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고 도전적인 눈빛, 가녀린 몸,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묘한 아우라가 풍기는 여인. 스치는 찰나에도 시선을 잡아끄는 그녀가 무대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감각을 그녀에게 집중하게 된다. 사석에서 만났을 때 보는 배시시한 미소도, 털털한 것 같지만 내성적이고 예민하기 그지없는 감성도,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보내는 귀여운 이모티콘도, 특유의 가녀린 듯한 강인함도, 그리고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광기 어린 움직임도 모두 그녀의 일부다.
춤추는 안무가 차진엽. 몸과 머리와 마음을 온전히 춤에 쏟아부으며 살아가는 사람. 그녀는 흥미로운 것을 듣거나 보면 제일 먼저 거기에 어울리는 움직임을 이야기한다. 아니, 그보다는 몸이 가장 먼저 반응해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이 묘한 분위기의 여인이 만들어내는 무대 위 동작은 하나같이 진실되고 정직하며 절박하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켜켜이 쌓여 그만의 움직임이 만들어진 듯 말이다. 최상의 예술적 에너지가 정성 들인 훈련을 만났을 때, 무대에서 얼마나 큰 시너지가 되어 전달되는지 확연히 보여주는 차진엽은 수련과 예술의 관계를 살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최적화된 연구 대상이다.
수련의 진화 _날 선 자유, 사색으로 다져진 시간
어린아이의 재능이 처음부터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픈 부모의 욕망이 우연히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기회로 작용할 때가 많다. 이런 계기로 예술의 길로 들어선 아이들은 더 즐겁게 오랫동안 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차진엽 또한 그런 경우였던 것 같다. 일곱 살에 재미로 다니기 시작한 동네 에어로빅 학원 선생님이 일찍이 그녀의 소질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시절엔 운동회날 단상에 올라가 한국무용 비슷한(?) 춤으로 솔로 데뷔를 하면서 무대 인생을 시작했다. 그날 이후 어린 차진엽은 운동회, 체육 시간, 심지어 국민체조 시간 등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단상에 올려지는 운명을 맞이했고, 이후 리듬체조를 배우게 된다. 리듬체조의 발레 동작을 보완하기 위해 다니게 된 발레 학원에서 선생님이 그녀를 스카우트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하게 됐다. 그때도 나비 같은 그녀를 모두 제자로 삼고 싶어 안달했던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예체능계 학생들은 중학생이 되는 순간부터 ‘전공’이라는 것을 한다. 이 단어는 우리가 인지하기도 전에 힘을 발휘하는데, 사춘기 성장통에 으레 따르는 인생과 존재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깊은 사색을 난폭하게 폐기하곤 한다. 한마디로 그런 사색은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전공’이니까, 하다보면 어느 순간 선택해서 하는 것이 아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된다. 떠올려보면, 입시와 시험의 전쟁 속에서 인생과 선택에 대한 사색이 대학 이후로 미뤄지는 현상들이 비단 예체능계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닌 듯하다.
이런 생각을 꺼내든 이유는 차진엽과 대화를 하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능 있는 학생이라면 당연시 여기는 예원학교를 거치지 않았고, 현대무용을 결정한 것도 서울예고 재학 시절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였다. 그래서인지 그녀 특유의 정형화되지 않은 사상도, ‘전공’이라는 단어를 늦게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하게 된 사색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춤이 자신의 인생이자 선택이라 스스로를 설득하며 업에 대한 확신과 함께 자신만의 특별한 생각을 많이 쌓아 올린 것은 아닐까. 물론 간단히 정리될 문제는 아니지만, 일찍이 시작한 사색은 ‘뒷심’을 발휘하는 친구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정해진 코스 대신 약간의 의외성을 경험한 학생들이 훗날 특유의 자유로움을 발휘하는 것처럼.
그렇다고 차진엽의 특별함이 생각에서만 나온 것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그녀야말로 누구보다 말없이,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오랜 시간 몸을 수련해왔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 첫 스승인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큰 애정으로 그녀를 가르쳤는데, 당시 발레를 기초로 한 혹독한 트레이닝은 훗날 그녀를 차별화하는 힘이 되었다. 이후 새로운 움직임에 이끌리게 되고, 방향을 돌려 현대무용을 택한 뒤에는 더욱더 열성적으로 연습했다.
그저 분방한 자유로움과 모든 것이 날 선 ‘진짜’ 자유로움은 언제나 그렇듯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깊은 사색에서 비롯된 생각은 행동과 동반할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행동과 관념의 수련 _오랜 시간, 정성껏, 훈련한, 몸의 언어
“몸이 의식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최근 목욕의 즐거움을 묘사하는 글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그 문장을 곱씹어보니 실제 생활에서 몸과 의식을 동일선상에 두는 것은 정말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퍼포밍 아티스트, 특히 몸의 언어로 메시지를 전하는 무용수에겐 일상이자 가장 큰 화두일 것이다. 몸의 움직임에 의식을 집중해 살아간다는 건 어떤 삶일까. 차진엽은 이 관계에 대해 오랜 시간 곱씹어온 듯했다.
“마인드와 몸을 연결하는 과정은 가가 테크닉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왜 움직이느냐보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 근원적인 것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과정이죠. 어떤 상상과 감각과 감정에 빠졌을 때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고 그것을 다시 살피면서 안무를 정해나가요. 하지만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관념에 빠지거나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움직이는 균형을 지키려고 해요.”
몸과 감정 사이의 긴장, 그 상관관계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 동안 서로의 부끄러운 과거사가 슬슬 풀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로 깔깔거리면서 ‘물개박수’를 치며 웃어댔다. 그녀도, 나도 많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무조건 강하게 발산하려고만 했던 경험담, 자꾸만 나오는 습관적 움직임에 공감하는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퍼포머들이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았을 때, 관객은 오히려 그것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는 것에 동의하게 됐다.
“감정에 휘둘리면 오히려 명확하지 않아요. 강한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정말 몸을 내팽개치면서 온힘을 다했는데, 실제론 그게 절대 명확하지가 않더군요(웃음). 관객은 공연에 몰입하고 대리 만족하길 원하는데, 퍼포머가 감정에 너무 빠지면 관객은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게 되죠. 오히려 감정을 빼고 몸만 움직일 때 이입의 정도는 높아진다고 봐요.”
나의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김현수가 리허설할 때 자주 하는, 아니 소리 지르다시피 하는 말이 있다. “네 꺼 어차피 잘 나와! 안달하지 말고 쿨하게 해!”
한마디로 힘 빼고 그냥 해도 에너지는 발산된다는 소리다. 이제는 천 번쯤 들어서 알 만도 한데, 아는 것과 별개로 항상 힘든 것이 바로 이 경계선을 지키는 일이다. 심지어 지켜진 듯한 순간에는 귀가 과도하게 열려버려,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만큼 내 소리의 단점이며 나쁜 습관이 부각되고 여기에 신경질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숱하게 겪었을 그녀도, 자신에게 익숙하고 진부한 동작의 흐름이나 느낌에 회의감과 자책을 느끼며 다시 한 번 해체하고, 정리하고, 새로운 것과 지켜야 하는 것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에 안도감을 느끼며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
흔히 재능이라 불리는 ‘타고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그녀의 관점은 달랐다. 타고난 신체 조건은 체형보다 근육의 질감과 관절의 튼튼함으로, 재능은 운동신경과 음악성 그리고 리듬감으로 정리됐다. 일말의 도취도 없는 논리 정연한 시크함에 취해서인지, 굳이 그녀에게 평소 춤을 몇 시간 추는지, 하루를 어떤 일정으로 보내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존재 깊은 곳부터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의 여자로, 그리고 퍼포밍 아티스트로서, 차진엽은 무대에 ‘제대로’ 오래 머무르기 위해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면서 자산인 ‘몸’을 관리해나간다. 먹는 것에 신경 쓰고, 요가와 마이크로 스튜디오 같은 근력 운동으로 부상을 방지하되,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으며 무대에 선다.
“몸과 움직임 자체의 질감을 어떻게 달리 표현하고, 찾아낼 수 있을지에 여전히 관심이 많아요. 현대무용이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요즘은 단지 새롭기만 한 온갖 것이 무대 위에 올라가는 걸 봅니다.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 컨템퍼러리는 아닌데. 저는 좋은 몸이 오랜 시간 훈련되어 춤을 잘 췄을 때가 좋아요. 아이디어만 갖고 무대에 서는 건 오히려 쉬운 방법이죠. 후배들 공연을 볼 때도, 작품성이 부족하거나 아이디어가 새롭지 않더라도 몸에 대한 고민 끝에 하나하나 조율해서 올라오는 것, 정성 들여 몸을 훈련해 올리는 무대들이 참 반가워요. 몸의 어느 한 곳만 좋지 않아도 무대에는 설 수 없으니까. 건강하게 잘 유지해서 60대가 될 때까지 꾸준히 무대에 서는 것, 그리고 그냥 60세가 됐을 때 무대에 서는 것은 엄연히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수련 _지금, 할 수 있는, 춤에서 나를 발견하기
무대에 서는 직업에 판타지를 가진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과정은 정말이지 너무 혹독하다. 차진엽처럼 안무·의상·조명·연출 등 모든 것을 직접 총괄하는 아트 디렉터 겸 퍼포머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혹독하기에 더욱 설레고 각별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지금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점점 무대에 서는 것이 각별하고 떨려요. 몸이 아파서 생각대로 안 될 때는 제일 화나고, 연습이 덜됐을 때는 스스로 용납이 안 되고 너무 싫죠. 불안한 요소가 있다는 거 자체가 부끄럽고…. 관객은 냉정해서 무대에서 한번 실수하면, 사정 설명할 틈 없이 그걸로 끝이니까요.”
예술가에게 무대란 신비로운 공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몰입해 세상과 동떨어지고, 일상의 문제는 완벽히 잊혀진다. 그리고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그 은밀한 공간에는 관찰자인 관객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참 요상한 공간인데, 퍼포머들은 이 이상한 시공간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몰입을 수련한다.
“연습실이나 무대에서 춤에 몰입해 있을 때 가장 나답다는 생각을 해요. 그 시간이 나를 숨 쉬게 하고, 가장 편하죠. 무대만큼 내 감정에 충실하고 내 속을 들여다보는 순간이 없으니까요. 춤을 안 췄다면 아마도 너무 힘들게 살았을 것 같아요. 춤을 추면서 존재를 가장 크게 확인하고 부각시키고, 떳떳하게 인정받고, 거기에서 자신감을 얻어요. 이걸 안 했으면 평생 ‘나는 누구인가?’ 하며 살았을 거예요.”
차진엽이 무대를 대하는 자세는 한결같다. 수련에 대한 자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쏟아부어 오랜 시간 가꾼 몸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지성과 본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관객은 어느새 다른 세상으로 옮겨진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지난 5월, 7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3시간의 러닝타임을 거뜬히 소화한 폴 매카트니의 내한 공연을 보고 한동안 부푼 마음을 안고 지냈다. 오랜 시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무대로 부름을 받고, 그 무대에서 자신의 역사가 담긴 완성품을 선보이는 것보다 더 큰 바람이 퍼포밍 아티스트들에게 또 있을까.
나는 한순간 빛나는 별보다는 오랜 시간 태양을 도는 행성이 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을 죽기 직전까지 하고 싶다. 차진엽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가장 인상적이던 것 역시 무대에 서는 시간이 한정적인, 무용수라는 직업을 가진 그녀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많은 희생이었다.
오늘은 지금 할 수 있는 춤을, 60세에는 그때가 되어야 출 수 있는 최고의 춤을 꿈꾸는 차진엽. 스스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에 도취되거나, 반대로 거부할 필요조차 없다고 말하며, 여전히 왕성한 호기심으로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는 이 예술가와 동료로서 오랫동안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 심규태
현대무용가 차진엽
차진엽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졸업해 LDP무용단 창단 멤버로 활동하던 중, 영국 런던 컨템퍼러리 댄스 스쿨에서 PG Diploma와 MA 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호페시 쉑터 컴퍼니, 네덜란드 갈릴리 무용단, 영국 국립 오페라 등 여러 해외 단체와 활동해왔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한 다원적 경험을 살려 2012년 창단한 콜레티브 A의 예술감독으로 선보인 ‘Rotten Apple’은 2012 한국춤비평가상 베스트작품상, 제18회 춤평론가상 춤연기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안무작으로 개인전 ‘춤, 그녀… 미치다’ ‘White Crow’ ‘Keep Yourself Alive’, 춤작가 12인전 ‘Sitting in C’ 등이 있다.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안무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으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한국에서 태어나 예원학교를 수석 입학, 재학 중 인생의 멘토인 폴 켄터를 만나 미국 클리블랜드로 유학을 떠났다.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다시 폴 켄터의 문하로 돌아가 클리블랜드 음악원 학사 학위를 마쳤다. 제이미 라레도 교수와 동 학교에서 석사·전문사 과정을 마쳤고, 2014년 세계 3대 콩쿠르인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 공연 프로젝트 ‘클래시컬 레볼루션 코리아’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아이폰 중독자이며, 자연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TV 보는 것을 음악보다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