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PLACE FOR SOUND
극장가 최고 성수기는 여름이다.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두어시간 시원한 곳에서 영화를 즐기는 건 도시인들의 흔한 피서법이다. 단,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각오해야 한다. 한정된 공간, 밀집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 영화 감상은커녕 옆 사람의 팝콘 씹는 소리, 한 장면 나올 때마다 자기 집 안방처럼 떠드는 소리에 시달리다 올 수도 있다는 것. 이런 걱정을 할 필요 없는 최적의 휴양지, 사운드씨어터 오르페오를 소개한다.
지난 1월 개관한 오르페오는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이자 음반 기획사 오드에서 설립한 음악 콘텐츠 전문 상영관이다. 잃어버린 소리의 감각을 지키겠다는 오드의 철학은 최상의 소리를 구현하도록 설계된 상영관에서 분명해진다. 상영관의 이름 ‘오르페오’는 신화 속 인물에게서 따온 것으로, 그의 이야기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오르페오는 독사에 물려 죽은 연인, 에우리디체를 구하기 위해 지하 세계로 향한다. 그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을 구슬픈 노래로 잠재우고, 죽음을 관장하는 신을 음악으로 감동시킨다. 음악 감상이 손쉬워진 지금의 관객들에게 다시 음악이 지닌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포부가 담긴 이름인 셈이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한남동의 사운즈 한남에 위치해 있지만, 어떤 이에겐 오르페오로 향하는 길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습도가 높아 조금만 걸어도 금세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여름날, 이태원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기자를 지도 애플리케이션은 높고 가파른 주택가의 계단으로 안내했다. 살짝 기울기가 있는 오르막길까지 올랐을 때에야 드디어 조그만 성채처럼 생긴 사운즈 한남에 다다랐다. 지친 발걸음으로 땀범벅이 되어 5층에 위치한 사운드씨어터 오르페오로 들어서면 ‘그래, 얼마나 좋은지 내가 소리의 심판자 노릇을 톡톡히 해주마’하는 기분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상영관 내부는 30석 규모로 아늑하다. 멤버십 회원제로 운영되어 한적한 환경에서 오롯이 영화를 감상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가장 좋은 소리를 경험할 수 있는 3열 중간에 앉아보자. 소리를 듣기 전부터 푹신한 가죽 좌석의 편안함에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음악 콘텐츠 전문 상영관 오르페오는 음악 영화와 음악 다큐멘터리 필름 외에도 클래식 공연과 오페라 실황 콘텐츠를 중점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 2시간이 안 되는 일반 영화보다 상영 시간이 긴 클래식 음악 실황 콘텐츠를 즐기려면 안락한 좌석은 필수일 테다. 모든 관객에게 제공되는 시원한 생수를 쭉 들이키고 나면, 이제 소리가 주는 감동을 체험할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최적의 사운드를 향한 오르페오의 여정
1단계. 상영관 설계
오르페오 상영관 내부에는 30여 개의 스피커가 각기 다른 각도로 설치돼 있다. 사운드 시스템은 160년 전통을 가진 그랜드 피아노 제조사 스타인웨이와 덴마크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링돌프와 합작해 화제를 모은 스타인웨이 링돌프로 구성된다. 본사 엔지니어가 직접 방문해 공간에 최적화된 사운드를 설계했다. 이렇게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입체적인 소리는 관객에게 실감나는 관람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의 소리가 마음에 든다면, 상영관 직원에게 바로 스피커 구입을 문의할 수도 있다.
2단계. 콘텐츠 선별
사운드씨어터 오르페오의 최우선 순위는 음악이다. 상영관에서 틀 콘텐츠를 선별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다른 영화관에서 접하기 어려운 클래식 음악을 주된 콘텐츠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채로운 악기의 음색이 어우러지는 클래식 음악은 하이엔드 오디오를 통할 때 더욱 완전하게 감상할 수 있다. 최적으로 구현 가능한 사운드 조건을 충족하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채택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오르페오는 오페라와 클래식 콘서트 실황 영상을 제작해 온 독일 클래식 콘텐츠 제작사 유니텔과 협약을 맺어 공연장을 직접 찾지 못한 클래식 애호가들의 아쉬움을 달랜다. 루돌프 부흐빈더의 베토벤 소나타 실황 영상과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의 오데온스 광장 콘서트를 비롯해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라보엠’ ‘리골레토’ 등 굵직한 클래식 콘텐츠를 선보여왔다. 클래식 음악과는 거리가 먼 영화 애호가들은 아직 실망하기 이르다. 오르페오에서는 다양한 음악 영화와 다큐멘터리 또한 상영된다. 지난 6월에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함께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음악 영화들로 관객과 만났다. 좋아하는 영화를 훌륭한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오르페오에서 색다르게 체험해보자. 익숙한 영화라도 다르게 보이고 들릴 것이다.
3단계. 맞춤형 운영
오르페오의 사운드 시스템은 상영 콘텐츠에 따라 다르게 구축된다. 예를 들어 오페라의 경우 풍성한 소리를 만끽하도록 기본적으로 설정된 음량이 큰 편이다. 그럼에도 소리에 민감한 당신에게 상영관의 음향이 너무 크거나 작다면, 오르페오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로 살짝 메시지를 보내보자. 오르페오는 최상의 시청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관객의 피드백을 충실히 반영해 운영하고 있다. 상영 전후로는 라운지의 스피커와 헤드폰으로 상영작의 음악을 재생해 여운을 이어갈 수 있게 한다. 이밖에도 멤버십 회원에게는 상영관 내 음반 및 굿즈 구매시 일정 할인을 제공한다. 개관 이래 이틀에 한 번 오르페오를 찾는다는 단골을 만든 비결은 바로 이런 세심한 고객서비스에 있지 않을까?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오르페오
7월 오르페오 상영작
오페라: 브레겐츠 페스티벌 ‘카르멘’ ‘투란도트’ 영화: ‘닥치고 피아노’ 외 ※자세한 일정 및 프로그램은 오르페오 공식 SN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