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변화가 시작된 그때’

2010년대를 사는 지금. 1960년대 음악사에 대한 기록을 들춘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1960년대는 2010년대를 비추는 반대편의 거울이다. 1960년대는 현 분단체제 한국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지배 시스템이 비롯된 기원이며, 계급구조와 문화구조, 이데올로기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한국사회 근대성의 구조가 형성되는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1960년대는 오늘의 ‘기원’이다. 따라서 1960년대에 대한 사유는 곧 현재의 기원에 대한 성찰이며 나아가 현재 그 자체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다. 어떤 측면에서는 반복의 증상에 대한 사유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음악문화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는 지금까지 지속되면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습관과 제도적 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지점이었다. 음악 영재의 등장에 사람들이 환호하고, 콩쿠르가 시작되고, 유학 붐이 일어났다. 국제적 수준의 해외 음악가의 내한 공연이 이어졌고, 음악과와 음악대학이 서울과 지방에 설립되었으며, 작곡가들에 의해 이른바 ‘현대음악’에 대한 본격적인 수용이 이뤄지기도 했다. 국제적 규모의 음악제가 눈앞에 펼쳐지고, 나라 없이 살던 우리들 앞에 ‘국립’극장과 ‘국립’오페라단이 나타난 때도 1960년대이다. 한편 국가경쟁력을 우선으로 하는 수출주도형 경제정책과 정권 안보를 위한 반공이데올로기는 음악 분야에서도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품을 요구했고, 음악의 국제적 교류가 사회주의와 비서구권을 제외한 구미에 집중되는 현상을 낳았으며, 경제적 안정을 얻은 계층이 늘어나면서 음악 인력이 증가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이라 불리는 1945~1950년, 그리고 한국전쟁기와 다른 성격을 지닌 1960년대와 대면하는 작업은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가피하게 동반할 수밖에 없고, 거꾸로 현재의 한국음악계와 악단(樂壇)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한 ‘기원으로서 1960년대’를 통한 시선은 불가피하다.

앞으로 당시 기록에 대한 수집과 생존하는 음악가들의 구술 인터뷰를 통해 1960년의 음악문화의 미시적인 부분을 다시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번호는 그 초석을 위한 작업으로 ‘1960년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대략적으로 살펴본다. 징검다리처럼 놓인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1960년대의 한국음악계 속으로 들어가본다.

<a href="#" data-lightbox="image-1" title="1961년 동아일보 주최 음악콩쿠르(현 동아음악콩쿠르) 입상자들
①최병철(작곡) ②최시원(성악) ③이종영(첼로) ④신수정(피아노) ⑤민초혜(바이올린) ⑥박준상(작곡) ⑦이명순(첼로) ⑧윤미재(피아노) ⑨이혜숙(성악) ⑩박미영(바이올린)
(동아일보 1961년 10월 31일)”>
▲ 1961년 동아일보 주최 음악콩쿠르(현 동아음악콩쿠르) 입상자들
①최병철(작곡) ②최시원(성악) ③이종영(첼로) ④신수정(피아노) ⑤민초혜(바이올린) ⑥박준상(작곡) ⑦이명순(첼로) ⑧윤미재(피아노) ⑨이혜숙(성악) ⑩박미영(바이올린)
(동아일보 1961년 10월 31일)

높은 교육열, 콩쿠르와 유학 붐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음악교육 붐이 일어났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콩쿠르는 이러한 열기에 촉매제가 됐다. 1961년, 현재 동아콩쿠르로 불리는 전국음악경연대회가 동아일보사에 의해 개최되었다. 대회가 열린 10월의 동아일보 지면에는 개막·예선·본선 소식과 참가자들의 인터뷰와 프로필이 연이어 게재되었다. 제1회에는 최병철(작곡)·최시원(성악)·신수정(피아노)·민초혜(바이올린)·이종영(첼로) 등이 부문별로 1·2위에 준하는 우수상과 우량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에는 여러 대학교에 음악과와 음악대학이 설치되었다. 숙명여대, 연세대, 한양대, 경희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계명대, 동아대 등 서울과 지방에 위치한 대학들에 있던 음악과는 음악대학으로 증편되거나, 음악대학들이 신설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음악과와 음악대학은 전문 인력의 배출이라는 기능보다는 유학에서 돌아온 음악가들의 기득권 유지의 터전, 즉 음악가들의 근거지로서의 역할이 더 강했다. 이때부터 음악가들이 연주와 창작이라는 중심적 활동보다는 대학교에서 안주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 (동아일보 1964년 6월 6일)

1954년 한동일(피아노)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유학한 것을 계기로, 1960년대에 들어 김영욱·정경화(바이올린), 정명화(첼로) 등이 유학길에 올랐다. 1960년대 중반, 한국은 줄리아드 음악원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자 줄리아드 음악원에서는 유학생 선발을 중요 목적으로 교수들이 내한하여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다. 1964년 6월에 내한한 한 조셉 블록흐는 유학 간 백낙호·오정주·한동일·윤기선·김정자 등의 스승이었다.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줄리어드에서 최선의 랭킹 속에 낀다(동아일보 1964년 6월 6일)”고 발언한 그는 2주일간 한국에 머물며 내한에 협조한 이화여대에서 강의와 리사이틀을 가졌다. 이후에도 줄리아드행 유학생 수는 증가했다. 1980년 4월에 창간호를 내놓은 ‘음악동아’가 ‘한국인이 판치는 줄리어드’라는 특집기사를 표지에 내걸 정도로 줄리아드 음악원의 한국유학생 수는 이후에도 점점 늘어만 갔다.

해외 유학생 출신 연주자들의 활동은 현지에서 활발했다. 그들은 유럽과 미국의 연주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이유로 ‘국위선양’의 주역으로 칭송되었지만 한국 악단(樂壇)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 뉴욕 레번트릿 콩쿠르 1위에 입상한 정경화(동아일보 1967년 5월 18일)

후기에 접어들면서 피아노의 김정자를 위시해서 첼로의 정명화, 바이올린의 김영욱, 정경화, 김원모, 피아노의 한동일, 김덕주 등 젊은 연주가들이 모국 방문 연주회로 역량을 과시해서 깊은 감명을 남겨주는 동시에 우리 악단 수준과의 격차를 뚜렷이 드러나게 해주어서 또 하나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우리들 욕심과는 달리 그들은 우리 악단의 연주가는 아닌 것이다. (···) 왜냐하면 우리는 국제적인 연주가를 머무르게 할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악단은 연주를 아르바이트로 하는 선생님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박용구 ‘음악계의 상반기’. 동아일보 1969년 7월 31일).

▲ (동아일보 1969년 6월 21일)

1960년대에 우후죽순으로 생긴, 일명 ‘경연대회’라 불리던 ‘콩쿠르’는 후반으로 갈수록 서울 부유층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으로 선정과 심사에서 공평성 논란을 야기 시키고는 했다(치맛바람이라는 말은 해방 후 높아진 교육열을 대변하는 용어였다. 1960년대에 등장하여 일상용어로 정착했다). 1969년 한국학생 선발을 위해 내한한 줄리아드 음악원의 스피로슬라브 문츠 교수는 “한국인 학생의 재질은 놀랄 만한 것으로 재확인”했지만, 학부모들의 과잉의욕에 대해 “예술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인의 비교 의식이 남다르다고 비판하기도 했다(동아일보 1969년 6월 21일). 196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경연대회와 정부 주도의 시상제도가 우후죽순 생기자, 1967년에 이르러서는 대회의 기능성을 강화하고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5·16 이후 음악정책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음악 분야에서 양적으로 늘어난 것은 음악제, 국제교류를 위한 몇몇 연주회, 각종 포상제도였다. 이러한 것들은 5·16을 기념하기 위한 국가의 문화정책이었다. 5·16군사정변 1주년이 되는 1962년에는 5월문예상과 신인예술상이 신설되었다. 1968년에는 5·16음악전이 열리기도 했다. 상금과 규모는 어마어마했는데, 당시 국악사양성소에 재학 중인 서원숙(가야금, 전 단국대 교수), 이화여중 2학년에 재학 중인 조영미(바이올린, 현 연세대 교수) 등이 이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5·16음악전은 2회로 끝나고 말았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에 다룰 서울국제음악제에서 논할 테지만, 5·16에 대한 정부의 홍보 차원에서 진행된 이 시상제도는 그 시작만큼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정치적 흐름에 의해 진행된 간헐적인 정부 지원은 해외 음악의 주체적 수용이나 국내 악단(樂壇)의 자생력 강화보다는 기능적이고 외형상의 효과만을 추구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오늘날 ‘예총’으로 불리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는 1962년 1월 5일에 결성되었다. 1961년 군사정권은 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문화단체통합준비위원회를 구성했고 음악분야 참여위원으로 61명을 선정했다. 당시 부회장을 맡았던 이유선(음악평론·테너)은 예총 결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해방 후 십여 년간 일을 해왔으면서도 부질없는 악단의 실태와 분열로 인한 부진은 이 모두가 다 정부나 사회의 경제적 뒷받침이 전무했었음에 기인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에 분산된 문화단체를 개별적으로 우선 통합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될 것이다. (···) 중요한 설계로서는 사회법인체화(준비완료), 연주, 창작, 교육, 음악문화사절 및 연주가, 국제교류, 외국연주자 초빙, 국제회의 및 국제음악경연 참가, 음악콩쿨(특상으로 해외파견), 저작권 옹호 시비 등 허다한 과제가 있다. (···) 이제는 실현성이 농후함을 주저 없이 말하고 싶다. 우리는 1962년을 ‘음악의 최고의 해’로 만들려고 온갖 힘을 경주하련다.

▲ (동아일보 1962년 1월 25일)

이로써 예총의 임무가 주어진 셈이다. 당시 예총의 이사장을 맡고 있던 유치진(극작·연출)은 최고회의 의장직을 맡고 있던 박정희를 방문했다. 박정희는 “문화예술단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며 문화단체들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동아일보 1962년 1월 25일).

하지만 예총이 결성 이후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전시 효과가 큰 대규모 행사 기획 및 실행이었다. 첫 행사 중 대표적인 것은 1962년 5·16 혁명 1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 (동아일보 1962년 5월 22일)

1969년 3월 문공부에 의해 창작활동 지원법 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음악협회에서는 창작품으로만 이루어진 음악제를 구상하기도 했다.

▲ (동아일보 1962년 3월 21일)

서울국제음악제

1960년대에 정부가 관여한 야심찬 기획으로 서울국제음악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음악제는 한국 현대음악사에서 이른바 ‘최초’의 국제음악제라는 타이틀을 가졌다. 지금처럼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이 드물었던 당시에 처음으로 선보인 서울국제음악제는 해외연주자들을 한 자리에서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이었다.

서울국제음악제의 중심에는 안익태가 있었다. 그는 1950년 해방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1955년과 1960년에 내한했고, 1961년 박정희 의장과 만난 후 서울국제음악제의 추진을 맡게 되었다. 이 음악제는 당시 행해지던 도쿄국제음악제를 모델로 하여 지역성을 뛰어넘는 행사를 해야 한다는 욕구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활동 반경이 유럽이었던 안익태는 서양연주가들과 한국 음악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상만(음악평론)은 이 음악제에 대하여 ‘안익태 씨의 작품으로 와전되고 있으나 (···) 당시 공보부 장관 오재경의 작품’이었으며, ‘그 근원을 따지면 예술애호가이던 김종필의 발상’이라는 후기를 남겼다(동아일보 1992년 2월 1일).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는 서울시민회관과 국립극장에서 진행되었다. 주요 공연만 꼽자면 4월 18~19일 비르투오소 디 로마, 5월 2일 안익태/KBS교향악단·연합합창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5월 12일 니카노르 자발레타(하프) 독주회, 5월 13일 임원식/KBS교향악단과 리카르도 오드노포소프(바이올린) 협연, 5월 14일~15일 ‘한국작곡가의 밤’에 김동진 ‘양산가’와 안익태 ‘한국환상곡’ 등을 선보였다.

사실 서울국제음악제는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의 부정적 이미지를 국내외적으로 개선하고, 혁명 1돌을 경축하고자 개최한 국제음악제였다. 이러한 축제와 행사가 당시 낙후된 클래식 음악의 발전에 큰 힘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봄철 보릿고개 넘기기도 어려운 실정 속에서 정부의 전폭적 지원 하에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서울시와 공보부·문교부·외무부·내무부 등 정부기관이 주도하고 각 언론이 후원한 이 행사는 부정적 평가를 더 많이 받았다.

당시 내한 연주자들에게 제기된 문제는 그들의 연주가 얼마만큼 한국 음악계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지 않고, 경제적 고려 없이 인맥에 따라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행사를 통하여 안익태와 국내 음악인들 사이에 벌어졌던 끊임없는 불화는 이후 해외 무대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을 어떻게 국내에 소화시킬 것이며, 이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숙제로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국제음악제는 3회까지 이어졌는데, 1회가 가장 안정적으로 열릴 수 있었던 것은 5·16혁명 1주년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와 맞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비해 2회부터는 정부 지원이 지속되지 않았는데, 1회가 정부의 큰 기대에 못 미쳤고 아직 과도적인 혁명정부 상태에서 1963년 10월 민정이양을 위한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면서 이러한 음악제까지 돌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또한 국제적인 음악제의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이를 위한 음악인력을 조직할 수 있는 전문 기획력 부족도 한 원인이었다. 결국 1964년 제3회를 마지막으로 서울국제음악제는 막을 내리게 된다. 참고로 현재도 서울국제음악제가 행해지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것과는 관련된 것은 아니다.

▲ (동아일보 1962년 4월 13일)

국립극장과 국립오페라단

1962년 3월 국립극장이 개관하였다. 장소는 현재 명동예술극장으로 사용되는 극장으로 당시에는 시공관으로 불리던 곳이다. 국립극장 소속으로 국립오페라단, 국립국극단(현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이 창단되었다.

당시 오페라단은 재정난과 인력난으로 1년에 한 작품 공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5·16 이후 공보부는 지원을 전제로 오페라단 통합을 지시했다. 그 결과 서울오페라단, 한국오페라단, 고려오페라단이 통합되었다. 국립오페라단의 초대단장에 이인범, 부단장에 김자경, 간사에는 오현명이 선출되었다. 김학근·황병덕·변성엽·서영모·안형일·황영금·이인영·김복희·임만섭·김옥자·채리숙 등 당시 오페라에 출연하던 성악가 24명이 단원으로 위촉되었다. 창단 시 “민족오페라의 형성에 이바지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이인범 단장은 창단 공연으로 장일남의 창작오페라 ‘왕자호동’을 무대에 올렸다.

1960년대에 국립오페라단은 한 해에 한두 편의 공연을 올리는 정도였다. 1962년 모차르트 ‘돈조반니’, 1963년 베르디 ‘가면무도회’, 1964년 도니제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푸치니 ‘토스카’, 1965년 푸치니 ‘라보엠’과 베르디 ‘아이다’, 1966년 베르디 ‘리골레토’와 베버 ‘마탄의 사수’, 1968년 구노 ‘파우스트’, 1969년 푸치니 ‘라보엠’을 올렸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자면 19세기 서양 오페라의 핵심을 담은 작품들이 10여 년 동안 천천히 한국에 수입·유입된 것이었다. 1967년에는 일본 후지와라오페라단과 함께 비제 ‘카르멘’을 공동으로 올렸고, 1962년 서울국제음악제에서 독일 성악가들과의 오페라 교류, 1966년 베를린 도이치오퍼 ‘피가로의 결혼’ 내한공연 등 국제교류를 이어가기도 했다. 국립극장은 1973년에 장충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동아일보 1961년 5월 5일)

악기=사치품

일제강점기 때부터 피아노 한 대는 곧 집 두 채 값과 맞먹었다. 서양악기를 배우고 더구나 전문가가 되기까지 어지간한 경제적 부를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은 196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악기를 사치품으로 여기던 당시의 풍조는 이러한 상황의 연장선 상에서 볼 수 있겠다.

1960년대에 서양음악 중 특히 기악음악 교육이 붐을 이루었지만, 음악 활동을 위하여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인력과 악보, 악기 등이 외국에서 유입되는 경로에는 한계가 많았다. 특히, 악기는 일반적인 소비품을 넘어 ‘사치품’으로 분류되었다. 악기를 사치품으로 분류하는 경향(1980년대까지도 남아 있었던)에는 위정자들의 문화적 몰이해, 대중의 무지도 한몫했다. 하지만 음악가들의 계급과 경제적 위치, 사회 전반이 요구하는 참여와 음악가들의 보수적인 태도에서 발생하는 문화적인 괴리 등이 복잡한 일면을 만들고 이러한 풍조를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 당시 음악가들은 법적으로 악기를 ‘사치품’으로 분류하는 것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상현(성악가)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기도 했다.

비엔나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귀국한 저자는 백 불도 못되는 싼값으로 피아노를 한 대 사 가지고 왔던 것인데 세관에서는 외국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막대한 세금을 내야만 했었다. 세금을 내는 것까지는 나라에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납득이 가는 것이었지만 피아노가 사치품목에 들어있다는 세관원의 애기를 듣고서는 가슴이 써늘하였었다(동아일보 1961년 5월 4일).

독주와 실내악의 불균형, 해외 연주자 내한

1960년대에는 기악분야 연주자와 관객이 증가했다. 특히 개인 기량이 중시되는 독주가 많은 양을 차지했다. 이러한 연주 풍토에서 실내악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이었다. 몇몇의 현악 4중주단이 창단되었지만 별다른 활동은 없었고, 금·목관 앙상블은 전무에 가까웠다. 그래도 서울대 음대의 몇몇 교수를 중심으로 실내악 활동이 일어났다. 1963년 서울대음대 목관 5중주단, 정진우(피아노)·박민종(바이올린)·전봉초(첼로)의 피아노 3중주단, 1965년 전봉초의 주도로 만들어진 서울바로크합주단(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등을 꼽을 수 있겠다.

1960년대에는 외국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도 증가했다. 앞에서 살펴본 서울국제음악제를 통해 내한한 연주자들을 제외하고 살펴보면, 1960년 빌헬름 캠프(피아노), 1961년 게르하르트 피셔(바리톤)와 아리고 폴라(테너), 미국 문화사절로 온 줄리아드 현악 4중주단, 1962년 미 대통령 문화사절로 온 카밀라 윌리엄스(소프라노), 1965년 줄리앙 폰 카롤리(피아노), 1966년 안 샤인(피아노), 루치에로 리치(바이올린), 줄리아드 현악 4중주단, 만하임 3중주단, 베를린 5중주단, 1967년 아이작 스턴·폴 마카노비치(바이올린), 야노스 스타커(첼로), 1968년 페루치오 탈리아비니(테너), 안토니에타 스텔라(소프라노), 루치에로 리치(바이올린), 1969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피아노) 등을 들 수 있겠다.

▲ (동아일보 1966년 7월 15일)

▲ (동아일보 1967년 11월 2일)

1966년 7월에는 아르투르 루빈슈타인(피아노)의 독주회가 있었다. 당시 최고의 입장료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 (동아일보 1962년 9월 25일)

해외 음악가의 내한 공연을 통하여 국내에는 새로운 레퍼토리나 연주 해석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62년 서울 현악 4중주단(제1바이올린 이재헌·제2바이올린 안용기·비올라 김용삼·첼로 양재표)이 홍콩에서 열리는 제1회 아시아음악제 참가했는데, 이처럼 해외 음악자원과 유입은 많았으나, 해외로 나가는 독주자나 단체가 전무한 상황이 1960년대의 음악계였다.

작곡계의 새바람

작곡계에 이른바 본격적인 현대음악 시대가 열린 때가 1960년대다. 서양의 여러 현대음악 경향이 이입되고, 양악과 국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새로운 창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1961년에 동아일보사가 개최한 전국음악경연대회(현 동아콩쿠르)에 연주 분야와 함께 작곡 분야가 생겼고, 1962년에 결성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는 신인예술상을 마련하여 작곡 부문 공모를 시작하기도 했다.

당시 유입된 현대음악 중 서양 민족주의 음악에 영향 받은 작품들, 20세기 음악의 여러 기법과 형식들을 이입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것들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유럽과 미국의 현대음악 조류 중 아카데미에 고착한 무조음악이 한국의 대학을 통하여 유입된 양상으로 보는 것이 옳다. 민족주의 음악도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작곡가 개인의 구성력을 통하여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주체적 고민보다는 19세기 유럽의 민족주의 음악을 모방한 기계적인 적용이었다. 무조성의 여러 형식과 기법들도 국내 작곡계의 맥락과는 무관하게 이입되었다. 또한 작곡가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국내 악단(樂壇)과 어떠한 관련성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연주가 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막연히 창작에 정부 지원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거나, 후원제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정도였다.

▲ (경향신문 1962년 1월 15일)

현대음악의 유입으로 인하여 신·구세대가 구분되어 작곡계의 세대론이 형성되었다. 1960년대는 일제 강점기부터 김성태·구두회·김순애·김세형이 악단(樂壇)에서 주도적 지위를 굳히면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시기였는가 하면, 20세기 음악에 대한 감각을 익힌 나운영·이상근·정윤주·김달성이 그 뒤를 이었다. 여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현대적 요소를 도입하려 한 박재열·백병동·강석희가 이후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을 예시했다. 연주분야가 주로 기량에 의해 신·구세대가 구분되는 것에 비하여, 작곡 분야는 재료의 활용 방식에 따라 구분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세대의 작품 경향은 앞 세대의 방법론과 소재 선택, 기반 등을 부정하며 나아가는, 한마디로 정반(正反)에 의한 작가 정신이라기보다는 주로 ‘현대적’이라고 일컫는 조류를 얼마나 빨리 수입하고 이입하는가의 문제로 치부되었다.

1961년 독일에서 윤이상의 관현악 ‘바라’ ‘교향적 정경’ ‘교착적 음향’, 현악 4중주 3번이 발표되었고, 이 사실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젊은 작곡가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창작에 대한 정격적인 평론 문화가 부재하던 국내의 언론과 저널은 윤이상이 유럽에서 ‘성공’한 것에만 주목하는 실정이었다. 이미 음렬 음악이 쇠퇴하고 음향의 다양한 측면을 통해 현대음악의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유럽 음악계가 동아시아라는 비서구 지역의 음악적 자산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유럽의 근대적 체계를 무시하지 않는 윤이상을 주목했던 것인데, 국내에서 이러한 맥락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경향신문 1967년 11월 15일)

1965년에는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의 현대음악발표회에 김달성 ‘9중주’, 이상근 ‘조국’, 윤이상 ‘가락’, 나운영 ‘시나위’가 발표되면서 당대의 경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때 윤이상의 곡에 대해 “한국적 가락이 없으므로 민족적이지 않다”는 국내 음악인들의 평가와 대조적으로 박용구(음악평론)는 “미래의 한국적 음악”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윤이상은 기소되어 강제 송환된 사건이 음악계의 큰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은 작곡가로서 윤이상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했을 뿐 아니라, 그 여파를 오랫동안 남겼다. 1969년 문공부에서는 창작 활동 지원 법안이 마련되기도 했다.

1960년대 음악미시사를 위하여

현재와 확연히 다른 시공간이라 생각되는 1960년대. 맞다. 역사는 늘 그렇다. 하지만 이는 역사의 외형만 그러할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가족 유사성’이라는 개념처럼, 우리가 사는 2010년대는 1960년대가 낳은 시간의 자식이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하여 1960년대의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음악영재, 콩쿠르, 교육기관, 음악제, 국립단체, 평론, 작곡, 음악정책 등을 다시 살펴볼 예정이다. 각 호마다 하나의 소재를 선택하여 기록을 들추고, 원로들의 구술을 이용하여 당시 음악문화의 미시사를 정리하려 한다. 1960년대를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오늘의 음악문화를 다시 사유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