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VIEW
단순한 공연 리뷰가 아니다. 구석구석 돌아보고, 여기저기 물어본 생생한 리뷰에 귀기울여보자
EDITOR’S REVIEW
기자가 직접 돌아본 음악제
파티의 마무리는 해피엔딩
제16회 평창대관령음악제(7월 31일~8월 10일)는 총 12개의 메인 콘서트, 7개의 스페셜 콘서트, 그리고 12번의 ‘찾아가는 음악회’로 구성됐다.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예술감독 손열음은 “한 편의 단편 소설집 같은 축제가 될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스토리텔링의 요소를 살려 관객에게 다가가겠다는 의지였다. 그의 말처럼 올해 모든 메인콘서트는 뚜렷한 테마를 중심으로 레퍼토리가 구성됐다. ‘해피엔딩은 나의 것!’(8월 9일 알펜시아 뮤직텐트)도 마찬가지. 오케스트라가 중심이 되는 폐막 공연을 앞두고 실내악 공연을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신아라(바이올린)와 티무르 야쿠보프(비올라)는 알렉산드로 롤라 2중주 Op.13을 연주했다. 두 연주자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선율을 주고받았다. 손열음(피아노)과 레오나드 엘셴브로이히(첼로)가 선보인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g단조 Op.19에서 주제인 ‘해피엔딩’이 구체화됐다.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을 극복한 시기에 작곡됐다고 알려진 이 곡은 감정적 서사가 분명한 만큼 연주자의 전달력이 중요하다. 첼로의 깊은 음색에 조심스레 합류를 청하듯 시작한 손열음의 피아노는 점점 소리를 키우며 첼로와의 합을 열정적으로 이끌었다. 2악장 스케르찬도에선 활이 첼로 몸체에 부딪혀 소리가 날 정도였다. 이들은 4악장에 이르러서 별빛이 내리는 뮤직텐트에 만물이 움트는 아침을 불러왔다.
2부는 노부스 콰르텟의 클라인 현악 4중주 Op.2로 시작했다. 페스티벌 관객이 느낄법한 완벽한 호흡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준 연주였다. 마지막은 후미아키 미우라(바이올린), 티무르 야쿠보프(비올라), 송영훈(첼로), 김선욱(피아노)이 함께한 포레 피아노 4중주 1번 c단조 Op.15가 장식했다. 김선욱의 피아노가 주도권을 잡아 평창의 날씨처럼 쨍하고 활기찬 음악을 들려줬다. 2악장을 시작하기 전 바깥 소음 때문에 연주를 잠시 멈추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 점에서 야외 시설에 가까운 뮤직텐트는 공연장으로서의 장단이 분명했다. 특히 객석의 뒷자리는 보도와 가까워 투숙객의 말소리나 차 소음이 종종 감상을 방해했다. 그럼에도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여름밤의 낭만적인 분위기는 한껏 만끽할 수 있었으니, 이만하면 축제의 마무리로 좋지 아니한가. 글 박서정 기자
신데렐라,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선
지난해 이후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자랑이 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활약은 올해 역시 돋보였다. 연주 실력뿐 아니라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국내 연주자들의 존재를 각인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알펜시아 리조트 내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마스터 클래스나 특별 공연에서는 리조트에 묵고 있는 숙박객이나 현지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음악에 대한 접근성을 낮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으며, 유사한 의도로 강원도 일대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포함한 다양한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다만, 알펜시아 리조트에 묵지 않는 관람객들을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는 흠이 존재했다. 금요일 저녁 메인 공연을 보고서 서울로 돌아와야 했던 기자는 저녁 9시 40분 셔틀버스를 타고 강릉역까지 이동해, 10시 30분 막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총 100분으로 예정된 공연은 약간 지연됐고, 공연이 미처 끝나기도 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조금이라도 공연을 더 즐기려다(결국 끝까지 보지도 못했다.) 간신히 오른 셔틀버스에서는 신데렐라의 심정에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셔틀버스에는 기자 2명을 포함해 단 4명만 탑승했고, 버스 기사는 10시 54분에 출발하는 평창역에 승객들을 데려다줬다. 강릉역보다 조금 먼 거리이긴 했으나, 기차 탑승 시간이 강릉역보다 24분이나 늦어 시간상으로 훨씬 여유 있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메인 공연이 끝나고서 10시 정각에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출발해도 될 듯했다. 지역민들과 조금만 소통해 봐도 쉽게 줄일 수 있었던 시행착오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내년부터는 셔틀버스 운행을 더욱 늘린다고 하니, 편안한 마음으로 끝까지 공연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글 권하영 기자
INTERVIEW
예술감독 손열음
지금 이곳에서만 가능한 경험
글 권하영 기자
올해의 주제는 ‘다른 이야기’로, 작년과 올해 모두 스토리텔링에 심혈을 기울였다.
대체로 클래식 음악회에서의 스토리텔링이 아쉽다고 느꼈다. 특히 리사이틀 같은 경우에는 연주자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곡만으로 구성하지 않나. 서로 연관성이 없는 곡들을 연이어 듣는다는 게 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해 ‘행복하게로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총 12개의 메인 콘서트는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구상한 것 같다.
모든 공연이 이어지는 건 아닌데, 시작과 끝은 연결되도록 했다. 단편 소설집이나 수필집처럼 각 작품이 완벽하게 이어지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관련이 없지는 않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내년 음악제에 대한 콘셉트로 고려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우리 역시 베토벤을 주제로 할 것 같다. 특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을 늘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뮤직텐트에서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콘서트홀에서는 실내악 공연을 하는 것이 소망이다.
메인 공연만큼 강원도 일대에서 펼쳐지는 ‘찾아가는 음악회’ 역시 인상 깊다. 두 프로그램의 청중이 다른가?
계산한 바로는 많이 다르다. 특히 원주나 강릉과 같이 큰 도시들에서 하는 공연에는 대부분이 현지에서 오신 분들이다. 반면, 대관령은 서울에서 많이들 오신다. 대관령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강원도민의 참여율이 높은 것에 대해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교육 사업 역시 진행하고 있다. 이 또한 음악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보는가?
축제 자체가 공기관 사업이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지역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건 ‘찾아가는 음악회’를 조금이라도 유료로 진행하고 싶은데, 공적인 사업이다 보니 무료로 진행해야 하는 점이다.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할 때, 무작정 퍼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발전 방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타협한 것이 아쉽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라이브 뮤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대관령보다 접근성이 좋은 강릉과 같은 곳에서 메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지만, 평창이 갖는 피서지의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기후 자체도 여름 축제와 잘 어울린다. 대신, 겨울 음악제는 접근성이 좋은 원주·춘천·강릉을 좀 더 많이 이용해서 진행할 생각이다.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올해 처음으로 셔틀버스 운영도 시도했다. 내년에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편성해보려고 한다.
더욱 많은 사람이 즐기는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사실 이곳에서는 차가 없으면 이동이 어려워 딱히 할 것이 없다. 가능하다면 투어 데스크와 같은 것을 만들어서 오후 시간대에 강원도 일대를 돌고 오는 액티비티를 제공하고 싶다. 지난해부터 이러한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지역사회와의 조절이 어렵다. 셔틀버스 편성만 해도 평창 소재 택시 회사의 반대로 쉽게 하지 못하는 실정이 있었다. 리조트 내 푸드 트럭의 경우에도 알펜시아 내 리테일 상가와 조정이 안 된다든지 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래도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계속 연구해나가려고 한다. 도시에서의 음악회와는 다르게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만 즐길 수 있는 풍성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아티스트가 말한다!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전하는 한마디
조성현(플루트) 향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국내 투어 공연을 진행해보면 어떨까.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문웅휘(첼로) 한두 달 열리는 아스펜 음악제처럼 기간이 길어져서 다양한 음악가들이 찾아주면 좋겠다.
정주은(바이올린) 학생의 입장에선 레슨 받을 기회가 줄어 아쉽다. 원래 악기별로 한 사람당 네 번 레슨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번엔 딱 한 번만 받을 수 있다.
손일훈(작곡·피아노) 평창대관령음악제뿐 아니라 어떤 공연이라도 프로그래밍할 때 현대곡 하나씩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
SPECIAL PROGRAM
평창대관령음악제를 구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글 권하영·박서정 기자
엠픽 아카데미(MPyC Academy)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교육 프로그램. 예술감독 손열음은 음악제가 해야 할 역할 중 공연만큼 중요한 것이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올해 처음으로 모든 참여 학생들의 수강료를 전액 무료화했다. 기존 2주간의 캠프 형식의 음악학교를 새롭게 개편하여 총 3개의 프로그램으로 아카데미를 구성했다.
① 마스터 클래스
손열음·김선욱·스베틀린 루세브 등 음악제에 참가하는 아티스트 19명이 강사가 되어 미리 선발한 학생들을 지도했다. 편한 차림으로 아티스트의 지도를 보러 온 다수의 관람객이 눈에 띄었다. 첼리스트 김두민의 마스터 클래스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진행됐다.
김두민(첼로·뒤셀도르프 심포니 수석) 음악에서의 중요한 요소를 직접 느낄 때 좋아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학생들이 이것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테크닉은 출중한데 음악을 듣는 힘이 부족한 친구들이 많다. 반면 테크닉이 받쳐주지 못해 음악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테크닉과 음악성은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특히 일반 관객들이 참관하는 클래스라는 점에서 기존 1:1 클래스와는 방향성이 다르다. 관객들도 무언가를 배우고 돌아가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연주자의 습관 등을 넘어서서 보다 거시적으로 음악에 관한 것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② 엠픽스 픽(MPyC’s Pick)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올해 처음 시도한 교육 사업으로, 노부스 콰르텟이 후배 현악 4중주단을 선발해 실내악 레슨을 진행했다. 오디션 영상을 직접 심사한 이들은 레스피로 콰르텟과 이든 콰르텟을 만장일치로 선정했다. 뽑힌 두 팀에게는 노부스 콰르텟(이하 노부스)과의 합동 공연 기회도 주어졌다.
문웅휘(첼로·노부스) 12년 전에 학생으로 대관령 음악학교에서 프로 연주자들과 만났던 좋은 기억이 있다. 그때 배웠던 것을 다시 전달한다는 의미가 크다.
김영욱(바이올린·노부스) 많은 실내악 팀이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젊은 친구들은 솔로에 집중한다. 실내악을 통해 경험을 쌓고 음악의 본질을 배우길 바란다.
김재영(바이올린·노부스) 콰르텟은 다른 실내악 장르보다 세밀하고 전문적이다. 실내악을 꿈꾼다면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는 게 우선이다.
정우찬(첼로·이든 콰르텟) 연주자는 느끼는 대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솔로곡과는 달리 콰르텟 멤버 모두가 같은 것을 상상하긴 어렵다. 각자 음악에 대해 어떤 풍경·배경·음색을 상상하는지를 말로 표현하고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노부스 콰르텟 선배님들께서 조언해주셨다.
정주은(바이올린·이든 콰르텟) 메인콘서트마다 제목이 있는데, 노부스 콰르텟의 공연명은 그냥 ‘노부스 콰르텟’으로 되어 있더라. 언젠가 우리들의 공연에도 다른 설명 없이 ‘이든 콰르텟’이라는 다섯 글자만 박혀 있으면 좋겠다.
③ 내일의 오케스트라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도내 6개의 학교를 방문해 교내 오케스트라를 직접 가르치는 프로그램. 기존의 ‘강원 1일 초청 음악학교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발전시킨 것으로, 학생들은 다음 날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수석단원들과 함께 연주를 펼쳤다. 플루티스트 조성현은 오보이스트 함경(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제2수석)과 함께 홍천 팔렬중학교 윈드 오케스트라를 지도했다.
조성현(플루트·쾰른 필하모닉 수석) 20~30명의 학생과 2시간 정도 수업을 진행했다.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는 총 6개의 학교가 각각 2~3곡씩 연주를 펼쳤다. 연습 때는 나와 함경이 지휘를 맡기도 했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지휘자가 따로 있었다. 우리도 각 섹션에서 학생들을 서포트하며 이들과 함께 공연했는데, 이러한 형태의 공연은 내게도 새로웠다. 앞으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 외에도 1~2명 정도의 음악가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더욱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난해 여름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국내 연주자들이 평창에 모여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올해 역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바이올린 제2악장 이지혜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 박지윤을 악장으로 하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드미트리 키타옌코·파블로 곤잘레스의 지휘로 개·폐막 공연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지혜(바이올린) 각자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이미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소리의 합이 확실히 달랐다. 사실 같은 오케스트라 안에서도 다른 소리를 가진 사람들끼리 합을 맞춰나가는 거라 내 소리가 어디에서든 잘 묻어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에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있지만,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아카데미 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취지부터 해외에서 활동하는 자국인을 한데 모아 형성한 오케스트라는 내가 알기로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처음이다. 그만큼 우리가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찾아가는 음악회
축제 기간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강원도의 명소를 찾아 공연을 펼친다. 강원도 전역이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공연장이 되는 셈이다.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도 숨어있다. 분단의 아픔을 공유한 독일 출신 첼리스트 레오나드 엘셴브로이히가 DMZ박물관을, 초창기 대관령음악제가 개최됐던 용평리조트는 1회 때부터 함께해온 첼리스트 지안왕이 찾았다.
8월 8일 노부스 콰르텟은 대관령성당에서 레스피기 도리아 선법의 4중주와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를 연주했다. 대관령성당은 2014년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와 인연을 맺고 있다. 종교 시설임에도 일부는 서서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많은 주민이 아이를 데리고, 또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성당을 찾았다.
김영욱 해외에서는 성당 같은 곳에서 연주할 기회가 간혹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재영 관객들의 집중도도 좋고, 성당 소리도 좋았다. 지역민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현대음악
올해 현대음악은 스페셜 콘서트 형태로 두 차례 관객과 만났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손일훈은 모든 공연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8월 3일엔 기타리스트 이반 부코사빌례비치와 세미 즉흥곡 ‘고스트 인 더 피아노’를 연주했다. 폐막일엔 예술가의 생각과 모습을 음악으로 그린 작품 ‘포트레이트’로 쇼케이스의 문을 열었다.
손일훈(작곡·피아노) 작년엔 피아니스트 박종해와 함께 무대에서 한 명이 즉흥적으로 연주하면 다른 사람이 되받아치는, 일종의 놀이를 했다. 이번에 공연한 자작곡 ‘고스트 인 더 피아노’는 즉흥성이 개입되지만 악보만 없을 뿐 확실한 작품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미 유럽에서 5번 정도 공연했는데, 매번 결과는 달라도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항상 같다. 즉흥적인 요소는 피아노와 기타의 튜닝을 얼마나 바꾸느냐이다. 장소·온도·순간의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8월 3일 연주가 끝나니 음산한 안개가 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관객은 “진짜 너희가 유령을 데려왔다”고 말했다. 지난번 세르비아 공연에서의 한 관객은 시작하자마자 “노!”라며 밖으로 나갔다. 또 다른 분은 8분이나 지난 이후 큰 소리로 “언제 시작해?”라고 외쳤다. 계속 조율만 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다.
감독님과 끝까지 상의했던 부분이 바로 이러한, 관객이 느낄 이질감이었다. 그런 점에서 해설이 필요한지 늘 고민이 된다. 이질감은 해소될지라도 자신만의 감성으로 곡을 대하고 싶은 사람에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포트레이트’라는 곡이 현대음악을 어려워하는 관객에 대한 배려가 될 수 있겠다. 이 작품을 공연할 땐 내가 손열음 감독을 인터뷰한 음성파일이 성악 내레이션처럼 깔리고, 거기에 맞춰 작곡한 피아노곡이 같이 연주된다. 이 시점에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어진다. 녹음된 목소리가 관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