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 상상과 점검을 통해 빚어내는 음색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2월 9일 9:00 오전

WELCOME 2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

상상과 점검을 통해 빚어내는 음색

 

발매하는 음반마다 호평받는 녹음의 여왕. 12월, 모차르트의 감동을 무대 위로 다시 꺼낸다

 

 

가장 모차르트다운 해석을 들려줄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가 한국을 찾는다. 그의 연주는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왔던 많은 모차르트 연주가 의외로 낭만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빠른 템포가 전하는 경쾌함, 절제된 비브라토가 만들어내는 담백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섬세하게 엮어낸 연주가 모차르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한다. 많은 이들이 “마치 이 곡을 처음 듣는 것 같다”는 감상을 전하곤 하는데, 그의 연주를 직접 들어본다면 이 감상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가 2016년에 발매한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음반은 호평을 받으며 여러 상을 휩쓸었고, 2017년에는 그라모폰 어워즈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되며 명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음반에서 호흡을 맞췄던 조반니 안토니니/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와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수록곡인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1·4·5번을 연주하며 음반으로 전한 감동을 무대에서 재현할 예정이다.

 

8년의 변화가 담긴 모차르트

“음반을 녹음하며 정말 많은 것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음반을 녹음할 때는 피드백을 듣고, 녹음된 연주를 다시 확인하며 스스로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건 공연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굉장히 힘들지만, 동시에 정말 멋진 시간이었어요.”(이하 이자벨 파우스트)

녹음을 함께한 안토니니는 바로크와 고전 시대 음악에 열정을 가진 지휘자다. 1989년 고음악 앙상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를 창단하여 17~18세기 음악들을 시대연주로 풀어내고 있다. “작곡 당시의 악기 소리를 이해하고 음표 뒤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의 음악은 세련되고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와, 원작자의 의도를 깊이 있게 살려내고자 부지런히 연구하는 이자벨 파우스트의 협업이었으니, 음반 발매 당시 평단의 호평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음반 발매 8년 후에 이뤄지는 연주이기에 기대감을 더한다.

“작품을 반복해서 다루다 보면 해석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작품이 우리에게 점점 더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더 공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공연을 통해, 이들이 오랜 시간 추구해 온 음악적 방향성과 새롭게 이뤄낸 해석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 속의 음색을 현실로!

이자벨 파우스트의 연주는 깨끗하고 청량한 음색으로 귀를 사로잡고, 레퍼토리에 따른 음 빛깔의 변화로 놀라움을 준다. 이러한 다채로운 음색은 그의 끊임없는 연구와 상상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먼저 악보에 적힌 것을 세세하게 이해한 후에 어떻게 소리를 낼까에 대한 답을 찾는다고.

“연주자가 레퍼토리에 상관없이 늘 같은 소리만 낸다면, 그 소리가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영혼 없는 연주가 되고 말아요.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은 그들만의 색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곡을 쓰던 순간에 상상했던 소리가 분명히 존재하고요. 그 소리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는 것이 우리 음악가들이 할 일이죠.”

물론 악기가 음색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자벨 파우스트가 주로 사용하는 악기는 170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다. 18세기에 독일 귀족이 소유했다가, 19세기 후반에는 그들의 성 다락방에, 전쟁 중에는 은행 금고에 보관되며 사람들에게 잊혔다. 80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에게 그 존재가 드러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1995년, 은행은 고심 끝에 이 악기를 이자벨 파우스트에게 대여해 주기로 결정했다. 오래도록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탓에, 그는 악기가 지닌 본래의 밝고 아름다운 소리를 되찾기 위해 6년 가까이 악기를 매만져야 했다. 그렇다면 이자벨 파우스트만의 청명한 음색은 모두 악기가 좋은 덕분일까? 그는 악기가 음색의 전부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제 악기 소리에는 우아함과 고귀함, 밝은 빛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수많은 색상과 뉘앙스를 만들어낼 수 있죠. 하지만 연주자가 어떤 소리를 내고 싶다면 그걸 이미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소리는 악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가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테크닉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 해도, 음악적으로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결국에는 그 소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테크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울림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추구하는 소리를 낼 수 없죠.”

이러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필요에 따라 그는 거트 현이나 바로크 활을 사용하며 소리를 빚어나갔다. 2015년에는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시대악기 전문 악단인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도 했다. 그가 어떤 음색을 상상하며, 작품을 풀어나갈지 기대하는 이유다.

 

바이올린의 세계를 넓혀가며

이자벨 파우스트는 2017년 장기엔 케라스(첼로)·알렉산더 멜니코프(피아노)와 함께 한국을 찾았고, 슈만의 피아노 3중주 전곡을 연주했다. 이번에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무대에 오르니, 혹자에게는 그가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연주자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누구보다 레퍼토리 개발에 진심이다. 틈틈이 도서관에 방문해 악보를 연구하고, 새로운 작품을 발굴해 낸다. 프랑스의 한 도서관에서 앙드레 졸리베(1905~1947)의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를 발견해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메시앙(1908~1992), 리게티(1923~2006), 노노(1924~1990) 등의 작품을 살피고, 페테르 외트뵈시(1944~2024)를 포함한 동시대 작곡가들과 협업하며 수많은 초연 무대를 가졌다. 그 덕분에 더 이상 확장되기 어려울 것 같던 바이올린 레퍼토리도 조금씩 넓어졌다. 작품 연구의 시작점으로는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찾는 것을 꼽았다. 자필 원고부터 연애편지까지 꼼꼼히 찾아보고,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면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의 해석은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발전 중이다.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자료를 확인하며 연구하는 일이 필수입니다. 모든 작곡가가 자기 작품의 최종 버전에 100% 확신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고, 첫 번째 인쇄 판본에는 종종 오류가 있기도 하거든요. 작곡가가 작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작품의 기원을 마주할 수 있고요.”

그리고 음악 인생 내내 이 작품들과 함께하며, 매번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재해석하며,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간다고 덧붙였다. “만약 나에게 단 하나의 생이 주어진다면 바이올린을, 음악을 하겠다”라던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 본 기사는 본지 DB, 스트라드, 바이올린 채널, 스트링스 매거진 등을 참조해 작성했다)

김강민 기자 사진 메이지프로덕션

 

이자벨 파우스트(1972~) 데네스 지그몬디·크리스토프 포펜을 사사했고, 레오폴드 모차르트 콩쿠르(1987)와 파가니니 콩쿠르(1993)에서 우승했다. 지휘자 조반니 안토니니·클라우디오 아바도 등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추었다. 아르모니아 문디의 아티스트로, 바로크부터 현대 작품까지 다양한 시대의 음반을 발매하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조반니 안토니니/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협연 이자벨 파우스트)

12월 15일 오후 7시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1·4·5번, 모차르트 세레나데 13번

 


 

CHOICE Album

 

이자벨 파우스트의 음악적 개성이 담긴 음반들

 

이자벨 파우스트는 1997년 아르모니아 문디에서 데뷔 음반을 발매해, 그라모폰 매거진의 ‘올해의 젊은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음반 계약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동하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독창적인 해석을 음반에 담아왔다. 특히 아르모니아 문디에서만 53종의 음반을 발매했으며, 상을 받지 않은 음반을 확인하는 것이 빠를 정도로 수많은 음반상을 수상했다.

 

조르조 안토니니와의 협업

협연자·지휘자·악단의 긴밀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두 개의 음반이다. 음반을 통해 이자벨 파우스트의 내한 공연을 미리 만나볼 수 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2016) Harmonia Mundi, HMC902230/31

로카텔리: 일 비르투오소, 일 포에타(2023) Harmonia Mundi, HMM902398

 

신선한 시도를 엿보다

시대 악기를 향한 새로운 관점이 담겼다. ‘슈베르트: 8중주’는 이자벨 파우스트가 “최고의 음반 작업 경험이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슈만: 바이올린 협주곡(2015) Harmonia Mundi, HMC902196

슈베르트: 8중주(2018) Harmonia Mundi, HMM902263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