적·지리적 구분을 뛰어넘는 음악의 힘을 세계인에게 상기하는 사건이 되었다. 밴 클라이번은 귀국 당시 우승 퍼레이드를 할 정도로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밴 클라이번은 러시아와 미국의 음악적 가교 구실을 했고, 포트워스에서 그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196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가 창설됐다. 이후 4년에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이 콩쿠르가 다른 콩쿠르와 차별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우승자의 커리어 관리 프로그램이 어느 콩쿠르보다 잘 갖춰져 있다고 자부한다. 특히, 우승자들을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리고자 노력한다. 일례로, 2022년 임윤찬의 최종 결선 동영상은 1,600만 명이 시청했다. 본 콩쿠르 온라인 캐스트 전체 누적 조회수는 6천만 회에 달한다.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 팬층을 확고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연 기획자들도 피아니스트를 접할 수 있다. 특별히, 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싶다. 심사위원들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14명으로 구성되어, 참가자들과 이해관계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참가자들의 독창적 음악성과 개성을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텍사스 지역 사회에 콩쿠르가 미치는 영향도 궁금하다.
올해처럼 국제 콩쿠르가 열리는 해는, 포트워스 전체가 활기를 띤다. 마치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처럼,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이 이곳에 모여 도시 전체가 기분 좋게 술렁인다. 최종 라운드는 공연장뿐 아니라, 야외 광장의 대형 스크린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45,000명 정도가 관람한다. 콩쿠르 기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도 개최한다. 도서관과 박물관, 공원 등 지역 사회에 다각도로 접근하기 위함이다. 외에도 13~17세 대상의 주니어 콩쿠르, 35세 이상을 위한 아마추어 콩쿠르도 진행한다.
2022년 콩쿠르 당시,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연주자가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두 연주자 모두 포트워스에 초청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이들의 초청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는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없다. 이들은 당시 러시아에 거주하지도 않았고, 미국·독일 등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과 아무런 관련 없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왜 불이익을 주어야 하는가! 더군다나 밴 클라이번 본인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참가하며 예술적 가교 역할을 했다. 음악과 정치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음악이 정치 때문에 자기 세계를 왜곡하거나 배척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음악은 오히려 대립하는 것들을 모두 품을 수 있다. 우리는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음악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힘이 있다.
투명하고 적극적인 콩쿠르 만들기

지휘자 마린 알솝과 임윤찬 ©Ralph Lauer
최근 참가자들의 연주 스타일 변화가 있나?
50년 전만 해도, 국가별 스타일이 존재했다. 지금도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점점 약해지며, 다양한 스타일이 융합되는 추세다. 중국에서 태어난 학생이 뉴욕에서 공부하고, 뉴욕 출신의 교수들이 일본에서 가르치는 등 현재 교육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13~17세 대상의 주니어 콩쿠르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기량을 가진 어린 연주자들도 많이 발견된다.
콩쿠르의 주요 심사 기준은 무엇인가?
콩쿠르가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둔 이유는 심사 과정의 투명성이다. 이해관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대학교수는 심사위원에 포함되지 않으며, 여러 국적으로 구성한다. 심사위원들은 특정 연주 스타일을 선택하기보단, “이 연주자의 연주를 다시 한번 듣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기준으로 심사한다. 연주자가 자신의 개성과 해석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독창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연주자를 찾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예(Yes), 아니오(No), 보류(Maybe), 이렇게 3단계로 채점한다고 들었다. 보류(Maybe)를 범주에 넣는 이유는?
예(Yes), 아니오(No)가 동일 표로 나올 경우, 보류(Maybe)를 많이 받은 지원자가 진출한다. 최종 결선에서는 이 단계 없이 1·2·3위를 선정한다. 이 방식은 매우 객관적이며, 심사위원 간의 논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참가자들이 콩쿠르에서 역량을 잘 발휘하도록 제공하는 것이 있는가?
무엇보다 연습 환경이 중요하다고 본다. 최고급 피아노를 제공하고, 가족처럼 맞아줄 호스트 가족(지역 주민들)과 연결해 준다. 불필요한 신경을 쓰지 않고, 연주에만 집중하도록 모든 일정을 세심하게 조율한다.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우승자 지원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대부분 20대 초반이기에, 커리어를 잘 쌓아나가도록 돕는다. 콩쿠르 초기에는 우승자들에게 많은 공연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지만, 현재 세 명의 입상자에게는 우승 후 3년간 약 200~500회의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총 200만 달러(약 26억 원) 정도 규모로, 우승자의 수익으로 이어진다. 또한 우승자에게 미디어 트레이닝·재정 및 에티켓 교육·계약 법률 상담 등 다양한 지원을 한다. 일례로 미디어 트레이닝의 경우, 소셜 미디어나 웹사이트 제작 등을 콩쿠르 홍보팀이 직접 도와준다. 법률 전문가도 연결해 준다. 대형 공연 계약을 갑자기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이들이 법률적 보호를 받도록 교육하고 조언한다.
2024년 10월, 밴 클라이번 에이전시를 오픈했다.
에이전시는 우리가 그동안 해오던 관리의 연장선이다. 우승자의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목적이다. 아직 시작 단계라 규모는 작지만, 밴 클라이번이라는 브랜드를 활용, 소속 연주자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피아니스트와 더불어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등 다양한 연주자들을 관리한다. 자체 콘서트를 기획해 적극적으로 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콩쿠르 우승자는 자동으로 에이전시에 소속되나?
우승자는 기본적으로 처음 3년간 밴 클라이번 측에서 관리한다. 그 후에도 원하는 연주자는 연장 계약이 가능하다. 우승자가 아니어도, 우리가 주목하는 연주자라면 계약을 제안할 수 있다.
발전과 성공을 거듭하는 콩쿠르

2022년 콩쿠르 중계 ©Ralph Lauer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예산은 어떻게 구성되나.
연도별로 다르지만, 국제 콩쿠르가 열리는 해에는 예산이 약 1,000만 달러(약 135억 원) 정도고, 콩쿠르가 없는 해는 예산이 절반 정도다. 예산은 개인 및 기업 후원, 유산 기금인 민간 기부금(65%)과 티켓, 기념품 판매, 온라인 콘텐츠 등의 수익금(35%)으로 구성된다. 주정부 지원은 받지 않는다.
미디어 활동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팬데믹으로 관람 방식이 다양해졌고, 오늘날 온라인 콘텐츠를 많이 소비한다. 이를 위해 최고 수준의 음향과 카메라를 구비하며, 사회자가 원활한 진행을 돕는다. 전체 예산의 약 10% 정도를 투자하고 있으니 적은 액수는 아니다.
디지털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도입할 계획이 있는 기술이 있나.
다음 대회부터 AI 기술을 활용한 악보 연동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연주자가 무대에서 연주하는 부분의 악보가 화면에 표시되는 시스템이다. 악보를 보며 연주를 시청하는 걸 좋아하는 관객에게 신선한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밴 클라이번 콩쿠르가 음악계에서 앞장서서 보여주거나, 일으키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클래식 음악은 문화적으로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미국과 캐나다의 클래식 음악 교육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연장이나 오케스트라처럼 큰 조직들이 부족한 음악 교육을 대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관객에게 무료 공연, 지역 교육 프로그램,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다가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음악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철저하고 체계적인 음악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한국 연주자들이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중요 요인이다. 앞으로도 뛰어난 연주자가 탄생할 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많은 젊은 관객도 부럽다. 관객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은 음악계에 매우 소중한 자원인데, 한국의 젊은 관객은 매우 적극적으로 음악가와 소통하고자 한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이 더 많이 사랑받기 바란다.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밴 클라이번 콩쿠르

밴 클라이번 온라인 캐스트(유튜브 채널)
INFO 2025 밴 클라이번 콩쿠르 일정
예선(5.21~23), 본선(5.24·25), 결선(5.28~6.1), 최종 결선(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