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장애 예술가들의 성장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우리 음악계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인구 대비 5.1%, 약 20명 중 한 명이다(2023년 보건복지부 통계). 우리는 이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여 왔을까? 60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있다면 2~3명이 장애인일 수 있는 이 비율이 가정이 아닌 실제가 되길 바라며, 장애 음악가들의 활약과 장애 예술의 생태계를 가꿔나가는 이들을 만났다
총괄 이의정 기자
더 늦지 않게, 더 많은 기회를!
장애 음악가들의 활약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음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길 또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변화를 만드는 것. ‘마음적 지원’과 ‘사람의 마음’이다
장애 음악가 단체와 인터뷰를 할 때였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감독이 “저보다는 이들의 어머니를 인터뷰해서 널리 알려야 할 텐데요”라며 넌지시 말했다. 곁눈질로 살피니 인터뷰 현장에서 분주한 것은 그들의 어머니였다. 이 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정책적 지원’이 판을 벌인다면, 판을 성장시키는 동력은 ‘마음적 지원’일 것이다. 인간에게만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 사회라는 유기체에도 마음이 있다. 그 마음과 시선이 ‘소외’의 영역에 가닿을 때,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의 주체와 기능 역시 사람이 움직이고 일궈 나가는 것이다. 이번 특집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마음적 지원’을 읽어보고자 했다.
‘장애’는 새 음악 만드는 ‘장기’일 수도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설립되면서 장애 예술계와 지원 정책이 바뀌고 있다. 같은 해에는 장애인문화예술센터 ‘이음’도 개관했다. 2023년에는 국내 첫 장애 예술인 공연장인 모두예술극장도 개관했다. 이러한 정책기관, 지원제도, 공연 전문시설이 생기면서 장애 음악가들이 모여 활동하는 ‘계(界)’도 형성 중이다. 처음에는 ‘소외’된 장에 대한 책임과 돌봄으로 바라보던 시선도 이제는 ‘소통’의 움직임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장애 음악(Disability Music)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 장애가 있는 음악가들은 단순한 ‘극복 서사’의 주인공이었다. 예를 들어 이츠하크 펄먼·아우구스틴 하델리히(바이올린), 이블린 글레니(타악기) 등인데, 이제는 독창적인 음악가로 주목 받고 있다.
이러한 성장과 조명의 이면을 분석해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음악으로의 문을 함께 열어준 조력자, 갑작스레 찾아온 장애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지만 믿음으로 함께 걸어준 동반자, 그런 그들에게 기회와 무대를 제공하는 후원자와 멘토 등 사람을 키우는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뇌졸중으로 인해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왼손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인 이훈의 경우도 대표적이다. 그는 왼손을 위해 작곡된 독주곡들을 차근차근 발굴하며 음악사의 이면(裏面)을 부지런히 탐구 중이다. 그러던 중 작년에 특별한 연주(2024.11.5/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를 선보였다. 작곡가 김보현은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그에게 의외로 오른손을 위한 독주곡 ‘오른손을 위한 파묵’ 1번과 2번을 헌정했다. 이훈은 이 곡을 연습하고자 오른손 재활에 들어갔으니, 연습과 치료를 동시에 한 셈이었다. 무대 위의 그는 오른손을 들어 ‘턱’ 하니 건반 위에 올려놓았다. 몇 개의 건반이 동시에 눌리며 묘하고도 묵직한 파장음을 냈다. 하나의 작품이 장애 음악가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바꿔 놓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를 위한 마음의 기획, 작곡가와 연주자의 소통이 빛을 발했다. 그의 장애는 ‘장’애로 멈추지 않고, 예술을 확장하는 ‘장’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변화 중인 장애음악계
오늘날 장애 음악가들의 예술행위는 더 이상 ‘희망’ ‘극복’ ‘용기’ 등의 용어로 대변되거나, 한계를 극복한 감동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음악가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음악의 다양성과 예술적 깊이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회도 이들에게 단순한 지원을 넘어 동등한 예술적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 위해 여전히 필요한 것은 소외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는 소통의 행동이며, 나아가 교육의 확대, 포용적인 공연 기획, 기술적 지원 등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장애 음악가들의 무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음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예술 형태라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의 진로와 방향에 있어 ‘장애(물)를 없애자’는 배리어프리에 중점을 뒀던 장애 예술은 ‘장애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부터 필요하다’는 태도로 접근하는 ‘배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로 창작적 기조와 담론이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 예술은 물론 비장애 예술계를 다양화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고, 간접적으로는 담론의 영역을 확장하여 경계와 틀, 구분 짓기에 대한 문제 제기에도 적용되고 있다. 장애 음악가들이 지닌 ‘장애’가, 말 그대로 ‘장애’가 아닌, 새로운 음악을 낳고 빚는 ‘장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만날 수 있는 시대다.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번 특집에 담았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PROFILE
지금, 주목받는 장애 예술가들
천재·광기·재능 등 절대적인 화두가 장악했던 음악계에 평등·소통·배려 등 사회적 코드가 녹아들며 음악계는 변하고 있다. 여러 장애 예술가는 그 변화를 보여주는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글 편집부
플루티스트 하유빈
치료를 위해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 재능을 발견하며 음악가로 성장했다. 경기예고·총신대 음대를 졸업했고, 성공회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평창 패럴림픽 성공기원 음악회(2018)에서 ‘그라토 플루트 앙상블’ 단원으로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장애 청소년·청년으로 구성된 비바챔버앙상블 4기로 활동 중이며, ㈜툴뮤직 소속 아티스트다.
피아니스트 배성연
뛰어난 암보력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서울예고를 진학하며 ‘엘리트’ 발달 장애 음악가로서의 성취와 도전을 이어왔다.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졸업,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 대학부 1위,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 전체 대상 등을 차지했다. ㈜툴뮤직 소속 아티스트이며, 서울내셔널심포니·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음반 발매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플루티스트 강송강
2024년 첫 플루트 독주회 ‘나와 음악, 장애라는 이음줄’을 가진 강송강은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성남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시작, 제2회 하트하트음악콩쿠르·제11회 전국장애학생 음악콩쿠르·제3회 전국장애음악인 콩쿠르 등에서 수상했다. 2023년부터 2년 연속으로 서울시향 ‘행복한 음악회, 함께’ 연주에 참여한 바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
2023년,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한 서울시향의 ‘아주 특별한 콘서트’에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을 협연하며 ‘클래식계의 우영우’로 주목받았다. 5세 때 자폐 스펙트럽 장애 판정 이후 동네 음악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한국 클래식 콩쿠르·전국학생온라인콩쿠르 대상 등을 받았다. 발달 장애인·비장애인 통합예술그룹인 서울시 별별 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악장으로도 활동한다.
가온 솔로이스츠
장애·비장애 음악가들이 모여 2021년 창단했다. ‘요요마와 실크로드 앙상블’의 멤버를 역임한 바 있는 비올리스트 김유영이 음악감독을 맡아 장애 여부로 구분되지 않는 예술 활동을 지향하며 장애인식개선과 장애예술인의 전문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수준 높은 연주력을 유지해 온 이들은, 오는 4월 20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다섯 번째 정기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사회복지법인 ‘하트-하트재단’(이사장 신인숙, 회장 오지철)에서 2006년 창단한 발달 장애인 오케스트라. 예술의전당 정기 연주회를 비롯 뉴욕 카네기홀·케네디 센터 등 전 세계의 공연장을 누비며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단체다. 지휘자 안두현이 상임 지휘자로 재직하며 지난해 말러 교향곡 전악장 연주를 선보이는가 하면,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는 문화 올림피아드의 일환으로 유럽 투어에 나서는 등 전문 오케스트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피아니스트 이훈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국립예술대학을 졸업했다. 2012년 미국 신시내티대학 박사과정에서 논문을 쓰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나, 약 4년의 재활치료 끝에 2016년 왼손 피아니스트로서 대중 앞에 다시 섰다. 현재 툴뮤직장애인예술단 단장,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클라리네티스트 최지원
협성대학교 에이블아트·스포츠 학과에 재학 중이다. 미국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 연주를 성료했다. 2022년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에서 발달장애 관악부문 고등부 1위를 수상했고, 현재 파라솔 클라리넷 앙상블 악장으로 활동 중이다.
피아니스트 노영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및 예술전문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마르틴 루터 대학에서 최고연주과정을 밟고 있다. 2017년 한국-독일 투어 독주회를 개최했으며, 작곡가 마리아 레온체바(1962~)에게 ‘사계’를 헌정 받아 초연했다. 삼성전자의 시각장애인 시력 보조기구 ‘릴루미노’의 모델로 활동한 바 있다.
파라솔 클라리넷 앙상블
발달장애인 청년들과 음악감독 고대인이 함께 만든 앙상블. 2023년 국제서울음악콩쿠르에서 앙상블 부문 1위를 수상하고, 같은 해 제7회 전국 발달장애인 음악축제(GMF/Great Music Festival)에서 대상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2024년 첫 정기연주회를 성료했으며, 장애예술교육과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맨해튼 음악대학에서 수학했다. 이화경향콩쿠르·음악춘추콩쿠르 등 비장애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콩쿠르에서 다수 입상했다. 미국 카네기홀·워싱턴 센터 등에서의 초청 연주를 비롯해 활발히 연주를 펼치고 있다. 현재 한빛맹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빛예술단 단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비전피아노 앙상블
뷰티풀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서 아동·청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피아니스트 배성연·이강현·이유빈이 결성, 2023년 창단연주회를 가졌다. 지난해부터 김준우가 합류해 네 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제8회 전국 발달장애인 음악축제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피아니스트 이미르
올해 2월에 열린 제8회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에서 중등부의 나이로 전체 대상을 받았으며, 제2회 하트하트음악콩쿠르 은상, 제1회 전국 장애인 쿰 음악 콩쿠르 중·고등부에서 동상, 제6회 용인시 장애인 문화예술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현재 사회적기업 ㈜툴뮤직의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피아니스트 김경석
6세 때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제2회 하트하트음악콩쿠르에서 김주희와 함께 공동대상을 받으며 “전문연주자가 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밖에 제4회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에서 고등부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학과에 재학, 툴뮤직장애인예술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첼리스트 서윤직
4살 때 피아노로 시작하여, 현재 선화예고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있다. 제5회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에서 대상, 2024년 제7회 전국 장애인 음악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뷰티플마인드 소속으로, 이들이 주최하는 다양한 자선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김예지
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동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피바디 음악원에서 석사 학위를, 위스콘신대학 매디슨 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사를 지냈으며, 제21·22대 국회의원이다.
테너 신형섭
강릉대 졸업, 이탈리아 베르디 음악원에서 수학 중 장애를 얻었다. 이탈리아 시타 디 이세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2019년 이탈리아어로 ‘씨앗’을 뜻하는 ‘이세미(I semi) 앙상블’을 창단한 후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툴뮤직장애인예술단 단원으로 있다.
피아니스트 김필립
선화예고 졸업 후,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에 재학 중이다. 2024년 서울영아티스트 전국 음악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사회적기업 ㈜툴뮤직의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앙상블 하모니아
피아노 3중주 단체로, 조현선(피아노)·강지원(바이올린)·차지우(첼로)가 활동하고 있다. 세 연주자는 OCI 드림 앙상블(조현선·차지우), 첼로 앙상블 ‘날개’(차지우) 등에서 실내악 실력을 길러 왔으며, 하트-하트재단이 2017년부터 개최해 온 전국 발달장애인 음악축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최혜연
대전예고 졸업 후,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음악예술학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2011년 장애인 음악콩쿠르에서 교육부 장관 대상, 2013년 제1회 전국장애청소년음악콩쿠르 ‘기적의 오디션’ 대상을 수상했다. ‘My Star’ ‘그리움’ ‘선물’ ‘남겨진 시’ 등 4장의 싱글앨범을 발매한 바 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민철
초등 2학년 때 피아노를, 중학교부터 클라리넷을 시작했다. 경북예술고등학교 음악콩쿠르에 입상을 시작으로 계명대·영남대·대구가톨릭대 등 대학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소리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대구 메세나 협회 자선 연주회 등에서 활동했다. 2024년부터 서울시향 ‘행복한 음악회, 함께’ 무대에 올랐으며, 2025년 3월 서울시향 창단 이후 장애인 연주자로는 최초로 서울시향 특별단원으로 위촉됐다.
첼리스트 손정환
제6회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 전체 대상을 수상했으며,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첼로 단원으로, 2021년 하트-하트재단의 ‘서울시와 함께하는 장애공감콘서트’ 등에서 연주했다. 현재 가온클래식 단원 및 ㈔한국발달장애인문화예술협회 아트위캔의 현악 부문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툴뮤직장애인예술단
2023년 창단 후, 정기적인 연주회를 이어가고 있다. 단장인 피아니스트 이훈을 중심으로 테너 신형섭, 피아니스트 김경석이 주요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연 활동을 진행하며, 장애인 음악가들의 전문적인 역량 강화와 지속적인 무대 경험을 지원하고 있다.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
2016년 ‘You are so special’이라는 슬로건 아래 개최되었으며, 지금까지 450명 이상의 장애인 음악가들에게 데뷔 기회를 제공해 왔다. 콩쿠르는 개인 및 단체 경연으로 진행되며, 공정하고 체계적인 심사를 통해 참가자의 역량을 평가한다. 1위 수상자에게는 툴뮤직 소속 아티스트 1년 계약의 기회가 주어지며, 3위 이내 수상자 및 팀에게는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 만 20세 이상 3위 이내 수상자의 기업 연계고용도 지원한다.
SUPPOTER
그들 곁의 안내자들
음악으로 향한 첫 문을 열게 하거나, 장애로 인해 닫힌 문을 다시 열게 하거나, 창문을 활짝 열어 악보에 담긴 음악의 세계를 보게 하는 안내자. 대개는 부모나 스승, 파트너가 그 역할을 맡는다. 그들의 노력으로 장애음악가들은 성장하고, 다시 일어선다
강선옥 배성연 피아니스트의 어머니
음악을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교육이 시작된다
김명화 강송강 플루티스트의 어머니
음악을 향한 문과 기둥이 되며
장애 음악가들의 활동에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조력자는 부모다. 물론 대부분의 음악가가 부모의 교육과 지원을 바탕삼아 성장한다. 그러나 장애 음악가는 부모의 면밀한 관찰과 헌신이 전제해야만 시작될 수 있다.
부모에 의해 발견된 이들의 재능은, 그 후에도 성장을 위한 모든 과정이 도전이다. ‘내 아이가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품고, 이들은 음악의 전적인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예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장애 음악가, 피아니스트 배송연과 플루티스트 강송강의 어머니를 만났다.
“자녀와 저희는 1+1(원 플러스 원)이에요. 연습부터 무대까지 밀착해서 모든 부분을 함께 하니까요.”
두 사람 모두 입을 모아 장애 음악가와 부모는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라 말한다. 장애 음악가의 현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음악을 즐거워하는 내 아이에게

배성연과 어머니 강선옥
발달 장애 자녀를 둔 부모에게, 음악은 좋은 치료제다. ‘내 아이가 무엇에 반응하는지’는 이들의 최대 관심사고, 음악을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교육이 시작된다고.
“어릴 때부터 음악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취미로 피아노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죠.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르칠 선생님을 찾기 쉽지 않아서, 제가 바닥에 숫자와 계이름을 써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며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5분씩, 나중에는 교재를 구해 피아노 앞에 앉혔는데 그때 성연이가 ‘귀가 좋다’는 걸 알게 됐죠.”(강선옥)
“어릴 때 눈도 맞추기 힘들고,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송강이가 대체 뭘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그러다 우연히 피아노에 관심 있어 하는 모습에 피아노 학원에 보냈죠. 사실, 처음에는 장애가 있는 아이라 가르치기 부담스럽다며 거절도 많이 당했어요. ‘실력이 안 늘어도 괜찮다면 받아주겠다’는 선생님이 계셔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김명화)
재능과 관심을 발견한 이들에게, 갖춰진 교육 시스템과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배송연은 ㈔뷰티풀 마인드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를, 강송강은 성남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의 오케스트라를 만나며 음악가의 삶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만난 구자은 선생님이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장애 학생에 대한 이해도 높으셨고요. 그렇게 서울예고 음악과에 입학한 첫 발달 장애 학생이 될 수 있었죠. 어찌 보면, 장애 학생들이 예고에 진학할 수 있는 문을 여는 역할이었다고도 생각돼요. 입시를 도와주신 서정원 선생님, 그리고 서울대에 입학해 만난 주희성 교수님까지 모두 성연이가 활동하게 해주신 은인들이세요.”(강선옥)
“지난해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사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을 통해 송강이도 첫 독주회를 드디어 가졌어요. 힘든 과정이었지만 정말 뿌듯한 순간이었고, 장애 연주자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이 있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죠. 송강이는 지금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참 좋아해요. 작년과 재작년, 서울시향에서 주최한 ‘행복한 음악회, 함께’에 2년 연속 참여했는데, 서울시향 단원 선생님들에게 배우며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이 정말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무대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분되지 않고, 음악으로 함께하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알고 있던 송강이의 모습보다, 송강이 스스로가 해낼 수 있는 더 멋진 모습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음악하기를 참 잘했다 싶었죠.”(김명화)
우리가 함께할 방법

강송강과 어머니 김명화
흔히 매체를 통해 심어진 발달 장애 음악가들의 이미지는, 뛰어난 암보력이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발달 장애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장애의 종류에 따라, 정도에 따라 활동을 위한 도움의 방식도 갖가지다.
“송강이는 암보도 어려워하고, 새로운 곡을 익힐 때마다 마치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1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아요. 처음엔 특별한 점을 제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처음엔 했어요. 그런데 놀라운 정도로 꾸준히, 무한히 반복해서 곡을 완성해 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 송강이의 재능이 지치지 않는 성실함이라고 정의하게 됐어요.”(김명화)
“성연이의 경우는, 암보가 무척 빠릅니다. 지금처럼 활동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 부분이죠. 새로운 레퍼토리를 위해서는 제가 중간에서 선생님들과 상의하면서, 성연이가 레슨을 받아 익힐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무한한 반복, 또 반복의 과정이죠. 요즘은 아이가 행복하게 연주하며 지냈으면 좋겠다 싶어요.”(강선옥)
가장 큰 고민은 지속 가능한 활동 환경이다. 지금은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언젠가 엄마인 내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도와주지 못할 때”가 온다는 것.
“㈜툴뮤직의 정은현 대표님께서 장애인 매니지먼트사를 운영하고 계시는 게 좋은 방식이라고 느껴요. 이 방식이 더 확장되어 아이들이 음악가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관리하는, 음악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모의 도움과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음악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꿔봅니다.”(김명화)
“저는 장애, 비장애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하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이에 앞서서, 장애 연주자 이해를 위한 약간의 교육도 통용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잘 대해주는 게 아니라, 인격적으로 소통할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요.”(강선옥)
지금 이 자리까지, 이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걸어왔다. “나를 통해 아이가 세상을 보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간혹 지치고,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았다. 이들에게 ‘부모’가 세상으로 통하는 첫 번째 문이었다면, 세상과 동행하게 해준 두 번째 문은 ‘음악’이다. 멈추지 않고 걸어온 이들을 위해 이제 필요한 것은, 닫혀 있던 우리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다.
글 허서현 기자
펄 뮤직 대표 이소연 & 바리톤 이대범
재활과 복귀, 그리고 새로운 시작 앞에서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며 입지를 다져가던 바리톤 이대범은 2020년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지며 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음악을 향한 열망은 편마비와 실어증이라는 후유증 속에서도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고, 결국 재활과 연습 끝에 2023년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그 과정에서 모든 힘이 되어준 것은 그의 아내 이소연이었다. 이후 그녀는 공연 기획사를 설립했고, 남편의 희망과 꿈을 보다 높은 곳으로 쏘아 올리고 있다. 이대범이 자기 생각을 천천히 전하면, 이소연이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차분히 풀어냈다.
다시 노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우연히 이탈리아어로 더듬더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언어 치료와 재활 등 힘든 시간이 이어졌지만, 믿음과 주변의 응원이 원동력이 되었다.
연습 과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아’와 ‘애’처럼 기본적인 발음부터 다시 연습했다. 실어증은 증상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뉘는데 대범 씨는 읽기·쓰기·말하기 모두 어려운 상황이었고, 한글도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대표 레퍼토리였던 ‘주기도문’을 다시 부르는 데만 3개월 이상이 걸렸다. 또, 과거에는 베르디 오페라를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다면, 지금은 가사를 곱씹었을 때 ‘우리의 노래’라고 여겨지는 곡,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할 수 있는 가사의 작품들을 선곡하고 있다.
무대로 복귀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음악이 지닌 치유의 힘을 수없이 경험하며, 음악으로 희망을 전하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특히 메조소프라노 김학남의 데뷔 45주년 기념 음악회(2.26/롯데콘서트홀)의 준비 과정을 잊을 수 없다. 김학남 선생은 아무런 인연이 없던 우리에게 연락해 공연을 제안했고, 함께했던 모든 이들이 “소리가 정말 좋다”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해도 충분하다”라며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런 따뜻한 이들이 곁에 있었기에 함께 어우러지며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공연 기획사 펄 뮤직의 방향성이 궁금하다.
올해 초, 대범 씨를 지원하고 음악에 전력할 수 있게 돕고자 펄 뮤직을 설립했다. 하지만 펄 뮤직은 장애 아티스트만을 위한 기획사가 아니다.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Pearl)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위기를 극복해 빛을 내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기획사가 되고자 한다. 다만 지금은 이대범의 활동에 집중하려 한다. 음반 발매, 소규모 커뮤니티와의 컬래버레이션 공연 등을 구상 중이다.
장애 예술가의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아티스트 맞춤형 기획이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도록 기획 단계에서부터 프로그램 구성을 고민해야 한다. 대범 씨의 공연에서는 아티스트가 체력을 조절하면서도 관객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앙상블 연주와 작품 해설을 적절히 배치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장애 예술가’라는 틀에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훌륭한 예술가들은 누구나 장애물을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며 나아가지 않나. 대범 씨는 실어증이라는 장애물을 마주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관객들도 모든 장애 예술가를 한 명의 아티스트로 바라봐주기를 바란다.
장애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지원을 꼽는다면?
장애와 아픔의 정도에 따라 필요한 지원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관심과 지지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 그렇기에 가족을 대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들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글 김강민 기자
이대범(1978~)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밀라노 시립음악원·빈 시립음악예술대학을 졸업했고, 2015년 이탈리아 마리아 말리브란 콩쿠르 1위 등 다수의 콩쿠르에 입상했다.
이소연(1982~) 삼성전자 러시아법인 무선사업부에서 제품 전략과 대외 협력 업무를 맡았다. 현재 펄 뮤직의 대표이다.
나사렛대학교 교수·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이상재
손끝에 닿는 점들로 교향곡을 만드는 과정
‘미국 피바디 음악원 제1호 시각장애인 박사 졸업생.’ 이 수식어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악보도 구하기 쉽지 않던 해외 환경에서 학위를 마치자, 이상재에게 따라붙은 말이다. 이를 뽐내고 지나갈 수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학위가 온전히 단신으로 이룬 성취가 아님을 느꼈다. 미국에서 악보가 필요하면 한국에서 직접 점자로 찍어 해외 우편을 발송했던 은사부터, 개인에 맞게 커리큘럼을 조정해 준 교수, 어디를 가든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준 친구까지 도움을 준 수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그는 이를 환원하고 싶었고, 그 답은 교육과 지도에 있었다.
그는 천안시 나사렛대 교수로 임용된 2004년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장애가 있는 학생을 직접 지도해왔다. 또한 2007년 3월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오늘날까지 700회가 넘는 국내·해외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함께 연주하는 경험은 지금도 큰 즐거움”이라고 전한다. 그에게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음악을 만드는지 물었다.
시각장애 연주자는 점자 악보를 활용하여 작품 암보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그 악보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악보가 아니라서 그렇다. 점자 악보는 언제나 정보를 점자로 번역하는 점역사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연주가 있을 때마다 미리 요청해야 제작에 들어가고, 며칠 뒤 악보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이 악보를 읽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모든 시각장애인이 점자 악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악보 읽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정보를 점자로 풀어쓰기 때문이다. 일반 악보는 높은 음은 높은 곳에, 낮은 음은 낮은 곳에 표기하는 직관적인 구조이지만, 점자 악보는 한 음마다 어떤 옥타브에 있는지, 그 음의 길이는 어떤지, 스타카토·악센트가 있는지 등을 모두 풀어쓴다. 화음은 더욱 복잡한데, ‘도-미-솔’ 화음을 한 번에 쓰지 못하고, ‘도’에 3도, 5도를 쌓으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를 매번 계산하며 외워야 한다.
그런 방식이면 오케스트라 총보는 거의 표기할 수 없겠다.
관현악 작품은 총보 없이 모두 파트보로 되어 있다. 내가 음악감독으로 이끄는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의 경우로 설명하면, 각 단원은 파트보를 받고, 나는 연습을 지휘하기 위해 모든 악기의 파트보를 익힌 뒤 그 악보를 머릿속에서 합한다. 공연에는 이런 악보를 두지 않고, 각 단원은 교향곡 한 곡의 모든 음을 음원과 파트보로 암보하여 연주한다.
난도를 보면, 각 학생들의 점자 악보 사용 여부도 다르겠다.
그렇다. 나아가 학생마다 장애의 종류와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대학 교육에서는 주로 맞춤 교육으로 진행된다. 음악대학 교육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1대 1 교육 방식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공연에서 ‘음악’보다 ‘장애’가 부각될 때가 종종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두 정체성에서 무언가 하나를 지워낼 수는 없다. 누군가 우리의 공연을 볼 때, 보면대가 없는 무대를 보고, 단원이 걸어 나올 때 안내를 받는 모습을 본다. 이를 억지로 머릿속에서 지우며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를 장애인으로 보지 말고 음악인으로 봐달라는 말은 모순적이다. 한 번의 공연을 위해 교향곡 전 악장을 전부 암보하는 우리의 노력이 지워지는 게 오히려 아쉽지 않은가. 다른 악단과 공평하게 평가받는 게 중요할 순 있지만, 우리의 노력이 주는 감동은 분명 우리의 개성 중 하나이다.
글 이의정 기자
이상재(1967~) 중앙대 음대에서 학사, 피바디 음악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나사렛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 이사장 겸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공동 저서로 ‘서양 음악 점자 규정 해설’(2019)이 있다.
SOCIAL DIMENSION
사회적 책임으로 함께 성장하기
장애 음악가의 사회적 진출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사회적 배려와 책임감으로 만드는 활동의 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함께’라는 말에 비로소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 지휘자 박성호
희망의 하모니를 위한 첫 시작
2024년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경기아트센터에서 지자체 처음으로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그간 사립과 민간 문화재단을 통해 결성되었던 장애음악가들의 단체와 달리 지자체의 기획과 운용은 향후 장애 음악계에 작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추측된다.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는 발달장애·시각장애·청각장애를 가진 다양한 연주자에게 전문적인 교육과 성장의 기회를 약속했다. 지휘자 박성호와 악단의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초대상임지휘자로 역임했고, 2024년부터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임명됐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맡게 됐는데, 두 악단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느끼는가?
두 악단의 모집 과정과 지향점이 다르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맞지 않지만, 나의 11년 지휘 공백기 동안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당시 최초의 발달장애 오케스트라였기에, 악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모두 단원이 되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전국에 여러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생겼고,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 단원은 2차 심사까지 오디션을 통과한 수준 높은 연주자로 선별됐다. 인구와 실력이 모두 향상된 것이다.
현재까지 세 달간 연습을 이어오고 있는데, 악단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처음에는 분명 서로 경계심이 높았다. 첫 간담회 때는 보호자분들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석 달쯤 지나니 지금은 서로 무척 친해져서, 매일 웃음소리가 나오고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악단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무엇인가?
국내 자치도 중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사업은 경기아트센터(사장 김상회)가 처음이다. 그 안의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는 인재 양성형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단원이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2년으로 정해져 있다. 이 2년간의 첫 기수가 성공적인 모범을 보여야 이러한 제도가 더 넓게 퍼지는 것 아니겠나. 놀랍게도 해외에도 전문적인 장애인 오케스트라 사례는 거의 없다. 우리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까지 좋은 사례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모범이 되기 위해 연습도 무척 철저하게 진행 중이라 들었다.
철칙이 있다면, 쉬운 길로 가지 않는 것이다. 시중에는 연주자의 실력에 맞춰 쉽게 편곡해 놓은 악보가 있지만, 남들보다 100시간을 더 연습해야 한다고 해도, 원본 악보를 고집하고 있다. 연주에 참여하는 단원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도 한계를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이달에는 첫 정기연주회를 준비 중이다. 프로그램은 어떻게 선별했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곡들로 골랐다. 우선 첫 곡으로 꼽은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은 난도가 무척 높은 곡이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화려한 작품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세계로부터’는 이 교향곡이 가진 서사가 이들과 잘 맞아서 선택했다.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장애인들에게는 참 낯선 세계이다. 그 낯선 세계의 만남이 잘 어울리도록 꼭 많은 관객이 함께 하기를!
글 이의정 기자 사진 경기아트센터
박성호(1975~) 한양대 음대, 폴란드 국립 쇼팽음대 지휘과를 졸업했고,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초대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박성호/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협연 안희찬)
4월 10일 오후 7시 30분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글린카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2·4악장)
서울시향 ‘아주 특별한 콘서트’ 3.2
사회적 약자를 위한 풍요로운 음악
서울시향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의 정식 취임은 2024년 1월이었지만, 서울시향과 음악감독의 긴밀한 협업은 2023년 초부터 이루어졌다. 특히 2023년 4월과 2024년 4월에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됐던 ‘아주 특별한 콘서트’는 그가 임기 전부터 열의를 보여온 서울시향의 주요 사업 중 하나였다. 1997년 그의 아내와 함께 자폐아 가족을 지원하는 파파게노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던 츠베덴 감독은 “음악은 영혼의 음식이다. 사회 약자들에게도 영혼의 풍요가 닿아야 한다”라고 전하며, 두 공연을 모두 무보수로 지휘했다. 이 공연이 올해는 더 큰 무대로 찾아왔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있었던 지난 3월의 ‘아주 특별한 콘서트’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사회자인 다니엘 린데만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 패배한 자국의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했다며, 프로그램 선정 의의를 전했다. 이윽고 이어진 ‘박쥐’ 서곡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시작의 기운을 잘 퍼뜨렸다. 츠베덴 감독의 가볍고 큰 동작의 지휘가 왈츠와 잘 어우러졌다.
이어진 작품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으로 클라리네티스트 김민철이 함께 했다. 시각장애를 지닌 김민철은 중학생 시절에 클라리넷을 시작했고, 계명대·영남대·대구가톨릭대 등의 대학 콩쿠르에서 수상한 바 있다.
이날 무대에 그는 츠베덴 음악감독의 팔을 잡고 무대에 올랐다. 그는 2024년 서울시향 ‘행복한 음악회, 함께’를 통해 협연 연주자로 선발됐으며, 작년 두 차례 공연을 함께한 바 있다. ‘행복한 음악회, 함께’ 시리즈는 서울시향에서 모집한 장애인 음악가가 서울시향 단원의 지도를 받으며 함께 공연을 올리는 사업으로, 2017년부터 작년까지 총 13회 진행했다.
옹골찬 소리로 시작한 아다지오 악장은 부드러운 선율선을 그리며 유려하게 이어졌다. 클라리넷과 악단의 소리 균형이 잘 맞아, 음악을 감상하기 더욱 좋았다. 특히 매우 여리게 연주하는 부분의 밸런스는 완벽에 가까웠다. 짧은 악장의 아쉬움인지, 연주가 끝나자 관객의 환호가 터졌고, 츠베덴 감독과 팔짱을 낀 채 몇 번의 커튼콜이 이어졌다. 김민철은 공연 이후 장애인 최초로 서울시향의 특별단원으로 위촉됐다.
이후 이어진 차이콥스키 ‘이탈리아 기상곡’은 트럼펫의 음정이 조금 불안정했지만, 전반적인 유쾌한 분위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작품 이후 사회자와 츠베덴 감독의 짧은 인터뷰가 이어졌다. 츠베덴 감독은 “우리 사회는 이들을 포용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장애인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의미가 무척 크다. 좋은 사회는 그 어떤 이도 사회 밖으로 내쫓지 않는 사회이다. 서울시향이 이와 같은 공연을 이어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어진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청각장애가 있던 베토벤이 1악장의 c단조부터 4악장의 C장조까지 이은 음악의 연결은 ‘고통’에서 ‘승리’로 가는 여정으로 해석되곤 한다. 박자가 비교적 급한 점은 아쉬웠지만, 3악장의 힘 있는 금관 소리는 서울시향의 시그니처처럼 쟁쟁했다. 4악장의 시작은 불안했는데, 지휘자의 지시로 빠르게 수정되어 깔끔한 마무리를 완성했다. 앙코르로 연주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은 신년 분위기를 만들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서울시향
툴뮤직 대표 정은현
장애 음악가들에겐 지속적인 고용이 필요하다
장애인 음악가들을 인큐베이팅하고, 전문 음악가로서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사회적기업 ㈜툴뮤직의 대표 정은현에게 아티스트 발굴부터, 음반 제작, 공연 기획 등 장애인 음악가들과 함께 이뤄낸 지금까지의 성과와 과정을 들었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장애인 음악가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
2010년쯤, 우연히 장애가 있는 제자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장애인을 위한 창작 지원이나 전문적인 교육 환경이 거의 없었다, 이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장애인 음악가들에게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장애인 음악가에 대한 대중의 인식 및 정책에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문화예술 정책과 제도가 상당히 활성화됐다. 장애인의무고용제도 시행 이후 장애인 음악가들이 직업 연주자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술의전당과 같은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등 예술 활동 측면에서도 구체적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툴뮤직은 공연 기획사이자, 장애인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어떠한 기준으로 아티스트를 선정하고 육성하는가?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에서 실력과 예술적 감동을 기준으로 음악가를 선발한다. 이후, 계약을 통해 아티스트의 활동 전반을 관리하고, 전문 음악가로 육성한다. 2023년 창단한 툴뮤직장애인예술단을 포함해 향후 설립될 다양한 장애인예술단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예술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장애인 음악가의 발굴, 육성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초기에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중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 어려움이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장애인 음악가들을 위한 재원 마련이 절실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음악가들이 많아진 만큼, 이들을 지원하고 운영할 수 있는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직접 음반도 제작하고 있다. 음반 녹음은 모든 음악가들에게 쉽지 않은 작업인데, 녹음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피아노를 연주할 때 보통 왼손으로는 반주를, 오른손으로는 멜로디를 친다. 이에 맞춰 왼손과 오른손의 볼륨이 달라져야 하는데, 발달장애 연주자들은 그 세기와 강도가 비슷한 편이다. 이처럼 장애 유형마다 각기 다른 음악적 특징을 갖고 있기에 연주 및 녹음 과정도 연주자마다 완전히 달라진다. 연주자와 디렉터 모두 비장애인보다 몇 배로 힘든 과정을 거치지만, 녹음을 마치고 나면 보람과 감동이 배로 느껴진다.
장애인 음악가들의 공연을 기획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
롯데콘서트홀과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피아니스트 이훈과 배성연의 독주회, 그리고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노영서의 독일 투어가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장애를 뛰어넘어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연주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준 공연이었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장애인 음악가들의 안정적인 고용을 위한 플랫폼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더 많은 장애인 음악가가 고용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전문 음악가로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하다.
지난 2월, 관장으로 취임한 성음아트센터(성남시 분당구)에서 장애인 음악가 육성을 위한 ‘어메이징 그레이스 콘서트 시리즈’ 공연을 기획 중이다. 이 외에도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 수상자 음악회, 축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 음악가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툴뮤직
정은현(1980~) 중앙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음악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목원대, 전주대 음대에서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사회적기업 툴뮤직의 대표, 2025년부터 성음아트센터 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