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3
비주얼 디렉터 메이킴
15살 음악 축제에 꼬까옷을 입히다
축제계에 새로운 협업 바람이 불까? 여우락 페스티벌에 시각적 재미가 더해진다
공연예술인이 가득한 음악 축제에 낯선 인물이 등장했다. 포트폴리오에 적힌 지금까지의 작업 파트너는 ‘GQ KOREA’ ‘W KOREA’ 등의 패션 매거진, 에스파·르세라핌·림킴·세븐틴·로꼬 등의 K-팝 아티스트, ‘샤넬’ ‘프라다’ ‘구찌’ ‘버버리’ 등의 명품 브랜드. 무엇을 공통점으로 묶어야 할지도 막막한 이 방대한 분야 사이를 오가는 이가 축제에서 맡은 일은 ‘아트 디렉터’로, 그간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볼 수 없던 역할이다.
그의 주된 활동은 기업이나 인물에게 새로운 이미지와 인식을 입혀주는 것이다. 올해 15회를 맞은 여우락 페스티벌(예술감독 박우재)이 이 인물과 만났으니, 축제에게 찾아올 운명은 바로 변신. 덕분에 이번 여우락 페스티벌(이하 여우락)은 보다 입체적인 옷을 입은 듯하다. 15년의 여우락 역사상 첫 아트 디렉터이자, 축제의 한 공연에서 미디어아트를 맡게 된 메이킴과 그의 작업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비주얼 디렉터’ ‘디지털 아티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업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여우락에는 박우재 예술감독과 함께 ‘아트 디렉터’로 축제를 아우릅니다. 축제 밖에서도 여러 장르에 걸쳐 ‘아트 디렉터’라는 명칭을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데, 이 직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저를 소개하시는 분들은 ‘2D, 3D 공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작업하는 사람’이라더군요.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게도 낯설었던 이 직업은 첫 직장이었던 뉴욕의 디자인 스튜디오 ‘2×4’에서 처음 마주쳤어요. 제 상사가 모두 ‘아트 디렉터’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거든요. 그 스튜디오는 ‘프라다’의 패션쇼를 브랜딩 하는 곳이었는데, 2D인 작은 초대장부터 3D인 패션쇼 공간 전체까지 디자인하는 회사였어요.
그렇게 아트 디렉터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군요.
맞아요. 귀국 후엔 ‘젠틀몬스터’에 지원했는데, 제가 존경하던 아트 디렉터가 저를 뽑아주셨어요! 그분께 여러 배움을 얻었죠. 언젠가 “좋은 아트 디렉터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드렸는데, “가구부터 조명까지 공간을 채우는 모든 물체에 아이디어를 담고, 그 이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답을 받았죠. 그 말이 제가 생각하는 아트 디렉터가 됐어요.
‘프라다’ ‘삼성’ ‘BMW’ ‘SM 엔터테인먼트’ 등의 기업과 협업하고, 아티스트 림킴(Lim Kim)의 음반 아트워크, 코드쿤스트의 팝업 비주얼 머천다이징(VMD, 상업성을 높인 진열·전시)의 총괄을 맡는 등 다양한 작업을 했습니다. 여러 디지털 작업물에서 느껴지는 ‘화풍’은 광활한 자연 배경과 그곳에 거대하게 놓인 오브제의 초현실적인 긴장감인 듯해요. 이러한 아이디어의 시작점은 무엇이었나요?
3D 작업 소프트웨어인 시네마 4D를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아이디어였어요.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광야 같은 빈 공간이 펼쳐지는데, 밋밋한 공간을 채우려고 땅, 하늘, 태양, 빙하를 하나둘씩 넣다 보니 자연의 절경이 놓이게 됐죠.
자신의 화풍을 서서히 정립해 나가는 회화와 비교하여, 디지털 그래픽은 새로운 기술에 자신을 맞춰 빠르게 유행을 포착하고 적응해야 합니다. 매번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이 어렵지 않나요?
어려워요.(웃음) 제가 처음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익힐 때는 사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익혀야 했어요. 요즘에는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알려주는 온라인 강좌도 생기고, 대학에도 멀티미디어를 풍부하게 익힐 수 있는 전공이 개설되어 학생들은 정말 빠르게 적응하더라고요. 그들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최근에 저는 크루처럼 서로의 능력을 교류할 수 있는 팀을 만들었는데, 제가 가진 경험과 기술을 알려주고, 저 또한 여러 기술을 배우는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3D 그래픽 분야에는 아직 커뮤니티가 부족해요. 제가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꾸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낯선 첫인사, 공연이 된 그래픽
‘아트 디렉터’라는 직책은 올해의 여우락에 처음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축제의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있나요?
전체 키 비주얼을 맡았습니다. 포스터 작업과 각 아티스트의 콘셉트 사진 촬영, 옥외 광고물 등 모든 인쇄물을 작업했습니다.
축제 포스터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고 느꼈는데, 메이킴씨의 작품이었군요! 포스터 작업에는 어떤 아이디어를 담았나요?
이전까지의 포스터는 한자 ‘락(樂)’을 강조하는 디자인이었어요. 거기에서 탈피하고 싶어 과감하게 한자를 삭제하고 오직 한글, 그것도 붓글씨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 뒤에 놓이는 오브제는 국악기를 만드는 8가지 재료를 활용했습니다. 가요 음악에 활용되는 악기는 쇠(金)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국악기는 다채롭잖아요. 명주실, 나무, 흙, 돌, 쇠 등의 재료의 특색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진 아티스트가 하나의 축제에 뭉쳤다는 걸 형상화할 수도 있었고요.
한국적인 요소를 부각한 것이군요!
맞아요. 저는 소위 말하는 ‘국뽕’에 취하는 편이거든요. 제가 대중에게 가장 크게 인식된 작업은 림킴의 음반 작업이었는데, 그때 한국의 미를 세련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번 여우락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죠.
각 공연의 콘셉트 사진에서 중요하게 삼은 요소도 궁금합니다.
사진만으로도 무슨 악기에 정통했는지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악기를 자신의 무기처럼 들고, 인물과 악기만 화면에 배치했죠. 의상이나 다른 곳에 시선을 뺏기지 않도록 흑백으로 작업해 달라고 사진작가에게 요청했습니다. 악기가 없는 소리꾼분들은 무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저고리, 갓 등의 의상 소품을 활용했어요. 그리고 포스터와 동일한 한글 붓글씨를 새겨 넣었죠.
축제를 이루는 12편의 공연 중 ‘장면들(Sceneries)’이라는 공연의 미디어아트를 맡았습니다. 평소에는 짧은 광고나 반복되는 영상을 중심으로 작업했는데, 긴 시간 동안 진행되는 공연을 위한 미디어아트 작업은 낯설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끔찍하게 헤맸어요.(웃음) 공연예술 종사자분들을 향한 존경심이 드높아졌죠. 제가 많은 것들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더라고요. 박선주(가야금), 황진아(거문고)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공연인데, 박우재 예술감독의 여러 도움도 받고 협업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구현하고 싶은 이미지를 화면 밖으로 꺼내는 데는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여러 음악가와 제작진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공연과 함께하는 영상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박선주, 황진아 연주자들 각각의 음악적 생각과 서사를 이미지로 형상화 했습니다. 두 분의 음악적 방향의 발전이 참 달랐어요. 이를 반영하여 박선주 연주자의 동적인, 황진아 연주자의 정적인 특성을 강조했습니다. 또 두 사람의 무대 의상과 헤어스타일의 콘셉트도 제가 맡았습니다. 모쪼록 두 분의 멋진 음악을 더욱 빛내는 작업이 되길 바랍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국립극장·MAY KIM
메이킴(1994~) 편집 디자인·브랜딩·3D그래픽·비주얼 머천다이징·세트 디자인·영상 콘셉트 등 시각과 관련된 모든 예술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라다·구찌·샤넬·반스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으며, 아이돌 그룹 에스파·르세라핌·림킴·엑소 레이·세븐틴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아트 디렉션에 함께 했다.
PREVIEW
2024 여우락 페스티벌 미리보기
15회를 맞이한 여우락은 올해 축제를 세 개의 말로 정리했다. ‘원·선·점.’ 지난 여우락을 빛냈던 이들의 온전함(원),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이들의 뚜렷함(선), 실험적인 도전을 선보이는 이들의 독창성(점)이 그 주제이다. 동시에 ‘여우락’하면 떠오르던 서로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 간의 협업,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작품은 여전히 여우락의 진한 정체성으로 남아있다. 올해도 서로 처음 작업하는 국악인들과 여우락에서 처음 선보이는 신작이 가득하다.
2021·2022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축제를 이끌었던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가 예술감독으로 다시 축제를 이끈다. 그가 축제를 감독할 때면, 각 공연은 물론 후학을 위한 아카데미까지 활발히 이루어진다. 올해도 15~19일까지 국악 전공자를 대상으로 무료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