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 PREVIEW
통영국제음악제 ‘깊이를 마주하다’ 3.27~4.5 통영국제음악당
현대음악의 봄바람은 남해에서 분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제가 선사하는 동시대 음악의 정수

통영국제음악당 ©DAELIM
1999년 ‘윤이상 음악의 밤’과 2000년과 2001년에 열린 ‘통영현대음악제’를 모태로, 2002년부터 시작된 통영국제음악제는 지난 십수년간 끊임없는 변화를 꾀하며 독보적인 도약을 이뤄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공연예술제에 7년 연속 선정되며 예술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증명해 왔고, 2022년 진은숙 예술감독 취임 이후 한층 견고해진 해외 네트워크는 축제의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올해는 ‘깊이를 마주하다(Face the Depth)’라는 주제 아래 더욱 견고해진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올해 축제의 시작과 끝은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3.27·4.3·5)가 책임진다. 개막 공연에서는 윤이상의 ‘예악’을 시작으로 조성진이 협연하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무대에 오른다. 조성진(3.30)은 이어지는 독주회에서 바흐 파르티타 1번, 쇤베르크 피아노 모음곡, 쇼팽 왈츠 14곡을 연주하며 고전과 현대의 깊이를 동시에 탐구할 예정이다.
올해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와 카운터테너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는 축제 전반을 관통하며 관객을 만난다. 하델리히(4.1~5)는 리사이틀에서 드뷔시, 풀랑크, 타케미츠 등 20세기 음악의 정수를 선보이며, 박하양·최하영·찰스 오웬(4.4)과 한 무대에 올라 모차르트와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4중주를 연주한다. 폐막 공연에서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오를린스키(4.1~4)는 조반니 안토니니/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4.1)와의 협연부터 리사이틀까지, 헨델과 퍼셀을 비롯한 바로크와 현대의 폭넓은 레퍼토리로 시대를 초월한 다층적 매력을 들려줄 계획이다.
상주작곡가로는 현대음악의 거장 조지 벤저민이 이름을 올렸다. 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 폐막 무대(4.5)에 오르며, 토비 대처/앙상블 모데른(3.28·29)은 그와 더불어 진은숙의 ‘그라피티’를 한국 초연으로 선보인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는 작곡가 주이칭과 조윤제의 신작을 세계 초연하며 현대음악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통영의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젊은 연주자들의 합류도 기대를 모은다. 202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3.29·4.2),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첼리스트 최하영(4.4), ARD 콩쿠르 우승자이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플루트 수석 김유빈(3.28·30) 등이 무대에 오른다. 루카스·아르투르 유센 피아노 듀오는 리사이틀(4.3)과 더불어 김선욱/경기필하모닉(4.4)과의 협연 무대도 마련되어 있으며,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모딜리아니 콰르텟(3.28·29)의 공연이 축제의 풍성함을 더한다.
다채로운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는 실험적인 무대들도 준비되어 있다. 퍼커셔니스트 돔니크(3.28·29)는 사운드스케이프 ‘워터 리플스’를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주빈 캉가(4.3~5)는 ‘사이보그 피아니스트’를 주제로 AI, 머신러닝, 바이오센서 등 첨단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음악의 형태를 제시한다. 여기에 소리꾼 왕기석(3.31)의 ‘수궁가’, 독일 재즈 피아니스트 미하엘 볼니(3.31)와 프랑스 색소포니스트 에밀 파리지앵(3.31)의 재즈 콘서트가 어우러지며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장르와 기술의 경계를 넘어 예술적 ‘깊이’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FESTIVAL | zoom in
통영에서 만나는 피아니스트·작곡가 주빈 캉가
낯선 기술을 예술로, 음악의 경계를 허물다
첨단 기술이 가져올 마법과 신비의 순간을 만나자
예술가는 동시대 기술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AI를 비롯해 VR·AR·MR 등의 기술 역시 예술가들의 레이더에 포착되며, 그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해 왔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빈 캉가의 작업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스티브 라이히(1936~)의 대표작에서부터 동시대 인터랙티브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아우르는 그는 연주자이자 작곡가, 공동창작자로서 음악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특히 대규모 음악과 기술의 협업 프로젝트 ‘사이보그 솔로이스트’를 이끌며 낯선 기술을 일찌감치 예술로 승화시키고, 음악 안에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 왔다.
2020년부터 시작된 ‘사이보그 솔로이스트’는 AI와 머신러닝, VR, 손동작이나 뇌파 등 생체 데이터를 접목한 무대 작업과 새롭게 개발한 하이브리드 악기를 통해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다. 이는 기술과 작곡의 접점을 가장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자, 미래의 피아노와 피아니스트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시도이기도 하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4월 3~5일 ‘사이보그 피아니스트’라는 제목 아래, 이 프로젝트의 주요 작품과 신작을 선보인다.
기술을 연주하고, 몸으로 사유하다
신체 데이터를 활용한 연주는 춤처럼 보이기도 한다.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는가?
센서 장치들이 전자음을 제어하는 과정이 노트북 뒤에 숨겨지지 않고, 공연의 일부로 관객에게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작곡가는 특정 구간에서 어떤 기능을 사용할지, 어떤 음악적 결과를 원하는지를 정한다. 하지만 센서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일지는 연주자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전자음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이 과정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도록, 춤에 가까운 움직임이나 연극적인 제스처를 자주 활용하는 편이다.
무대에서 강렬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보는가?
무대 위에서 어떤 효과를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우라는 음악 자체와 그 음악을 연주하고 전달하기 위해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재즈와 살사를 포함해 다양한 장르를 오랫동안 연주해 온 경험은 무대에서의 표현 방식에도 분명한 영향을 주었다. 작곡가가 움직임이나 말·의상·무대 세트 같은 연극적 요소를 작품에 통합할 때에는 나 역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이러한 모든 과정이 지금의 연주 활동으로 이어져 왔다. 결국, 아우라의 상당 부분은 공연에 임할 때 유지하는 집중력, 그리고 연주할 때 몸 전체가 함께 작동하는 유연한 테크닉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시대의 양식이 뒤섞인 21세기 음악을 연주할 때, 피아니스트로서 ‘잘’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양음악의 고전 레퍼토리를 연주할 때, 피아니스트는 본질적으로 기계적이고 타악적인 이 악기를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거나,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센서나 새로운 시스템을 연주할 때는 표현할 수 있는 차원이 훨씬 넓어지지만, 핵심적인 목표는 여전히 같다. 이 기계를 유기적이고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 다만 각 악기와 장치마다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요구되는 기교는 전혀 다르다.
잠들기 직전의 의식상태(Hypnagogia)와 바흐 음악이 만난 ‘Hypnagogia (after Bach)’ 등은 작곡·청취·비평·연주의 전통적인 음악 영역이 뒤섞인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경계의 흐려짐’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Hypnagogia (after Bach)’는 MiMU 글러브(손과 팔의 움직임을 감지해 소리·영상·조명 등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웨어러블 디지털 악기)를 사용해 제스처와 움직임으로 소리를 제어하는 작품으로, 장거리 비행 중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들었던 경험에서 출발했다. 당시 비행기 엔진 소리가 마지막 악장의 하행하는 3도와 6도 선율과 겹쳐 들렸고, 그 순간이 새로운 창작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이 작품에는 청자이자 연주자로서 바흐에 대해 느끼는 애정, 독특한 청취 상태에서의 경험, 그리고 음악과 기술을 변형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온 기법들이 모두 담겨 있다. 나에게 작곡은 청자, 연주자, 작곡가, 테크놀로지스트로서의 경험이 하나로 얽히는 과정이다. 작곡가와 연주자의 구분은 늘 모호했지만, 최근에는 청중과의 경계까지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다. 통영에서 한국 초연으로 선보이는 알렉산더 슈베르트(1979~)의 ‘위키-피아노.넷’(2018)은 이러한 변화된 창작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기술 중심의 작업 속에서도, 닐 럭과의 협업에서는 ‘장애’라는 인간적인 주제가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이보그 솔로이스트’는 새로운 음악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나는 기술 그 자체가 작품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더 큰 예술적 구상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다. 닐 럭과는 12년 동안 네 작품을 함께 작업해 왔고, 음악·연극·영상·텍스트 사이의 균형에 대해 깊은 공감대를 쌓아 왔다. 이번 공연에서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는 닐 럭의 ‘무엇이든 당신을 짓누르는 것’(2022)에서는 MiMU 글러브를 착용한 나의 제스처와, 청각장애 안무가 미나미무라 치사토의 퍼포먼스를 결합해 소통과 오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이러한 제스처 기반 악기들이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악기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전통에서 첨단 기술까지

주빈 캉가 ‘Hypnagogia (after Bach)’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곡가나 연주자는 누구인가?
피아니스트로서 쇼팽은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명이다. 10대와 20대 초반에 가르침을 주었던 스승들은 쇼팽의 테크닉이 현대 레퍼토리에도 잘 맞는다고 보았다. 나 역시 작곡가들과 피아노 작법을 이야기할 때 쇼팽의 생체역학적 접근을 자주 언급한다. 또 하나의 큰 영향을 준 인물은 키스 자렛(1945~)이다. 그의 음색과 프레이징은 나의 피아니즘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작곡가로서 바흐는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며, 웬디 카를로스(1939~)의 편곡은 바흐를 새롭게 보게 했을 뿐 아니라 신시사이저를 다루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작곡가·연주자·이론가·테크놀로지스트 사이의 협업, 그리고 무대 위 요소들의 멀티미디어적 결합은 21세기 음악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가?
음악 창작에서 협업은 늘 중요한 요소였다. 기술이 확장되면서 작곡가와 청중의 음악적 경험 역시 넓어졌고, 팀 단위의 협업은 더욱 자연스러운 방식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음악가와 테크놀로지스트 모두가 각자의 한계를 확장하도록 만든다.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는 피지컬 AI 로봇이 등장한다면 협업할 생각이 있는가?
이미 몇몇 연주 로봇을 접했고,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AI 시스템과 함께 연주한 경험도 있다. 그중 일부는 매우 정교했고, 연주자로서 흥미로운 상대였다. 실험적인 프로젝트로서 AI 로봇과의 협업에는 관심이 있지만,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공연을 찾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어떤 예술을 접하든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연주하는 작품들은 서양음악의 정전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팝·전자음악·영화·인터넷 문화 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관객들은 최첨단 기술이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의 마법과 신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이민희(음악평론가)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주빈 캉가(1982~)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호주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시드니 대학교 졸업 후,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니멀리즘부터 동시대 인터랙티브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아우르며, 연주·작곡·퍼포먼스·테크놀로지를 넘나드는 작업을 지속 중이다.
FESTIVAL | LEGACY
다시 일깨우는 윤이상의 숨결
LA 필하모닉, 전통음악, 실력파 솔리스트들이 함께 하는 윤이상 음악의 밤
통영국제음악제의 모태는 1999년에 첫 선을 보인 ‘윤이상 음악의 밤’이다. 이를 계기로 이후의 음악제에 윤이상의 작품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데, 이번 음악제가 오르는 3월에 우연히도 윤이상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국내외 곳곳에서 펼쳐진다. 올해 음악제의 주제인 ‘깊이를 마주하다’에 발맞춰, 그가 평생을 바쳐 탐구했던 동서양 융합의 미학과 그 예술적 깊이를 실연으로 체감할 수 있는 주요 공연들을 살펴본다.
그 서막은 태평양 건너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다. LA 필하모닉과 LA 현대미술관(이하 MOCA)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프로젝트 ‘엇갈린 랑데부(Star-Crossed Rendezvous)’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가 양혜규(1971~)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윤이상의 음악적 유산을 시각과 청각의 경계를 넘어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MOCA 그랜드 애비뉴에서는 양혜규의 대규모 블라인드 설치작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Star-Crossed Rendezvous after Yun)’를 미국 최초로 전시한다(2.24~8.2). 윤이상의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2중 협주곡’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견우와 직녀’ 설화를 모티브로 삼아 분단의 현실과 이별의 애틋함을 다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길 건너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는 앤아버 심포니(A2SO) 음악감독 이얼(1983~)의 지휘 아래 하피스트 에마뉘엘 세숑(1984~), 오보이스트 라이언 로버츠, 그리고 LA필 뉴 뮤직 그룹이 윤이상의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2중 협주곡’을 연주한다(3.10).
해외에서 고조된 열기는 3월 말, 본향인 통영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이끄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3.27)의 ‘예악’으로 화려한 포문을 연다. 궁중 음악의 정적인 울림을 관현악으로 구현해낸 작품으로, 1966년 도나우에싱겐 현대음악제에서 초연되며 윤이상을 세계 무대에 각인시킨 곡이다. 이어 김유빈(3.30)은 플루트 독주를 위한 연습곡 1·3·5번으로 고난도의 기교 너머 철학적 사유를 들려주며, 박수예(4.2)는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대왕의 주제’를 통해 치밀하면서도 자유로운 거장의 작법을 선보일 예정이다.
장르의 벽을 허물고 해외에서 국내로 이어지는 3월의 공연들은 윤이상의 음악이 여전히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현재 진행형’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글 홍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