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의 에세이_이규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7월 13일 9:00 오전

ARTIST’S ESSAY

 

우연을 필연으로
지휘자 이규서

이규서/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 ©Shinjoong Kim

 

 

 

 

얼마 전 친구 집들이를 하러 갔을 때다. 야경을 보며 맥주 한잔을 하던 친구가 넌지시 말했다.
“규서 네가 고등학교 다닐 때 십 년 뒤엔 그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거라 그랬어.”

빈을 꿈꾼 소년
어린 시절 나는 바이올린을 재주껏 다루고, 동네 청소년 교향악단 악장직을 명예롭게 생각하던 소년이었다. 인문계 고교를 다니며 음대 진학도 불투명한 처지에 빈 국립음대 유학을 생각했다니! 허무맹랑한 다짐이었지만, 내 과거의 한 조각이 친구에게 남아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남몰래 음악가의 꿈을 키웠던 중·고등학생 시절. 홀로 있을 때면 이모님 댁에서 빌려온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곡집을 틀고, 빈 필하모닉 포디움에 선 마냥 지휘봉을 흔들곤 했다. 그 시절 베토벤보다 먼저 내 책장에 꽂힌 것은 말러의 교향곡 9개였다.
음대생이 된 뒤, 직접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지휘할 기회가 찾아왔다. 내 인생의 첫 풀 오케스트라 지휘였다. 백 명에 달하는 고학년 선배 오케스트라 앞에 서자, 마치 벼랑 끝에 선 듯했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아니던가! 그날의 무모한 용기 덕에 지금의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OES/Orchestral Ensemble Seoul)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연의 연속이었던 음악 여행
초보 지휘자에겐 정말 ‘거인’과도 같았던 곡을 시작으로 능력을 웃도는 연주를 하기 2년여.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갔다. 무작정 유럽으로 떠났다. 베를린을 거점으로 삼아, 발길 닿는 대로 두 달을 다녔다. 때마침 한 친구가 생일 축하한다며 빈 송년음악회 표를 선물해줬다.
그런데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숙박을 구하기 힘들 거란 생각을 왜 미처 못했을까? 빈 필하모닉의 ‘합창’ 교향곡이 끝나고도 몇 시간째.  기별이 없는 숙소 예약창을 닫았다. ‘젊은 음악 인생, 빈에서 노숙 하루쯤은 낭만이지.’ 헛소리를 되뇌며 중앙역으로 뛰던 중, 차라리 방이 없었으면 싶은 호텔을 마주했다. “50유로. 방에 화장실 없소.” 영화에서나 보던 수동식 엘리베이터, 낮은 층고의 두 평쯤 되는 방에 누웠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빈에서 새해를 맞았다.
설날엔 중앙묘지의 작곡가 묘역을 찾았다. 동양에서 손주가 왔다며 일일이 인사를 올렸다. 도심으로 돌아와 잠시 뒤면 신년음악회가 열릴 무지크페어라인 앞을 서성이다가, 이내 시 외곽의 하일리겐슈타트로 향했다. 베토벤이 귓병 때문에 요양을 왔다가 유서를 작성한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포장도로 대신 베토벤이 걸었을 법한 숲길에 올랐다. 나무들의 깊은 주름, 아침의 새소리. 분명 200년 전에도 베토벤을 반겼을 풍경이었다. 그의 죽음 언저리에 와봤으니, 그의 생가도 들르겠노라 다짐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기 전, 말러의 별장이 있는 아터 호수(독자 여러분. 부디 차를 가져가십시오)를 들르고 싶었다. 왕복 기찻길만 놓인 시골역, 의미 없는 버스 시간표. 하는 수 없이 콜택시를 불렀다. 할아버지 기사님은 내가 이 시골 마을을 찾은 이유를 듣고는 라디오를 틀었다. 눈이 소복이 내린 잘츠카머구트의 절경과 어울리는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Sony/1957)가 전파를 탔다.
“45년 전 빈에 살 때, 폭스오퍼에서 이 작품을 봤네. 번스타인은 흡족했는지 극장을 나오는 사람마다 껴안고 뽀뽀했어. 난 일주일을 안 씻고 자랑했지.” 30분쯤 달려 차에서 내렸다. “자네, 나랑 악수했으니 번스타인하고 악수한 거야.”
말러는 잔파도가 이는 그림 같은 호숫가, 피아노 한 대 들여놓을 공간에 오두막을 짓고 여름을 보냈다. 삐걱거리는 창을 여니 옅은 파도 소리로 방 안이 잠긴다. 조심스레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창틀에 기댄 말러가 보였다.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아쉬움을 남기고 길가로 나와 히치하이크를 시도했다. 소형차 한 대를 간신히 세웠다. 운전하는 아내, 조수석엔 남편, 아이들이 앉은 카시트 두 개까지 이미 만석이다.
“정말 죄송한데, 역까지만 같이 갈 수 있을까요?”
아빠의 설득에 아이들은 카시트 철거에 대승적으로 합의해주었다. 아내는 이곳 출신, 남편은 미국 뉴저지의 의료기기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한국 대형병원에 제품을 납품하고, 출장 가서 머물기엔 소공동 롯데호텔이 좋단다. 이쯤 되니 나는 신의 가호가 나와 함께함을 믿기 시작했다.
다짐대로 독일에 가서는 본으로 향했다. 베토벤이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은 본 성당과 그의 동상을 지나 생가 골목에 접어들었다. 폐장 무렵의 한적함. 베토벤이 태어난 다락방 앞에 섰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이역만리에서 태어나 베토벤을 공부하고, 우연히 빈에 남아 그의 흔적을 따라 여기까지 흘러왔음이 놀랍고, 감사했으리라.

필연이 된 예술
여행에서 받은 좋은 기운 덕인지 한국으로 돌아와 학부 재학 중 시립교향악단들 포디움에 두루 서는 행운을 누렸다. 또한 말러 데뷔로 맺어진 선배, 동료들과 조직한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과 지금도 의미 있는 걸음을 함께하는 중이다. 그동안 네 번이나 베를린 유학을 시도했지만, 끝내 이뤄지진 않았다.
그런 내게 국내 활동을 정리하고, 한동안 잊히기를 조언한 선배도 있었다. 국내 음악 시장은 밖에서 뭐든 이뤄서 와야 비로소 제대로 평가한다는 한계점의 토로였다. 나는 다만 묵묵히, 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구상했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실현했다. 2018년 (손)열음 누나와 기획한 모차르트 투어로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은 ‘한국의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그간 몇 차례 마스터클래스를 위해 방한하셨던 빈 국립음대 시메온 피론코프 교수님은 부침을 겪으며 간절해진 내 배움에 대한 갈급함을 보셨는지, 올해 나를 제자로 부르셨다.
늘 ‘필연 아닌 우연은 없다’라고 생각해왔다. 비록 내게 닿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 다해 흘려보낸 우연은 어디서든 향기가 된다. 그간 해외 진출이 내 의지대로 안 됐지만, 그저 나의 성장을 지켜보는 청중들과 나의 시대를 살기를 바라왔다. 예술가가 도약하는 결정적인 힘은, 내가 대단하지 않을 때도 그 진가를 알아본 이가 건넨 격려 한마디였을 테니.
“규서 네가 십 년 뒤엔 빈 국립음대에서 공부하고 있을 거라 그랬어.”
“그거 신기하네! 또 내가 뭐라 그랬어?”

 

이규서/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
‘베토벤 교향곡 &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2018~2020)’
8월 18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협연 임주희)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9월 3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협연 소프라노 홍주영,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이규서
이규서(1993~)는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 빈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제38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음악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과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일러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2000~)는 장형준·신수정·강충모를 사사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을 SNS에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젊은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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