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알고 지냈지만, 김선욱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이야기 나눠보면 꽤 단순한데, 도무지 속을 모르겠다고 할까. 노인네 같은 소리를 하다가도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을 보면서 아이보다 더 순진한 미소를 짓고, 땅 끝까지 이기적인 것 같다가도 알게 모르게 자상한 구석이 있다.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는데, 정작 눈도 못 마주치는 어색한 순간도 많다. 심지어 외모도 그렇다. 좀 이상하게 생긴 것 같은데 괜찮은 것도 같고, 괜찮은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고… 생각해보면 선욱이 풀어내는 연주의 매력도 이런 묘함에 있다. 차가운 것 같다가도 뜨겁고, 뜨거운 것 같다가도 차갑고. 박자 감각을 영민하게 세우고 정석대로 나가는가 싶다가도 놀라움이 있고, 더 울어야 할 것 같을 때는 절제한다.
몇 년 만에 만나는 건데, 런던 근교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박지성 부부와 이미 와인 한 잔을 하고 나온 이 친구를 무엇이라 표현할 것인가. 본인 말대로 ‘좀 찌질하던’ 예원학교 1학년 5반 시절, 나는 선욱이가 이미 확고하게 가지고 있던 음악관에 괜한 심술이 나곤 했다. 우리 모두 중학생이고, 알아봤자 얼마나 많이 안다고 음악이 이렇다 저렇다 얼마나 말이 많았던지. 아이들이 한 학기에 한 번 있는 실기시험에 매여 쩔쩔매고 있을 때, 선욱이는 “중요하지도 않은 건데”라고 말하며 우리를 스윽 보고 지나가곤 했다.
김선욱은 모든 방면에서 완벽을 지향한다. 무엇이든 자신이 못하는 것을 견디지도, 보여주지도 않는다. 음악적으로도 무척이나 확신에 찬 연주를 할 뿐 아니라, 테크닉적인 정확성 또한 볼 때마다 놀랍다. 그의 수련법을 들으면서, 나도 좀 완벽해지겠다는 생각으로, 친구를 인터뷰하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런던으로 향했다.
수련의 진화 _연습해야 할 이유가 생겼을 때
수련이란 무릇 ‘연습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더욱 재밌는 법이다. 으레 ‘자신과의 싸움’이 그 이유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내가 경험한 가장 큰 연습의 동기는 ‘생활’이다. 한마디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연습하는 것이다. 연습을 잘해야 연주를 잘할 것이고, 연주를 잘해야 다시 초대를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연주자 중에서 정기적인 수입 없이 연주료만으로 생활을 지속하는 프리랜서들에겐 같은 홀, 같은 오케스트라에게 지속적인 초대를 받는 것이 어쩌면 유일하게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선욱이는 남들 다 열심히 하는 중학교나 한예종 재학 중 콩쿠르를 준비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더 연습량이 많아졌다. 첫째, 가족이 생기고 연주가 많아져 ‘이제는 해야만 하기 때문’이고 둘째, 곡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습하는 시간은 가족들도 전혀 터치 안 해. 무조건 서너 시간 정도 연습하는 건 이제 습관이 되어 힘들지도 않고. 이제는 준비해야 하는 곡이 너무 많으니까 하루에 주어진 시간을 정말 잘 활용해야 하더라. 그래서 투어 중에 가끔 종일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 날은 정말 행복한 거지. 하루 내내 피아노만 칠 수 있으니까. 평소에 집에 있으면 아기와 있고 싶고, 그렇게 연습할 수가 없으니까.”
한창 연습을 많이 하는 입시생들에겐 다소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성인이 된 후 하루에 3~4시간을 매일 연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인생 전반에서 책임져야 하는 온갖 일이 예술적 몰입을 방해하니 말이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조건 3시간씩 연습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신경 써야 하는 또 다른 것들과의 거리 두기를 의미한다.
“음악하는 사람들 중에는 음악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같이 연주도 다니면서 살더라. 그런데 내 아내는 천성적으로 나서는 걸 싫어하고 음악적인 것들은 전혀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처음 만날 때부터 얘기했으니까. 그게 내겐 행운이라고 생각해.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아기를 아내가 거의 혼자 키우니까 그게 많이 미안하지.”
나는 음악을 하면서 남자가 부러울 때가 많다. 전통적으로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업에 도움이 되는 남자, 독이 되는 여자! 우리 둘 다 동의한 것은,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음악에 대한 몰입을 지켜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행동과 관념의 수련 _부점, 반복을 예술적으로 풀어내기
연재를 시작하기 전, ‘수련의 기술’ 칼럼을 머릿속에 그릴 때부터 선욱이는 인터뷰 대상자 리스트 우선 순위에 들어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어느 인터뷰에서 우연히 보았던 내용 때문이다. 그때 ‘내가 연습하는 걸 듣고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 부분만 계속 치는데 그걸 누가 계속 들어주고 있겠는가’라는 요지의 말을 했고, 내겐 그것이 꽤 놀랍게 다가왔다. 내가 아는 선욱이는 그 무엇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데, 이 말에 의외로 집요한 구석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연습 방법을 좀 더 자세하게 묻고 싶었다.
예상보다 김선욱의 연습 방법은 훨씬 더 계산적이고, 시스템화되어 있었다.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연습을 위해 스타인웨이홀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3시간으로 한정됐기 때문에 무조건 그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놓은 시간만큼 연습하고, 일요일은 쉰다. 심지어 한 연주를 위해 어떤 페이스로 프로그램을 완성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분명하게 세우는데, 그 계획을 지켜야 직성이 풀린단다. 예를 들어 독주회 하나를 준비해나가는 연습 방법은 이런 식이다.
오늘은 야나체크 30분, 모차르트 30분, 슈베르트 1악장 1시간, 무소륵스키 1시간, 다음 날은 어제 안 한 슈베르트 2악장 2시간, 무소륵스키 1시간… 이런 방식으로 점차 건드리지 않은 곡이 없도록 모두 연습을 해나가는데, 이 연습은 다름 아닌 ‘부점 연습’이었다.
“죽으면 묘비에 ‘부점 연습하다 세상을 떠나다’라고 써야 할 것 같아. 거의 이것만 쭉 하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정신의 문제인 것 같지만 하루라도 안 하면 불안하고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해.”
사실 그의 ‘부점 연습 예찬론’에는 이유가 있다. 음표나 쉼표의 오른쪽에 찍어서 원래 길이의 반만큼의 길이를 더하는 것을 표시하는 부점을 연주자들은 기본적으로 연습해야 하는데 근육의 기억력을 상승시키고, 위치 이동을 효율적으로 해내는 훈련이라는 점에서 운동선수의 그것과 닮은 점이 많다. 비교하자면 피겨 선수의 지상 안무 훈련과 비슷하다고 할까. 연주자라는 직업은 예술적인 ‘느낌’만 갖고 있으면 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운동선수 같은 규칙성과 몸의 단련을 필요로 한다. 선욱이도 몸과 마음에 음악을 말 그대로 ‘붙이기 위해’ 부점 연습을 한다고 했다.
“연주 이틀 전까지 부점 연습만 계속하는데, 이렇게 곡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려. 그래도 이래야 곡도 저절로 외워지고, 몸에 음악이 딱 붙고,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 연주의 속성이라는 것이 한 번 주어진 기회에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들을 공력을 끌어올려 보여줘야 하는데, 그 한 번의 연주에서 내가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방법은 반복밖에 없어.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이렇게 하면 부점 연습하다가 죽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걱정도 되긴 해서 다른 방법도 찾아가는 중이야.”
실제로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연주자들이 하기 싫어해서 그렇지, 기악 연주자들에게 있어 부점 연습을 하는 건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다. 하지만 이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연주가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워지기 십상인데, 선욱이의 연주에는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다. 그는 이 부점 연습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잘되는 부분, 안 되는 부분 상관없이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부점 연습을 해. 잘 돌아가는 부분이라서 제외하는 게 아니라, 문제없는 부분들도 무조건 해서 ‘붙여’놓지. 차별 없이 똑같이 하는 거야. 그렇지만 무조건 손가락만 놀리는 게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대입시켜서 해야 효과가 있거든. 프레이징·리듬·아티큘레이션·오나멘테이션·방향·다이내믹 레인지 또는 음색 같은 것을 적용해 부점 연습을 하는 거지.”
특히 잘 안 되는 부분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을 한 후엔 추가적으로 ‘리필’을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욱에게 부점 연습이란 모든 테크닉적 요소를 평준화하는 작업이자, ‘반복’이라는 연습 필수 요건을 오히려 더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안 되는 부분을 연습하는 도구를 넘어, 상상하는 이상적인 음악을 뇌리와 몸에 모두 각인시키는 하나의 수련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시각적 지도인 악보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넘어서 음악을 청각적·육체적 언어로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스님이 절을 할 줄 몰라 108배, 3000배를 올리겠는가. 육체 너머 존재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는 것인데 말이다.
마지막수련 _성취감을 선사하는 최고의 문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선욱이의 수련 방법을 처음으로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의 수련은 결국 몰입, 즉 음악에 모든 것을 집요할 만큼 집중시킨 삶의 방식이었다. 무대 위에서 무섭게 몰입하는 모습은, 어쩌면 평소의 연습 태도가 극대화되어 보이는 건 아닐까. 그는 “나 아닌 사람한테는 별로 관심 없어”라고 말할 만큼 음악과 자신의 내면 외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쿨함’을 지니고 있다.
회를 거듭해 칼럼을 쓰면서 특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의 예술적 표현을 분석하고, 그 방법을 수학적·이성적으로 강구한다는 공통점을 느낀다. 이런 접근 방식이 쉬운 건 아니다. 이것은 영민하고, 감각적이어야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고급의 수련 방식이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을 즐기고 그것을 이뤄냈을 때 얻는 성취감에서 큰 쾌감을 느끼는 사람만이 이런 접근법을 자신의 수련법으로 선별할 수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하지만 김선욱은 영민하다. 음악에 있어서도, 그리고 삶에 있어서도.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궁금해하는 것들은 끝까지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피아노, 그리고 음악이라는 것은 그에게 계속 성취감을 선사하는 최고 문제(problem)일지도 모른다. “음악에 절대 진리란 없고, 우리 모두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베토벤에 대한 두려움도 희석될 것”이라는 그의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돈다. 집중하자. 음악, 음악, 음악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현재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김선욱은 2006년 리즈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무대에 데뷔한 이래 독주회와 협연뿐 아니라 다양한 편성의 실내악 피아니스트로 국내외에서 각광받고 있다. 지금까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서울시향과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북독일 방송교향악단과 독일 초연, 스톡홀름에서 세계 초연했다. 2013년부터 LG아트센터에서 2년에 걸쳐 베토벤 소나타 전곡 시리즈 연주회를 가졌으며, 2014년에는 바흐·프랑크·슈만으로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했다.
글 조진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한국에서 태어나 예원학교를 수석 입학, 재학 중 인생의 멘토인 폴 켄터를 만나 미국 클리블랜드로 유학을 떠났다.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다시 폴 켄터의 문하로 돌아가 클리블랜드 음악원 학사 학위를 마쳤다. 제이미 라레도 교수와 동 학교에서 석사·전문사 과정을 마쳤고, 2014년 세계 3대 콩쿠르인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 공연 프로젝트 ‘클래시컬 레볼루션 코리아’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아이폰 중독자이며, 자연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TV 보는 것을 음악보다 좋아한다.
사진 이신명·빈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