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STAGE
소리꾼 이자람
소리의 궤적을 잇다
2007년부터 쌓아온 ‘이자람표 음악’을 한 자리로 모은 갈라 공연과, 뮤지컬 ‘서편제’로 그간의 내공을 펼친다

©완성플레이그라운드
벚꽃이 흩날리는 4월, 소리꾼 이자람이 판소리 갈라 ‘작창 2007/ 2015’를 선보인다. 마포문화재단 ‘M 초이스’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공연에서,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 ‘사천가’(2007)와 ‘이방인의 노래’(2015)를 다시금 무대 위로 불러낸다. ‘사천가’를 시작으로 ‘억척가’(2011) ‘이방인의 노래’(2015) ‘노인과 바다’(2019)를 거쳐, 지난해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하인’을 재창작하여 초연한 ‘눈, 눈, 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창작 판소리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초록이 짙어질 즈음에는 뮤지컬 ‘서편제’(4.30~7.19/광림아트센터 BBCH홀)로 관객을 만난다. 2010년 초연 이후 오랜 세월 함께 호흡해 온 ‘송화’로서 다시금 무대를 지키는 자리다. 갈라 공연이 그간의 창작 궤적을 갈무리하는 시간이라면, 4년만에 돌아온 ‘서편제’는 오랜 세월 함께한 배역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 모든 시간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선 이자람은, 이번 공연의 제목이기도 한 ‘작창(作唱)’을 두고 “평생 해야 할 즐거운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담담히 건넨 문장 사이로,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소리의 내공이 묻어났다.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는 무대
판소리 갈라 ‘작창 2007/2015’는 어떤 계기로 선보이게 되었나요?
특정한 시점을 기념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제목에 연도를 붙인 것도 전작 전체를 보여주는 공연이라는 오해를 줄이기 위한 장치였고요. 그저 작품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고, 그걸 관객과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작창’ 시리즈는 제 작업이 21세기 창작 판소리 문화 안에서 어떤 흔적으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과거에 던졌던 질문들이 지금도 유효한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사천가’와 ‘이방인의 노래’는 각각 브레히트(1898~1956)와 마르케스(1927~2014)의 원작을 바탕으로 합니다. 두 원작을 판소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사천가’는 저의 첫 창작 판소리 작업이었어요. 20대 후반에 만들었던 작품이라, “왜 판소리는 세련된 무대 양식을 사용하지 않지?” 같은 굉장히 개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죠.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판소리로 만드는 동안 솔직히 제가 뭘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 채 작업했어요.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그동안의 경험과 취향이 모여 일종의 종합예술 작품이 됐더라고요. ‘이방인의 노래’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전 작업들을 이어오며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더 소소한 이야기, 적은 수의 관객과 만나는 공연을 하고 싶어 단편소설을 읽다가 이 작품을 만나게 됐습니다. 마르케스의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은 이야기 속에 무대에서 풀어낼 수 있는 극적 요소가 숨어있는 작품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 서정적인 텍스트를 판소리라는 적극적인 공연 형식으로 옮기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동료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대본과 음악을 고쳐가면서 작업했습니다.
두 작품의 하이라이트 대목을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 관객이 특히 주목하면 좋을 지점이 있다면요?
특별히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을 정해두기보다는, 오페라 갈라를 보듯 편하게 걸음해 주시면 좋겠어요. 판소리도, 창작 판소리도, 갈라 형식도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지만… 그냥 오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다 준비해두겠습니다.
초연 당시와 비교해, 작창의 무게감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작창은 평생 연마하고 노력해야 할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게감이라기보다는, 즐거운 노동에 더 가깝죠. 전통 판소리를 연습하면서 옛 명창들의 작창을 들여다보는 일도 재미있고, 동시대 음악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도 굉장히 흥미로워요.
과거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며 새롭게 발견한 점도 있었나요?
연습 전에는 늘 ‘지금의 내가 과거의 저보다 낫다’는 생각 때문에 “손볼 게 너무 많으면 어쩌지”하고 걱정을 해요. 그런데 막상 대본을 열어보면, 과거의 제가 꽤 성실하게 작업을 해뒀더라고요. 그래서 과거의 저를 믿고, 그때 만들어둔 음들을 지금의 발성으로 반복해서 연습해요. 그러다 보면 세월이 쌓이며 생긴 발성의 노하우나 관객을 만나온 경험이 작품을 한층 더 유연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더라고요.
꺾이지 않는 소리를 향한 사랑
2022년 이후 4년 만에 돌아오는 뮤지컬 ‘서편제’는 이번 시즌 노년의 송화 역(정은혜)을 추가하며 변화를 꾀했다. 그간 배우로 함께 해온 이자람은 이번에 ‘국악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린다.
초연(2010)부터 함께해 온 작품인 만큼, ‘송화’로 돌아오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떠나야 할 때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무대를 차분하고 정갈하게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천유정 연출가에게도 그렇게 말씀드렸고요. 동시에 앞으로 더 많은 배우와 소리꾼들이 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커요.
‘송화’에 대한 이해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한’만으로 정의하기에 판소리는 너무 넓고 깊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비록 서사는 어긋난 욕망과 몰이해로 인해 ‘송화’가 시력을 잃는 비극으로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도 꺾이지 않고 끝까지 소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송화’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소리꾼으로서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경험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고수와 둘이서 2시간가량 공연을 이어가는 사람이에요. 1년에 약 55시간 정도를 무대 위에 홀로 서 있는 셈이죠. 그런 제게 뮤지컬은 수많은 배우와 무대 안팎에서 마주치고, 웃고, 응원할 수 있는 풍성한 선물처럼 느껴져요. 동시에 판소리를 하는 인물의 삶이 중심이 되는 작품인 만큼, 성실하게 연습한 제 소리로 판소리의 깊이를 동료와 관객에게 잘 전달하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무대와 연습실을 지켜온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일상이요.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매일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이불 속에서 책을 읽다가 잠드는 것. 이 반복되는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일이 제가 하는 모든 일을 감당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입니다.
앞으로의 작업도 궁금합니다. 다음 이야기를 떠올려본다면요?
저도 늘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고, 사실은 조금 무섭기도 해요. 과연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고요. 부디 제 삶에 새로운 생각들이 찾아와서 다시 즐겁게 창작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마포문화재단
이자람(1979~) 10살 때 처음 판소리를 접한 후, 은희진·오정숙·송순섭을 사사했다. 2007년 창작 판소리 ‘사천가’를 시작으로 ‘억척가’(2011) ‘이방인의 노래’(2015) ‘노인과 바다’(2019) 등 꾸준히 작창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하인’을 재창작한 ‘눈, 눈, 눈’을 선보였다.
PERFORMANCE INFORMATION
이자람 판소리 갈라 ‘작창 2007/2015’
4월 2일 오후 7시 30분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이자람(소리꾼), 이준형(고수), 김정민(베이스·기타)
뮤지컬 ‘서편제’
4월 30일~7월 19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
이청준(원작), 이지나(예술감독), 윤일상(작곡), 조광화(대본·가사), 천유정(연출)/이자람·차지연·이봄소리·시은(송화), 정은혜(노년 송화), 김경수·유현석·김준수(동호), 서범석·박호산·김태한(유봉)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