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첼로를 드디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초보 음악가라서 줄을 감는 방법이나 브리지 관리법 등 악기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 시중에 많은 종류의 송진이 판매되고 있어서 어떤 송진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요. 송진의 종류에 따라 악기 소리가 달라지나요? 송진은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요?
장제환(성남시 수성구)
A 바이올린·비올라·첼로처럼 현을 활로 문질러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송진이죠. 송진의 끈끈한 성질이 활털과 현의 마찰력을 강화시켜 현을 잘 떨리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연주 전에 송진을 바르지 않으면 활이 미끄러져 찰진 소리가 나지 않아요.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속 악기 연주 장면은 일부러 송진을 칠하지 않은 활을 이용해 촬영하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이유로 찰현악기를 쓰는 음악가들은 한 손에 쥐어질 만한 작은 크기의 송진 덩어리를 꼭 휴대하고 다닙니다. 악기에 쓰이는 송진은 소나무 진액을 끓여 악기에 해로운 물질이나 수분을 증류시켜 만든 것입니다. 각 제조사만의 비밀 재료를 더해 조금씩 그 기능이나 효과가 다른 송진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시중에는 다양한 색깔과 강도의 여러 가지 송진이 팔리고 있지요. 쓰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송진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지만, 현악기에 막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송진을 고르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죠.
송진은 점성과 강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를 빚어냅니다. 온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죠. 이 때문에 전문 연주자들은 원하는 소리나 계절에 따라 다른 송진을 쓰기도 한답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산 ‘멜로스 라이트(melos light)’와 같은 밝은색 송진은 강도가 단단해 여름용으로 쓰이는데, 부드러운 음색을 만들어주어 실내악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미국산 ‘콜스타인(kolstein)’처럼 어두운 색 송진은 겨울용으로 좋으며, 더욱 강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나 큰 규모의 홀에 적합하다고 합니다. 어두운 색 송진은 밝은색 송진보다 무르지만 대신 가루 날림이 적다고 하네요.
어떤 말의 꼬리털로 활털을 만들었는지도 송진의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비올라나 첼로의 활털은 거칠고 센 시베리아 말의 꼬리털을, 바이올린의 활털은 주로 몽골 말의 꼬리털을 씁니다. 말의 꼬리털 표면에는 미세한 돌기가 있어서 송진을 활털에 문지르면 미세한 가루가 이 돌기들 사이에 박힙니다. 말의 종류에 따라 돌기 모양도 다르기 때문에 적합한 송진의 종류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주자가 각각 선호하는 송진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의 종류도 송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데, 일례로 양의 창자로 만드는 거트현의 경우엔 수분 함량이 많고 무르며 많이 끈적거리는 송진이 적합하다고 합니다.
특이한 기능으로 주목받는 송진도 있습니다. 특유의 향을 더해 해충을 퇴치시켜 악기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프랑스산 ‘사토리(sartory)’ 송진이 대표적이겠군요. 금을 넣어 만든 독일산 ‘라우바흐(laubach)’ 송진은 온도나 기후 조건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평을 듣습니다. 반면 은을 첨가한 송진은 높은 포지션의 연주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국악기인 가야금에도 송진을 사용합니다. 가야금 연주 중 튜닝이 자꾸 내려가거나 올라가면 악기의 줄을 떠받치는 안족의 홈이 넓어진 것인지 살펴봐야 하는데요, 이 경우 적당량의 송진 가루를 넣고 마찰을 만들어내 안족을 고정시킨다고 하네요.
이 정도면 송진이 현악기의 일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겠죠. 기특하게도 송진은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해내고 있답니다. 그런데 무용수들과 연주자들이 송진을 사용하는 방법만큼은 꽤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송진을 덩어리째 활에 문지르는 현악기 주자들과는 달리, 무용수들은 발로 직접 송진을 부수어 발에 바릅니다. 발레 무용수의 경우 토슈즈의 플랫폼(발끝), 그리고 뒤꿈치에도 적당량을 바른다고 하네요. 무대 옆에는 송진만 담는 널찍한 판이 따로 있어서 무용수들이 개인적으로 송진을 휴대하고 다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다양한 송진으로 인해 미세한 음의 차이가 발생하는 음악가의 송진과는 달리 무용수의 송진은 그 종류가 다양하지 않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공연장 밖에서도 송진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야구 경기장이죠! 음악가들에게 덩어리째 쓰이는 송진을 무용수들이 부수어 사용한다면, 투수들은 아예 가루가 난 송진을 경기에 사용합니다. 투수들은 ‘로진백’이라 불리는 백에 담긴 송진 가루를 손에 묻혀 공이 땀에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합니다. 타자의 경우에는 고체 송진을 이용해 타격 시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고 있지요.
이번 호에서는 다양한 송진의 세계를 탐구해보았습니다. 어떠셨나요? 장제환 독자님은 어떠한 첼로 음색을 원하시나요? 알려드린 정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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