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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건 어쩌면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커다란 퍼즐 판 같다. 멀리서 떨어져 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사이는 미세하게 균열이 나 있다. 완성된 그림으로 보이는 가족도 있지만, 아무리 채워보려 해도 어긋난 그림처럼 보이는 가족들도 있다. 어느새 한 조각 한 조각 사라져 결국 어느 빈틈 사이를 채워 넣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한 사람이 겨우 음을 찾아내면, 다른 사람이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음치 합창단 같기도 하다.
마음의 귀로 듣기
청각 장애인인 벨리에 가족 중 유일하게 장애가 없는 소녀 폴라가 장애인 부모에게 단단하게 묶인 자신의 인생을 풀어내는 이야기, ‘미라클 벨리에(La Famille Bélier, 2015)’는 베로니크 풀랭의 자전적 소설 ‘수화, 소리, 사랑해!’를 원작으로 한다. 자칫 신파로 흐르거나 자극적인 갈등을 담아낼 수도 있는 소재지만 감독 에릭 라티고는 가족이라는 보편적 이야기 속에 장애 가족의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결국 가장 잔인하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야 마는 이기심까지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사춘기 소녀 폴라는 파리에서 온 전학생 가브리엘에게 반해, 합창부에 가입한다. 한 번도 소리 내어 노래한 적 없었던 폴라에게 천부적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 선생님은 파리에 있는 예술학교 오디션을 제안하고 가브리엘과 듀엣 공연의 기회도 얻는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는 폴라의 가족은 그녀의 꿈을 응원하기보다 겁이 난다. 폴라가 자신들과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의 부모는 마음속에 담아두었어야 할 날 선 이야기로 폴라에게 상처를 주고, 그녀는 현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솔직하게 삶을 감당하고 버티며 살아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일상이다. 가끔 힘들지만, 때론 웃고, 행복하기도 하고,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여전히 포옹하고 위로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다. ‘미라클 벨리에’가 품어내는 것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 더 가깝게는 장애가 있는 가족을 둔 소녀의 이야기다. 몸의 장애는 가끔 마음의 장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동정하지도, 훈계하지도 않는 영화는 잔잔하고 영리하다.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깔아두고, 울컥하는 눈물과 잔잔한 감동, 포근한 감성까지 놓치는 법이 없다. 이 영화는 부모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소녀가, 그 나이 또래의 고민과 사랑을 겪으면서 훌쩍 자라는 성장담이며,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도 도닥이며 품는다. 그렇게 ‘미라클 벨리에’는 여전히 반짝이는 청춘과 그 청춘을 응원하는 부모를 아우르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된다.
성장의 열병
갈등의 과정에서 드러난 부모의 본심은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새파란 멍을 남긴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안다고 믿는 가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알고 사는지에 대한 질문은 폴라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유효한 질문이다.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숨 쉬고 있고,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잘 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다른 길 위에서 각자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미라클 벨리에’는 결국 온전한 내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것과 그 길을 찾는 것은 오직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읊조린다.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누가 보는 사람만 없다면 슬쩍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가족을 정의했다. 가족이란 단어는 묵직한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힘이 있다. 흉터처럼 잊고 살지만 지워지지 않고, 삶의 언저리로 밀어내 보아도 어느새 그 구심력으로 생활의 한 가운데로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 감독 에릭 라티고는 애먼 가족의 화해를 내세우거나 서둘러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주인공의 미래 역시 방치하듯 툭 던진다. 혼자 앞서 나가라고 등을 떠밀기보다는, 혼자 걸어갈 수 있다고 살포시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강한 어조의 충고나 파국을 통한 카타르시스, 거짓말인 줄 알지만 달짝지근하고 강한 감미료 같은 위로를 느끼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뻔해 보이는 이야기는 몇 가지 관점의 변화로 진심에 가닿는다. 청각장애 벨리에 가족의 입장에서 폴라의 듀엣곡을 바라보는 장면과 자신의 노래를 부모님과 동생이 눈으로 들을 수 있게 수화와 함께 노래하는 장면은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더불어 장애가 만들어내는 차별과 갈등을 짐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부정하지 않는다. 엄마의 나쁜 속내도, 이별이 두려운 이기심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를 통해 떠나는 사람에게도 또 남은 사람에게도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위로처럼 성찰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폴라가 세상과 벨리에 가족을 이어주는 메신저였던 것처럼 수화를 모르는 관객과 영화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것 역시 폴라의 수화로 가능해진다. 침묵이 주는 공백을 메우는 것은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형제 예브게니 갈퍼린과 사샤 갈퍼린의 음악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바이올린 선율로 잔잔하게 이어지는 메인 테마를 중심으로 타악기와 현악기가 고루 어우러진 스코어는 따로 들어도 아름답다.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주인공 폴라를 연기한 배우 루안 에머라의 목소리다. 풋풋함과 처연함이 함께 공존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영화를 더욱 반짝이게 만든다. 에릭 라티고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 가상의 탯줄을 끊고 다시 태어나는 아이의 반대편에 탯줄이 끊긴 어른들도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성장은 오롯이 아이들의 몫인 것 같지만 아이들의 소동과 더불어 어른들도 함께 자란다. 그 통증 같은 열병의 온도는 쓸쓸하고 씁쓸하지만,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서 오롯이 제 몫인 채로…….
글 최재훈(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후 각종 매체에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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