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담다 (名花談茶)
당신의 감성 충전소가 될 복합문화공간
글 박서정 기자 사진 명화담다
공간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공간이 삶의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강남, 여의도와 함께 대표적인 업무 지구인 종로. 역사상 오랜 기간 서울의 중심지로 자리해왔으나, 지금은 옛 영광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나 추억의 장소로 남았다. 아침이면 종로행 지하철을 가득 채우는 직장인들도 퇴근하자마자 이곳을 벗어나기 일쑤. 이처럼 그간 종로에 정붙일 곳 없던 사람들에게 지난해 9월 반가운 공간이 생겼다. 종각역 가까이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명화담다(名花談茶)는 당신이 지금 종로에 머물러야 할 한 가지 이유다. 세월의 더께를 간직한 건물에 세련된 노란 간판. 공간의 외관처럼 명화담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서로 조금씩 섞여 있다. 공유오피스와 서점, 꽃집과 카페, 갤러리와 소품 가게가 한데 모여 한 건물의 3층과 5층, 그리고 옥탑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공간을 갖춘 명화담다에서는 그렇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탁 트인 전망의 공유오피스에서 일을 하다 위층의 갤러리에서 감성을 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유명 베이커리에서 공수한 달콤한 디저트는 덤. 입점한 브랜드는 명화담다의 김선영 대표가 이 공간을 찾은 손님에게 선보이고 싶은 곳을 직접 골라 모았다. 그는 명화담다를 “다양한 브랜드가 모여 사람들에게 감성문화 콘텐츠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명화담다가 지향하는 바는 바로 일상에 지친 이들을 위한 ‘감성문화 충전소’가 되는 것이다. 서점 ‘작은책방 R’은 주제에 따라 세심하게 골라낸 책을 소개하고, 벽 한쪽을 차지한 자그마한 갤러리에서는 신진 작가들의 야심 찬 전시가 열린다. 또한 명화담다의 여러 브랜드가 주관·협업한 강좌가 매달 5층 라운지에서 다양하게 마련된다. 꽃집 ‘화화코칭’의 꽃꽂이 강좌, 여행 전문가의 인문학 강좌, 전시 화가의 마노젠아트 강좌, 수제비누 가게 ‘지야은솝솝’의 비누 만들기 강좌 등이다. 새해의 소망을 그림으로 그리고, 행복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본 뒤 그 감상을 꽃꽂이로 표현하는 등 신선한 내용의 강좌는 오직 명화담다에서만 체험할 수 있다. 명화담다의 모든 강좌는 4~5인 이내의 소규모로 진행되는데, 여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참여자에게 문화콘텐츠 강좌를 통해 소통하는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강의가 시작되면 강사와 참여자들은 서로의 이름을 묻고 부른다. 명화담다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 ‘꽃’을 모티브로 브랜드 이름을 정했을 만큼 이를 중시한다. 김 대표는 “이 공간을 찾는 이들이 익명의 사회에서 느끼는 피로를 풀고, 자신의 이름이 불림으로써 한 송이 꽃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명화담다(名, 당신의 소중한 이름이 빛나고/ 花, 세상에서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길/ 談,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茶, 마음을 달래주는 차를 드려요)라고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이름이 불리는 곳에서 참여자들은 단순히 일회성 강좌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만나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추억이 묻은 공간이 버려질 리 없다. 명화담다를 중심으로 다시 활기차게 북적일 종로를 상상해본다.
명화담다의 특별한 강좌 체험기
2019년의 마지막 날에 진행된 강좌는 ‘새해 다짐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새해를 맞이하는 소박한 의식(?)이었다. 어른 네 명이 색색깔의 그림 도구가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강사는 편안한 미소로 참여자를 맞이했다. 그림 그리기에 앞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신청자들은 연령대는 물론 이른바 ‘취준생’부터 회사원, 프리랜서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이 강좌를 듣는다는 것 외에 접점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다시 만날 일이 없겠다는 생각 때문일까.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오갔다. 누구는 다가오는 새해에 대인관계에서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고 했고, 다른 이는 마음의 중심을 갖고 싶다고도 했다. 다음으로 각 그림 도구를 마음껏 사용해보면서 매체의 특성을 파악했다. 묽은 수채 색연필부터 아크릴 물감, 잉크 등 갖가지였다. 부담 없이 하나씩 손에 들고 칠해봤다. 보라색·연두색·분홍색·노란색… 흰 도화지를 천천히 채워나가는 색채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강사는 그림에 자신 없어 하는 참여자에게는 미술에 소질이 없어도 아무 상관 없다고 격려했고, 입시 미술을 배워 ‘마음껏’이 잘 안된다는 참여자에게는 왼손으로 그려보라는 조언을 건넸다. 한 참여자는 자신의 그림이 틀에 갇혀있다고 했지만, 다른 참여자의 눈엔 마음에 쏙 드는 훌륭한 그림이었다. 이에 그림을 선물하는 훈훈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름이 존중되는 공간에서 각각은 고유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거듭났다. 포근한 침묵 속에서 각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생각과 결이 비슷한 도구를 골라 그림을 완성해갔다. 마음 가는 대로 그린 추상화 기법의 그림,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징적인 그림, 직접적이고 세심한 그림, 서사가 느껴지는 그림이 탄생했다. 곧이어 작고 따뜻한 합평회가 열렸다. 그림으로 표현한 새해 소망을 꼭 이루길 바란다는 덕담 또한 오갔다. 한 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삶을 조금씩 나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사심 없는 응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 사무실 책상 앞에 붙여놓은 ‘새해 다짐 그림’을 보며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