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오하드 나하린, 제한하지 않는 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3월 10일 9:00 오전

NEW METHOD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

제한하지 않는 춤

 

서울시발레단의 시즌 첫 작품 ‘데카당스’ 안무가. 그의 연습실에 거울이 없는 이유는?

 

©Ilya Melnikov

오늘날 이스라엘은 바체바 댄스 컴퍼니, 키부츠 무용단을 앞세우며 명실상부 현대무용 강국으로 손꼽힌다. 이들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는 데에는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의 공이 크다. 그는 1990년부터 바체바 댄스 컴퍼니의 예술감독으로서, 독창적인 안무작을 전 세계에 선보이며 다수 흥행시켜 왔다.

작년에 창단 공연을 선보인 서울시발레단은 새 시즌의 첫 작품으로 오는 3월에 오하드 나하린의 ‘데카당스’를 선보인다. 국내 최초 컨템퍼러리 발레단으로서의 창단 2년 차를 맞아, 지난해에 비해 더 많은 유럽의 현대무용 안무가의 작품을 준비한 서울시발레단의 포부가 시작되는 공연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완벽한 춤’은 없다!

무용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오하드 나하린은 그럴싸해 보이는 동작을 위해 고민하지 않는다.

“춤에서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같은 동작을 하는 두 무용수가 있어도, 한 명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다른 한 명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요. 즉,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다른 ‘무언가’입니다.”(나하린)

내한해 선보일 공연 ‘데카당스’는, 그의 30년간 작품들을 모은 형태다. 1993년, 바체바 무용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그의 대표작 ‘아나파자’부터 ‘Yag’(1986) ‘마이너스 16’(1999)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별히 ‘질서(Seder)’(2007), ‘베네수엘라’(2017), ‘아나파즈’(2023) 등의 비교적 최신작도 만나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아나파즈’(2023)는 그가 자신의 동명 대표작을 재창조한 작품이다.

 

‘가가’로 깨달은 몸의 쓰임

오하드 나하린 ‘데카당스’ ©Maxim Waratt

사실, 오하드 나하린이 작품을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2002년, 바체바 댄스 컴퍼니와 함께 처음 내한했고, 유니버설발레단도 그의 작품 ‘마이너스 7’(2006·2019)을 소화한 바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발레단의 공연이 기대되는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움직임 언어가 담긴 ‘가가(Gaga)’ 때문이다. ‘가가’는 그의 작품에 사용되는 무용 메소드다.

“저는 ‘가가’를 ‘언어’라고 생각해요. 이 언어는 제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니까요. 수십 년 전, 허리 부상으로 인해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고 큰 수술을 받았어요. 몸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제 몸과 무용수들의 몸에 대해 더 관심을 두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점점 ‘우리는 어떻게, 왜 춤을 추는가’라는 질문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사용해 보지 않은 움직임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폭발적인 효율성과 움직임을 깨닫게 되었죠.”(나하린)

무용보다는 수련에 가까워 보이는 ‘가가’를 배우기 위해, 수많은 무용수가 바체바 댄스 컴퍼니로 모여들기도 했다. 오는 3월 공연에 서울시발레단의 시즌 무용수로 참여하는 이지영은 “‘가가’를 통해, 내 몸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춤을 보지 말고, 느끼라는 것

“소문대로, 오하드 나하린의 작품을 작업할 때는 연습실에 거울이 없어요. 그는 늘 무용수에게 ‘자연스럽게 하라’고 강조하죠. 거울이 없으니 내 춤이 어떻게 보이고 있는가를 위해 움직이기보다, 그가 던져주는 이미지를 위해 몸을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워집니다. 거울이 있다면 ‘아, 이 정도 다리를 들면 각도가 높아 보이니까 되겠다’라고 인식할 텐데, 그런 계산 없이 오히려 몸에 집중해서 더 과감한 시도를 하게 되는 거죠.”(이지영)

그는 “오하드 나하린의 작품을 할 때는, 연습 영상도 찍지 않는다. 보기 시작하면 계산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발레단의 두 번째 시즌 공연을 앞두고 무용수들은 매일 한 시간 넘게 ‘가가’ 수업을 받고 있다. “발레 클래스 후 작품할 때와, ‘가가’ 수업 후 연습할 때 체감하는 내 몸의 상태가 다르다”고.

이번 공연에는 서울시발레단 2024-26 시즌 무용수 18명이 참여한다. 올 한 해, 오하드 나하린 외에도 스웨덴 출신 안무가는 요한 잉거의 ‘워킹 매드’ ‘블리스’(5.9~18), 지난해 레퍼토리작으로 선보인 네덜란드 안무가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10.30~11.2)와 ‘5 Tango’s’(8.22~27)를 무대에 올린다. 대표적인 현대무용 안무가들인 만큼, 이들의 다채로운 움직임 언어가 단체에 끼칠 영향이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다. 시즌을 거치며 작품 흡수력을 키워낼 무용수들의 역량을 확인해 볼 시점이다.

허서현 기자 사진 세종문화회관

 

오하드 나하린(1952~) 바체바 댄스 컴퍼니에서 마사 그레이엄의 눈에 띄어 주역으로 발탁됐다. 1990년부터 해당 단체의 예술감독으로 부임, 개성 있는 안무작을 선보이며 무용단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렸다. 2018년, 예술감독직을 길리 나봇에게 넘겨주고 현재 상주안무가로 활동한다.

 

PERFORMANCE INFORMATION

서울시발레단 ‘오하드 나하린 – 데카당스’

3월 14~23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INTERVIEW

 

무용수가 바라본 오하드 나하린은?

이지영

이번 공연에는 오하드 나하린의 작품 경험을 가진 두 무용수가 작업에 함께한다. 서울시발레단 2024-26 시즌 무용수인 이지영과 이 공연에 리허설 디렉터로 함께 하고 있는 김천웅이다. 이지영은 2018년 비스바덴 발레에서 ‘Sadeh21’의 솔리스트로 무대에 올랐고, 김천웅은 2015~2022년 바체바 댄스 컴퍼니의 무용수로 활동하며 다수의 작품을 경험했다.

오하드 나하린의 작품을 접하게 된 계기는?

이지영 유럽 발레단에 있어도, 그의 작품은 저작권이 풀린 것이 많지 않아 경험하기 쉽지 않다. 2018년 ‘Sadeh21’ 공연은 바체바 댄스 컴퍼니의 초연 이후, 첫 외부 발레단 레퍼토리 공연이었다.

김천웅 우연히 워크숍을 통해 ‘가가’라는 움직임 언어에 흥미가 생겼다. 이를 습득하고자 바체바 댄스 컴퍼니에 입단했다. 왜 전 세계가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지 피부로 느낀 시간이었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움직임의 철학은 무엇이라고 느꼈나?

김천웅 작품의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을 많이 쓴다. 1초 단위, 혹은 더 미세한 박자까지도 세어 가면서 몇 시간씩 함께 움직임을 찾아간다. 그 모든 노력은, 어떤 관객이든 취향에 상관없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지영 관객과의 교류를 위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 같았다. 늘 ‘자연스러운 것’과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를 강조했다. 무용수 입장에선 참 어려운 얘기다. 이렇게 몸을 잘 훈련해 놓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자연스러움이라니.(웃음) 그래도 그는 ‘자연스러워야, 관객에게 전달된다’고 말했다.

김천웅

이번 공연이 오늘날 한국의 관객과 무용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지영 엄청난 대가임에도, 그는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인 것 같다. 늘 무용수들에게도 ‘비우라’고 하는 것처럼. 오하드 나하린에 대한 다큐멘터리 ‘미스터 가가’(2015)를 보면 그가 자유롭게 풀밭의 정원에서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꾸밈없는 이 춤에서 관객이 또 다른 무언가를 느끼시지 않을까.

김천웅 참여하는 무용수들에게는 새로운 작업의 경험이 될 것이다. 그의 작품은 바체바 댄스 컴퍼니의 공연이 아니면 보기 힘든 터라, 관객도 새로운 작품을 접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 모든 감각을 받아들이며 느껴보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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