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열린 마르세유 발레의 런던 공연

완급 조절이 아쉬웠던 ‘신체.무용.국가.도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9월 1일 12:00 오전

1972년 롤랑 프티가 창단한 마르세유 발레(Ballet national de Marseille, 이하 BNM)가 지난 8월 5·6일 사우스뱅크센터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신체.무용.국가.도시(Body.Dance.Nation.City)’라는 타이틀로 8년 만의 영국 공연을 가졌다. 공연명의 원제는 에미오 그레코 안무와 피터 숄텐 연출의 ‘마르세유 발레의 신체(Le Corps du Ballet National de Marseille, 2015)’였으나, 초청 측의 요구로 영어 제목으로 변경됐다. 21인무 규모에서 4명의 무용수를 줄였지만 초연의 크리에이티브팀이 유지됐고, 한국인 단원 이지영도 참가했다.

BNM은 1984년 프랑스 국립무용센터(Les Centres chorégraphiques nationaux, 이하 CCN)의 창설 멤버로, 롤랑 프티의 발레 언어를 전방위로 전달한 첨병이었다. 1997년 프티의 퇴진 이후 마리 클로드 피에트라갈라(1998~2004)와 프레데리크 플라망(2004~2013)에 이어 암스테르담 국제 안무센터(ICKamsterdam)에서 활동해온 그레코와 숄텐(2014~)이 영입됐다. 그레코는 공연 전 영국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전 문화부장관 자크 랑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안무가가 지방에서도 영화감독 같은 위상을 얻는다”면서 CCN 제도의 효용을 극찬했다.

그레코에게 영국은 각별한 무대다. 유럽 본토를 제외하면 무명과 다름없던 2001년, ‘더블 포인트(Double Point)’로 기회를 준 곳이 에딘버러 페스티벌이다. 그동안 런던에선 바비컨센터와 사우스뱅크센터가 그레코의 신작을 주도적으로 유통시켰다. 프랑스 컨템퍼러리 발레가 브렉시트(Brexit) 이후 런던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지, 노르망디와 니스의 테러 이슈가 공연의 새로운 명칭과 결부되면서 영국 비평계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작품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영화 ‘싸움에 몸을 던져라(Throw Your Body Into The Fight)’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필름의 영감은 ‘클래식 발레는 개인과 그룹이 서로 상충하는 전쟁터에서 어떤 형태로 변화하는가’로 전이되었다. 무용수들이 신체 기능을 극한으로 모는 과정은 그레코의 극단주의(extremalism)의 흐름을 따랐다. 그러나 솔로를 맡은 무용수들의 탕뒤(tendu)와 제5포지션은 정상급 클래식 발레단의 그것과 차이가 선명했고, 그런 수준 차이가 결국 클래식 발레의 한계를 말하고픈 안무가의 본의였다. 17명의 무용수가 충돌하고 넘어지는 동안, 고전 발레의 틀로는 제 뜻이 전달될 수 없음이 구체화됐다.


▲ 안무가 에이오 그레코와 연출가 피터 숄텐

아쉽게도 생존을 위해선 연대와 정체성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안무가의 주장이 70분 동안 세련되게 전달되지 않았다. 강렬한 조명과 펑키한 음악은 지속적으로 자극을 유도했지만 완급이 조절되지 않아, 50여 분이 지나자 객석의 피로감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독무와 군무진을 개인과 사회로 병립시키는 기계적인 배치를 현대적 내러티브로 보기 어려웠다. 국가(프랑스)와 도시(마르세유)를 상징하는 여러 이미지가 제시됐지만, 객석에서 손쉽게 받아들인 코드는 공연 중에 흘러나온 프랑스 국가 ‘마르세유의 노래(La Marseillaise)’였다.

‘신체.무용.국가.도시’는 그레코와 숄텐이 20명의 무용수 규모로 만든 첫 작품이다. 1·2인무에서 그레코가 보인 감각적인 테크닉이 솔리스트들에게 그대로 투과되기까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독무와 군무 사이, 작은 그룹 안에서 벌어지는 동작에서 상당한 여백이 발생했다. 그 빈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요소가 정련된 댄스 테크닉이 아니라 굉음에 가까운 음악과 날카로운 조명인 것은 BNM이 창립자, 롤랑 프티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증거이기도 했다.

남프랑스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선도적으로 다문화를 받아들인 마르세유는 이탈리아 안무가와 제2의 도약을 이룰 수 있을까. 최근 들어 몽펠리에와 아비뇽, 리옹의 작품들에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는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행태가 마르세유로 번질지, 동시에 주시할 부분이다.

사진 Alwin Po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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