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글 박서정 기자
‘곰돌이 푸’하면 동그란 얼굴에 매끈한 미소를 머금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떠올리기 쉽다. 그 이미지가 익숙한 나머지 원작 속 주둥이가 길쭉한 털북숭이 푸의 모습이 오히려 어색하다. 이에 ‘안녕, 푸’전은 이미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푸의 원류를 찾아주기로 한 듯하다. 동화 ‘곰돌이 푸’의 원작 국가인 영국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이 기획한 전시로, 미국·영국·일본에서 투어를 진행했고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았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은 원작의 삽화가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의 원화를 세계 최대 규모로 소장하고 있다. ‘곰돌이 푸(Winnie the Pooh)’ 오리지널 드로잉을 비롯, 작가 앨런 알렉산더 밀른과 셰퍼드가 함께 작업하며 주고받은 편지 등 230여 점이 전시된다. 말랑말랑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전시였다. 동화 ‘곰돌이 푸’가 밀른의 글과 셰퍼드의 그림이 절묘하게 합쳐져 완성도를 높인 것처럼, 전시 또한 두 가지의 비중을 모두 중요하게 가져간다. 관람객에게 오리지널 드로잉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원작의 스토리텔링에도 충실하고자 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계단은 이러한 의도를 반영한 설치물이다. 작가 밀른은 자신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을 위해 1926년 ‘곰돌이 푸’를 썼다. 동화책 첫 장엔 한 손에 곰돌이 푸를 잡고 계단을 내려오는 로빈이 그려져 있다. 그 계단을 내려온 아이가 아빠를 졸라 펼쳐지는 이야기가 바로 100에이커 숲에 사는 곰돌이 푸와 그의 친구들이 겪는 모험과 우정이다. 특히 3전시실은 곰돌이 푸 이야기의 배경을 꾸며놓는 데 집중했다. 캐릭터로서의 곰돌이 푸는 잘 알지만 그 내용은 모르는 한국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상황에 대한 설명도 함께 덧붙였다. 관람객에게 마치 책 속으로 걸어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판넬을 이용해 푸가 좋아하는 벌집이 달린 나무, 로빈과 떠밀려갔던 강물, 옴짝달싹 못 하게 끼었던 나무 구멍 등을 셰퍼드의 그림체로 재현했다. 실물 크기의 오브제뿐 아니라 소리로도 효과를 줬다. 원통형의 나무 설치물 가장 안쪽에 스피커를 넣어, 푸를 설레게 했던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미술관을 찾은 어린아이들이 가장 신나게 전시를 즐길 만한 곳이다. 전시장 전 구역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하므로 포토존으로 활용하기에도 좋다. 전시장 대부분의 공간엔 셰퍼드의 원화가 걸려 있다. 펜과 잉크로 그린 흑백 삽화지만, 풀컬러의 일러스트 마냥 생동감이 넘친다. 선을 남발하지 않고 디테일한 묘사에 강한 그의 작업 스타일은 간결하면서 유머러스한 밀른의 문체와 훌륭하게 맞아떨어졌다는 평을 받는다. 셰퍼드는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글의 배경이 된 밀른의 별장 근처 애쉬다운 숲을 탐방하며 스케치할 정도로 열의를 쏟았다. 당시 동화책에 실리지 않은 그림과 연습용 스케치를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4전시실에는 셰퍼드가 어떤 방식으로 텍스트를 해석했는지 설명해놓았다. 해당 삽화가 소설 속 어떤 장면을 그린 것인지, 왜 이러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 등을 타당성 있게 분석했다. 어린이 관객이 많이 찾는 전시인 만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위치에 그림에 대한 감상을 묻는 쉬운 문구를 붙여놓는 배려도 눈에 띈다.
‘안녕, 푸’전 8월 22일~2020년 1월 5일 소마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