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전

다크 판타지, 그 속에 깃든 아름다움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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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6월 10일 9:00 오전

전시

디센던츠-블루 우드 ©2019 James Jean

글 박찬미 사진 롯데뮤지엄

여기, 섬세한 손짓으로 하나의 판타지 세계를 빚어낸 아티스트가 있다. 20여 년 전, 코믹북 표지를 그리며 본격적으로 예술계에 입문한 한 청년은 보다 넓은 캔버스로 화폭을 옮기더니, 이제 서울 롯데뮤지엄이라는 공간을 자신의 세계로 물들였다. 우리가 발을 들여놓은 이곳은 바로, 제임스 진의 세계다.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는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는 힘을 지녔다. 현대미술계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가 제임스 진을 이르러 ‘내러티브 세계의 예술가’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보면, 그 힘의 중심에는 ‘이야기’가 있는 듯하다. 대만에서 출생해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를 졸업한 제임스 진은 미국 만화산업을 대표하는 DC코믹스의 ‘페이블스(Fables)’ 표지 아트 작업으로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비롯한 총 4편의 영화 포스터를 제작했으며, 글로벌 패션 브랜드 프라다, 나이키와 여러 차례 협업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년간 계속된 제임스 진의 작업을 총망라한다. 어지러이 뻗어 나가는 그의 선들이 동양과 서양, 순수미술과 상업미술, 회화와 조형 등의 경계를 꿰뚫고 자유롭게 그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압도적인 광경을 만나볼 기회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된 초대형 회화 작품들이 주요 테마다. 음양오행사상을 바탕으로 우주 삼라만상의 질서를 담은 다섯 가지 색, ‘오방색’이 작품들 사이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는데, 관람객은 남에서 북으로, 결국 세계의 중심으로 향하는 그 여정 위에서 각 방위색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나게 된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지옥은 강렬한 붉은색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천상계와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배 위의 장면 등은 푸른색으로 수렴한다. 소용돌이치는 칠흑 같은 바다와 흑발의 님프들이 멱을 감는 모습, 그리고 모든 것이 갈라지고 무너지는 카오스 속에 자식을 감싸 지키고 있는 어미 백호로 색의 향연이 이어진다. 전시장의 중심, 곧 세계의 중심에는 만물의 어머니이자 땅의 여신인 가이아와 호랑이, 거북이가 자리했다. 오방색에 따라 이들이 품은 성스러운 자연의 에너지는 노란빛을 내뿜고 있다. 이 세계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길이 치솟는 와중에 생명이 움트고, 인간과 자연이 아름답게 합일된 초자연적 공간에서도 죽음이 교차하며, 평화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지녔다. 이곳에는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는 제임스 진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됐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계속되는 혼란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단지 그만의 삶이었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삶들이 녹아있다. 그 시간을 거치며 이 세계는 점차 정제되었고(실제로 그의 드로잉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된 양상이 그렇다), 그래서 이곳은 희비극을 뛰어넘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어쩌면 ‘지금, 여기’를 만들어낸 그 과정이 진정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곳은 희비극을 뛰어넘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제 제임스 진의 작품 세계를 내 손으로 느껴보자. 전시장 내에는 컬러링 체험지를 배치해 누구나 채색해볼 수 있도록 했고, 기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의 형태에 자신만의 이야기와 색을 담아 아트조명이나 모빌을 만드는 스튜디오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이 밖에도 미술 심리 치료 프로그램 등 어린이, 성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니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를 즐겨보시길.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전 4월 4일~9월 1일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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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Fox Searchlight

언틸 더 스프링 ©DC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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