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OT 프랑스 | 파리 오페라 ‘라인의 황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3월 17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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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페라 ‘라인의 황금’ 1.29~2.19

온라인 시대의 신은 누구인가?

 

실험성은 짙었지만, 바그너의 정통성은 허무했던 연출. 그리고 연광철과의 인터뷰

 

파리 오페라 ‘라인의 황금’ ©Herwig Prammer

파리 오페라 극장이 유명한 스페인 연출가 칼릭스토 비에이토(1963~)의 연출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를 새롭게 제작한다. 원래 2020년 필리프 조르당의 지휘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연기됐다. 지난 1월, 첫 작품인 ‘라인의 황금’이 공연됐고, 지휘는 파블로 헤라스-카사도(1977~)가 맡았다. 그는 2018년 마드리드에서 반지 시리즈를 주도한 바 있다.

2010년 독일 연출가 귄터 크레머의 ‘니벨룽의 반지’는 수려한 필리프 조르당의 지휘였음에도 작품성이 덜했다.

대타 성악가와 공백의 아이디어 속에서 칼릭스 비에이토는 파리 오페라 청중에게 잘 각인되어 있다. 그가 연출한 ‘카르멘’ ‘시몬 보카네그라’가 재공연 되고 있으며, 최근 토마스 아데스(1971~)의 오페라 ‘학살의 천사’도 비르투오소적이라는 평을 받았기에 이번 연출은 무척 기대됐다.

그러나 정작 오프닝 공연에 비에이토는 참석하지 않았고, 청중은 어리둥절하게 극장을 떠났다. 필자가 관람한 2월 2일에도 공연장에서 야유를 해야 할지 망설이는 청중이 보였고, 성악진에 대한 갈채는 있었지만 앙코르는 없었다. 바그너 오페라 현장치곤, 미적지근했다. 언론 또한 “빈곤하고 지루한” “시끄럽고 별 볼일 없는” “아주 실망스러운” “너무 광기 없는”이라고 평했다.

이런 반응의 첫 원인을 꼽자면, 보탄 역인 바리톤 루도빅 테지에의 병환으로 대타를 발탁한 것이었다. 2010년 반지 시리즈에서 파졸트 역으로 각광받은 바 있는 아인 페터슨이 보탄 역을 맡았다. 올해 5월, 빈에서도 같은 역할을 오를 예정이라 기대가 컸으나, 공교롭게도 필자 관람 일에는 그 또한 병환으로 한 음도 부를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보탄으로서는 음 투사가 약하다”라는 중평을 살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는, 연출의 문제였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전자 신처럼 절대 통치력을 지닌 사회가 배경이다. 비에이토(연출)는 “기술이 압도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며, AI는 사회와 존재를 어떤 방향으로 개조하는가?”에 핵심을 두었다. 이에 각 개인의 사생활을 모두 통찰, 감시하는 빅 데이터로부터 4부작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트럼프 휘하의 일론 머스크뿐 아니라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AI 계발에 남다른 투자를 선포한 요즘 프랑스 분위기와 꼭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왜 아이디어의 공백이 느껴질까?

뺏고 뺏기는, 신들의 반지

서주로 라인강의 물결을 그린 모티브가 들려온다. 무대 앞 하얀 베일은 물결 혹은 금빛 광채를 반영한다. 금이 쌓인 벽 앞으로 푸른 잠수복을 입은 세 처녀가 등장한다. 그리고 케이블 뭉치를 머리에 쓴 이상한 사람, 알베리히가 사랑을 찾으며 등장한다. 그러나 세 처녀로부터 “욕정에 찬 난쟁이”라며 조롱을 당한다. 알베리히는 사랑을 저주하며 라인의 황금을 훔친다.

2장은 방대한 신들의 세계로, 길고 검은 가죽 소파가 등장한다. 보탄과 프리카는 밤새도록 술을 마신 후 잠이 든 모습이다. 방탕한 삶의 일면이다. 보탄은 완성된 자신의 성을 보며, 이곳에 갇혀 살지만 세계를 통치할 것이라는 야망을 노래한다.

성을 완성한 거인 형제 파프너·파졸트가 계약을 이행하라고 들이닥친다. 성을 다 지어주면 프리카의 동생이자 젊음의 신인 프라이어를 주기로 한 것. 캐주얼한 티셔츠 차림인 번개의 신 도너와 프로, 불의 신 로게는 프라이어를 구하고자 싸운다. 연출은 프라이어를 노란 비옷을 입은 평범한 농부로 표현했다. 반면 거인 파졸트(연광철 분)는 반듯한 정장 차림, 파프너는 텍사스 상인으로 분했다. 이 장면에서 연광철은 무시무시한 거인이지만, 프라이어에게 남다른 애정을 느끼는 인물로, 로게와 도너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그녀를 데려가고 싶은 마음을 잘 표현했다. 그의 연기는 “밝으나 저력 있는 목소리. 프라이어를 사랑하는 부드러운 감성을 표출하고 있었다” “예민한 파졸트” “넘치는 칸타빌레”라는 보기 드문 호평을 샀다.

오페라를 촘촘히 채운 음악

파리 오페라 ‘라인의 황금’ ©Herwig Prammer

3장은 니벨룽족이 사는 지하 세계로, 미메와 알베리히의 ‘전자’ 정원이다. 이리저리 걸쳐진 케이블 사이로, 다리에 붕대를 감은 속옷 차림의 미메가 보인다. 알베리히는 동생 미메를 학대하며 인조인간 여자를 만들어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요란한 망치 모티브, 거인 모티브, 불의 모티브가 얽히고설킨다. 용의 모티브(아직 등장하지 않은 사실이지만, 파프너가 파졸트를 죽이고 용으로 분해 금반지를 독점하는 미래를 암시) 또한 합류한다. 지휘자는 이 라이트 모티브들이 지닌 화술적 역할을 긴장감 있고 정밀하게 차곡차곡 쌓았다. 음악만 들어도 무슨 이야기가 벌어지는지, 또한 벌어질 것인지 그림처럼 떠오르는 아주 밀도 높은 대목이었다.

보탄과 로게는 권력의 상징인 반지를 빼앗고자 이곳에 내려왔다. 알베리히가 목에 찬 금목걸이가 사실 반지다. 보탄과 로게 앞에서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는 투구를 자랑하는 알베리히. 로게의 꾀에 넘어가 작은 개구리로 변하는 장면에서, 알베리히는 빨간 점이 달린 털 모자를 쓰는 것으로 연출된다. 상자에 갇힌 알베리히는 투구와 반지를 뺏긴다. 알베리히 역의 바리톤 브라이언 멀리건은 반지를 소유한 거만함이 절망으로 변하는 감정 변화의 격차를 밀도 있는 균질함으로 잘 표현했다. 특히, 반지를 보탄의 목에 채워주고 “잘 가져라. 네가 권력을 즐긴다면 난쟁이, 나는 힘을 회복하리라”라며 눈물과 희열이 범벅된 키스를 보탄의 머리에 한다. 반지를 잃은 절망과 복수가 동시에 보이는 순간이 압권이었다.

다음 오페라 ‘발퀴레’를 암시하며

반지를 손에 넣은 보탄은 희열에 쌓이나, 대지의 여신 에르나가 등장해 반지의 저주를 노래하며 경고한다. 결국 보탄은 거인들에게 반지를 주게 된다. 발할라 성의 모티브가 성대하게 연주되고, 보탄과 프리카가 입성한다. 그런데 이 발할라 성은 거대한 데이터 센터다. 입구가 열리고 늘어진 케이블을 손에 쥔 채 신들은 악을 쓰며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간다!

비에이토(연출)는 “우리가 아는 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바그너도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신은 인간이 창조했다면, 지금 우리는 연결망을 통해 새로운 신을 창조하기 위한 모든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 새로운 신은 막강하며, 모든 것을 통제한다”라며, 이 작품의 결론을 기술의 승리로 귀결한다.

에필로그로 데이터센터의 문이 닫히면 그 위로 머리에 케이블을 수없이 달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어지는 작품 ‘발퀴레’에 등장할 지그문트의 모습일까? ‘발퀴레’는 다음 시즌에 공연된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음악으로 신이 되고자 했던 바그너의 절대감이나 압도하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환상적인 알베리히 역의 브라리언 멀리건, 강인한 성대로 절대적인 이상을 꿈꾸는 프리카 역의 에바 모 위보도 갈채를 받았다. 정평 난 바그네리언 연광철의 관록이 돋보이는 고상하고 운치 있는 퍼포먼스는 일품이었다.

배윤미(프랑스 통신원) 사진 파리 오페라

 

 

INTERVIEW

베이스 연광철

5월, 빈에서 또 한 번의 ‘라인의 황금’을 앞두고

거인 파졸트 역을 맡았다. 캐릭터 표현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그간 바이로이트·베를린·밀라노·바르셀로나에서 맡은 역할인데, 특히 바렌보임·틸레만과의 연주로 많이 맡았다. 파졸트는 프라이아라는 여신을 얻고 싶어 하고, 형제인 파프너는 근본적으로 돈과 권력을 추구한다. 그는 처음 계약할 때부터 신들이 자신을 속일 것을 알고 있을 만큼 영리하기도 하다. 파졸트의 선율에는 아름다우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음악적인 면들이 있다. 반면 파프너는 정확한 계산 아래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5월, 빈에서 시작되는 동일한 작품에는 파프너 역으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 꽤 긴장된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 이 두 역을 같이 공부하며, 이 형제의 차이를 더 명확하게 알게 됐다.

이번 프로덕션은 준비 과정이 어떠했나?

잘 알다시피, 이번 공연은 루도빅 테지에의 취소로 인해 연습이 어려웠다. 비에이토(연출)와는 22년 전에 바르셀로나에서 ‘돈 조반니’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의 연출은 현대사회의 모순을 그리며, 바그너가 이야기하는 신화적인 내용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이번 프로덕션의 많은 부분에 공감하고 있지만, 가장 큰 단점은 지휘자와 연출가 모두가 독일어권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배우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연출가는 번역본이 아닌 해당 언어를 구사하며 언어에 포함된 많은 내용을 이해하고, 자기 연출 방향을 설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이번 작업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지휘자 또한 언어를 알지 못하고 악보에 있는 요소들로만 지휘하면 실제로 경험 많은 성악가들은 여러 어려움에 부딪힌다. 한 가지 예로, 2장에서 알베리히의 동선이 지나치게 무대 뒤에 있어서 음향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여러 무대 장치가 음향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해, 결국 가수들이 대부분 앞으로 나와서 노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성악가로서 언어 전달에 많은 신경을 쓰는 듯하다.

뉘앙스 차원에서의 생각도 있다. 프랑스어도 예전에는 ‘r’ 발음을 많이 굴렸지만, 지금은 거의 후두 쪽에서 ‘흐’ 발음에 가깝게 하지 않나. 독일어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훨씬 더 명료하게 모든 발음을 말했지만, 요즘은 무대에서 일상처럼 노래하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시도들이 있지만 무대에서의 언어 문제는 결국 성악가의 몫이다. 여러 원전 연주 시도-예를 들면 켄트 나가노의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 드레스덴 음악제에서 2023년 6월 ‘라인의 황금’, 2024년 3월 ‘발퀴레’ 초연-가 있는데, ‘파르지팔’을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적도 있다. 사족이지만, 사실 원전 연주를 하려면 어울리는 공연장이, 촛불로 조명을 삼을 정도로 당대의 조건이 모두 맞는 상황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오페라 무대들을 보며 드는 소회가 있다면?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가’. 성악인으로 나는 당연히 관객을 위해 위대한 예술 작품을, 뛰어난 완성도로 들려주어야 한다. 이는 의무이다. 이것에 충실하면 당연히 성취감도 많이 느낀다. 그렇지만 요즘은 오페라에 많은 관심을 지닌 관객도 있지만, 대부분 색채나 의상, 무대 장치 등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만큼 성악이라는 예술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평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개인적인 입장에선, 그렇기에 유능한 성악가의 발굴이 점점 더 어려운 것도 같다.

배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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