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이하여 돌아보는 예술의 사회공헌 현장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2월 11일 9:00 오전

WITH YOU

 

연말을 맞이하며 돌아보는

예술의 사회 공헌 현장들

움직이는 예술의 열정이 전하는 온기

서울시향 ‘작은 음악회’(광진소방서) ©서울시향

 

CONTRIBUTION OF ARTS

지역 생활 커뮤니티 플랫폼인 ‘당근마켓’에서는 주로 중고 거래가 이뤄집니다. 판매자도, 구매자도 모두 일반인이라 낯선 사람에게 “혹시… 당근이세요?”라며 어색하게 말을 건네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그래서 ‘당근마켓’에서는 거래가 끝나면 구매자가 ‘매너 온도’를 매길 수 있는 후기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36.5℃부터 무려 99℃까지(!) 올라갈 수 있는 매너 온도는 이 낯선 판매자를 마주한 구매자가 느낄 친절함을 증명해 주죠. 매너 온도가 높을수록 내가 올린 물건을 찾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만약 예술에도 ‘온도’가 있다면 어떨까요? 가장 따뜻한 예술의 ‘매너 온도’는 어떤 향유자를 만나야 발생할까요? 예술의 온도를 추측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예술이 낯선 구매자를 만나기 위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엘리트나 소수만을 위한 예술은 그 온도를 차갑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순도순 모여 있는 우리 삶 곳곳으로 찾아오는 예술은 온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주 열정적이고 친절한 판매자가 되었기 때문이죠. 예술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공연장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갑니다. 물리적인 조건들, 종종 심리적인 이유로 인해 예술에 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경만 하는 예술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몸을 직접 부대끼며 체험의 기회까지 제공합니다. 그래서 뜨거운 예술은 문화적 소회를 느끼는 모든 이들의 만족을 채우며 사회적 가치를 재발견합니다.

연말을 맞아 이 뜨거운 예술의 온기가 있는 곳들을 소개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한겨울의 호빵 같은 예술의 매력을 느끼시길 바라며!

 

1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는 음악들

‘찾아가는 음악회’는 전문 음악 단체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사회 공헌 사업의 일종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곳을 찾아가느냐’입니다.

평소에 공연장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모여 있을까요? 너무 어려 공연장 출입을 할 수 없는 유아부터 치열한 입시 경쟁에 시달리느라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놓친 청소년들이 모인 학교 등입니다. 전통적으로는 공연장이 없는 작은 소도시들, 산간 지역도 대상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 모인 사회복지시설이나 병원에서는 음악의 위로가 아픈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지요.

어려운 작품보다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작품들을 선보이고, 해설까지 곁들이니 이 예술의 매너 온도는 높을 수밖에요!

 

With Orchestra

서울시향의 ‘작은 음악회’

재단 출범 이후 찾아가는 시민 공연을 지속해서 추진해 오던 서울시향(대표이사 손은경)이, 2023년부터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진행한 무료 공연이다. 올 한해 10회의 공연을 선보였으며 남부구치소·광진소방서·동작문화복지센터·한국우진학교·영등포구 정신건강복지센터·서울특별시교육청 노원 평생학습관·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등에서 노약자, 장애인, 저소득층 등과 함께 했다. 올해도 11월 말~12월 초에 2024년에 있을 ‘작은 음악회’ 신청 안내를 각 자치구를 통해 전달할 예정이다.

 

With Opera

국립오페라단 ‘학교 오페라’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최상호)의 교육사업팀에서 운영하는 ‘학교 오페라’의 접근 방식은 한층 더 적극적이다. 특히 저학년 대상의 ‘교실 속 오페라 여행’은 교실까지 직접 들어가 운용되며, ‘오페라’라는 낯선 장르를 ‘놀이’의 형태로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서울·경기·인천·충청·강원에서 연 72회가량 시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오페라 작품과 관련된 퀴즈를 맞히는 입문용 음악극이다. 35분간의 프로그램에는 토끼 분장을 한 연기자 ‘토토’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국립오페라단은 고학년과 중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한다.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을 50분 분량으로 축약했지만, 무대·의상·소품을 모두 갖추었다. 대상에 따른 섬세한 장르 적용 방식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2 관객과의 향유 방식으로 확장

앞선 사례가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정도였다면, 이번에 소개할 사례는 마치 예술이 “우리 집에 놀러 올래?”라며 더 적극적으로 경계를 허무는 방식입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예술을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예술의 한복판에 서는 것이죠. 이러한 ‘참여형’ 예술 향유는 예술이 가진 긍정적 영향을 더욱 또렷하게 확인하게 합니다.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예술이 주는 규칙과 형식을 느낄 수 있고, 옆 친구와 함께 연습하며 타인과 협동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예술이라는 경험 아래 모인 이들은 단절되고 소외되었던 개인적 삶의 영역을 넘어 소통합니다.

여기에는 최근 자주 사용되고 있는 ‘배리어프리’의 적극적인 적용도 포함됩니다. 자막·음성·수어 해설 지원, 휠체어 전용 좌석 설치 등이 장애인 관객의 접근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장애 예술가들이 무대 위를 자유롭게 누비도록 고민합니다. 예술의 목적이 그간 느끼거나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하는 데에 있다면, 더 다양한 대상의 예술 참여는 분명 타인에 대한 혐오를 줄이고 공동체의 상식을 확장해 나갈 겁니다.

 

With Children

꿈의 오케스트라

꿈의 오케스트라 ‘장수’

 

‘엘 시스테마’는 음악이 가진 적극적 향유의 충격적 효과를 세계에 증명한 사건이었다.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의 빈민가 아이들을 위해 설립된 이 음악교육 프로그램은 1975년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설립했다. 마약·폭력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됐던 아이들은 음악을 연주하며 꿈을 꿨고, 이 음악은 사회의 변화를 불러왔다. 음악을 통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 사례를 국내에 적용한 것이 ‘꿈의 오케스트라’다. 이를 운영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박은실)은 실제 엘 시스테마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이 시스템의 핵심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애썼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현재 각 지역에 50여 개의 거점을 두고 운영 중이다. 7년 이상 오케스트라가 유지될 경우, 자립 전환 거점으로 운영되는데 현재 30개 이상의 거점이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With Accessible Performances

모두예술극장

지난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이 개관했다. 서울시 충정로에 위치한 모두예술극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설립하고 운영한다. 극장의 주요 시설 대부분에 단차가 없으며, 시각 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핸드레일이 곳곳에 설치됐다. 장애 예술가와 기술 스태프가 물리적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창작 과정부터 운영 서비스 전반에 걸쳐 편의성과 접근성을 실현해 냈다. 가변형 블랙박스 공연장으로 공연에 따른 무대 형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장애 예술가의 전문성 증진을 또 하나의 목적으로 두고 있는 극장답게 장애·비장애 예술가 모두 포함된 공연도 다수 보인다. 지난 11월에는 발달 장애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감각 친화 공연인 ‘똑, 똑, 똑’에서 릴랙스 퍼포먼스(공연 정보 사전 제공, 공연 중 이동 가능, 공연 내용을 쉽게 설명)를 진행했다. 오는 12월 15·16일에는 궁리소묻다가 시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세계를 공유하는 ‘어둠 속에, 풍경’을, 22~25일에는 뮤지컬 ‘합★체’를 연출한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 연출가 김지원이 맡은 뮤지컬 ‘푸른 나비의 숲’을 선보일 예정.

 

‘꿈의 댄스팀’

 

3 다양성에 입각한 맞춤형

개발 여러분은 ‘예술교육’이라는 단어에서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예술교육은 ‘예술’일까요, ‘교육’일까요? 적어도 우리나라는 ‘예술’ 쪽을 택한 것 같습니다. 2005년 출범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공기관인 것을 보면 말입니다. ‘예술로 교육하기’까지가 ‘예술하기’의 범위입니다.

20여 년간의 사업 확장으로 여러 대표적인 사업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다양성의 시대에 따라 그 방향은 점점 더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의 지역 불균형은 더욱 심화하였고, 저출산과 동시에 고령화 사회가 예상보다 빠르게 우리의 곁에 왔습니다. 다문화 가정 등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세대는 예술을 통한 또 한 번의 공동체 내의 포용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2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시행될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발표됐습니다. 변화를 반영한 여러 개편의 방향이 들어있습니다. 수혜자 선택형 지원 구조, 심리·정서적 장애를 겪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약자 프렌들리 사업, 생활밀착형 거점 선정, 협력 기관과 전문 강사의 확대 등이 그 내용입니다.

치유도 예술로 ‘숨 그리’ 프로그램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교육이 우리 모두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사회는 결국 ‘나’와 ‘나의 이웃’으로 구성됩니다. 예술은 이 사회를 교육하고, 돌보고, 지탱할 의무와 힘을 가졌죠. 뿌리 깊은 ‘문화 강국’은 이 예술의 힘을 더 많은 사람이, 더 깊게 느낄 때 가능합니다. 경험하기만 한다면, 분명 예술은 제값의 열정을 발휘할 겁니다. 철학자 니체가 말한 예술의 생각도 이를 잘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예술은 거짓에서 진리로,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 형체에서 형체 없는 것으로 나를 이끌어 준다.”

 

With Service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현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Korea Arts & Culture Education Service)에서의 사업은 교육 지원과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 개발과 국제 교류 등으로 다양하다. 전교생 4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를 지원하는 ‘예술꽃 씨앗학교’, 개인 심리 정서 회복을 위한 ‘찾아가는 예술처방전’ 등의 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외에도 복지시설 이용자·군 장병·교정시설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 지역별 창의예술교육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사업들도 운영한다. 예술교육에 대한 다방면의 아이디어와 지원 사업 등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art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진행된 1만 2천여 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 2백 7십만 명의 참여자들을 한데 묶어낸 ‘2023 대한민국 문화예술교육 축제’는 11월부터 12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강연과 포럼, 공연, 전시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허서현 기자 사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울시향·국립오페라단

 

INTERVIEW

꿈의 오케스트라 ‘장수’의 문권철 감독

아이들의 변화로 반짝이는 오케스트라를 꿈꾸다

꿈의 오케스트라 ‘장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사업에 의해 2013년에 창단되었다. 전국에 분포된 꿈의 오케스트라는 거점 지역의 이름을 따서 구분하는데, 이 오케스트라는 전북 장수군에 위치하여 ‘꿈의 오케스트라 장수’라 불리고, 또 다른 이름은 ‘빛나는 오케스트라’이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2가지 종류의 악기를 연주하는 50여 명의 단원이 함께 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주요 활동은 무엇인가. 대부분이 악기를 배워본 적 없는 채로 입단한다. 장수군 근방에서 오보에, 바순 등의 악기를 배울 곳이 이곳 뿐이기도 하다. 파트 연습을 하면서 악기를 배우는 동시에, 그 수준만큼의 앙상블 연습도 진행한다. 장수군의 대표적인 축제에도 출연하고 매년 11월에는 정기연주회도 연다.

엘 시스테마에서 착안한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음악 학원 등에서 배우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아이들 성장에 필요한 책임감 등을 의도적으로 요구한다. 오케스트라 내에 나름의 규율이 있다. 인사하는 예절, 시간 약속 지키기 등부터 선배가 되면 후배를 지도해야 하는 의무도 준다. 공연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시키고, 공연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아이들과 상의한다. 참여에 대한 선택 기회를 주고, 이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아이들의 행동과 생활에 변화가 있는 것을 실감하는지. 행동 변화에 대한 실감 정도는 크다. 부모님들이 가족 간에 대화가 많아졌다는 피드백을 자주 주신다. 오케스트라에 대한 책임감은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도 이어진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시작한 지 6년이 지나면 자립해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장수군에서 10년 넘게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주, 진안에서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지도하고 있던 2012년, 장수군에서 연락이 와서 해당 사업을 함께 할지를 제안했다. 하지만 사업 시작 6년 후엔 자립으로 매년 1억 이상의 교육 비용을 지불해야 했기에 만나서 장수군측이 지닌 예산에 대한 의지가 분명한지를 확인했고 확신을 두고 시작했다. 지금은 지역 사회에서 아이들은 문화 수혜자이면서 공급자로 활동한다. 운영은 무척 안정적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평생 장수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알지만, 그럼에도 학창 시절 장수군에서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하는 것 같다.

감독으로 함께 하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지역 특성상 강사 수급이 어려워 대전이나 전주 등 멀리에서 선생님들이 온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선생님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동기를 주어야 한다. 이들이 오케스트라 교육에 대해 하나씩 배우며 일의 가치를 알아갈 때, 아이들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사랑으로 대하는 변화의 모습을 볼 때 참 좋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처음 오케스트라를 시작할 때는 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란 여러 악기가 모여서 연주하는 것임을 설명해야 했다. 10년 전에 그 아이들은 오케스트라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제는 오케스트라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오케스트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만의 기능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해외는 어떨까?

클래식 음악의 배리어프리

세심한 관심이 만드는 큰 차이

BSO리사운드

 

BARRIER FREE FOR MUSIC

전시회나 공연장에서 장애인을 만나는 일은 드물게 느껴집니다. 그들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이 부족하거나, 이곳까지 발걸음하기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죠. 그런데 2017년도 아일랜드에서 발간된 한 보고서는 그 고정관념을 무너뜨립니다. 우선 장애인의 문화예술 행사 참여율(79%)이 모든 성인 평균치(64%)보다 높았습니다. 아일랜드뿐만이 아닙니다. 영국에서는 그 수치가 2005년부터 꾸준히 성장해, 2015년에는 모든 성인 평균 대비 약 5% 낮은 72.9%를 기록했습니다. 이 차이는 장르에 따른 남녀 성비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왜 현장에서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걸까요? 아일랜드의 보고서는 되묻습니다. 우리가 아주 좁은 시각으로 장애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냐고요. 많은 경우, 장애는 한눈에 알아차리기 쉽지 않습니다.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이 장애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이들은 늘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죠. 이 통계는 잘 보이지 않았던 또 하나를 드러냅니다. 바로 장애인의 높은 문화예술 참여도 뒤에는 많은 이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무적인 영국·아일랜드, 미국, 독일의 사례를 꼽아보았습니다.

 

1 영국·아일랜드: 역사를 바탕으로

영국은 1960년대, 장애 운동이 처음 일기 시작한 나라입니다. 이러한 역사로, 오늘날 영국에서는 문화예술 활동의 장벽을 낮추기 위한 국가기관, 비정부기구, 협회 등의 활발한 활동이 눈에 띕니다. 특히 문화산업계 종사자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방점을 찍었어요. 이것이 자연스럽게 더욱 폭넓은 관객을 유입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음악계 종사자들이 모인 UK Music은 더욱 접근성 높은 공연을 고민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를 고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등을 제시하며 그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BSO리사운드

 

2018년에는 세계 전문 악단으로는 최초로 본머스 심포니(BSO)가 장애인으로 구성된 산하 앙상블 ‘BSO리사운드’를 런칭했습니다. 창단 첫해 BBC 프롬스에 오르며, 축제에 참여한 최초의 장애음악인 앙상블로 기록되었죠. 이런 BSO리사운드를 보며 누군가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덜게 될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음악가의 꿈을 키울 수도 있어요. 앙상블이 갖는 ‘임팩트’는 여러모로 엄청나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는 BSO리사운드에 임팩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파라오케스트라

 

다른 예로, 영국 브리스톨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파라오케스트라(Paraorchestra)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한데 모인 전문 악단입니다. ‘21세기 오케스트라’를 표방하며 실험적인 공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필립 글래스의 히어로즈 심포니와도 협업한 이력을 갖고 있죠.

이들이 전문 음악가로 활동하기 위해선 질 좋은 교육과 경험도 필요하겠죠? 아일랜드에서는 내셔널 크리에이티브 펀드와 로열 아일랜드 음악원이 주관해 국립 장애 청소년 오케스트라 ‘르 케일러(Le Chéile)’를 설립했습니다(편집자주_‘Le Chéile’는 우리말로 ‘함께’를 뜻한다). 다운 증후군이나 자폐증을 앓는 연주자도 있어서, 단체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지휘법에서 발전한 특별한 소통법(Conductology)을 채택했어요. 이곳의 모든 음악가가 이해하는 18개의 제스처가 이 소통법의 구성요소입니다.

 

2 미국: 휠체어 출입구를 넘어선 고민

미국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고, 많은 공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러 장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심하게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도 볼 수 있어요.

우선 케네디센터로 가볼까요? 요즘 많은 공연장 홈페이지에 ‘접근성(Accessibility)’ 페이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로 휠체어 동반 관객에게 필요한 정보가 제공되죠. 케네디센터의 경우 훨씬 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여러 예정 공연 목록도 그중 하나인데요. 이는 다시 한번 ‘자막이 있는’ ‘감각친화적인’ ‘수화가 함께하는’ 등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각 카테고리에서는 한 달에 1~2회의 공연이 개최되고요.

케네디센터의 접근성 안내

케네디센터 접근성 안내 홈페이지

 

그중 ‘감각친화적 공연(Sensory-Friendly)’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폐, 신경 발달 장애를 갖고 있는 관객을 위해 환경이 조성되는 공연입니다. 케네디센터는 조명을 기존 30~50% 밝기로 낮추고, 자극적인 부분을 조정한 음악을 연주합니다. 또, 과도한 자극을 받아 휴식이 필요한 관객을 위한 공간이 로비에 마련돼 있어요.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미국 단체들의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감각친화적 공연’은 케네디센터와 링컨 센터 등의 공연장뿐 아니라, 뉴욕필·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미네소타 오케스트라 등의 악단의 상설 프로그램입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폐증 발병률이 보고된 지역인 뉴저지주의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주민을 포용하는 과정을 통해, ‘감각친화적 공연’을 가장 활발히 펼치는 악단으로 거듭났습니다. 뉴저지 주민을 찾아가는 실내악 공연이 핵심 프로그램인데, 다양한 악기 만나기, 인기 동화 음악으로 즐기기, 다른 문화권 음악 감상하기 등 다양한 콘셉트에 맞춰 여러 연주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3 독일: 새로운 언어의 바흐 합창곡

바흐가 30여 년간의 생을 보낸 라이프치히에서는 세기에 걸쳐 수만 번의 ‘요한 수난곡’이 불리었을 겁니다. 지난해에는 특별한 모습의 요한 수난곡이 라이프치히 성 베드로 성당에 울려 퍼졌어요. 바로 수화로 노래되는 최초의 ‘요한 수난곡’이었죠. 합창단은 손바닥을 펴고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리며 ‘찬양’이라는 단어를 부르고,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사람과, 그 선율을 제스처로 표현하는 사람이 반주를 맡았습니다.

싱 앤 사인의 요한 수난곡 연주 예고편

이 프로젝트는 소프라노 수잔네 하웁트의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난청이나 청각 장애를 지닌 사람이 제대로 음악을 즐길 수 없을까?” 이는 청각 장애인들로 구성된 ‘싱 앤 사인(Sing&Sign)’ 창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바흐의 작품을 수화로 번역하는 작업이 이뤄졌어요. 청각 장애인들이 직접 번역에 참여해, 관객들의 이해와 몰입감을 높였죠. 이렇게 출발한 싱 앤 사인은 레퍼토리를 넓혀 현재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와 여러 칸타타,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9번 등도 공연하고 있습니다. 글 박찬미(독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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