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서울세계무용축제

현대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대한 춤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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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30일 9:00 오전

REVIEW

10월 2~2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외

 

‘덫의 도시’ ©Creamart

현대사회에는 갖가지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전쟁·테러·인종차별·증오범죄처럼 극단적인 형태뿐 아니라 권력 남용·갑질·가정폭력·아동학대·성차별·언어폭력·왕따·악성댓글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형태도 만연하다.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된 우리의 일상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황폐해갈 수밖에 없다.

너무나 흔한 일상이 되어버려서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무뎌져 버린 폭력이 이젠 춤 예술에서조차 화두에 올랐다. 특히 유럽에서 활동하는 컨템퍼러리 무용가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시대적 부조리는 빈번하게 다뤄지는 소재다.

가을 시즌을 장식하는 춤 축제들 중에서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이하 시댄스)의 폭력 시리즈를 통해 현대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대한 춤 단상을 확인해 본다.

 

세계적인 춤 동향

20세기 말 이래로, 예술 춤의 주도적인 동향을 언급할 때 컨템퍼러리댄스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최근의 춤이 협의의 컨템퍼러리댄스의 범주에 들어가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 개혁적 특질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컨템퍼러리댄스(Contemporary dance)는 말 그대로 ‘동시대의 춤’이며, 클래식 발레나 모던 댄스와 차별화된 현재 진행 중인 창작춤을 지칭하기도 한다.

사실 이는 상당히 개인적인 예술 사유에 근거하고 있어 일관된 범주화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일종의 본질적인 공식이라 한다면 ‘개별적인 관조로 이루어낸 해체와 재구성’ 정도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움직임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융합과 재조립을 시도하기도 하며, 관련 분야들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장르 파괴나 복합매체까지 시도한다. 이렇게 혁신적인 춤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 역시 달라져야 하는데, 작품을 통해 무엇을 사유하고 자각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우리 무용계에서 세계적인 춤 동향을 확인해볼 수 있는 국제 페스티벌이라고 한다면, 봄에 펼쳐지는 국제현대무용제와 함께 가을에 펼쳐지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시댄스로 더 잘 알려진 서울세계무용축제를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 서울세계무용축제는 1998년 첫발을 내디딘 후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 춤 축제의 하나로 굳건히 자리매김하였다. 근래 들어서는 매해 일련의 주제를 제시하곤 하는데 올해는 ‘폭력’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소개했다.

 

억압과 폭력의 신화, 울티마 베즈의 ‘덫의 도시’

가장 주목받았던 작품은 울티마 베즈의 ‘덫의 도시’다. 1986년 벨기에에서 창단된 울티마 베즈는 그동안 기존의 춤 예술을 뒤집는 활동을 펼쳐왔다. 예술감독인 빔 반데키부스는 심리학을 배우다가 그만두고 현장에서 사진과 영화를 찍은 다음에 무용으로 전향한 경우인데, 이렇게 독특한 경력으로 인해 춤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덫의 도시’ ©Creamart

10월 2·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국내 초연한 울티마 베즈의 ‘덫의 도시’는 삭막한 수용소나 불안정한 미로를 연상시키는 동명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는 억압하는 민족과 억압받는 민족이 존재하는데 그 사이에는 가치관·풍습·전통 등의 차이가 존재한다. 부딪치고 잡아채고 억누르고 던지는 등의 움직임으로 그들의 관계성을 표현한다.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 사이에 빈번하게 벌어지는 학살, 겁탈과 같은 흑역사도 되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선과 악의 구조로 두 민족을 나눠놓지는 않고 있다. 시장 점유·사고방식·교육에 대한 인식 등에서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일 수도 있음을 열어 놓았다.

‘강요된 아름다움’ ©Park Sang Yun

덫의 도시의 시장은 평화와 균형을 우선시하는 듯하지만 이내 날카로운 눈매의 독수리로 변하여 전지적인 시점으로 그곳을 지배한다. 이에 반발하는 시장의 아들(실제로는 여성무용가)은 이러한 구조를 뒤집어보고자 극단의 폭력을 시도한다. 아동병원에 폭탄을 터트린 것. 이는 다음과 같은 물음 혹은 의문을 남긴다. 왕과 노예를 바꾸어 버린다고 하여 이러한 부조리함이 사라지는가?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극단적 시도, 즉 테러로 인한 살상은 정당한가? 마침내 억압과 폭력을 야기하는 수많은 요소가 얽히고설킨 덫의 도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싱크홀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 버린다.

이토록 방대하고 묵직하며 복잡하고 섬세한 전개는 거칠면서도 기술적인 춤, 압도적이고 이질적인 영상, 강렬하면서도 음울한 록 사운드가 한데 어우러져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리하여 빔 반데키부스의 억압과 폭력에 대한 고찰은 비유와 상징이 축적된 새로운 춤 신화를 만들어내었다.

 

폭력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작품들

체코 출신의 넬라 후스탁 코르네토바의 ‘강요된 아름다움’(10월 14일, 서강대 메리홀)은 인터넷이나 SNS 상에 익명의 악플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강도 높다 못해 구역질을 야기할 정도로 표현한다. 악플이라는 언어폭력에 의해 두 여인은 온몸이 더렵혀지고 망가지며 학대당하다가 린치와 강간까지 당한다. 그럼으로써 익명의 언어폭력이 한 사람의 정신과 감정을 어느 정도까지 학살할 수 있는지를 관객 스스로 자각하도록 이끈다.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 ©Park Sang Yun

이탈리아에서 온 로베르토 카스텔로의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10월 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는 굶주린 좀비처럼 끊임없이 전진을 반복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고갈되지 않는 욕망을 표현한다. 반복되는 전진과 함께 귀를 자극하는 리드미컬한 기계음이 한 시간 동안 이어지다가 일시에 멈췄을 때 귀를 아프게 하는 이명은 욕망이 때론 정서적 폭력을 야기하며 그에 대한 상처까지 남길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밖에도 여러 개의 다른 작품들로 폭력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졌다는 점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충분하다.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춤적 표현은 유럽 무용가들에 의해 상당히 잘 표현되어왔던 반면 우리 무용가들에게는 가장 약한 부분이다. 주제에 대한 사유와 탐구의 질적·양적 차이에서 기인하지 않나 한다. 울티마 베즈의 ‘덫의 도시’ 같은 작품들이 국내 무용가들에게 심오하고 방대한 자극을 주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 서울세계무용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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