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양성원

베토벤의 투명한 영혼과 마주 앉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 ©Francois Sechet/ Universal Music

언젠가 우연히 첼리스트 양성원의 기사를 읽다가 ‘고요함’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머문 적이 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연주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환호를 만들어내는 연주, 다른 하나는 고요함을 만들어내는 연주이지요. 제가 추구하는 것은 고요함을 만들어내는 연주입니다. 제 연주가 끝나고 사라진 후 오로지 작곡가의 음악만이 남기를 바랍니다.” 바흐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에서부터 브람스 소나타 전곡 연주, 그리고 이어지는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 연주, 베토벤 첼로 소나타와 변주곡 전곡까지 그의 연주 여행이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한 겹 더 입히고 있다

베토벤에 뿌리내리다

지적이고 독창적인 해석과 연주로 주목받아온 첼리스트 양성원(연세대 교수)이 9월 8~9일 양일간 피아니스트 에마뉘엘 스트로세와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샤를리에로 구성된 트리오 오원과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을, 12월 1~2일 양일간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베토벤 첼로 소나타와 변주곡 전곡을 완주한다. 이날 무대는 세종 체임버홀이 명연주자를 만나 연간 여섯 차례 펼치는 공연 중 하이라이트 무대로, 다양한 앙상블 구성으로 실내악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던 3월과 5월 연주회와는 또 다른, 베토벤 내면의 깊은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유럽 음악 페스티벌 초청 연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얼마 전 네팔에서 엔리코 파체와 베토벤으로 하우스 자선음악회를 가졌다. ‘네팔을 위한 아름다운 꽃’이라는 주제로 전해진 베토벤 음악의 향기는 깊었다. 완벽한 조화로움 속 깊은 내면의 철학이 묻어났다는 현지의 평 속에 그들의 음악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했다. 베토벤 전곡 시리즈 연주회를 앞두고 양성원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낭랑한 목소리로 전해진 그만의 음악철학이 베토벤으로 물들 2015년 가을과 겨울을 기대하게 했다.

지금 여기는 유럽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는데, 어제는 프랑스 중부 산맥을 넘어가는 비행기를 탔고, 곧 이탈리아로 떠날 예정입니다. 올여름 유럽은 숨이 막히는 더위로 모두들 힘들어 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여름의 열기와 축제의 기쁨, 인생을 즐기는 여유로운 풍경들이 한 해의 중간에 선 지금 새로운 활력과 신선함으로 다가오네요. 물론 더운 여름에 여러 지역을 다니며 연주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저절로 나거든요. 습도가 높은 요즘은 첼로도 견디기 힘들 테고요.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도 더워서 힘들어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음악을 잘 만들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그 순간부터는 이런 환경들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또 연주하는 맛이기도 하고요.”(웃음)

영혼과 영혼은 연결되어 있다

“유럽연주회들을 마치면 바로 베토벤 시리즈가 코 앞이라 사실 마음이 분주합니다. 그래도 전 베토벤 음악을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어느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보다 이해의 폭이 넓고 깊게 표현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그동안 베토벤과 관련된 서적·유품·편지 등 수많은 관련 자료를 찾고 연구했죠. 그리고 그 과정은 무척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찾으면 찾을수록 더 궁금하고 베토벤과 가까워지는 듯했어요. 마치 끝없이 넓은 땅 위에 뿌리내리고 있는 나무처럼 그렇게 제 자신이 베토벤이라는 땅에 뿌리를 내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 전 사진가 배병우 씨와 이야기를 하다 그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요즘 각 지방을 돌며 그 지역에 나는 음식에 대해 소개하고 촬영하는 프로를 진행하는데 과일, 나물, 생선 등 지역마다 나는 식재료도 철마다 어울리는 계절과 장소가 따로 있다고요. 우리가 흔히 보는 풍성한 열매와 과일, 바다에서 잡히는 싱싱한 생선이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자연의 신비로운 섭리를 말해주는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우리는 왜 기다리지 못하는가?

“그건 음악도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모두 때가 있다는 건 맞는 말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왜 뿌리내리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걸까요? 아마 빠른 시일 안에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열망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 때문이겠죠. 과일이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가 뿌리를 내려야 하고 뿌리내릴 논밭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저절로 열매만 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더구나 논밭마다 어울리는 나무가 따로 있는데 엉뚱한 곳에 가서 뿌리를 내리려고도 하고요.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접해보고 연구하고 계속 연주해야 하는 건 연주자의 의무인데, 어느 때는 그것마저 건너뛰려고 합니다. 물론 어딘가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평생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요. 그 과정에서 많은 연주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종종 좌절합니다. 연주가 잘되어 날아갈 듯 기쁘다가도 그것도 잠시일 뿐, 다시 악보의 어느 한 마디가 표현이 안 되어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버리게 되는 거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뿌리가 땅에 잘 내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건데 말입니다.”


▲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 연주와 녹음을 함께한 트리오 오원 ©Francois Sechet/ Universal Music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 연주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 베토벤이라는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요즘이지만 저 역시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베토벤 피아노 3중주는 저의 오랜 음악 파트너인 트리오 오원과 함께 하는 무대여서 더 의미 있고 기대가 됩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하나하나가 투쟁이고,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 투쟁에서의 승리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냈죠. 특히 이번에 함께 연주하고 음반 작업을 한 트리오 오원은 파리 고등음악원에 다닐 때부터 잘 알고 지낸 친구들이어서 음악적 호흡이 남다릅니다. 더구나 50대에 다가가고 있는 우리는 이제 젊었을 때처럼 지나치게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오히려 ‘음악의 정수’를 담아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기에 이번 무대에서 좀 더 깊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성공과 실패가 동시에 존재하죠.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작곡가의 혼을 찾는 그 과정을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날마다 새로운 색채를 찾고 새로운 뉘앙스로 표현하며 감동을 나누는 것, 그것이 실내악이니까요.

요즘 베토벤 전곡 연주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이 작업과정이 결국 내 자신과의 싸움이란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이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가려진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하는 곡이었다면, 중기에는 자신의 내면적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을 썼죠. 그리고 후기에 가서 그는 영적 이상을 찾는 곡을 쓰기 시작합니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쓴 곡이 아니라 모두 본인 자신 내부의 에센스를 쏟아부은 곡들이죠. 연주하다 보면 한 방울 한 방울 마음 깊은 곳에서 끄집어낸 치열함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하면 할수록 그에게 더 끌리고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연주를 계속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고요함을 만날 때가 있는데요. 그 순간이 가장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작곡가와 연주자, 청중이 모두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 순간은 찾아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다’고요.”

베토벤 삶의 고해성사 같은 첼로 소나타 전곡

“12월에 두 번에 걸쳐 연주할 예정인 첼로 소나타 전곡 역시 베토벤의 삶이 음악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작품들을 모두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그의 초·중·후기 곡을 한꺼번에 감상하고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분명히 목격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점이 무척 의미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신선한 구조와 집중된 텍스처, 그러면서도 굉장히 섬세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첼로 소나타 4번과 5번은 후기의 주옥같은 피아노 소나타들의 초석이 됩니다. 베토벤은 첼로 소나타 작품으로 첼로라는 악기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주었죠. 피아니스트였던 베토벤이 첼로라는 악기를 자신의 악기와 동등하게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제가 이번 무대에서 바라는 건 오직 하나입니다. 이 모든 작품을 모두 연주한 후 내가 사라지고 베토벤만이 남는 것. 첼로를 넘어야 하고 내 자신을 넘어야 가능한 일이겠죠. 그렇게 제 음악 여정이 더 깊은 곳을 향해 흘러가길 바랍니다.”

베토벤 음악 여정의 기록

“얼마 전 이번 음악 여행의 여정을 기록하는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 음반 녹음 작업을 마쳤는데요. 이번 음반 작업 역시 서로를 믿었던 열정과 인내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음반 작업은 연주와는 달라서 작업할 때 훨씬 디테일한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제 연주를 남긴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음악 작업을 할 때 완벽한 소리를 끝없이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그런 욕심은 내려놓았습니다. 대신 시간이 선물한 나의 소리를 믿고 지금 제 음악을 편안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지요. 어쩌면 그 장소, 그 날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날의 소리, 음악이 존재하는 것일 테니까요. 내 음악의 정체성을 남긴다는 것이 음반 작업에선 가장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예전에 녹음한 음반을 들어 볼 때가 있는데,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전보다 지금이 음악적으로나 테크닉 면에서 더 나아졌다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그건 제 듣는 귀가 이제 바뀌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음악을 듣는 가치도 변해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요. 음반 작업은 그렇게 내가 매일 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음악 여정의 기록입니다.”


▲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함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함께 ©Francois Sechet/ Universal Music

파리지앵의 자유로운 감성과 지성

깊이 있는 첼리스트 양성원을 떠오르게 하는 또 다른 단어는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프랑스’다. 그는 프랑스 초대 문화대사를 지낸 아버지(전 서울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를 따라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공부했다. 이후에도 프랑스 문화와 예술과 관련된 많은 활동을 통해 자유와 개성이 묻어난 연주뿐 아니라 요리·사진·미술·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 활동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의 음악 동료들 역시 프랑스 파리고등음악원에 다닐 때 함께 공부하고 만났던 친구들이 많고, 그는 많은 페스티벌과 공연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의 음악·문화 연결해주는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언젠가 크리스마스이브 때 공연장에서 봤던 클라리넷 앙상블 레봉베크 콘서트에서 양성원은 그동안의 품위 있고 기품 있는 첼리스트의 이미지를 벗고 자신의 프랑스 친구들과 자유롭고 재기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음악적 감성을 선보였다. 그는 어떻게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갖출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좌우된다

“어린 시절 아버님이 프랑스 초대 문화대사여서 저희 가족은 모두 프랑스로 이민을 가게 되었어요. 그때 공부했던 걸 회상해보면 프랑스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아주 중시했던 것 같아요. 전 당시 음악뿐 아니라 운동과 미술도 무척 좋아했는데, 특히 미술 공부를 할 때 거기는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에게 같은 주제로 똑같은 그림을 그리게 하지 않고 그리고 싶은 걸 그냥 그리게 놔두곤 했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몰랐던 걸 깨우치고 더 호기심을 갖도록 도와주었어요. 노는 것도 어디에서든 마음껏 뛰놀도록 내버려두었고요.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던 시간들은 모두 저의 행복한 추억들이죠. 그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연주를 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감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직접 맞닥뜨린 경험이나 눈으로 보던 풍경, 만났던 사람들은 마음에 오래 남게 마련이니까요.

프랑스에서 지낼 때 가장 행복했던 건, 책을 굉장히 많이 읽을 수 있는 그곳 분위기였습니다. 학교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연장을 자유롭게 관람하게 해서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조예를 키우도록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죠. 저 또한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꽤 있었는데, 종이를 접고 색깔을 혼합해 직접 제 손으로 작품을 만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학교가 끝나면 아버지가 근무하셨던 프랑스 대사관에 가서 다양한 책들도 보고 공연이나 전시도 관람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이 알게 모르게 제 사고를 폭넓게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어요. 프랑스에서 1년에 4~5일 정도 열리는 음악 축제 페스티벌 오원을 만든 것도 어린 시절 프랑스에서 자라며 느끼고 공유하던 아름다운 경험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니까요.”

진정한 상상력은 이상을 추구할 때 나온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가장 이슈가 되는 주제가 창의성인데, 저는 이 창의성이야말로 어린 시절 이렇게 다양한 문화 예술을 경험하는 데서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암기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아니라 문학과 미술·음악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상상력과 창의력이 나온다는 거죠. 그리고 창의성은 현실이 아닌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토록 ‘창의성’을 부르짖으면서도 한쪽에서는 또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라고 가르치지요.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창의성을 끌어내기는 당연히 어려운데 말이에요. 창의성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생겨나는 것인데, 완벽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새로운 생각을 넓혀나가기가 어렵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학생들을 위한 모든 문화 예술 교육이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편하고 자연스런 경험이면 좋겠습니다. 이제 우리를 진정 연결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예술과 삶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때인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건 그런 예술적 경험을 어린 시절부터 쌓게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평생 예술을 사랑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거니까요.”


▲ 스승 야노스 스타커와 대담 인터뷰 중인 양성원

오토바이를 즐겼던 학창 시절

“학창 시절, 저는 밖에서 노는 걸 무척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당연히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웃음) 당시 오토바이 타는 걸 무척 좋아했거든요. 운동도 좋아했고요. 태권도와 보디빌딩도 배웠었죠. 어릴 때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렇게 강하진 않았어요. 집안에 이미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양혜엽 교수)와 형(양성식)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유독 샘이 없던 저는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별로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지면 열심히 하고 싫어지면 안 하는 스타일이었죠. 대신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굉장히 많고 무슨 일에든 아주 적극적인 학생이였습니다.”

안아주고 싶은 아이들

“학창 시절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인지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고민이 진심으로 공감될 때가 많습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 방황을 한다는 것은 ‘슬픔’을 느꼈을 때지요. 기대고 싶고 아쉬움이 있을 때, 특히 어린 친구들은 알 수 없는 미래로 불안해하며 더 방황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또다시 100점을 추구하게 하죠.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약 그럴 때 수학 문제집 대신 음악을 좀 들려주면 어떨까요? 그럴 때 영어 교재 대신 미술 작품을 함께 보러 가고, 여행을 함께 하고, 좋아하는 것을 좀 하게 하면 어떨까요? 예술은 바로 우리 곁에 있는데 우리가 너무 멀게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고민에 빠진 아이들을 보면 그런 아쉬움이 듭니다.”

운명을 바꾼 야노스 스타커와의 만남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던 제가 음악에 진짜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스승인 야노스 스타커를 만나면서부터였지요.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정말 섬광이 빛나는 것처럼 마음에 각인이 됐고, 꼭 만나고 싶고, 배우고 싶었죠. 하지만 동양 학생이 유대인 스승의 가르침을 그토록 오래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끝까지 선생님께 배울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배우고 자란 한국적인 정서와 비슷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어린 나이였지만 선생님만의 독특한 가르침과 철학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제게 하늘이 내린 행운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정말 위대한 스승이셨어요. 연습이나 공부가 아닌 삶 그 자체가 음악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셨으니까요. 하지만 유학 생활은 정말이지 매일 매일이 전쟁터 같았습니다. 경쟁과 고민, 연습과 좌절로 얼룩진 시절이었어요. 잠도 못 자고 연습하다 다시 잠들고, 그러면서 매일 새벽에 집에 들어갈 때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연주 역시 제 마음처럼 잘되지 않아서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넓고 깊은 어머니의 품

“그래도 그런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가족 특히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지요. 지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첫 공연 때 앙코르 곡으로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를 연주했는데요. 어머니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제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셨다고 합니다. 그동안 훌륭한 선생님을 여러 분 만났고 배웠지만 어린 시절 잠자기 전에 어머니가 제 귀에 대고 들려주시던 노래들 만큼 아름다운 음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연주 때마다 아버지와 다정하게 청중석에 앉아 음악을 듣고 계시는 모습을 뵈면 두 분께 감사하고 왠지 마음이 아련해집니다. 어머니는 말썽 많은 아들을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신 분이었죠.”


▲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에서 양성원이 직접 찍은 새벽 풍경

천의 얼굴을 가진 남자

음악가로서 인정받는 그이지만 가정에서는 그도 어쩔 수 없는 딸 바보, 아들 바보 아빠다. 그의 아내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은식 역시 양성원의 음악 세계를 누구보다 믿고 지지해준 동반자다. 또한 학교에서는 20여 년을 아이들의 고민과 미래를 같이 걱정해온 교육자로 지냈다. 국내외에서 많은 음악 동료와 공연을 했고, 무대에서 첼로의 아름다움을 전해왔다.

가정에서는 2인자

“집에서요? 하하, 그건 아이들과 아내가 해야 할 대답 같네요. 사실 저는 집에서 굉장히 자상하려고 노력하는데, 아내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은 저를 좀 무서워하나 봅니다.(웃음) 생각 같지 않은게 또 아빠 역할인 것 같아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건 제게 또 다른 행복을 안겨주었죠. 저는 무엇보다 저희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외국 문화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그런 경험을 통해 사고가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특히 세계 인류 문화의 뿌리가 되었던 동양과 유럽 문화는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나라 사람들과 언어나 문화를 편안히 교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사람을 많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음과 사고가 넓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아내는 프랑스에서 방황하던 시절(?)을 접고 첼로에 심취해 열심히 연주하던 시절에 만났습니다. 다행이죠.(웃음) 같이 음악을 하면서 서로 음악 세계를 이해하고 격려해주고, 내조해주니 고마울 뿐입니다. 고생할 때마다 늘 용기를 주는 아름다운 사람이죠. 서로 가치를 알아봐주고 함께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이 길이 그래서 저는 편안하고 좋습니다.”

가르치는 행복과 기쁨

“집에서는 아내가 아이들을 돌보지만 학교에서는 저도 20년째 학생들을 돌보고 있지요.(웃음) 그런데 정말 어렵습니다. 처음에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혹독하다 싶을 만큼 엄하게 가르쳤죠.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은 음악을 전공한 학생들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더 큰 혜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예전처럼 커리어를 찾아주는 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가로서 정체성을 찾고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인재로 키워야 할 의무가 느껴지고요. 요즘 드는 생각은, 이제 단순히 악기만 잘 연주하는 연주자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에 대해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문학적 소양이 저절로 생기는 건 당연히 아니지요.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 그것은 문학과 음악·예술을 이루는 바탕이기 때문에 모든 학문의 기초를 이룹니다.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도 인간에 대한 성찰이 꼭 필요합니다. 그 작곡가의 삶을 알아야 하고 그 시대를 알아야 하며, 그때 사람들을 알아야 하죠. 그렇게 음악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구조가 얽혀 있어요. 하지만 결국 해결되고 나면 굉장히 심플합니다. 투명해요. 깊이가 있으면서도 투명함을 찾는 것, 그것은 정말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의 기쁨과 환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감격스럽지요. 결국 그렇게 힘들면서도 다시 무대에 서고 연습하는 것도 그 매력 때문이겠죠. 제가 이번에 다시 베토벤 앞에 앉은 이유도 그를 간절히 만나고 싶은 열망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베토벤을 만나야 하는 이유

“베토벤을 만난 후 그를 더 가깝게 알게 된 기분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또 먼 것 같기도 한 게 베토벤인가 봐요.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잘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그 성숙함 속에서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음악가였지요. 그리고 자신의 내적인 아름다움을 영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인류 역사상 그런 음악가가 없었는데, 그의 작품들을 들어보면 그것은 마치 기도 같아요. 고통에 빠진 한 인간이 희망을 향해 절규하는 처절한 몸부림 같은 거요. 그런데 그 몸부림이 벽을 깨고 희망을 쟁취하는 겁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인지, 그래서 베토벤 음악의 힘이 그렇게 강한 것 같습니다. 그의 기도가 연습하는 내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제 연주가 끝나고 사라진 후 객석에 앉은 누군가의 가슴으로 베토벤의 그 맑은 영혼이 고요히 흘러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성원과 전화 인터뷰를 마친 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대공’을 다시 들어보았다. 베토벤의 부드럽고 섬세한 마음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하다. 양성원은 베토벤 작품의 투명함을 연주로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투명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베토벤의 전 생애가 담긴 복잡한 음악들을 투명하게 남기는 작업, 그것은 가혹한 삶 속에서도 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베토벤의 정신을 음악으로 비추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양성원 자신이 사라진 뒤 비로소 남게 될 베토벤의 영혼, 그렇게 그가 베토벤 속으로 스며들 때 우리는 한없이 투명한 악성의 아름다움과 만나게 될 것이다.
사진 유니버설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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