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7월 8일 10:17 오전

REVIEW |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생기로 빛난, 모차르트 순례의 해

스즈키 마사토/카메라타 잘츠부르크(협연 임윤찬·임선혜)

6월 15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천재라는 수식어는 이날 공연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임윤찬이 선택한 것은 자신의 기교를 증명하는 길이 아니라, 모차르트라는 한 작곡가의 세계를 깊이 탐구하는 여정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25번과 24번, 그리고 아리아 ‘어찌 그대를 잊으리’까지. 모차르트 작품으로만 구성한 이번 공연은 젊은 음악가가 지금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에게 바치는 긴 헌사에 가까웠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이야기할 때면, 내게는 늘 우치다 미츠코(1948~)의 연주가 먼저 떠오른다. 오랜 시간 모차르트를 탐구해온 음악가 특유의 깊이와 투명함, 절제된 아름다움 때문이다. 하지만 임윤찬의 모차르트는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완숙함보다 젊음의 생기, 관조보다 발견의 기쁨이 먼저 들렸다. 완성된 해석이라기보다 지금 이 나이에만 가능한 모차르트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고음악 단체 바흐 콜레기움 재팬의 음악감독인 스즈키 마사토(1981~)가 이끄는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의 앙상블 역시 인상적이었다. 도쿄 공연을 마치고 서울을 찾은 이들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를 압도하기보다, 각자의 소리를 존중하며 균형을 이루는 모차르트를 들려줬다. 피아노 협주곡 25번에서 임윤찬은 오케스트라가 긴 도입부를 연주하는 동안 목관 주자들을 응시하며 음악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갔다. 24번에서는 보다 역동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3악장의 빠른 템포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모차르트가 지닌 다채로운 표정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였다.

2부의 ‘어찌 그대를 잊으리’는 모차르트가 소프라노 낸시 스토라체(1765~1817)의 고별 연주회를 위해 작곡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 모차르트가 직접 건반악기를 연주한 것으로 전해지며, 소프라노와 피아노 오블리가토,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편성 때문에 무대에서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고음악 해석으로 오랜 시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소프라노 임선혜는 젊은 피아니스트를 이끌어 주면서도 앞서지 않았다. 때로는 임윤찬의 감정을 받아주고, 때로는 작품 전체의 균형을 잡으며 음악을 단단하게 지탱했다.

연주가 끝난 뒤, 두 사람은 다시 함께 무대에 올랐다. 앙코르는 모차르트의 가곡 ‘황혼의 감상’ K523. 오케스트라가 잠시 침묵한 가운데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채워진 음악은 객석에 조용한 여운을 더했다.
임윤찬의 모차르트는 완성형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음악에 가깝기에 더 기대하게 된다. 이토록 생기 넘치는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그가, 30대가 되면 어떤 모차르트를 들려줄까. 그리고 40대에 이르렀을 때는 어떤 깊이를 보여줄까.

2026/27 시즌에는 뉴욕 카네기홀과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사이클을 이어간다. 이후 암스테르담 콘세트르허바우와 빈 무지크페라인에서도 ‘올 모차르트’ 프로그램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 음악가가 평생에 걸쳐 탐구할 작곡가를 선택하는 순간이 있다면, 임윤찬에게 지금은 모차르트의 시간이다.

홍예원 기자 사진 목프로덕션

 

 

모든 평범함을 거부한다

최재혁/앙상블블랭크

6월 1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현대음악에 대한 꾸준한 행보를 이어온 앙상블블랭크(이하 블랭크)가 올해로 창단 1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공연을 선보였다. 프로그램은 20세기 현대음악의 발전을 주도한 음악가들의 작품으로 구성해 악단의 정체성을 확고히 드러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블랭크의 방향성은 리플릿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작품 해설 대신 쓰인 ‘앙상블블랭크는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통해 미래로 나아갑니다’라는 문구와, ‘프로그램’이라고 적혀있는 텅 빈 대괄호까지. 역시 범상한 단체는 아니었다.

공연은 거의 암전에 가까운 상태에서 시작됐다. 하나 둘씩 실루엣으로만 보이던 연주자들이 자리를 잡은 뒤 붉은 조명이 들어왔고, 연주가 시작되고부터 점차 조명이 밝아지며 연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양한 복장 사이로 캐주얼한 정장에 흰 양말과 스니커즈까지 포착된 그들의 차림새에는 일말의 평범함조차 거부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엿보였다.

공연의 문을 연 작품은 스트라빈스키(1882~ 1971) ‘병사의 이야기’ 모음곡(1918)이었다. 특유의 불협화음으로 운을 떼지만, 이날 연주곡들 사이에서는 가장 ‘착한 맛’이 아닐까. 이 작품을 연주한 7인조 앙상블은 완성도 높은 합을 보였으며, 트럼펫·클라리넷·바이올린의 솔로 연주는 짜릿했다. 타악기 주자도 인상적이었다.

이어진 라헨만(1935~)의 ‘압력’(1969/70)은 공연 시작부터 무대 가장자리를 가만히 지킨 첼리스트의 연주로 시작됐다. 일반적인 주법이 아닌, 활과 손으로 악기를 치고, 긁고, 짓누르는 방식의 연주가 이어졌다. 현·지판·몸통·브리지는 물론 테일피스까지 건드리며 괴이한 음향을 쏟아냈다. 설명만으로는 그저 기행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현장이 부여하는 ‘압력’은 상당했고, 관객들은 숨죽인 채 연주에 집중했다. 녹화된 영상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난해한 작품을 이해할 실마리는 실황 안에 있었다.

다음으로 연주된 힌데미트(1895~1963)의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2중주(1934)는 첼리스트가 앉은 위치로 비올리스트가 향하며 무대 가장자리에서 그대로 진행됐다. 앞서 언급된 세 작품은 끊이지 않고 한 무대로 이어졌는데, 성격이 다른 곡들 가운데서 일종의 스펙트럼을 빚어내고자 한 최재혁의 시도였다.

다음 곡인 불레즈(1925~2016)의 ‘파생 1’(1984)로 넘어가기 전, 잠시 마이크를 잡은 최재혁은 프로그램을 기재하지 않은 리플릿에 대해 ‘오히려 어떤 곡인지 모르고 들었을 때 더 재밌는 작품들’이라는 의도를 내비쳤다. 푸른 조명 아래 연주된 ‘파생 1’에서는 공연 전체의 간주곡에 해당하는 듯한 묘한 편안함이 몰려왔다.

대미를 장식한 존 애덤스(1947~)의 실내 교향곡(1992)에서는 작곡가 특유의 ‘맥시멀한 미니멀리즘’이 돋보였다. 복잡한 리듬과 박자로 난도가 높은 작품이다 보니 모든 파트가 쫀쫀하게 붙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블랭크가 뿜어내는 쾌활한 에너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최성혁 기자 사진 앙상블블랭크

 

 

맨발로 걷는 거칠지만 따뜻한 농현의 흙밭

‘이병우와 국립국악관현악단’

6월 5일 오후 7시 30분 국립극장 해오름

검은색과 청록색 계열의 의상이 층을 이뤄 배치된 무대는 오케스트라의 획일적인 검은 정장과는 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철릭의 선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푸른 의상은 무대에 생동감을 더했는데, 서로 다른 색이 한 악단 안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이날 위촉 초연된 ‘각자의 입장’이라는 제목을 떠올리게 했다.

대금 파트는 객석 오른쪽을 향해 앉았고, 지휘자 김유원이 무대에 등장해 객석에 인사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수록곡들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원곡이 품고 있던 애틋함은 국악기의 거친 결을 만나면서 한층 담백한 정서로 변주됐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빛난 순간은 다큐멘터리 ‘황하’. 중국 청해성의 발원지에서 산둥반도까지, 장장 5천km에 이르는 황하가 국악의 울림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거칠고 투박한 태평소는 황하의 물줄기를 연상시켰고, 해금은 그 옆에서 함께 질주했다. 팽팽한 분위기 가운데 소금 부수석 김한백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맑고 청아한 음색은 거친 관현악의 흐름을 관통하며 색깔을 대비시켰다.

이어 독특한 광택을 뿜어내는 비닐 소재의 흑색 한복을 입은 이병우가 듀얼 기타를 메고 등장했다. 산뜻하면서도 투명한 조선의 아침 풍경을 떠오르게 한 유명한 원곡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중 ‘조원의 아침’에 귀가 익숙해져있던 탓일까? 새롭게 다가오는 국악은 다른 풍경을 머릿속에 만들어냈다. 우아하고 이국적인 리듬은 국악의 음색과 만나 뜻밖의 세련미를 이뤘다. ‘꿈꾸는 광대들’에서는 소금이 쏟아내는 익살스럽고 영민한 광대의 몸짓은, 마치 참새가 재잘거리듯이 명랑하게 뻗어 나갔고 악단은 그 뒤를 가볍게 따랐다. ‘반허공’은 이병우의 기타가 지닌 미덕을 선명히 무대 위로 풀었다. 미세한 호흡과 계산적이지 않던 박자의 변화가 오히려 연주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직접 연주하니 깊은 설득력이 충만했다. 음악은 매끈한 표현 대신 입자가 두터웠다. 거칠지만 따뜻했고, 잘 다져진 흙길을 걷는 듯한 감각을 남겼다. 선곡된 작품이 대중의 귀에 익은 작품들이니 객석의 반응도 남달랐다. 무대가 흐를수록 후반부에 배치된 위촉 초연작을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감이 앞섰다.

검은 일렉트릭 기타의 음산한 음색으로 시작된 위촉작 ‘각자의 입장으로’는 5박자의 엇모리장단 위에 전자음과 농현을 교차시켰다. 제목처럼 음악은 좀처럼 하나로 수렴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음정을 지닌 악기들은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진 악기들의 토론장처럼 펼쳐졌다. 굽이굽이 돌아가며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길을 이어갔다. 충돌하거나 경쟁하지도, 그렇다고 쉽게 섞이지도 않았다. 다만 서로 곁을 맴돌며 조금씩 이동할 뿐이었다. 이제 조화의 타이밍이 아닐까 기대해도, 섞이지 않는다. 잠시 기타의 쉼에도 전자음과 악단은 물결처럼 흐르며 공존하는데 그 음악이 퍽 잘 어울렸다. 조금씩 쌓아 올리는 화음들이 마침내 두터운 층위가 되어 널뛰듯 솟구쳤다. 기타도 힘을 가세하고 마침내 달려가는 널뛰기. 조금씩 흥을 돋우며 종장으로 달리는 음악, 모든 절정이 끝나고 기타가 혼자 남았다.

앙코르는 ‘괴물’의 한강찬가. 신비한 여운이 아직 머무른 무대에 다시 한 번 익살스러움을 선사하며 이병우의 유쾌함만을 남겼다.

유내리 기자 사진 국립극장

 


 

미하일 플레트뇨프/라흐마니노프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

귓가에 달라붙는 독특한 러시아 사운드

6월 1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대에 선 미하일 플레트뇨프(1957~)를 오랜만에 만났다.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에 이어 그가 새롭게 이끄는 라흐마니노프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RIO)를 처음 만난 자리였다. 무대는 클래시컬 브릿지 음악 페스티벌(예술감독 클라라 민)의 폐막공연.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부터 높은 집중력이 감지됐다. 맹렬하고 깊이 있는 연주였다. 겉으로는 천천히 유동했지만, 총주가 강렬했고, 때로는 서늘할 정도로 음영을 드리웠다. 플레트뇨프는 왼손의 주먹과 오른손 지휘봉을 간결하게 사용했다. 베토벤 3중 협주곡 전주는 견고하고 치밀하게 꽉 짜여 있었다. 고티에 카퓌송의 첼로와 다니엘 로자코비치의 바이올린은 긴밀한 합이 잘 맞았다. 특히 첼로의 묵직한 질감이 확실했다. 반면 바이올린은 본인의 개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앙상블의 균형을 택했다. 첼로와 바이올린이 잘 맞은 데 비해, 엘렌 메르시에의 피아노와는 다소 온도차가 있었다. 2악장에서도 풍부한 비브라토를 선보인 첼로의 서정성이 돋보였다. 입체적인 현악과 상대적으로 평범하고 납작한 피아노의 대비는 3악장에서도 지속됐다. 반주하는 오케스트라의 팀파니와 현이 풍성한 음향을 발산했다. 폴로네즈 악구에서 로자코비치의 바이올린은 특히 빛났다. 첼로는 중음역이 돋보였지만, 고음역에서는 힘겨운 기색도 보였다.

2부 첫 곡 라흐마니노프 ‘바위’에서 플레트뇨프는 의자에 앉아 지휘했다. 저음역으로 시작한 음악은 현의 트레몰로와 지저귀는 목관을 통해 어둡고 불길함을 풍겼다. 특히 하프가 어우러진 관현악에서는 음반에서 들리지 않던 부분들이 들렸다. 깊게 움직이는 저음부와 이를 감싸는 목관은 라흐마니노프뿐 아니라 차이콥스키를 떠올리게 하는 색채를 만들어냈다. 플레트뇨프의 독특한 해석은 입체적이고 회화적인 연주로 발현됐다. 곡이 끝나고 청중은 한참 침묵을 지켰다.

플레트뇨프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직접 혹은 간접으로 인용하여 작곡하고 올해 1월 함부르크에서 초연된 ‘라흐마니아나’는 이날의 백미였다. 제1곡 ‘댄스’는 금관과 현이 교차하는 춤곡으로, 플루트가 맹활약했다. 제2곡 ‘녹턴’에서는 비올라의 선율 위로 바이올린군이 끼어들었다. 첼로의 피치카토도 인상적이었는데 서정적이고 뭉클한 선율이 섬세하게 다가왔다. 제3곡 ‘세레나데’에서는 오보에와 플루트가 도드라지는 3박자 리듬과 피치카토가 기억에 남았고, 거대한 총주로 끝이 났다. 제4곡 ‘풍경’에서는 유동적인 플루트가 큰 역할을 했다. 제5곡 ‘알레그레토’에서 플레트뇨프는 간헐적으로 일어서서 지휘했는데 왠지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제6곡 ‘멜로디’는 차이콥스키적인 따스함이 부각됐다. 제7곡 ‘작별’은 두텁고 짙은 도입부로 시작됐다. 금관의 앙상블이 안정적이었고, 현악기가 가세하며 안정감이 더해졌다. 이어 목관과 현이 가세하며 가슴을 파고드는, 먹먹하고 어두운 러시아 정서의 진수를 들려줬다. 깊게 가라앉는 저역은 바그너의 어두운 관현악 세계를 연상시켰다. 마지막인 제8곡 ‘헝가리 춤곡’은 발랄한 타악기가 눈부셨다. 형형색색의 피날레는 민첩하면서도 엄격했고, 타악기는 묵직했다. 플레트뇨프와 라흐마니노프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는 귓가에 달라붙는 점착적인 음향으로 청중의 청각과 촉각을 함께 자극하고 무대를 떠났다.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아템포

 


CLASSICAL MUSIC

 

레이 첸 바이올린 리사이틀

롯데콘서트홀의 열 번째 생일 파티

6월 4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선택지가 두 개에서 세 개가 된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10년 전 여름, 롯데콘서트홀이 개관하면서 서울의 클래식 음악 팬들은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에 더해 또 하나의 공연장을 갖게 됐다. 롯데콘서트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획공연 ‘10 for 10’을 선보이며 그 의미를 기념하고 있다.

지휘자 정명훈과 샤를 뒤투아,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마르타 아르헤리치, 그리고 롯데콘서트홀의 상징인 오르간을 연주할 카메론 카펜터와 올리비에 라트리까지. 화려한 이름들 사이에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1989~)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연주력과 명성을 새삼 실감케 한다.

피아니스트 첼시 왕과 함께 한 무대는 축하의 분위기와 환영의 인사가 가득한 음악회였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32번,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3번 BWV1006, 사라사테 ‘스페인 무곡’ 중 1번 ‘플라예라’와 ‘카르멘 환상곡’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하나의 뚜렷한 방향을 향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레이 첸의 해설과 어우러지며 이날만의 이야기를 독특하게 만들어냈다.

첫 곡인 모차르트 소나타는 첫 음부터 매력적이었다. 피아니스트와의 숙련된 호흡이 돋보인 1악장이 끝나자, 안정감 있는 종지에 편안함을 느낀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2악장의 노래와 3악장의 장난기 역시 레이 첸다운 모습이었다. 그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잡고 영어로 모차르트 소나타와 다음 곡인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를 소개했다. “그리그의 작품은 마치 영웅의 여정과 같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소나타 3번은 밝음과 즐거움, 그리고 낭만적인 비브라토가 어우러진 연주였다.

인터미션 이후 연주한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3번에서는 첫 곡인 ‘프렐류드’가 특히 인상 깊었다. 레이 첸이 무대 위에서 얼마나 편안하고 자유로운 연주자인지를 잘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자연스레 그의 커리어 출발점이 된 2008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와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타이틀이 언뜻 떠올랐다. 그는 ‘가보트와 론도’에서도 바흐를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자신만의 색을 불어넣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레이 첸은 바흐와 사라사테의 ‘스페인 무곡’을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춤’이라고 설명했다. ‘카르멘 환상곡’까지 프로그램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이 음악회가 어디서 끝날지는 여러분이 결정한다”며 앙코르 의사를 내비쳤고, 객석은 환호로 화답했다. ‘스페인 무곡’ 중 ‘플라예라’와 이어진 ‘카르멘 환상곡’은 레이 첸의 에너지와 연주 경험, 스타 연주자로서의 면모와 엔터테이너적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흥에 겨운 관객들의 ‘중간 박수’가 나오기도 했지만, 레이 첸과 첼시 왕은 흔들림 없이 자신들의 흐름을 이어갔다. 피아노의 안정적인 프레이징도 레이 첸의 독주를 단단히 뒷받침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레이 첸은 한국어로 “사랑해”를 외친 다음 히사이시 조의 곡을 소개하며 첫 번째 앙코르 ‘인생의 회전목마’를 연주했다. 이어 몬티의 ‘차르다시’, 드뷔시의 ‘달빛’까지 세 곡의 앙코르가 이어졌다. 말로 하는 프레젠테이션과 음악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빠르게 분위기를 전환하는, 그야말로 ‘요즘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이 열어준 롯데콘서트홀의 흥겨운 생일 파티였다.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롯데문화재단

 


OPERA

 

글로리아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현대적 미장센 속에서 되살아난 벨칸토의 본질

6월 5~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카를로 팔레스키(지휘)/최이순(연출)/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위너오페라합창단·김순정발레단·진아트컴퍼니/ 강혜정·박성희(아디나), 정호윤·전병호(네모리노) 외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은 흔히 경쾌한 오페라 부파로 분류되지만, 그 이면에는 전원극 특유의 낭만과 벨칸토 고유의 품격 있는 서정성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따라서 희극적 해학에만 매몰되면 작품 본연의 격조를 놓치기 쉽다. 대본의 소동극적 요소와 음악의 내밀한 우아함 사이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균형을 잡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제17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5.22~ 7.5) 참가작으로 오른 글로리아오페라단(단장 겸 이사장 양수화) 창단 35주년 기념 무대는 주역들의 탄탄한 벨칸토 가창, 감각적인 연출, 지휘자의 노련한 음악적 극작이 결합하며 도니제티 특유의 정제된 서정성을 설득력 있게 드러냈다.

 

이번 프로덕션에 극적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최이순의 연출과 영상 미장센의 결합이었다. 동화풍의 풍경을 정형화된 세트에 가두지 않고, 다채로운 색채감의 영상을 투사해 화사하고 역동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아울러 무대 위 실시간 라이브 카메라로 군중 속 주역들의 미세한 연기와 표정을 포착해 대형 스크린에 투사함으로써, 객석에서 놓치기 쉬운 인물들의 심리와 반응을 가까이 끌어왔다. 이러한 연출은 전통적 부파 소동극에 현대적 역동성을 부여했다. 다만 스크린 속 과도한 클로즈업이 때로는 무대를 압도해, 관객의 시선이 분산되기도 했다.

음악의 중심은 네모리노 역의 정호윤과 아디나 역의 강혜정이 이룬 벨칸토 앙상블이었다. 빈 국립오페라를 비롯한 유럽 무대에서 오랜 기간 다져온 베테랑답게, 정호윤은 자칫 어수룩하게만 보일 수 있는 시골 청년의 순박함을 절제된 내면 연기로 풀어냈다. 흠잡을 데 없는 레가토와 정제된 프레이징으로 네모리노가 지닌 진심의 무게를 설득했다. 그럼에도 중창과 아리아 일부 대목에서는 테너 음색이 한껏 발산될 때의 해방감이 다소 억제된 듯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화답한 아디나 역의 강혜정은 맑고 순도 높은 발성으로 벨칸토 프리마 돈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고난도의 기교적 패시지에서도 음색은 결코 차갑게 흐르지 않았고, 세밀한 셈여림과 유려한 선율 처리로 아디나의 지적이면서도 서서히 변모하는 심리를 유연하게 포착했다. 특히 여러 중창 장면에서 상대 배역과의 호흡을 놓치지 않으며, 음악의 균형과 장면의 정서를 동시에 살려낸 점이 돋보였다.

극에 희극적 음영을 더하는 조역들의 균형감도 견고했다. 벨코레 역의 바리톤 김동섭은 캐릭터 특유의 과장된 자만심을 당당한 발성과 또렷한 마르카토적 선율 처리로 소화하며 극적 긴장감을 더했다. 벨코레가 가창과 연기 모두에서 확실한 음악적 라이벌로 서 준 덕분에 네모리노의 심리적 갈등도 한층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사기꾼 약장수 둘카마라 역의 베이스 최공석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파를란도(Parlando) 대목을 뭉개짐 없이 정확한 딕션과 정밀한 리듬으로 쏟아내면서도, 저속한 슬랩스틱으로 흐르지 않는 품격 있는 희극적 타이밍을 자로 잰 듯 짚어내며 공연의 완성도를 견인했다.

이 모든 성악적 기량과 무대 연출을 하나의 유기적인 드라마로 묶어낸 주역은 베테랑 마에스트로 카를로 팔레스키와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였다. 박자 구조를 경직되게 밀어붙이지 않고 성악가의 호흡을 열어주는 노련한 완급 조절은 무대와 피트 사이의 긴밀하면서도 여유로운 호흡을 이끌어냈다. 다만 오케스트라의 세부 앙상블과 음색의 정돈감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김준형(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글로리아오페라단

 


BALLET

대한민국발레축제 ‘발레아리랑’

서사와 선율 대신, 감각으로 풀어낸 아리랑

6월 6·7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박훈규(연출·대본)/최수진·이루다(안무)/MUTO(음악)/신범호(음악감독)/박우재(거문고)/홍찬혁(영상·조명)/ 김경원·리앙 시후아이·성창용·신선미·신승원·전지운·최지원·한상이·강경호·이은수·권도현·권지아 외(출연)

해외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한국 무용수들로 인해 ‘K-발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시대. 그 성취가 화려할수록 오래된 질문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우리에게 발레는 무엇인가’. 한때 ‘민족 발레’ 혹은 ‘한국적 발레’라 불렸던 열망은 지금의 언어로 다시 쓰일 수 있을까.

제16회 대한민국발레축제(5.1~6.21)의 기획공연 ‘발레아리랑’은 그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안무가 최수진(1985~)과 이루다(1985~)가 공동창작하고 음악·미디어 아트 그룹 MUTO(무토)와 협력한 이번 작품은 ‘아리랑’이라는 노골적인 기표를 내걸면서도 익숙한 선율 대신 그 정서를 택했다. 거문고와 태평소, 전자 음향이 뒤얽힌 사운드스케이프는 발레보다 동시대 한국 창작 춤에 어울릴 법했다. 작품에 이렇다 할 서사는 없지만 식민 지배와 전쟁, 분단을 관통하는 근현대사의 비극을 느슨하게 구조화했다. 최수진이 안무한 전반부는 이루다가 안무한 후반부와 그 스타일이 뚜렷하게 구분됐다.

무대 뒤편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직육면체 구조물은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힘처럼 우뚝 서 있다. 거기에 익명의 몸, 파편화된 몸, 갇힌 몸의 이미지가 투사된다. 작품 전반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잿빛 누더기 원피스를 입은 여성(최지원)이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며 슬픔과 고통을 구현하는데, 유난히 길고 가는 몸선 탓에 평범한 민초라기보다는 초월적 존재에 가깝다.

잿빛 옷을 입은 인물들이 하나둘 등·퇴장을 반복하며 몽타주처럼 춤을 나열하는 동안 바닥을 미끄러지며 물결치는 동작들이 쌓인다. 복수의 경험, 복수의 몸이 공명하는 구도다. 중반부에는 신승원과 리앙 시후아이, 한상이와 김경원이 파드되로 비극적 이별을 구현한다. 파드되는 기술적 완성도와 감정의 진폭 모두 훌륭하지만, 군무와 유기적으로 엮이지 않는다. 그 결과 작품이 지향하는 ‘공통의 경험’과 발레의 관습적 위계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이 발생한다. 드라마가 쌓이지 않은 채 감정만 소환될 때 충분히 공감하기 어렵다.

후반부는 극복과 희망을 노래한다. 무용수들은 잿빛 의상에서 벗어나 검은 조끼와 긴치마, 헐렁한 흰 바지를 활용해 대비와 힘을 만들어낸다. 붉은빛과 흰빛이 점멸하며 대립하는 기둥 앞에서 두 남성 무용수(이은수·강경호)가 도플갱어처럼 마주 선다. 남북의 분단과 경쟁을 표상하는 듯 둘은 놀라운 동작 수행력과 팽팽한 에너지로 장면을 견인해 간다.

군무는 강강술래를 연상시키는 원형 구도 속에서 민족의 생명력을 형상화한다. 케이팝식 대형과 제스처, 한국 춤의 팔사위와 발레의 선이 뒤섞인다. 발레 공연에서 발레라는 장르를 잊기란 여간해선 어려운데 놀라운 몰입감으로 장르의 구속을 뛰어넘는다. 마침내 완전히 연소되어 널브러진 몸들 위로, 붉은 드레스의 최지원이 다시 등장해 위로의 춤을 춘다. 많은 희생 위에 성립한 오늘을 잊지 않겠다는 듯. 발레로 형상화한 살풀이굿이라고 해야 할까.

‘발레아리랑’은 허리께를 잘라 붙인 인형처럼 두 안무가의 스타일 차이가 도드라졌지만, 그 단절로 인해 공통점이 오히려 선명해졌다. 서사에서 벗어나 추상적이고 세련된 미감으로 ‘한국적인 것’을 다루겠다는 의지. 무용수 개개인의 역량과 군무의 에너지를 모두 담겠다는 야심. 그것이 K-발레의 현주소다.

정옥희(무용평론가) 사진 대한민국발레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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