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variation)와 방작(倣作)

송현민의 Culture Cod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5월 1일 12:00 오전

원작을 모방하되 변화를 주는 기법. 음악의 변주와 동양화의 방작은 서로 닮았다

브람스의 피아노곡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9(1854), ‘자작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1-1과 ‘헝가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1-2(1857),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Op.24(1861), ‘파가니니 주제에 위한 변주곡’ Op.35(1862~1863), 관현악곡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35a와 Op.35b(1873)는 제목이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음악들이다. 제목은 각 곡의 원작과 브람스가 받은 영감의 원천, 변주(variation)라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곡들을 접할 때마다 ‘방작(倣作)’이라는 동양화 기법이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 있다. 변주 형식이나 방작 모두 원작이나 원작자의 기법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그것을 답습하는 ‘모방’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변주’의 기법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브람스의 변주곡


▲ 올가 폰 밀러가 그린 브람스 초상화

변주는 한 번 나타난 소재, 즉 선율·주제·동기·작은악절 등을 반복할 때 어떤 변화를 가하여 연주하는 것이다. 변주된 선율은 당연히 원형과 다른 상태에 있으나 변주의 빈도가 높고 낮고 간에 원형 소재와의 연결은 유지되어야 한다. 즉, 주제가 극단적으로 변주되어 듣는 이가 원형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느낄지라도 원형과의 관련은 어떠한 형태로든 잠복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분석 시 그와 같은 변주가 원형에서 어떻게 유도되었고, 어떤 변화를 연출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변주 기법이 전적으로 개입되지 않은 음악이란 극히 단순한 악곡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하고, 그것에 ‘변화’를 주는 것은 원시 음악은 물론 지금까지 행해지는 기법이다.

레메니는 헝가리 집시음악을 능숙하게 연주하며, 브람스에게 집시음악의 특징과 선율을 가르쳤다. 이를 바탕으로 1853년에 브람스는 ‘헝가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했다. 곡의 주제도 레메니를 통하여 알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곡은 주제와 제1변주부터 13변주, 코다로 구성되었다. 13개의 변주는 모두 주제와 근친 관계에 있는데, 주제를 왼손으로 연주하거나(제1변주), 오른손이 변주하는가 하면(제2변주), 오른손이 표정을 넣어 주제에서 끄집어낸 선율을 느릿하게 연주(제5변주)하고, 왼손 리듬으로 헝가리풍을 느끼게 하고 오른손은 펼침 화음을 연주하다가(제9변주), 앞의 펼침 화음을 더욱 세밀하게 움직이게 하는 식(제10변주)이다. 그리고 코다에서는 주제의 원형에 다시 접근하여 원주제를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전체를 마무리한다.

음악과 회화의 모방과 변주


▲ 그림(1) 심석전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 그림(2) 강세황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 ‘仿 沈石田(방 심석전)’이라고 쓴 글귀가 보인다

원형의 주제가 점점 확장되고 변하는 가운데 원형과의 관계를 놓지 않아야 하는 것은 방작(倣作) 기법을 택한 동양의 화가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동양에서 화가들이 그림에 입문해 처음으로 하는 공부는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며 기법을 수련하는 일이다. 선인의 그림을 본떠 그리면서 그 기법을 체득하는 것. 중국의 사혁이 쓴 ‘고화품목’에 나오는 육법(六法) 중 ‘전이모사(轉移模寫)’는 그래서 중요했다. 하지만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화의(畵意), 즉 정신을 본받아 그려야 했다.

브람스가 원작을 통하여 변주곡을 썼듯이 조선의 문인화가 강세황은 명대의 화가 심석전의 ‘벽오청서도’(그림 1)를 방작하여 자신도 ‘벽오청서도’(그림 2)를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본뜨다’라는 뜻의 ‘방(仿)’자를 써서 아예 ‘仿 沈石田(방 심석전)’이라고 적었다. 브람스 변주곡들의 제목도 이러한 회화처럼 쓴다면, ‘방 슈만’ ‘방 헨델’ ‘방 하이든’ ‘방 파가니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옛 그림’을 쓴 이동주의 말은 브람스에게도 솔깃하게 들렸을 것이다.

“심석전의 그 그림도 괜찮기는 하지만, 강세황의 그림이 심석전의 그림보다도 더 낫습니다.”

방작이나 변주 형식이나 그 묘미는 모방을 통하여 원작보다 더 풍부하고, 나은 작품을 창작해야 하는 것에 있다.

붓 쥔 자든, 오선지와 마주한 자든 방(倣)의 기법을 택하면, 원작(자)에 대한 ‘존경’과 한편으로는 경쟁이라는 양가적 상황도 피해 갈 수 없다. 브람스의 ‘슈만 주제에 위한 변주곡’ Op.9는 주제와 16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곡. 이 곡의 주제는 슈만이 소품을 정리한 ‘갖가지 작품’ Op.99의 제1곡에서 차용되었다. 제10변주에서는 슈만의 ‘클라라 비크 주제에 의한 즉흥곡’의 일부가 나타나기도 한다.

슈만의 작풍에 접근하고 있는 이 곡은 1854년에 완성·출판되었고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했다. 이 곡이 작곡되던 해는 슈만이 정신질환으로 라인 강에 투신한 뒤, 엔데니히 요양소에 수용되던 때였다. 그런데 브람스는 이 곡을 왜 작곡했을까. 역사는 브람스가 남편이 없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클라라를 위하여 슈만 가문의 막내 펠릭스가 태어나던 6월 11일에 이 곡을 착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브람스는 남편의 정신질환에 놀란 클라라로 하여금 ‘그’(브람스)에게서 ‘그(슈만)이의 향기’를 느끼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게다가 음악적 방작(倣作)을 통하여 원작자 슈만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변주로 대변되는 자신의 스타일을 곡 하나로 동시에 내세우며, ‘경쟁’의 구도를 취한 것은 아닐는지. 역시 브람스, 보통이 아니다. 어쨌든 브람스는 이 곡을 엔데니히 요양소의 슈만에게로 보냈다. 답장이 왔다.

“친애하는 벗이여, 당신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당신의 변주곡으로 가져다준 것입니까. 그것들 모두가 너무나 훌륭하고, 확실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아주 독창적이며, 너무나 창의적인 생각으로 넘쳐 있습니다. 당신이나 클라라가 그것을 연주하는 것을 얼마나 듣고 싶은지, 아주 멋진 다양함!”

브람스를 향한 칭찬 같지만 역시 슈만도 보통은 아니다. 훌륭하다고 칭찬한 ‘그것’이 곡의 원작인 자신의 작품인지, 변주의 옷을 입은 브람스의 작풍인지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개성


▲ 그림(3) 심사정 ‘심산초사(深山草舍)’ 그림(4) ‘고씨화보’ 중 동원의 회화

▲ 그림(5) 심사정 ‘산수도(山水圖)’ 그림(6) ‘고씨화보’ 중 마린의 회화

조선의 심사정은 ‘고씨화보’ 속의 그림을 변주하여 자신의 화풍을 다듬었다. ‘고씨화보’는 고개지(346~407)부터 명대(1368~1644) 말기에 이르기까지 중국회화사를 장식한 중요한 화가들의 그림과 정보가 왕조별로 수록된 책이다. 이러한 ‘고씨화보’는 옛 그림에 대한 지식과 모사를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제시함으로써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쓴 브람스에게 슈만의 ‘갖가지 작품’ Op.99나 ‘클라라 비크 주제에 의한 즉흥곡’이 감상의 대상이자 모방과 변주를 위한 모티브가 되었듯이 ‘고씨화보’의 회화는 송나라, 원나라의 작품은 물론 명나라의 산수화도 접할 기회가 없던 심사정에게 작품이자 영감의 존재로 기능했다. ‘고씨화보’ 속 회화를 수용한 심사정은 작품의 전체적인 구도를 수용하는 형태를 취했고, 여기서 자신의 변주를 펼쳐나갔다. 예를 들어 ‘심산초사’(그림 3)는 동원의 것(그림 4)을, ‘산수도’(그림 5)는 마린의 것(그림 6)을 응용했고 이들을 비교해보면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지만 표현기법이나 경물의 배치 등이 달라 각기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브람스의 변주곡들과 강세황이 그린 ‘벽오청서도’, 심사정의 ‘심산초사’ ‘산수도’는 하나의 형태로 된 작품이지만, 두 예술가의 작풍과 이야기가 공존한다. ‘변주’나 ‘방(倣·仿)’이라는 말이 들어간 작품은 영감의 출처도 분명하다. 원작(자)에 대한 존중과 그 가치를 알기에 모방하려는 마음, 원작을 능가하여 더욱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려는 의지도 상생한다. 이동주는 방작을 “어떤 외부의 것을 모사한다기보다는 어떤 부분 부분을 구성해나감으로써 하나의 화면을 구축한다는 계단적 창조관”의 작업이라며, 방(倣)에 머물지 않고 “구축의 과정을 개성적으로 발휘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처럼 역사 속에 살아남은 변주곡과 방작들은 모두 확실한 기준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개성이다. 이것이 브람스의 변주곡이 걸작으로, 방작을 취한 심사정과 강세황의 회화가 명작과 수작으로 기억되는 이유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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