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연 피아노 독주회

삶의 환희를 노래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허승연 피아노 독주회

2월 1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삶의 환희를 노래하다


▲ 사진 마스트미디어

연주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해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해석이란, 연주자가 음악의 내러티브를 주관적으로 엮는 작업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강조하는 현대의 풍토에서, 많이 연주되는 작품일수록 개성적인 해석이 더욱 요구된다.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아무리 잘해도 기성 가수와 비슷하거나, 편곡을 멋있게 해도 일반적 방식이면 좋은 평가를 얻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해석에 대한 관점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작곡가의 의도를 주장할 것이고, 누군가는 연주자의 주관적 생각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바흐의 칸타타를 연주할 때 바흐의 신앙이 어떠했는지 알아야 하는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들을 때 옛 소련의 정치적 상황을 기억해야 하는가? 그리고 슈베르트는 고독과 슬픔을 드러내야 하는가? 1824년 일기에서 ‘나의 작품은 … 나의 슬픔이 드러난 것이다’라고 쓰지 않았던가. 허승연의 슈베르트 소나타 연주회 리뷰에서 이렇게 고민되는 질문을 던진 이유가 있다. 허승연은 이 연주회에서 분명한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명한 거장들의 연주를 잘 알고 있다면, 그녀의 연주는 어떤 이에게는 신선하게 혹은 어떤 이에게는 당돌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피아노 소나타 19번에서 짧고 강하게 연주되는 첫 주제는 생명력 있는 자기주장으로 들렸으며, 방랑자의 숨결이 깃든 2악장은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는 자유 여행이었다. 3악장의 짧은 동기들은 구슬이 구르듯 다채롭고 화려한 피아노의 표현력을 보여주었고, 4악장은 2악장에서 자유 여행자들이 만나 소란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이어지는 피아노 소나타 20번의 1악장은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었다. 후반부에서는 이를 초연해 현재의 사운드를 즐기고 감응하는 선(禪)의 경지에 이르렀다. 2악장은 단순하고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멜로디지만, 오히려 편안하게 들으며 안정할 수 있는 느린 악장의 미학을 들려주었다. 3악장은 제스처를 살리면서 약간 과장된 극적 표현으로 삶의 에너지를 끌어올렸고, 4악장은 삶의 환희에 다가갔다. 이번 연주회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허승연은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고독과 슬픔이 아닌, 삶에 대한 환희로 해석한 것이다. 반면 피아노 소나타 21번은 다소 고전적인 해석에 다가갔다. 1악장은 은은한 사운드와 초연한 듯 방랑자같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론가 흘러간다. 하지만 그 음악은 낯설거나 멀리 떠난 것이 아닌, 망각의 주변을 맴도는 삶의 일부였다. 2악장은 소나타 19번과 달리 고독이 가득한 방랑자의 심리적 독백이었다. 이 두 악장은 매우 아름다운 걸작이지만 진행상 지루할 수 있는데, 3악장에서 이를 만회하기 위함인지 빠른 속도와 폭넓은 다이내믹으로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악장에서는 음악적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부담감으로 다가온 듯 여러 번의 실수가 있었다. 하지만 허승연은 음악을 침착하게 이끌어나가 마지막 화음을 연주했다. 이번에 발매한 음반에서는 여러 요소가 매끈하게 표현된 것에 비춰보면, 리사이틀이라는 상황에서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독주회에서 얻은, 슈베르트가 삶에 대한 환희로 그려질 수 있다는 경험은 허승연이 감상자들에게 준 크나큰 선물로 기억될 것이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마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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