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은 송지원. 외유내강의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의 이야기
1992 서울 출생
2008 그린필드 콩쿠르 1위, 스툴베르크 현악 콩쿠르 2위
2010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4위
2011 커티스 음악원 입학
2012 샤트 현악 콩쿠르 1위·청중상
2014 차이나 바이올린 콩쿠르 1위·특별상,
앨리스&엘레노어 쇤펠드 콩쿠르 1위·특별상
2015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사 과정 입학, 티보르 버르거 콩쿠르 2위
2016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 1위
지난 5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기분 좋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의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 우승 소식이었다. 그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와 티보르 버르거 콩쿠르를 비롯해 매년 크고 작은 콩쿠르에 입상하며 이름을 알려온 바이올리니스트지만, 일찍이 미국으로 떠난 탓일까, 한국에서 그녀의 실연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유튜브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시벨리우스·멘델스존·파가니니… 목록 중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재생했다. 꿋꿋하고 선명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나하나가 고혈을 짜낸 듯 꽉 찬 음색이었다. 강인한 듯하면서도 애틋한 그녀의 연주는 청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1악장이 끝나자마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벅찬 미소로 청중석을 바라보는 그녀는 진정 행복해 보였다.
송지원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어머니를 따라 세 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서 김남윤을 사사한 후 10세에 미국으로 향했고, 클리블랜드 음악원·커티스 음악원·뉴잉글랜드 음악원 예비학교를 거쳐 2011년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다. 지난해부터는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도널드 와일러스타인과 김수빈을 사사하며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는 현재 다양한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6월 말, 잠시 한국에 입국한 송지원과 마주앉았다. 앳된 눈웃음을 지닌 그녀는 수줍은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씩씩한 캔디’의 모습도 비쳤다. 어린 시절 홀로 미국에서 공부하며, 세계 곳곳의 콩쿠르를 누비며 맞닥뜨린 경험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든 것일까? 어쩌면 가녀린 몸에서 뽑아내는 단단한 선율 역시 그녀의 이런 내공에서 연유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다섯.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한 아름다운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나, 송지원의 시작
어린 시절 바이올린은 항상 저와 함께였어요. 바이올리니스트인 어머니께서 연습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악기를 잡았죠. 본격적인 시작은 일곱 살,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예요. 어린 나이였지만, 바이올린에 대해 알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죠. 아직 연주해보지 못한 작품들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는 게 행복했어요. 화려한 기교를 하나씩 배워나가는 과정도 즐거웠고요. 끊임없이 발전하고 싶어 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평생을 바이올린과 함께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미국에서의 성장기
열 살에 미국으로 떠났어요. 클리블랜드 음악원 예비학교와 일반 학교생활을 병행했죠. 주변 환경이 모두 음악과 연관됐던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을 하지 않는 친구들과 보냈어요. 그림 그리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온종일 그림만 그리기도 하고요. 훨씬 자유로웠죠. 음악적으로는 클리블랜드 음악원의 데이비드 세론 선생님을 만나며 훌쩍 성장했어요. 선생님은 레슨 시간 이외에도 저를 불러 가르쳐주셨고, 공부할 곡과 연습 시간을 써놓은 ‘연습 기록 차트’까지 만들어 꼼꼼히 모니터해주셨죠. 가장 감사한 점은 제 안에 잠재된 창의력을 끌어내주셨다는 거예요. 스스로 카덴차를 작곡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에요.
깨달음을 담은 ‘음악 일기’
2014년 1월부터 지금까지 음악 일기를 꾸준히 쓰고 있어요. 커티스 음악원에서 슈만 피아노 5중주를 배우던 도중 갑자기 떠오른 영감을 기록한 것이 시작이었죠. 연습이나 레슨을 받으며, 또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감상하며 제게 적용할 만한 부분이 생길 때마다 적고 있어요. 일기에는 단순한 손가락 포지션부터 설득력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한 프레이징, 뉘앙스 등의 추상적인 내용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죠.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저는 깨달음이 너무 잦아요.(웃음) 그만큼 제 음악 일기엔 섣부른 깨달음과 시행착오의 흔적이 많죠. 훗날 이 내용들을 엮어 책을 내고 싶어요.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질 미래의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현재 가장 고민하는 부분
‘어떻게 하면 청중과 더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요즘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에요. 어릴 땐 저만의 감정보다 선생님과 음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연주에 반영하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이제는 연주하면서 제가 느끼는 감정과 전율을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어요. 야사 하이페츠처럼요.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도널드 와일러스타인 선생님과 효과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연습할 때는 곡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를 뚜렷하게 녹여내는 데 집중하고요. 저만의 색깔과 음악어법을 선명하게 나타내 청중의 마음까지 전달하는 것. 저의 고민이자 목표죠.
해외 콩쿠르 도전기
2008년부터 꾸준히 해외 콩쿠르에 참여하고 있어요. 콩쿠르를 준비할 땐 편한 일상에서 벗어나, 더욱 활동적으로 변해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연주하려 노력하죠. 이런 작은 시도가 모여 결국 큰 차이를 만들고, 저를 발전시키는 것 같아요. 이번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에서는 연주의 질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뒀어요. 스스로를 많이 돌아봤고, 그래서인지 준비 과정에서 실력이 느는 것이 눈에 보여 즐거웠죠. 다행히 결과도 좋았고요. 콩쿠르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스트레스인데… 그래도 나태함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보단 나아요.(웃음)
상주 음악가로서 경험
2014·2015년 상주음악가로 활동한 하이페츠 인스티튜트는 매년 여름 6주간 열리는 프로그램으로, 제겐 자유롭게 들러 편안히 음악을 즐기다 오는 또 하나의 집과 같은 곳이었죠. 리사이틀이나 협연이 아닌 ‘상주음악가’란 지속적인 타이틀은 제게 값진 경험을 안겨줬어요. 우선 많은 무대를 통해 다양한 청중을 만났고, 슈무엘 아슈케나지를 비롯한 저명한 연주자들과 실내악 연주를 하며 음악적 지평을 넓힐 수 있었어요. 조언을 부탁하는 학생들에게 도움도 주었고요. 참, 이곳에선 누구나 연주 시작 전에 해설을 해요. 그 이후로 해설을 자주 하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에요.
해설, 함께 나누는 기쁨
첫 해설을 하기 전, 대사 연습을 하며 떨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는 청중과 눈빛을 교환하고, 저의 이야기로 소통하는 것이 즐거워요. 해설을 할 땐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해요. 예를 들어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면 명랑한 톤으로, 유머를 섞죠. 밝은 색상의 드레스를 선택해 연주의 전체 분위기도 살리고요. 요즘 들어 강하게 드는 생각인데, 해설은 청중이 연주에 집중하게 만드는 정말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확장하고 싶은 레퍼토리
아직까진 고전과 낭만주의 레퍼토리들이 자신 있어요. 한동안 그쪽으로 더 공부할 예정이고요. 특히 남은 베토벤 소나타를 다 배워서 전곡 연주를 가지는 게 목표예요. 요즘은 재즈의 자유로운 리듬에 푹 빠져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재즈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나와 밀접한 타 예술 장르
미술, 특히 초현실주의 작품을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렸고, 커티스 음악원에서 인상주의를 공부한 것을 계기로 미술관을 자주 다니기 시작했죠. 답이 명확한 르네상스 회화나 시각적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인상주의 그림보단 추상적이고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한 초현실주의 작품에 눈이 갔어요. 저만의 뜻을 담아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음악을 감상하며 떠오르는 감정을 초현실주의풍으로 그리곤 해요. 참, 언젠가는 미술과 컬래버레이션을 해보고 싶어요. 곡을 연습하면서 종종 저만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이를 모아 애니메이션으로 구체화해보려고요. 제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서요. 비주얼이 동반되면 음악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나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를 존경해요. 피카소가 큐비즘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고전주의를 통달했기 때문이죠. 저도 피카소와 같이 우선 한 분야를 완전히 파고든 다음, 이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예술적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싶어요.
앞으로 꿈꾸는 미래
연주에 진심을 그대로 담아내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교육에도 뜻이 있어요. 지금까지 많은 학교를 거치며 다양한 선생님께 음악을 배웠어요. 그분들의 귀한 가르침과 배려가 있었기에 현재의 제가 있을 수 있었죠. 저도 훗날 학생들과 함께 음악적 영감을 나누고 싶어요.
사진 심규태(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